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이 전하는 감동!

따뜻한 마음을 한 땀 한 땀 자아내는 오가와 이토의 아름다운 겨울 동화!

 

 

   시리고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자 아이가 엄마의 손부터 먼저 찾습니다. 장갑을 미처 챙기지 못한 저의 허술함을 탓하며 아이의 손을 더욱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엄마, 손이 따뜻해요.”라고 말하며 제 손이 전하는 온기 속으로 작은 손을 파고듭니다. 이럴 때면 문득 뭉클해지곤 합니다. 저의 온기에 의지해 온몸으로 안겨오는 이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로 와 감정과 사랑을 나누며 무럭무럭 자라나 때로는 “엄마, 엄마 손이 차갑다. 내가 호, 불어줄게.” 라고 말하며 자신의 온기까지 전해줄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나고 있음에 감사해서 말입니다. 사랑이란 그런 건가 봅니다. 서로의 온기를 기꺼이 내어주고 베풀면 베풀수록 더욱 차오르는 그런 것이겠지요.

 

 

 

   <마리카의 장갑>은 그런 따뜻한 마음을 한 땀 한 땀 자아낸 오가와 이토의 아름다운 겨울 동화 같은 책입니다. 나의 온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을 통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아름답게 채우는 감동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마리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고, 사소한 일상에 감동하고 또 자신의 사랑을 나눠줄 줄 아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남은 생을 무엇으로 채우고 내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하니까요.

 

 

 

마리카, 우리가 사는 멋진 세상에 온 걸 환영해

 

 

   루프마이제공화국의 어느 사우나 오두막, 온 집안의 축복 속에서 건강한 여자아이가 태어납니다. 아빠는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뜻으로 아이의 이름을 ‘마리카’라 지었습니다. 마리카가 태어난 날 아침, 할머니는 곧바로 작은 엄지장갑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화려한 색깔의 아름다운 엄지장갑을 끼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길뿐더러,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장갑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지요. 할머니는 마리카가 장래에 어떤 여성이 될지 상상하면서 아주 작은 엄지장갑을 뜹니다. 할머니가 마리카의 엄지장갑을 뜨는 동안, 아빠는 세 아들과 함께 풍요롭고 너그러운 숲의 은혜를 느끼며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들 가문비나무를 준비합니다. 엄마는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흑빵을 만들어 가족과 나눠먹을 준비를 합니다.

 

 

 

식탁은 신의 손바닥, 빵은 그 성찬입니다. 하나의 빵을 나눠 먹는다는 건 모두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 빵은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음식입니다. / 31p

 

 

 

 

 

 

 

   자연과 전통, 평화를 중시하는 루프마이제공화국과 가족의 사랑 속에서 성장한 마리카는 열다섯 살에 이르러 야니스라는 춤 동아리 파트너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오빠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마리카는 엄지장갑 만들기에는 영 자신이 없었지만 이때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야니스를 위해서 엄지장갑을 뜨기로 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선물을 하기로 한 것이지요. 야니스에게 어울릴 것 같은 색깔을 고르고 야니스 손의 온기를 떠올리며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온 마음을 다해 엄지장갑을 떴습니다. 좋아하는,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껏 실을 자아내는 마리카의 마음이 이 책을 읽고 있는 제게도 오롯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는 대신 엄지장갑에 마음을 담아서 전합니다.

엄지장갑은 털실로 쓴 편지 같은 것.

