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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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00년의 거대한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정통 조선왕조실록!

조선의 건국 과정과 창업의 뜻을 생생한 역사적 기록과 이야기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걸작!

 

 

 

   '우리는 왜 삼국지 같이 재미있는 역사서가 없을까?'

   시중에 이미 다양한 역사서들이 존재하지만 때때로 삼국지처럼 세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역사서가 없다는 점은 늘 아쉽기만 하다. 사실적이고 가치 있는 역사적 정통성을 지니고 있으되 이야기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재미있는 대하서를 기대하기엔 어쩐지 좀 역부족이랄까. 그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다양한 소재를 양산해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이야 말로 어찌 보면 우리가 구현해낼 수 있는 가장 흥미롭고도 위대한 '조선 시대'의 유산 그 자체일 테지만, 그 누구나 읽어도 재미있고 역사적 가치도 충분한 작품으로 만나보지 못하고 있었던 건 좀 서운했던 것이다. 그러던 찰나에 <조선 왕 독살 사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등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온 작가로 정평이 난 이덕일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이 무려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서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혁명의 대업을 이룬 태조, 피와 눈물로 나라의 기틀을 세운 정종과 태종

 

 

   저자 이덕일은 책의 서두에서 무려 5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지된 조선 왕조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역사상 존재한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도 이렇듯 긴 수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위대한 기록 유산의 존재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제도, 즉 시스템과 정신에 있음을 밝힌다. 더욱이 <조선왕조실록>은 뒤의 임금이 앞의 임금 때 있었던 일들을 날짜별로 기록한 편년체 역사서로, 태조 이성계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그대로 전함은 물론, 살아 있는 권력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놀라운 기록물임을 강조한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담긴 역사 하나하나는 단지 흥미 있는 옛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되새기며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지식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조선왕조실록> 1권은 조선 창업이라는 대업을 이룬 태조 이성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성계의 부친인 이자춘은 사실 원나라 관리였다. 이성계 일가가 살던 두만강 북쪽 쌍성은 고려 땅이 아니라 원나라 땅으로 그들은 무려 90년여 동안 대대로 원나라 벼슬아치로 살아온 것이다. 그런 이자춘이 개경을 방문했을 때 공민왕은 지극히 환대했고, 그가 고려인의 후예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회유하려 했다. 이성계가 아버지 이자춘을 따라서 고려왕실에 귀순했을 때, 이미 고려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생의 파탄이었다. 사회의 기반인 토지제도가 무너지면서 당연히 군사제도도 함께 무너졌고 홍건적이나 왜구가 쳐들어와도 물리칠 군사가 없을 지경이었다.

 

 

 

고려 백성들은 공민왕 측이고 기철 측이고 구분할 것 없이 고려의 지배 체제 자체를 불신했다. 백성들의 토지를 뺏고, 양민을 자기 집 노비로 전락시킨 것은 원당만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법 체계가 무너지고 약육강식이 지배하면서 백성들은 권세가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들판에 새까맣게 달라붙어 일해도 부모와 처자를 봉양할 수 없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공민왕이고 기철이고 누가 권력을 잡건 간에 백성들의 미래가 없을 건 분명했다. / 57p

 

 

 

 

 

  그나마 개혁을 꿈꿨던 고려의 마지막 중흥군주 공민왕은 승려 출신의 개혁가 신돈을 중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이 역시 구가세족들의 승리로 끝나고 만다. 신돈의 몰락으로 고려는 구가세족의 나라로 되돌아갔다. 백성들이 농토를 빼앗기고 노비로 전락해도 하소연할 곳 없는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다른 사람에게 천명을 내릴 것을 두려워하고 공민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고려 왕조는 막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결국 중앙정치에서 소외되어 변방에 있던 두 인물이 기회를 얻게 된다. 바로 원나라에서 나고 자란 무장 이성계와 "민심이 천심"이라는 믿었던 정도전이 바로 그들이다. 마침내 이성계는 정도전과 조준이 제시한 과전법을 통해 토지 개혁이란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 새 왕조의 개창을 이뤘다.

