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위대한 천재 작곡가의 탄생과 죽음!
불멸한 작곡가가 남긴 복잡다단한 생애를 만나보는
특별한 클래식 여행!
모차르트 전문가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모차르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랍니다. 그는 외계인이자, 신이 소유했던
펜이었습니다.”고 평했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역시 “예술가나 음악인으로서 모차르트는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니다.”고 말했다. 위대한
음악 천재, 신이 내려주신 선물, 그 어떤 말들로도 수식하기 어려울 만큼 모차르트는 음악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는 존재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후광에도 불구하고 ‘온실 속의 화초’, ‘희대의 악동’의 이미지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는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 등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의심케하기도 한다. 오늘날 그가 남긴 음악과 희곡뿐만 아니라 영화나 뮤지컬을 통해 그의 생애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지만 정작 천재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고뇌와 성장 과정, 숱한 의문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모차르트 예술의
키워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아르테에서 출간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일곱 번째의 도서이자 클래식 음악을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소개하는 김성현 저자의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탄생지인 잘츠부르크와 마지막 숨을 거둔 빈에 이르기까지, 모차르트가 남긴 삶의 여정들을 쫓아가면서 성장
과정과 고뇌, 창작 과정 등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모차르트의 성장이 그의 창작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세간에 알려진 각종 의문의
진실은 무엇인지, 사후 그가 남긴 예술의 키워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책을 읽다보면 모차르트의 삶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아버지 레오폴트’, ‘그랜드 투어’, ‘아내인 콘스탄체와 살리에리에 관한
왜곡된 진실들’로 압축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아버지인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삶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모차르트는 아버지 레오폴트에서 시작되어 아버지 레오폴트의 죽음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는 한 장의 수채화를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유럽 전역의 궁정으로 순회공연을 다닐 무렵인 1763년, 프랑스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 루이 카로지 카르몽텔이 모차르트
일가를 그린 수채화다. 이 그림에서 레오폴트와 모차르트는 같은 악보를 보면서 바이올린과 건반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자인
동시에 아들의 건반 연주를 관찰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모차르트 남매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고, 이들 남매의 유일한 스승은 아버지
레오폴트였다. 이들은 생물학적 가족인 동시에 음악 공동체, 더 나아가 운명 공동체였다.
오늘날에는 모차르트의 아버지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레오폴트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린 교육자였다고 한다. 덕분에 모차르트의 재능이
선천적인 것인가, 당대 최고의 음악 교육자인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맞춤형 개인 지도를 받아 후천적 노력에 의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모차르트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해 더 큰 세상으로 내보낼 기회를 마련하고 음악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을 제공한 이가 다름
아닌 레오폴트였기 때문이다. 사실 모차르트 신화에서 주연 배우가 모차르트라면, 모차르트의 재능을 누구보다 일찍 알아보고 절대적 확신을 가졌던
연출가는 아버지 레오폴트임은 분명하다. 그는 마지막까지 모차르트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의무감과 확신으로 살았으니 말이다. 어쩌면
천재성은 발견되는 것이고 남다른 애정을 갖고 육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말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레오폴트는 아들의 재능을 이용한 대담하면서도 주도면밀한 전략가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모차르트의 여섯 번째
생일을 보름 앞두고 첫 유럽 순회공연에 나선 일명 ‘1차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는 시기에서 그러한 생각은 분명히 드러난다. 1762년 빈의
쇤브룬 궁전에서 여섯 살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 최고 권력자인 황제 프란츠 1세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신동으로서의 기교를 뽐냈다. 그 뒤
레오폴트는 곧바로 유럽 전역의 궁정을 순회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했다.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 벨기에와 네덜란드, 영국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3년 5개월 하고도 20일 동안 88개의 도시와 마을에서 연주했다. 이는 서양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아이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부모의 전문가적 식견과 아이가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그의 추진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가족 기업’, ‘곡예사
