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꿈도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는 삶에 찾아온 인생전환의 기회!

행복은 내일이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에 달려있음을 알려주는 소설!

 

 

 

   유년시절에 꽤 즐겨봤던 이휘재의 '인생극장'이란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일생일대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물론 인생의 방향까지 달라지는 과정을 보면서,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인생은 수많은 선택에 따른 결과임을 깨달았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 사소한 선택 하나 때문에 웃고 울기를 반복한다. 얼마 전에 주차를 하다 자동차 뒷좌석 손잡이를 시원하게 긁어버렸는데, 굳이 그 자리에 주차하지 않아도 되는데 부득부득 해보겠다고 호기를 부리다 멀쩡했던 자동차를 망가뜨려서 어찌나 속상했던지. 새로 산 구두를 자랑하고 싶어 회사 내에서도 열심히 신고 다니다가 계단에서 굴러 직원들 앞에서 망신당한 일 하며, 마음에도 없는 사람의 고백을 덜컥 받아들였다 괜한 감정소비만 해댔던 지난날을 떠올릴 때마다 과거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정말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한 순간을 가위로 도려내듯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면? 내가 내린 잘못된 결정과 후회의 순간들을 타인의 기억 속에서도 완벽하게 지워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을 붙잡을 것인가? 여기,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희망도 없는 한 여자에게 바로 그러한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모든 게 변하게 될 겁니다."

 

 

 

   내가 알고 있던 내 삶의 모든 자리가 뒤바뀌고 누군가의 인생 또한 바뀔 것이며 그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 구질구질하고 낭비로 가득한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비록 악마의 속삭임이라 할지라도 이 삶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는 그녀의 간절함이 낳은 이 선택에는 또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 마치 우리의 인생 역시 함께 소용돌이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줄 소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

 

 

   레이스 칼라, 에나멜 구두, 분홍색 비단 머리핀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샤를로타. 하지만 부모님 몰래 다니던 대학교를 때려치우고 스스로 '헤픈 여자'라는 글자가 적힌 셔츠를 입고 다니며 제멋대로 사는 그녀는 주변에서 부르는 찰리라는 예명이 어쩐지 더욱 어울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친한 친구 줄리의 남자 친구와 실수로 잠자리를 가지고, 쌍둥이를 가진 유부남과 사귄 적도 있으며 술에 취해 원나잇스탠드를 한 적도 수십 번에 이른다. 어느 덧 줄리와는 절교를 하기에 이르렀고 원나잇스탠드 이후에는 늘 후회하기를 밥 먹듯 하며 모아놓은 돈도 없이 빚만 늘어나고 있는 인생이다. 그나마 드링크스&모어에서 서빙 일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며, 사장이자 친구인 팀과 실상은 노숙자이지만 연륜과 따뜻함을 지닌 게오르크 아저씨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데 만족하며 살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 앞으로 편지 하나가 배달되어 온다. '졸업 10주년' 동창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소위 잘 나가는 동창생들의 신상명세를 쭉 훑어보던 그녀는 자신의 이름 앞에서 덜컥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현재 주소 미상, 경영학 전공(?), 오텐젠에 있는 드링크스&모어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함". 평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아왔는데, 이 글을 보고는 갑자기 누군가에게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는다. 나는 왜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모리츠를 만나게 되고, 그가 친구였던 이자벨과 결혼을 하게 될 거라는 충격적인 말까지 듣게 된다. 심지어 친구들이 그녀를 두고 "모리츠한테 찰리는 그냥 잠시 데리고 논 여자에 불과해"라는 말까지 듣고선 아예 이성을 상실하기까지에 이른다.

 

 

 

나는 왜 꿈도 없고 목표도 없고 계획도 없을까?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마치 우주 속을 떠도는 느낌이다. 출발선에 서서 제대로 된 인생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래로 나는 줄곧 인생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가사들처럼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내 인생이 완벽하게 제대로 돌아가며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를, 그리고 지금과 같은 순간에는 내가 언젠가 깨어나서 '그런 순간은 절대로 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까 봐 두렵다. / 34p

 

 

 

 

 

 

   누구나 한 번쯤은 다음날 일어났을 때 내가 쓸모없는 폐기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참한 몰골과 정신 상태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괴로워하던 그녀는 마침 팀이 빌려준 외투 속에 들어있던 명함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당신의 인생을 바꿔드립니다? 이 미스터리한 문구가 적힌 명함에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는 뉴라이프 퍼스널 매니지먼트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마침내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된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인생에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라도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을 모두의 기억으로부터 삭제하여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인생은 수백만, 수천만 개의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무한히 많은 숫자 조합이 가능한 숫자 자물쇠처럼 말이죠.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갔을 때와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거죠. 출근을 단 5분만 늦게 했어도 우리의 남은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쳤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죠." / 138p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뒤바꿀 수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 앞에서 그녀는 과거를 지울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그녀를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게 한다. 느닷없이 모리츠가 나타나 오늘은 그들의 결혼식이라고 말하고, 절교했던 줄리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있고, 친구인 팀과 드링크스&모어는 사라지고 없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의 과거마저 뒤틀린 이 새로운 삶 속에서 그녀는 진정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네가 했던 질문에 대해 생각해봤어."

"어떤 질문?"

"행복이 대체 뭐냐고 물었잖아."

"그래서?"

"내 생각에 행복은 늘 오늘에 달린 거 같아. 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 가장 중요해." / 66p

 

 

 

   이렇듯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실패한 인생을 되돌리고 싶어 했던 한 여자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면서 과거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가슴 따뜻한 소설이다. 아주 사소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에피소드라 할지라도 그것이 모이고 모여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가 이루었음을 느끼게 하며,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고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내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감동과 휴먼이 있는 드라마다. 비록 현실이 괴롭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의 연약한 자아는 늘 실패를 거듭하고 그것을 딛고 일어남으로써 단단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이런 특별한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과거를 지워버린 찰리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고 재미있어서 잠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읽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상황에 따라 이에 걸맞은 음악이 꼭 등장하곤 하는데 이것을 찾아가며 듣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고단한 일상에 지치고 머리가 무거울 때 이 책으로 재미와 감동 모두 찾아보시길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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