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문 이모탈 시리즈 2
앨리슨 노엘 지음, 김경순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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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에버모어에 이은 이모탈 시리즈 2번째 작품인 블루 문이 나왔다. 아름다운 꽃이 그려진 1권의 표지도 인상적이었지만, 푸른 밤하늘을 배경으로 보름달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2권의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내용 면에서는, 시리즈물이 대부분 그렇지만 첫권부터 강력한 임팩트를 발휘하는 책은 드문데, 이 시리즈 역시 1권에 비해서는 2권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진다.  

전편에서 적수 드리나를 죽인 후로 남자친구 데이먼에 이어 초능력 불사자가 된 에버. 두 사람의 만남을 끊임없이 방해해왔던 드리나가 없는 이상 둘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새로운 전학생 로만이 등장한다. 그리고 갑작스런 데이몬과 친구들의 변모. 로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번 편에서는 전편에 등장했던 캐릭터와 소재들이 좀 더 깊이있게 사용된다. 환상의 세계 써머랜드는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점성술사 에바 아줌마는 기댈 곳 없어진 에버에게 최고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그 결과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아류작임이 너무나 눈에 띄던 전작에 비해서 한결 독자적인 색깔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적과의 갈등 보다는 에버와 데이먼의 이어질 듯 말 듯 꼬인 관계성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성질 급한 남성 독자라면 짜증을 내며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매력적인 남자주인공과의 밀고 당기기를 간접체험하고 싶은 여성 독자라면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블루 문에서 치명적인 장애물에 부딪치게 된 두 사람은 과연 어떻게 이 역경을 극복할지 차기작 섀도우랜드의 전개가 궁금해진다. 다만 1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번역은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차기작에서는 조금 더 매끈한 번역을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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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 휠체어 위의 우주여행자
크리스틴 라센 지음, 윤혜영 옮김, 박기훈 감수 / 이상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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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과학자들 중 가장 높은 인지도를 가진 과학자라면 역시 스티븐 호킹이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한다. 루게릭병에 일그러진 몸을 휠체어에 싣고 있는 그의 모습은 이미 하나의 아이콘으로 사용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적 존재는 의구심을 낳기 마련이다. 그의 성취는 정말로 그토록 대단한 것인가, 과학자로써의 그가 훌륭하다고 인정할지라도 과연 인간으로써의 그도 그러한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인가, 혹시 그의 모습은 상당부분 언론과 대중의 헛된 기대가 낳은 허상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들.. 아직 생존인물인 그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의구심들이 스티븐 호킹의 개인사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끌어올리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천체 물리학 교수이다. 스티븐 호킹과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그는 학창 시절 스티븐 호킹과의 만남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내어 이 책을 썼다. 그러다보니 상당히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호킹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이 알게 모르게 묻어나기도 한다. 이 책은 스티븐 호킹의 탄생부터 2006년까지의 개인사와 과학적 업적을 아울러 담아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의 반려자인 제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많은 위인들이 그랬듯, 그의 업적 역시 제인과 다른 가족들에 빚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랄까... 특히 위대한 과학자가 아닌, 한 명의 장애인으로써의 어려움과 피해갈 수 없는 가족들의 갈등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과학적 업적에 대해서는 주요 업적을 위주로 설명하면서 간략하게 물리학적 해설을 덧붙여 주고 있지만, 사실상 간략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이 대부분인지라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위인이 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어떤 의미로든 균형잡힌 적당량의 야심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욕망이라 하든, 소명의식이라 하든 말이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호킹의 과학자로써의 탁월함은 물론이고 이러한 야심을 엿볼 수 있어 즐거웠다. 육체적 장애가 스스로를 위축시키도록 놓아두지 않은 그의 이러한 야심이 현재의 스티븐 호킹을 만들어냈다고 할까? 1963년, 20대의 나이에 2년 미만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으나 50년이 다 되어가는 아직까지도 과학자로써의 열정을 잃지 않고 있다는 호킹... 아직까지 그의 여정에서 눈을 떼어서는 안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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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 1.2 세트 - 전2권
시미즈 이사오 지음,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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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근대화, 서양화를 택하면서, 결정적으로 메이지 유신을 통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보다 월등한 국력을 성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아시아적 정체성을 획득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일면에 있어서는 그러한 정체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시아 국가이지만 아시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모습... 물론 이후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근대화의 길을 걸어가지만,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가장 적극적으로 서구화를 채택한 일본의 선택은 참으로 신기해보일 따름입니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징에서 오는 개방성, 사무라이 문화의 순발력으로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이죠. 아마도 이런 일본의 모습은 서양인에게 더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이 책에서 소개된 프랑스인 풍자화가 조르주 비고의 풍속화를 통해서 서양인이 느꼈을 그러한 생경함을 다소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조르주 비고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18년간이나 일본에 체류하면서 당대의 일본을 속속들이 그려낸 일본통입니다. 당대 유럽에서 유행했던 화풍, 특히 우키요에에 경도된 많은 다른 화가들처럼 그 역시 보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그림 기법을 배워보고자 하는 욕심에 일본행을 택한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만화들이 일본 내에서 적잖은 호응을 얻으면서 1882년부터 1899년까지 무려 18년을 일본에 체류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 결과 그의 풍속화들은 근대화를 겪는 일본의 명암을 일본적이면서도 일본적이지 않게 담아내는 데 성공해냈습니다. 그의 귀국 이후 그의 풍속화들은 오랜 시간 묻혀져있었는데, 시미즈 이사오라는 이가 관심을 가지고 다시 선별 편집하여 주석을 붙여 펴낸 것이 이 책입니다. 