좋아하는 마음도 말이나 글 대신 엄지장갑의 색깔이나 무늬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좋아하는 마음’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 63p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마리카와 야니스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맞이합니다. 화단에 꽃씨와 묘목을 심고, 언젠가 태어날 아이의 방을 만들고, 산들바람이 부는 밤이면 그네에 앉아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마리카가 호수에서 수영을 하는 사이 야니스는 시를 지으며 그들은 하루하루를 따스하게 채워나갑니다. 하지만 약소국인 루프마이제공화국이 얼음제국과의 전쟁에서 지게 되면서 이들은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좌절하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성실하게 그들만의 일상을 꾸려나가며, 행복을 누리는 것만큼이나 함께 불행을 겪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사과나무는 부모를 잃은 고아를 지켜주는 소중한 나무입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고아가 되기 때문에 마당에 사과나무가 없는 집은 없습니다. 그래서 루프마이제공화국에서는 집집마다 남자를 지켜주는 떡갈나무와 여자를 지켜주는 보리수, 그리고 사과나무를 마당에 꼭 심습니다. 이 나무들을 가족처럼 소중하게 여깁니다. (중략)

가진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 101p

 

 

야니스와 결혼하고 나서 마리카는 하찮아 보이는 벌레 한 마리에게도 제 역할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해만 끼치는 얄미운 벌레이지만 어딘가 사람이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이로운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생명은 위아래 없이 대등하다는 것을 야니스를 보면서 배웠습니다. / 102p

 

 

 

 

 

 

   이윽고, 야니스에게도 강제 연행 명령이 떨어지게 되고 그들은 기나긴 이별의 시간을 맞게 됩니다. 마리카는 그가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소망하며 밤새 엄지장갑을 뜹니다. 마리카는 웃는 얼굴로 야니스를 배웅했지만 그를 향한 그리움으로 이내 사무칩니다. 언제라도 돌아오면 먹을 수 있도록 음식도 넉넉하게 만들고, 밀린 바느질도 하고 그가 쓸 낚시용 장갑도 뜨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야니스가 없는 겨울은 유독 춥고 외로웠으며 봄이 지나 초여름이 지났지만 늘 찾아오던 황새 부부마저 소식이 없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힘든 때일수록 더 활짝 웃습니다.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웃으면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얼음제국의 지배에 젊은이들이 죽고, 가족을 잃는 슬픔은 계속되었지만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워주면서 살아갑니다. 마리카 역시 자신이 손수 털실을 자아 뜬 엄지장갑으로 고아가 된 소녀들을 돕고 넓은 온실로 만든 아이의 방에 그들을 초대하여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물론 야니스가 무척이나 그립고 못 견디게 보고 싶은 순간이 있지만, 날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외로워하지 않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냅니다.

 

 

마리카는 야니스의 장갑에 가만히 왼손을 넣어보았습니다. 장갑 안에서 야니스의 손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천천히 손가락을 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야니스의 손에 살포시 감싸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야니스와 손을 잡고 걷던 시절이 그리웠습니다. 그때는 너무 당연해서 손을 잡는다는 것이 이토록 소중한 사랑의 행위인 줄 몰랐습니다. 마리카는 장갑을 낀 손을 꼭 쥐었습니다. / 180p

 

 

 

 

 

 

   마침내 마리카가 일흔 살이 되던 해에 루프마이제공화국은 독립을 되찾았습니다. 마리카는 더 이상 엄지장갑은 뜨지 않지만, 집에 있던 엄지장갑과 야니스를 위해 뜬 장갑들을 풀어 컵받침이나 냄비 받침 등 모양을 바꾸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애써 자은 털실인 만큼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로부터 칠 년 뒤, 마리카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고마워요!”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이처럼 <마리카의 장갑>은 한 편의 동화처럼 아름다운, 따스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었어요. 마리카의 삶뿐만 아니라, 고유의 전통을 지키며 슬픔을 위로와 애정으로 어루만지고 자연의 은혜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큰 감동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를 배경으로 했다하니 어쩐지 그들의 삶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앞서 <달팽이 식당>과 <츠바키 문구점>을 통해 느꼈듯 <마리카의 장갑> 역시 세상을 아름답게 어루만지는 오가와 이토 작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녀의 섬세한 시선과 필력이 이 겨울 모두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득, 저도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뜨개질을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툴러도 내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다했던 마리카처럼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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