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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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미스터리 초기작!

11글자에서 비롯된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작가의 분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라플라스의 미녀>와 같이 최근에 발표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간 선보였던 정통 미스터리와 달리 SF나 휴먼 미스터리라는 좀 더 색다른 장르의 조합을 시도하는 흔적들이 눈에 띈다. 덕분에 전형적인 일본식 미스터리 작가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장르소설작가의 한계성까지 뛰어넘으려함으로써 더욱 많은 대중들에게 호응하고 있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초창기의 작품에서 선보였던 특유의 탐정 혹은 형사 추리물 또는 일본 고유의 추리소설의 계보에 부합하는 작품들은 아직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재평가되고 있는 작품들도 상당하여 다시금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가히 독보적인 작가라 할 만하다.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은 메시지가 당신을 노리고 있다

 

 

   <11문자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무려 1987년에 발표한 정통 추리소설이다. 여성 추리소설 작가로 활동 중인 '나'가 어느 날, 애인이 누군가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어 시체로 발견된 일을 계기로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친구이기도 한 출판사 편집 담장자 후유코와 함께 사건의 단서를 수집해나가면서 마침내, 애인의 죽음이 1년 전에 한 스포츠플라자의 사장의 주체로 벌어진 요트 여행과 그곳에 참여했던 일행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고와 관련있음을 눈치채고 만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들이 하나씩 피살되고, 종국엔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한 지경에 처하고 만다.

 

 

 

지금, 뿌리 깊은 증오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 증오를 버릴 수도,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실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진정한 해답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그들'은 결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해답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테니까.

그걸 생각하면 나의 증오는 불꽃처럼 타오른다.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

이 한 줄이다. 그리고 이거면 충분하다. / monologue 1 중에서

 

 

 

 

 

 

   마침내 인적이 드문 Y섬이라는 무대로 1년 전 사건에 연루된 모든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경악할만한 또 한 명의 인물이 피살을 당한다. 하지만 모두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대체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 이 11문자의 살인 메시지를 보낸 이는 누구인가. 이 공포의 무대에서 벗어나면 다시 이 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모두에게 치명적인 상흔을 남긴 1년 전 사건의 진실은 또 무엇인가. 사건의 전말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은 모든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선과 악의 그 모호한 경계 앞에서 갈등하게 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선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정말로 선인 것인가, 모든 악은 그저 악인 것인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현실의 사건은 흑백이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지. 선과 악의 경계가 애매하잖아. 그래서 문제 제기는 할 수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불가능해. 항상 커다란 무언가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런 점에서 소설은 완성된 구조를 지니고 있잖아. 소설은 하나의 구조물이지. 그리고 추리소설은 그 구조물 중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분야 아니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말했다.

"선와 악의 경계선에서 고민한 적 있어요?"

"그야 당연히 있지." / 17p

 

 

 

 

 

 

   <11문자 살인사건>은 사실 중반부쯤에 이르다보면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혹시 이 사람이 아닐까 하고 짐작하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정통 추리소설이 주는 묘미를 충분히 느끼게 할 만큼 재미있는 작품이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찜통같이 더운 요즘, 다시 출간되고 있는 그의 초기작들을 읽으면서 이 기나긴 무더위를 잊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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