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림의 과학 - 아름다움은 44 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
바이런 스와미 & 애드리언 펀햄 지음, 김재홍 옮김 / 알마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표지에는 흰색과 옥색이 어우려져 만들어낸 여인의 실루엣이 담겨있고, '아름다움은 44사이즈에만 존재하는가?'라는 부제가 담겨있는 이 책, 제목은 '이끌림의 과학'이다. 감각적인 느낌의 표지와 부제만 보면 얼핏 육체적 매력에만 끌리는 인간을 비판하는 내용의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싶은 오해를 낳은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육체적 징표들을 하나하나 분석해내는 과학 교양서이다. 요즘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을 빌어다 쓰고 있는 본격 과학서인 것이다. 

사실 인간이란 육체적 매력에 대해 양가적인 입장을 취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표지에 담긴 실루엣 때문인지, 과학자조차 이러한 매력에 대한 내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하는 서문 때문인지, 책을 시작하며 문득 떠오른 고사가 이런 양가적 본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르네상스 그림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야기를 소재로 쓰는 일이 잦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반복적으로 예술가들의 관심을 끈 소재가 '프리네' 이야기이다. 기원전 4세기에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고급 창녀로 유명했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는 물론 뛰어난 지적 능력, 높은 눈(?)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었고, 그런 여성이 겪게 마련인 운명대로 남성들의 사랑과 질시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여신을 모독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는데, 이것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한 조각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여신상을 만들어내었기 때문이었다. 평상시 그녀를 탐탁치 못하게 생각하고 있던 근엄한 어르신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그녀를 죽이기로 뜻을 굳힌 상태였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녀를 구하기 위해 평상시 그녀를 흠모하던 히페리데스라는 정치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유죄평결이 내려지기 직전 그는 프리네의 옷을 벗기고 그녀의 눈부신 나신을 배심원단의 눈 앞에 드러낸다. 그리고 묻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죄인일 수 있겠습니까?"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배심원단은 결국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하게 되었단다. 다소간 어이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움을 선으로 간주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임을 잘 드러내는 일화이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장, 외모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름다운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무죄 평결을 받는 확률이 높다는 통계자료는 이러한 가치관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육체적 매력이 결코 사소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리고 육체적 매력에 대한 반응이 오랜 세월 진화과정에서 형성되어 온 것이라면 단순히 윤리적 관점으로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미적 감각을 유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런 매력에 반응하게 되었는지를 과학적으로 다루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엮어낸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특정한 주제적인 방향성을 설정하지 않고, 다양한 방면의 이야기들을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다. 매력에 따른 편견의 종류와 그러한 편견이 생기는 과정이라던지, 다윈의 성선택에 따를 때 어떻게 매력이 발현되게 되는지, 남녀간에 있어 어떤 점들이 이성 혹은 동성의 마음을 끄는지, 육체적 매력에 대한 학습은 어떻게 일어나며 어느 정도의 영향성을 갖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흥미로운 이론들을 다양하게 소개함으로써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매력을 소재로 한 다양한 삽화들과 시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다만 책의 4분의 1을 참고자료 소개에 할당한 것은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전문서적이 아닌 교양서임이 명백한 이 책에서 참고자료 소개를 다 실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지, 혹 싣더라도 최대한 축약하여 싣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만큼 명확한 근거를 중시하는 책이라는 증거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인류출현 이래로, 특히 물질주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대에 '인간의 미'만큼 잘 팔리는 상품이 또 있을까? 영화 속에 여배우의 누드가 등장하면 예매율은 두배 세배 뛰어오르고, 아이돌들이 노래 연습보다 섹시댄스와 근육만들기에 신경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태을 욕하던 사람들도 여배우의 늘씬한 다리, 남자 가수의 복근 노출 장면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이 돌아간다. 돌이켜 인간이란 어쩔 수 없나 쓴웃음을 지을 뿐.. 상업화의 문제점이 명백한 이상 그에 대한 비판이 필요함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날이 갈수록 주가가 오르는 '인간 몸'의 상품성 앞에서 그러한 비판이 한걸음씩 물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때론 적이 될 수 밖에 없으나 변함없이 진선미의 한 자리를 차지할 미, 특히 그러한 미의 대표명사라 할 인간의 미에 대한 이 책의 분석은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지나 보다. 역사상 이성과 감성의 대결에서 최후의 승자로 남는 것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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