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본 자만이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도쿄의 진짜 풍경들!
평범하지만 생활 속 도쿄의 따스한 자취를 느낄 수 있는
도쿄 에세이!
여행을 하다보면 온통 화려한 분위기로 시끌벅적한 도심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우연히 마주한 어느 작은 뒷골목의
느긋하고 소소한 삶의 풍경에 마음이 사로잡힐 때가 있다. 일본의 수도로 가장 트랜디한 문화를 선도하는 쇼핑 천국 도쿄. 지하철 노선도만 보아도
눈이 어지러울 만큼 복잡하고 번화한 이 도시 속에서 산다는 건 그야말로 복잡한 도심의 공기를 피부처럼 느끼는 일일 테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
작은 담벼락이 차곡차곡 쌓인 동네의 한가로운 정취와 평범해 보이는 생활 속의 도쿄가 마치 놀라운 반전처럼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이기에 더욱 오롯이 느꼈을지 모를 '진짜 도쿄'. 소소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할지도 모를 도쿄, 그곳에서의 잔잔한 일상을 담은
이야기 <소소동경>은 우리에게 사뭇 다른 도쿄의 감성을 선사한다.
일상의 정취가 선물하는
소소하는 도쿄낭만일기
<소소동경>은 저자 정다원이 교환 학생 신분으로 4년 동안 도쿄에서 보낸 시간들을 추억하며 쓴 에세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고, 인턴십을 거쳐 첫 직장에서 사회 초년생을 겪기도 하며 설렘과 긴장감이 뒤섞였던 일상을 회고한다. 오후 5시
무렵이면 장 보러 온 자전거 행렬로 북적이는 상점가, 이웃들과 한마음으로 즐기는 동네 축제, 찬물에 흐르는 소면을 건져 먹으며 달래는 더위 등
살 때는 몰랐던 평범한 일들이 뒤늦게야 무척이나 매력적인 일들이었음을 깨달았노라 고백한다. 마치 일기처럼, 이웃의 친한 언니가 도쿄에서 보냈던
일상을 들려주듯 다정다감한 그녀의 글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마치 그곳에 나도 있었던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며 도쿄의 삶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첫 에피소드는 서민들의 거리 '시타마치'의 풍경을 담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타마치란 원래 번화가 중에서도 상점과
주거공간이 가깝고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오늘날 주택과 상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도 어딘가 촌스러운 옛날 풍경이 엿보이는
곳을 시타마치라 부른다고 한다. 상점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있고 크고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골목길, 해가 질 때쯤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활기를 띄는 상점가, 골목 한쪽 구석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닭꼬치와 함께 이른 저녁부터 맥주 한잔 기울이는 동네 사람들이
머무르는, 그야말로 도쿄 사람들의 일상과 날 것 그대로의 생활이 머물러 있는 곳. 그 곳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한국인과 프랑스인 커플을 위해
동네 사람들은 넘치는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고, 동네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시타마치에서 살았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의 생활을 피부로 느끼며 그만큼 이곳의 일부분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시타마치는 본래 번화가 중에서도 상점과 주거공간이 가깝고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을
말한다. 수로 교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강가나 바닷가 주변에 상업지역이 형성되면서 근처에 주거지역이 생겨났는데, '아래'라는 뜻의 시타(下)와
'동네'라는 뜻인 마치(町(정))를 붙여 시타마치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살짝 다른 의미로 주택과 상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서 어딘가
촌스러운 옛날 풍경이 엿보이는 곳. 대부분 그런 곳을 시타마치라고 부른다. / 17p
식도락의 도시인만큼 유독 음식이나 식당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스터라고 부르는 편한 선술집
단골가게만의 편안함, 90년이 넘은 오래된 목조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 어린 시절 설렘을 안고 찾아갔던 경양식을 떠올리게
하는 식당, 오코노미야키보다 더 매력 있는 몬자야키,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육즙이 흘러나오는 돈카츠까지. 그 중 더운 여름에 별미로 즐길 수
있는 나가시소멘을 먹으러 갔던 곳에서의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이다.
'흐르는'이라는 뜻의 나가시와 '소면'이라는 뜻의 소멘, 이름 그대로 흐르는 소면을 뜻하는 나가시소멘은 물이 흐르는
기다란 대나무 통에 넣은 소면이 위에서부터 흐르기 시작하면 그걸 젓가락으로 건져 먹는 음식이다. 일본 만화를 보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풍경인데
막상 한국에서는 먹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거참, 재미있는 음식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직원 아주머니가 소면을 한 주먹 흘려보내면 타이밍
맞게 알아서 건져 먹으면 되는데, 아이들이 경쟁하듯 소면을 건져 올리며 재미있어 하는 모습이나 시작 신호와 함께 제각기 젓가락을 한 손에 쥐고
대기 자세를 취하고 있었을 일행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웃음이 난다.
점점 모두의 젓가락질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배가 부른데도 서로 경쟁한다며
끝까지 건져 먹는다. 이런 먹거리는 역시 아이들과 함께해야 흥이 난다. 덕분에 우리도 신나게 나가시소멘을 즐길 수 있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나오니 뜨거운 공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나가시소멘을 먹은 곳도 야외였는데, 이렇게 더웠나? 열심히 소면을 건져 먹느라 더위를
느낄 겨를이 없었나 보다. 역시 한여름엔 이만한 별미가 없다. / 114p
덕분에 아라카와선은 현지 사람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선로 주변 동네
사람들의 든든한 이동수단인 동시에 '도쿄 산책하기' '추억의 열차 여행' 등 도쿄의 관광 코스로도 인기다. 단순히 옛날 모습을 간직한 것뿐
아니라 일반 전철과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동네 구석구석을 달리고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노면전차는 꼭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을 만큼
주택가 사이를 가까이서 비집고 달린다. 그리고 잘 가꿔진 화려한 풍경이 아닌 사람 냄새나는 시타마치의 풍경을 창을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
158p
이 외에도 도쿄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동네로 손꼽히는 기치조지, 화려한 문양의 시원한 유카타로 여름나기,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했던 에도도쿄다테모노엔이란 박물관, 자전거 왕국이라 불릴 만큼 자전거를 타는 도쿄인들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사진들은 하나 같이 그들만의 감성과 색채가 묻어나와 도쿄의 매력을 더한다. 특히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독서공간 미카모에서의
경험은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꼭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것 같은 주택 공간에 중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여기서 악기 교실, 북클럽,
벼룩시장을 열어 주민들끼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그곳은 언젠가 내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그것과 꼭 닮아서 더더욱 이루고 싶은 소망이
되었달까.
주위를 둘러보니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는 오래된 가구들, 옛날 전화기 같은
빈티지스러운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꼭 할머니 댁에 놀러 온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의 서재였을 방이 지금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독서공간으로 바뀌다니. 오랜 세월의 가치를 지켜가면서 그것을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는 지혜가 돋보였다. 여기에 서로 힘을 모아 이
오래된 집을 가꾸고 보존하려는 동네 사람들의 노력이 곳곳에서 묻어나왔다…(중략)...이런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은 시골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도쿄에도 있었다니. / 195p
이처럼 <소소동경>은 소소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저자의 따스한 감성과 도쿄의 낭만이
어우러진 책이다. 반드시 가봐야 하는 맛집이나 유명한 관광지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래서 더 남다르고 특별한 도쿄의 매력을 찾아볼 수 있기에 그
어느 여행책보다 도쿄가 친숙하고 가까워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