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펭귄과 첫사랑 누나, 소년
아오야마가 펼치는 귀염발랄 수상한 판타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세상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기
위한 그 시절, 특별한 이야기!
유년 시절의 나는 저녁 아홉 시만 되면 서둘러 잠자리에 드는 아이였다. 모두가 잠든 시간, 깊은 한밤중에 꼭 눈을
떠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금살금 침대에서 벗어나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서랍장에서 손전등을 꺼내 캄캄한 실내를 밝혔다. 그리고는
전날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꺼내 활자를 손전등에 비춰가며 그때부터 꼭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량 읽은 다음에야 다시 잠들곤 했다.
당시의 나는 남들이 자는 시간에 뭔가를 읽는다는 것, 뭔가를 알아낸다는 것에 꽤나 몰두해있었고 또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 그때는 필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이유도, 개념도 딱히 알지 못했지만 꼭 책을 읽고 나면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새하얀 노트에
베껴 쓰기도 했는데 연필이 닳고, 빈 페이지가 채워져 갈수록 나를 몹시 똑똑한 아이 또는 문학 소녀의 이미지에 다가가게 하는 것만 같아
뿌듯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한밤중에 세상이 내게 다 들려주지 못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에 접근하는 것을 즐겼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소녀와 소년들이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대로 알지 못했던 혹은 이해할 수 없었던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에 다가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수께끼 투성인 현실 그리고 상상, 우리는 모두 그
속에서 성장한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하지만 아오야마는 매일 착실히 노트에 많은 것을 기록하고 책도 많이 읽으며, 탐구
활동에도 꽤나 적극적일 만큼 지적 호기심이 충만하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어제보다 조금씩 훌륭해져있을 거라고
믿는다. 장차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를 결혼상대로 점찍어뒀을 만큼 어쩐지 애어른 같은 구석도 있는 녀석이다. 그러던 5월의 어느 날, 아오야마가
살고 있는 현 경계 너머의 작은 도시에 느닷없이 펭귄 떼가 출몰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아델리펭귄, 학명 피고스켈리스 아델리에. 남극과 그
주변 섬에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펭귄이 도시 한복판에 나타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펭귄들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때 으레 지나가는 루트를 '펭귄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한다. 어쩐지 아오야마는 이
말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펭귄 출현에 대한 탐구의 제목을 '펭귄 하이웨이'라 짓기로 한다. 이때부터 소년 아오야마와 친구인 우치다는
펭귄 하이웨이를 따라 펭귄의 서식지를 발견하기 위해 탐험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 아오야마는 치과 누나가 펭귄을 만들어내고 펭귄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사실과 같은 반 친구인 하마모토의 가세로 초원에서 미지의 존재인 일명 '바다'를 만나 기이한 현상을 마주하면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놀라운 모험을 펼쳐나간다.
"소년,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겠니?"
소설 <펭귄 하이웨이>는 소년 아오야마와 그 친구들이 온통 수수께끼로 가득한 일련의 기묘한 사건을 겪으며
그들의 우정과 사랑, 성장과 모험담을 일종의 성장 소설 형식으로 풀어놓은 아름다운 판타지다. 세계의 끝과 시작,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과 해답을 10대 다운 순수함으로 접근해가는 방식은 이 소설에 있어 가장 빛나는 지점이 할 수 있다. 특히 어른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세상의 수수께끼에 다가가기 위해 거친 숲을 뛰어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질문에 맞서는 모습들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이것이 이 소설이 SF
소설이자 성장 소설이기도 한 이유가 아닐까.
아버지의 3원칙에 대하여.
아버지는 나에게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줄 때 세 가지 도움이 되는 생각을 가르쳤다.
나는 그것들을 노트 표지 뒷면에 써서 언제라도 볼 수 있게 해놓았다. 그건 수학 같은 문제를 풀 때 도움이 된다.
• 문제를 작은 문제들로 쪼갠다.
•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 닮은 문제를 찾는다. / 88p
"그 문제들은 제각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지."
나는 노트를 꺼내서 '그건 하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반복해서 생각해봐야만 한다. 펭귄 하이웨이 연구와 '바다' 연구는 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잘 생각해볼게요."
"매일 발견을 기록해둘 것. 그리고 그 발견을 복습해서 정리할 것."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커피를 마셨다. / 254p
모리미 도미히코의 대표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에 이어
<펭귄 하이웨이>역시 현실과 환상을 절묘하게 섞어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이야기를 펼쳐놓는 작가 특유의 작풍과 궤를 같이 하는
느낌이다. 다만, 그간 '교토 작가'라 불릴 만큼 교토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선보였던 이력과 달리 이번 작품은 드넓은 하늘과 초원 아래 10대
소년소녀들의 자유분방함과 따뜻한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놓았다는 점에서, 이것이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되었을 것인지 더욱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유년의 그 때, 그 시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알고 싶었던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를 떠올리며 영화 <펭귄
하이웨이>를 관람하러 극장으로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