2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1권은 주로 민중의 생활상을 다룬 풍속화를, 2권에서는 좀 더 정치적 풍자가 강하게 드러나는 캐리커쳐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서구적, 프랑스적 시각과 동양인에 대한 비웃음이 엿보여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보다는 당대 일본인의 생활상을 순간적으로 캡쳐하듯 담아내는 비고의 능력 쪽이 놀랍게 다가옵니다. 병사나 하녀, 창부의 모습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담아내는 그의 그림이 서구화에 목을 맸던 당대 일본의 입장에서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특히 2권에서 다룬 캐리커쳐들은 독일화를 택한 일본에 대한 (프랑스인 화가로써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검열을 받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그의 그림이기에 현재에 와서 더 큰 역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특히 편집인인 시미즈 이사오는 최대한 편견 없이 유쾌한 주석을 붙여내어 생경한 당대 일본 생활상을 즐겁게 읽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일본인으로써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부분에서조차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주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네요^^ 


우습기도 하고 감탄스럽기도 한 그림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만, 한편의 그림이 기억에 남네요. 한손에는 양산, 다른 한손에는 부채를 든, 그리고 양복 정장을 입었으나 더위를 참지 못해 바지를 벗고 훈도시를 드러낸 한 청년의 그림입니다. 서양식 복장과 훈도시의 복장이 강렬하게 대조되는데다, 우스꽝스러운 청년의 표정이 인상에 강하게 남았나봅니다. 이 청년의 모습이 비고가 본 일본의 모습일 것입니다. 서구화 열풍 속에서 전통과 서구문명이 혼재되어 있는, 서구인보다 더 서구적이기를 원하지만 결국 일순간에 일본인으로써의 전통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지요. 현실적인 이유로 피할 수 없기에 선택한 서구화였지만, 그 과정에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야 했던 일본인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서구화가 제국주의로 이어졌기에 마냥 동정만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결국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모든 동양권 국가가 서구화를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감안해보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자비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자리잡고 앉은 약육강식의 원리 안에서 공존공영을 찾는 것은 단지 위선 혹은 오만인 것일까요, 아니면 아직까지 우리가 알아내지 못한 역사적 당위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간적 노력인 것일까요? 신자유주의라는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의 유령이 횡행하는 요즘,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아직 역사는 믿을만한 것이라고, 알만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는 책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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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끌림의 과학 - 아름다움은 44 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
바이런 스와미 & 애드리언 펀햄 지음, 김재홍 옮김 / 알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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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는 흰색과 옥색이 어우려져 만들어낸 여인의 실루엣이 담겨있고, '아름다움은 44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라는 부제가 담겨있는 이 책, 제목은 '이끌림의 과학'이다. 감각적인 느낌의 표지와 부제만 보면 얼핏 육체적 매력에만 끌리는 인간을 비판하는 내용의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싶은 오해를 낳은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육체적 징표들을 하나하나 분석해내는 과학 교양서이다. 요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빌어다 쓰고 있는 본격 과학서인 것이다. 