 

 

 

정도전의 머릿속에는 천 리 밖 계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지식이 있었고, 이성계에게는 그 계책을 실현시킬 수 있는 군사력이 있었다. 이성계는 일곱 살 어린 정도전을 기꺼이 스승으로 삼았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주군으로 삼았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신하이자 스승이었고, 이성계는 정도전의 군주이자 제자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 자체로 고려 왕조를 폭풍 속으로 몰고 갈 조짐이었다. 그 조짐이 겉으로 불거진 것이 바로 이성계의 토지 개혁 상소문이었다. 그러나 우왕은 물론 조정의 대신들 중에서도 그 의미를 읽은 사람이 없었다. / 145p

 

 

개국공신들은 맹약문에서 하늘이 이성계에게 천명을 내렸고, 자신들이 이를 도와 대업을 이룩했다고 천명했다. 조선 왕조는 이성계 혼자의 힘이 아니라 개국공신들과 함께 천명을 실현시킨 공동 왕조라는 뜻이었다.

"처음에 함께하기는 쉽지만 끝까지 함께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권력과 부가 있는 곳에는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서로 일심동체가 되자고 맹세한 것이다. / 291p

 

 

 

 

 

 

 

 

   하지만 고려의 비극이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데서 비롯된 것처럼, 태조 이성계의 비극도 자기 집안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데서 시작되고 말았다. 아들인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개국시조인 부왕을 몰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허수아비로 잠시 왕위에 올린 친형으로부터 임금 자리도 빼앗듯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악역을 자처하고서라도 새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피의 숙청을 통해 조선을 법치국가로 만들었다. 또한 권력을 자신이 아닌 백성들을 위해서 사용했다. 특히 "하늘이 사람을 낼 때는 본래 천인이 없었다"면서 기존의 노비종모법을 아버지의 신분을 따르는 노비종부법으로 바꾸었다. 과전법에 이은 노비종부법의 도입으로, 조선 개창의 대업이 그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노비 제도 자체를 폐지하지는 못했지만 종부법으로 전환함에 따라 노비 숫자가 대폭 줄어들 것은 분명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이 토지 개혁으로 경제의 불평등을 완화시켰다면 태종은 종부법으로 신분의 불평등을 완화시켰다. 조선 개창의 개국 이념이 태종의 종부법으로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조선은 경제의 불평등이 대폭 완화되어 민생이 안정되고, 종부법으로 양민이 대폭 늘어나 사회가 안정되는 길에 접어들었다. / 2권 251p

 

 

태종에게 명나라는 형식상으로는 사대의 대상이지만 상황에 따라 적국이 될 수도 있었다. 태종은 그 차이를 혼동하지 않았다. 그의 사고의 중심은 조선에 있었지 명나라에 있지 않았다. 이런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했다. 태종의 치세에 조선은 반석같이 단단해졌다. 태종은 이렇듯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후임인 세종에게 물려주었다.

냉혹해 보이는 공신과 외척 숙청으로 왕권은 아무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다. 이런 왕권을 물려주었기에, 세종은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종부법을 단행해 노비의 숫자를 대폭 줄이고 국가에 납세의 의무를 지는 양인의 숫자를 대폭 늘렸다. 사대외교로 평화를 구가하면서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군사를 튼튼하게 길렀다. 이 모두가 태종이 이룬 일이다. / 2권 359p 

 

 

 

 

 

  이렇듯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창업을 다룬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그의 아들인 정종과 태종이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을 그려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선 개창이 지닌 함의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다양한 숙제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테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는 사대 논리의 그늘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을 강조하며 조선의 역사는 우리가 선택할 또 다른 미래의 길을 내다볼 수 있게 하는 거울임을 상기시켰듯, 이 책을 읽으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앞선 세대의 실패를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삼국지 열풍'이 불었던 때가 있었듯, 이어서 출간될 <조선왕조실록> 역시 널리 읽히고 보다 많은 자리에서 호응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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