기업’이라는 저평가처럼 유럽 순회공연이 상당한 경제적 이익이 되었다는 점, 레오폴트가 그랜드 투어 당시 모차르트를 2년 가까이 7세라고 실제
나이보다 줄여서 선전한 점은 또 다른 평가의 이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독일어로 능숙하게 작곡했던 모차르트를 “최초의 범유럽적 인물”이라고
칭했던 만큼 여행은 모차르트가 신동 연주에서 천재 작곡가로 진화하는 방법론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바흐의 막내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만나 교향곡에 눈을 뜨고, 당대 최고의 대위법 전문가 조반니 바리스타 마르티니 신부로부터 대위법을 배우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마술피리>, 후기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고향을 떠나 빈에서 남긴 걸작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기성
음악가들로부터 텃세를 받고, 언제나 자신보다 나이와 경력이 많은 기성세대와 경쟁이나 갈등을 피할 수 없었으며 성인이 되고 취업을 해야 할 시기에
이르러 부자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레오폴트가 죽음에 이르면서 모차르트 인생의 후반기는 고통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눈부신 예술적 성취에 비해 그는 ‘보통 사람’의 역할에는 서툰 존재였고, 지나친 낭비벽과 음악적 재능에 대한 넘치는 자신감은 모차르트의 가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레오폴트의 죽음은 운명 공동체와도 같았던 모차르트 가족의 해체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영화
<아마데우스>의 묘사처럼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모차르트의 삶이 점차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모차르트가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를 갈망했고,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난 이후 예술적으로 만개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진
뒤 모차르트가 정치적 처신이나 경제적 살림살이에서 너무나 많은 허점을 드러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부재 상황은
모차르트에게 치명적 위기를 불러왔다. / 253p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는 세계 3대 악처로 손꼽힌다는 말을 떠올리게 할 만큼 낭비벽에 심하고,
변덕스럽고 이성적이지 못한 성품 탓에 모차르트의 몰락을 부채질한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오해였던 것 같다. 김성현의
<모차르트>에서는 ‘모차르트 신화’ 탄생의 일등 공신이 아버지 레오폴트였다면 신화의 완성은 아내 콘스탄체의 몫이었노라 밝힌다.
모차르트 사후 그의 음악을 정리하고 추모 공연을 열어 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도록 가장 크게 공헌을 한 이가 그녀였기 때문이다.
콘스탄체 못지않게 오늘날까지 가장 큰 오해를 받는 인물로 살리에리만큼 억울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인 모차르트의 그늘에 가려 만년 2인자로 표현되는 살리에리가 격렬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결국 모차르트는 독살하게 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학자들은 모차르트가 당시 궁정음악가였던 살리에리와 경쟁한 것은 분명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을 험담하고 비난한 쪽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모차르트였다고 말한다. 살리에리는 자신의 신작 오페라 공연을 고집하는 대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 흔쾌히 양보하고, 모차르트가
죽은 뒤 그의 막내아들 프란츠 크사버를 직접 가르치기도 하는 등 실제로는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살리에리의 음악 세계에
대한 온전한 재평가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고 말았으니 정말 억울한 쪽은 살리에리가 아니었을까?



<모차르트>를 읽으면서 재주와 노력을 상반된 자질로 간주하며 오늘날 ‘신동’, ‘영재’가 가진 타고난 자질에 과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현상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모차르트를 하늘이 내려준 악상을 그대로 악보에 옮겼던
천사이자 천재로 묘사했지만, 사실은 지독한 일벌레였음을 알 수 있는 그의 일과는 우리가 천재나 신동이라는 단어가 지니고 있는 마력에 홀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아이를 모차르트처럼 키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모차르트 같은 아이가 있다면 과연
우리는 레오폴트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했던 저자의 말이 뼈있게 다가온다.
숨가쁘게 쫓아온 모차르트의 생애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그는 ‘타고난 천재’보다는 ‘만들어진 천재’에
가깝다. 그를 천재로 만든 건 우선 아버지 레오폴트였고 그다음엔 ‘18세기 유럽’이라는 드넓은 세상이었다.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평생 타고난 재주로만 먹고사는 사람은 없다. 천하의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의 ‘원천 기술’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흡수력과 학습 능력에 있었다. / 314p
둘째 아이를 가지고 태교 음악을 듣는답시고 평소에 자주 찾아 듣지 않았던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곤 했는데, <모차르트>를
읽으며 음악을 음악으로 즐기는 것도 좋지만 그 음악에 담긴 사연과 창작 과정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내 안에서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앞으로 제작될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들도 기대되고 이전에 출간될 책들도 소장하고 싶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