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능력이라는 특별한
재능은 신의 축복일까, 재앙일까!
초능력을 지닌 소년들의 고뇌와 성장, 미스터리한
초능력 서스펜스의 절묘한 조합을 이룬 추리소설!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지는 정신적인 힘을 가리켜 우리는 초능력이라고 부른다. 유년시절, 명절만 되면 TV에서 염력
및 투시, 텔레파시나 유체이탈과 같은 놀라운 힘을 지닌 기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선보이곤 했다. TV 앞에 모여든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들을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어쩌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 때문에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그들을 저울질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인들이 보여준 힘은 대중들의 눈을 속인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언제부턴가 방송에서도 퇴출되고 말았다.
정말로 초능력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잘 짜여진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추리소설이다. 지금이야 초능력을 지닌 영웅들이 등장하는 마블 시리즈 류의 영화들이 탄탄한 서사와
캐릭터를 바탕으로 사랑받으면서 이들의 능력에 충격과 괴리감을 느끼는 일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1992년이었다면 초능력을
지닌 두 소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미스터리가 보다 큰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20년이
지난 작품이라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여전히 탄탄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갖춘 작품이라는 점이다. 또 초능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두 소년의 극명한 대비와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에서 소설이 서술된다는 점에서 초능력을 단순히 미스터리 장르의 한 속성으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뇌를 이해하고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인가 고민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다 특별하다.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다
강력한 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는 밤, 한 잡지사의 기자인 고사카 쇼고는 사쿠라 공업단지 부근 갓길에서 한 소년을 차에 태우게 된다.
거대한 폭풍우로 인해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와중에 자전거를 끌고 도쿄에서부터 이곳까지 여행을 왔다는 이 의문의 소년에 대해 의아함을 품는 것도
잠시, 뭔가가 덜컹거리며 차에 충격이 가해진다.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차에서 내린 고사카는 그곳에서 열린 맨홀 뚜껑과 어린 아이의 것으로
추측되는 노란 우산을 발견하게 된다. 펼쳐진 우산과 뚜껑이 열려 있는 맨홀이라니.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그들을 엄습하는 가운데, 노란 우산의
주인인 아이를 찾는 부모를 만나 이들은 기이한 실종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사건취재에 나선 고사카는 누가 일부러 맨홀 뚜껑을 열은 듯한 흔적과 도쿄에서 여행을 왔다는 신지라는 소년이 보이는 석연치 않은 태도에
그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신지가 상대의 마음이나 기억을 읽어내는 초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신지는 고사카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태연하게 드러내며 이 실종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려한다. 신지의 능력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의심스러운 가운데, 고사카는 이
실종사건의 진범으로 의심되는 이들과 접촉하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또 한 명의 초능력자인 나오야를 만나게 되기까지 한다.
"아니,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야.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어. 잠재적으로는
말이야. 다만 대부분 그걸 밖으로 끌어낼 능력이 없는 거지. 밖으로 끌어내는 능력도 함께 갖고 태어나는 아이는 적다고 바로잡아야겠네. 그 양쪽의
능력을 함께 갖추고 있는 사람이 초능력자, 사이킥이지." / 77p


한편, 고사카는 여덟 통에 이르는 의문의 편지와 함께 자신의 전 연인이었던 사에코까지 협박에 휘말리는 또 하나의 사건을 겪게 된다.
그 사이 자신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 정의롭게 쓰고 싶어 하는 신지와 불안과 두려움 사이에서 자신의 능력을 철저히 숨기며 살아가려는 나오야의
고뇌가 사건에 영향을 미치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맹렬한 질주를 시작한다. 이때 서스펜스는 서스펜스대로 유지하면서 초능력이라는 이 놀라운
힘이 과연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재앙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통찰력 있는 저자의 관점은 이 소설의 빛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이따금 그렇게 치명적으로 무책임 아니, 낙관적이 된다. 누구나 그런 허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 33p
어쩌면 이 세상은 위험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과 인식한 위험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 하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모양인지도 모른다. / 130p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로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 469p

'이나무라 신지라는 그 소년이 사이킥이라면 그 아이도 또한 용을 깨워 버린 인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애는 그 용을 조종하려 하고
있죠.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 머리를 향하게 하려고. 저는 그걸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 애를 구할 수 있는 건 그
자신뿐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초능력을 가진 한 여인의 도움을 받아 몇 건의 사건을 해결한 경험이 있다던 한
형사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일정 이상의 능력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사용하게 하느냐에 따라
능력은 재능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 있는 거라고, 또 그것은 그 한 사람이 오로지 짊어져야 할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이다.
<용은 잠들다>를 접하면서 꽤 높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화차>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에
불과하다는 것에 잠시 놀랐다. 왜 다들 '미미 여사'를 칭송하는지 초창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읽으며 여실히 깨달았달까. 이처럼 그녀의
작품이 재출간되고,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인 듯하다. 그만큼 오래 지나도 누구나 읽기 좋은 작품이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