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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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와 '관계' 그 끝없는 고찰에 관한 감성에세이!

탐색과 은유, 반성과 성찰,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품은 깊고 넓은 관계라는 우주의 함의!

 

 

 

  나의 우주는 저기 저 가늠할 수 없는 지구 밖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다. 드넓은 시공간을 유영하다 어마어마한 우연의 기회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고, 엄청난 중력과 저항을 이겨내어 또 다른 우주를 낳았다.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의 아이. 이 놀라운 관계를 달리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 생겨난 모든 사이를 '관계의 우주'라 부르는 림태주 시인은 사이와 서로는 '우리'라는 말처럼, 인류가 발명해낸 아름답고 황홀한 천체물리학이라고 말한다. '당신과 나의 만남이 우연처럼 쉽고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지난하고 지극한 운동의 결과이고 찰나의 시간에 빛의 속도로 서로를 간절히 끌어당기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고 말이다. 때문에 '당신은 내가 일상에서 감각할 수 있는 우주의 실체이다. 원자에도 기분이 있다면 원자의 기분이 당신의 기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기분이 우주의 기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평화롭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관계의 물리학>은 낯선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이루고 그 사이에서 나누는 수많은 감정들을 은유라는 감각으로 쌓아올려 물리학이라는 개념으로 아우른 따뜻한 감성에세이다. 문장 하나하나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꼭꼭 마음에 담게 되는 그런 책이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우리 사이에 햇볕과 별빛과 빗방울과 분분한 벚꽃이 날렸다. 현란한 탱고 같았다. 음악이 내 몸에 닿자 내 뼈와 혈관과 심장이 녹아내려 당신에게 흘러갔다. 가을 부근에서 뉴턴의 사과가 낙하했고 세상의 중심을 향해 굴러갔다. 지구에 붉은 그리움 하나가 출현했고 그 운명을 향해 우주가 비상 출격했다. 당신이 흔들렸다. / 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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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틈새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존재한다

 

 

  림태주 시인은 사이라는 말은 실체가 없는 말이지만, 살아있는 모든 관계에는 틈새가 있다고 말한다. 갯벌 안에 가무락조개와 낙지가 살 수 있는 이유는 미세한 펄의 틈 사이로 공기가 공급돼 산소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고, 스웨터가 따듯한 이유는 털실의 보푸라기들이 틈 사이사이에 온기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 모두는 무언가의 틈새에, 누군가와의 사이에 존재한다. 너와 나 사이는 무슨 사이일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사이가 있어야 모든 사랑이 성립하고, 사이를 잃으면 사랑은 사라지듯, 우리는 그 사이사이의 틈새에 존재하는 감정의 간극에 의해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인 까닭이다.

 

 

 

사이는 온갖 감정들이 생산되는 잡화 공장이 틀림없다. 우정이나 사랑, 외로움이나 그리움, 미움이나 슬픔 따위가 밤낮없이 쏟아져 나온다. 사이는 은유의 행간이어서 시적이고, 내가 당신에게 달려가는 속도와 마음의 기울기여서 물리적이다. /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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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사랑은 사이를 두고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지 존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에, 섣부른 마음과 욕심으로 관계가 얼룩지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삶은 관계의 총합이고, 관계는 입장들의 교집합'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상대방이 없는 관계란 성립 불가능하고 모든 상대방은 각자의 입장으로 존립하기에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늘 생각하고 염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들지만 허무는 데는 한순간이면 족한 것이 관계라지 않은가. 마음 하나면 충분했던 일인데 한없이 옹색해져 관계를 그르치지는 않는지, 자신도 하지 못하는 역지사지를 타인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생각해볼 일이다.

 

 

 

당신도 나도 살아가면서 이것 하나만은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심장에 보관된 말은 소멸시효가 없다. 심장에 박힌 상처의 말은 화살의 주인과 상관없이 한 존재의 일생을 잔인하게 갉아먹는다. 당신이 유채 꽃밭이나 라벤더 꽃밭을 구경하고 싶다면 씨앗 한 낱이면 충분하다. 당신의 행성에 무슨 씨앗을 퍼트릴지는 당신이 입안에 넣고 다니는 혀에 달렸다. / 80p

 

 

 

  우리는 흔히 일상의 단조로움과 평범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늘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생활, 도망칠 틈 없는 삶의 무게에 허덕이며 언젠가 떠날 수 있는 기회를, 로또 같은 인생 역전의 행운을 꿈꾼다. 하지만 시인은 말한다. 여행길에 올라 보면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터에서 오늘을 즐기며 사는 사람임을, 내가 떠나온 그곳에 누군가의 삶이 지속되고 있음을, 견디는 삶이 초라한 게 아니라 정작 외롭고 가여운 것은 삶에 대한 너무 이르고 편협한 단정이라는 것을. 비록 단조롭고 버거운 일상이라 할지라도 오늘도 내 삶과 주변의 안위를 위해 애써주는 내사람들에게 감사해 해야지. 나 대신 나를 위해 누군가가 기꺼이 견뎌준 순간들에 감사해 해야지.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지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런 건 거기서, 자기의 본 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게 때문에 쉽지가 않아." / 132p

 

 

행복은 창고 안에 무언가를 가득 가득 채워 넣는 일이 아니라 내가 창고의 열쇠를 갖는 일이다. 창고 안에 무엇이 얼마나 차 있든 상관없다. 내가 주인이 되어야 먹고 싶을 때 언제든 초콜릿을 마음대로 꺼내 먹을 수 있다. / 181p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일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풀어내는 게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평생 사이와 관계 앞에서 서툰 존재들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드는 생각은 그럴수록 우리는 좀 더 원초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의 너비를 우리가 무슨 수로 모두 다 가늠할 수 있으며 그 깊이를 무슨 수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저 이 순간, 우주의 찰나 같은 순간에 내 곁을 함께 해주는 내사람에게 감사해하는 수밖에. 그리고 열심히 사랑하는 수밖에. 그것이 나에게는 최선인 것을, 달리 무엇을 어찌 더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말이다.

 

 

 

신이 봄날을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이유는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를 재느라 때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어떤 씨앗이라도 심으라는 뜻이다. / 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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