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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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발상에서 시작된 발칙한 소설!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국가 건설 프로젝트!

 

 

 

   작가 함정임은 '소설은 자기 안에 억눌린 자아에 귀를 기울이고, 숨을 터주는 것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소설 쓰기의 본질은 구원에 있다고, 구원의 마음으로 세상을 향할 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민의 대상이 된다고 말이다. 2014년 4월 16일, 소중한 생명들이 거대한 바다 속으로 사라진 날 우리 모두는 '국가'의 의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한 소설가는 국민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나 몰라라 하는 국가는 국가로서 자격이 없으므로 '나는 존재할 이유와 자격이 없는 국가를 버리고 국민이 국가 그 자체가 되는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음을 고백한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사욕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말았던 국민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그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리라.

 

 

 

인간의 존엄과 자유와 행복을 찾아서 

 

 

   <나의 아로니아공화국>은 나라를 바꿀 수 없다면 아예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발칙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친환경적인 도시 환경 조성을 위해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5층 이상의 건물 역시 짓지 않는다, 시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방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적 본질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권력 기관을 만들지 않는다, 누구라도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때문에 소외받지 않도록 한다, 학교에서는 노는 기술을 가르치고 0세부터 매월 연금을 준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전 국민이 광장에 모여 파티를 연다, 이 모든 게 정말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의심스럽겠지만 동중국해 한복판에 세워진 작은 나라 '아로니아 공화국'에서 마침내 실현된다.

 

 

 

   소설은 아로니아공화국의 대통령 김강현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 직전, 아로니아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앞에서 대통령 선서를 하던 모습을 회고하며 동중국해 한복판에 영토를 건설하여 아로니아공화국을 설립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쫓아간다. 청소년 시절, 강현은 여느 집안에서나 볼 수 있는 꼴통 녀석과 다름이 없었지만 우직하고 강직한 성격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이때부터 계속된 자기 수련과 공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의 구현을 실현하는 검사직에 오르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소설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지속되는 군부독재 정권의 야욕과 그늘, 각종 부정과 부패, 국민의 삶을 흔들어놓았던 IMF 사태 속에서도 떵떵거리며 살아남았던 재벌기업의 행태, 전라도를 빨갱이라 낙인찍으며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자행되었던 대한민국의 낯부끄러운 역사들을 낱낱이 까발린다.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고 길거리를 헤매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재벌기업 회장들과 자식새끼들과 일가붙이 나부랭이들은 갈 곳을 잃거나 헤매지도 않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않았다. 사재를 털어서 기업을 살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기업 구조를 개선하며 공적자금이 들어간 자신의 기업을 국가에 헌납하는 아름다운 기업인들을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늉이라도 바라며 일말의 양심을 기대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는 자의 착각이었을까? 착각은 무슨, 어리석은 민중이지. / 92p

 

 

 

 

 

 

 

   결국 1969년 4월 11일, 중앙정보부 제6국 남산대공분실에 불법으로 연행되어 목숨을 잃었던 고 임주호와 고 조남규의 재판을 재심하는 일을 맡게 된 강현은 이 일을 계기로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한국과 일본이 협정을 맺은 '한일공동개발구역 JDZ'가 과거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국제해양법에 무지했던 이유로 인해, 2028년 6월 22일이 지나면 일본에게 JDZ 대부분을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으로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이를 저지하고 여기에 새로운 국가를 세워보자고 나선 송성철, 백민정, 라파엘 등의 일행들과 만나 야심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노력보다 타고난 것보다 빽보다 재수보다 더 세고 강한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간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답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힘이 센 사람은 놀자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앞도 뒤도 보지 않고 놀자고 덤비는데, 무엇이 어찌되든지 놀자는 것뿐이라는데, 재밌게 놀고야 말겠다는데 누가 막겠어요. / 204p

 

 

밑도 끝도 없고 누가 들으면 틀림없이 정신 빠졌다고 할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세우겠다고 모인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믿는 곳이 국가라면 아로니아는 이미 여러분에게 국가입니다. 과연 아로니아가 실체가 있는 국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로니아의 실체를 만드는 일은 아로니아 시민을 자처하는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국가가 뭐냐고 물으셨죠? 아로니아가 뭐냐고 물으셨죠? 국가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 시민들이 만들고 세우는 보이지 않는 덩어리입니다. 아마도 지금 여러분은 서로가 서로를 믿는 국가가 필요한 것이겠죠. / 238p

 

 

 

   바다 위에 국가를 건설한다? 이 발상은 어찌 보면 황당무계하고 국제 여론을 감안했을 때도 절대 일어날 수 없을 법한 일이지만 소설은 나름의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이상적인 국가 건설을 위한 시도들을 해나간다. 여기에 따르는 몇몇 작위적인 구성과 친중, 반미의 정서는 어딘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점은 이상적인 국가란 무엇인지, 그럼에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 개개인 모두를 공감시키기에 충분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던 아로니아공화국이 때로는 자신들의 설정한 제도 아래에서 행복을 강요하기도 하고, 결국엔 폭력으로 자신의 공화국을 지키겠다는 논리를 앞세우기도 하면서 그 의미가 퇴색해지는 순간을 목도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일은 행복한 일이지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좋든 싫든 꼼짝없이 한 국가의 국민이 된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죠. 저는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들이 장악한 국가의 국민으로 길들여진 채 평생 의무를 지고 권리를 찾아다니며 허둥지둥 살아야 한다면 슬프고 불행한 일 아닌가요? 저는 제가 선택한 재밌고 신나는 국가 아로니아를 만들 겁니다. 제가 살고 제 자식들이 살고 또 그 자식들이 살아갈 재밌고 신나는 국가를 직접 만드는 일은 정말로 멋지지 않나요? 이렇게 멋진 일을 하지 않는 건 제 자신에게 죄를 짓는 거죠." / 261p

 

 

국가는 본질적으로 재밌고 신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국가는 태상부터 인간의 존엄을 획일화하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며 인간의 행복을 모른 척할 때 유지됩니다. 강하고 새로운 국가 아로니아는 더 이상 재밌고 신나는 곳일 수 없습니다. 자랑스러운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재밌고 신나고 존엄하고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로니아공화국을 해체하고 국가를 소멸하겠습니다. / 395p

 

 

 

   이처럼 <아로니아공화국>은 모두가 꿈꾸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발상이 가져다주는 발칙함과 도발적인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임에 틀림없다. 우리 삶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다양한 작품 중에 이런 유쾌한 작품 하나쯤은 있는 것도 위로가 되는 일일 테다. 이 어마어마한 작가의 뚝심이 언젠가 우리 국가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눈이 될지 또 모를 일이지 않는가. 내 아이가, 또는 내 아이의 아이가 살아갈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그 미래를 아슴하게 바라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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