사실 인간이란 육체적 매력에 대해 양가적인 입장을 취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표지에 담긴 실루엣 때문인지, 과학자조차 이러한 매력에 대한 내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서문 때문인지, 책을 시작하며 문득 떠오른 고사가 이런 양가적 본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르네상스 그림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를 소재로 쓰는 일이 잦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반복적으로 예술가들의 관심을 끈 소재가 '프리네' 이야기이다. 기원전 4세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급 창녀로 유명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는 물론 뛰어난 지적 능력, 높은 눈(?)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고, 그런 여성이 겪게 마련인 운명대로 남성들의 사랑과 질시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여신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 이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조각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여신상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었다. 평상시 그녀를 탐탁치 못하게 생각하고 있던 근엄한 어르신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그녀를 죽이기로 뜻을 굳힌 상태였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녀를 구하기 위해 평상시 그녀를 흠모하던 히페리데스라는 정치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유죄평결이 내려지기 직전 그는 프리네의 옷을 벗기고 그녀의 눈부신 나신을 배심원단의 눈 앞에 드러낸다. 그리고 묻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죄인일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배심원단은 결국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하게 되었단다. 다소간 어이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을 선으로 간주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잘 드러내는 일화이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장, 외모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름다운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무죄 평결을 받는 확률이 높다는 통계자료는 이러한 가치관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육체적 매력이 결코 사소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리고 육체적 매력에 대한 반응이 오랜 세월 진화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라면 단순히 윤리적 관점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미적 감각을 유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매력에 반응하게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다루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엮어낸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특정한 주제적인 방향성을 설정하지 않고,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들을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다. 매력에 따른 편견의 종류와 그러한 편견이 생기는 과정이라던지, 다윈의 성선택에 따를 때 어떻게 매력이 발현되게 되는지, 남녀간에 있어 어떤 점들이 이성 혹은 동성의 마음을 끄는지, 육체적 매력에 대한 학습은 어떻게 일어나며 어느 정도의 영향성을 갖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흥미로운 이론들을 다양하게 소개함으로써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매력을 소재로 한 다양한 삽화들과 시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다만 책의 4분의 1을 참고자료 소개에 할당한 것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전문서적이 아닌 교양서임이 명백한 이 책에서 참고자료 소개를 다 실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지, 혹 싣더라도 최대한 축약하여 싣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만큼 명확한 근거를 중시하는 책이라는 증거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인류출현 이래로, 특히 물질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대에 '인간의 미'만큼 잘 팔리는 상품이 또 있을까? 영화 속에 여배우의 누드가 등장하면 예매율은 두배 세배 뛰어오르고, 아이돌들이 노래 연습보다 섹시댄스와 근육만들기에 신경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태을 욕하던 사람들도 여배우의 늘씬한 다리, 남자 가수의 복근 노출 장면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돌아간다. 돌이켜 인간이란 어쩔 수 없나 쓴웃음을 지을 뿐.. 상업화의 문제점이 명백한 이상 그에 대한 비판이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날이 갈수록 주가가 오르는 '인간 몸'의 상품성 앞에서 그러한 비판이 한걸음씩 물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때론 적이 될 수 밖에 없으나 변함없이 진선미의 한 자리를 차지할 미, 특히 그러한 미의 대표명사라 할 인간의 미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지나 보다. 역사상 이성과 감성의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로 남는 것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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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넌 누구냐? - 색깔 있는 술, 막걸리의 모든 것
허시명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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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막걸리가 붐은 붐인가보다. 얼마 전에 은행을 갔더니 막걸리 적금이라는 이름의 예금상품을 홍보하고 있어 놀랐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몇해 전에 비해 막걸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게 증가한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주점에서 편하게 시킬 수 있는 서민주라는 점을 제외하면 막상 막걸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계에서도 손꼽을만한 술소비국이지만 그에 걸맞게 술 자체에 문화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자문해보면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으로 보인다. 와인이나 샴페인 같이 이미 무국적으로 느껴질만큼 국제화된 술과 빗대지 않더라도, 우리의 술 중에서 일본의 사케가 차지하는 위상의 반만큼이라도 따라가고 있는 술이 있는지? 이러한 아쉬움에 답이라도 하듯, 단순히 소비대상으로 치부되어 버리기에는 술이 담아내는 많은 것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막걸리, 넌 누구냐?'이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이 책에는 막걸리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걸리라는 이름의 유래로부터 시작하여 그 역사, 탁주와 동동주가 막걸리와 어떻게 다른지, 막걸리를 빚는 과정, 막걸리의 효능, 전국의 유명한 막걸리에 대한 소개, 세계로 뻗어가는 막걸리의 새로운 도전 심지어 집에서 누룩을 만들어 막걸리를 빚는 방법까지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너무 많은 내용을 꽉꽉 채워나가다보니 답답하지나 않을까 싶었지만, 매력적인 붉은색 표지에 걸맞게 책 내부의 구성과 디자인도 세련되어 재미있게,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음식문화를 다루는 책이라면 빠져서는 안될 색조가 강조된 사진들의 향연에 눈이 즐거웠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내용만 다루지 않고 막걸리 열풍의 원인에 대한 분석 및 발전과제 등을 제안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막걸리 칵테일 경연대회를 소개한 부분이었는데, 이 책의 추천인으로 책등에 소개된 허영만 님이 '식객'이라는 만화에서 다루었던 막걸리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비껴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고급 식문화의 전통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점이 아쉽게 느껴지곤 한다. 특히 우리의 술은 친근감은 최고지만 세련됨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책 중에서 언급되었듯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가양주의 전통이 소실된 탓도 있겠고, 근래 수십년의 세월 동안 술에 대한 취향이 발달한 여건이 아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소주와 막걸리가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이 술들이 저가주로 인식되는데서 기인되기도 한다. 친근감과 대중성도 강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지만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문화든 두툼하지 않으면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굳이 새로운 막걸리를 개발하여 고급주로 어필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막걸리를 만들어내는데 힘쓰지 않으면 지금의 열풍도 단발로 그치고 말 위험이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취향은 고급화하고 세분화하기 마련이라는 법칙을 잊지 말아야하지 않을지? '막걸리요~'라는 한마디에 선택도 없이 집어내오는, 1회용 페트병에 담긴 막걸리를 떠올리자니 아쉬운 마음이 앞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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