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띵 시리즈 6
고수리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읽는 수리작가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띵 시리즈 6
고수리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띵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 표3에서 출간 예정작에서 가장 기대했던 시리즈! 그 에세이를 드디어 읽었다. 바로 고수리 작가님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고등어)》. 고수리 작가님이 쓴 음식 에세이는 또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할지. 그래서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지 궁금했다. 그리고 한 꼭지, 한 꼭지 글을 읽을 때마다 내 기대가 따뜻하고 든든한 한 끼처럼 채워져 있어 참 좋았다. 혀에 침이 고이는 음식 에세이가 아니라, 마음에 추억이 고이는 에세이라 마음에 몽글몽글해졌다.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홀로 서야 한다. 사 먹고 시켜 먹는 음식들에 질리면 오래된 나의 맛을 찾게 된다. 알아서 혼자 밥을 지어 먹게 된다. 엄마가 일일이 가르쳐준 적 없어도 나의 혀가 기억하는 그 맛을 찾아낸다. 내 간에 딱 맞는, 먹어본 그리운 음식들. 집밥을 지어 먹는 일은 시간과 정성이 드는 일. 밥상을 차리면서 나를 먹여 살린 누군가의 노고를 깨닫는다. 누가 차려준 밥상을 편히 받아들고 투정 부리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_ 111쪽

내 입맛은 꽤 까다롭다. 무엇이든 잘 먹지만,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고 하면 굉장히 명확하고 분명하게 먹고 싶은 걸 말한다. 그래서 보통 "아무거나, 영광이가 먹고 싶은 것 먹어요."라고 말하지만, 겨울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기어이 먹고 싶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리고 장기간 식탁을 그 음식으로 점령한다. 콩가루가 듬뿍 들어간 시래기 나물국과 달레간장, 들깨 무나물 볶음, (김장김치에 사이에 숨겨둔) 무김치, 고기 없는 맑은 미역국, 시래기 된장 무침, 황태 두붓국, 고기 없는 순수 비지찌개 등.

꽤 정확한 음식 뒤에 붙이는 요구는 심심한 간이다. 엄마는 무언가 2% 빠진 음식을 나의 입맛에 맞춰주셨다. 아빠와 영광이는 고역이었지만, 나는 무언가 부족한 듯한 심심한 이 음식들이 좋았다. 자극적이지 않은 이 음식을 먹으면 추운 바람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음식을 고집하게 된 이유가 있다.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음식을 먹을 때 엄마가 "영광이는 모르겠는데, 너는 나랑 입맛이 참 비슷하다"란 말을 했다. 그 말이 나는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엄마와 나랑 보이지 않는 입맛까지 닮은 것이 난 마음에 쏙 들었다.

수리 작가님의 글을 읽는데, 엄마랑 닮아가는 내 입맛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어렸을 때는 자극적이고 먹음직스러운 아빠의 별식이 좋았는데, 언젠가 엄마가 해준 음식이 가장 맛있고 든든한 음식이 되었다. 이따금 생각나는 음식도 먹고 싶은 음식도 아빠의 음식에서 엄마의 음식으로 바뀌어 갔다. 그래서 우리 엄마의 음식이 사람은 알아도 못 먹어본 사람은 끝끝내 알지 못하는 맛"으로 바뀌어 있으면 참 슬플 것만 같았다. 내가 엄마 요리 솜씨를 닮아(?) 요리에 재능이 없어서 이 맛을 구현해낼 자신이 없어서 더 그랬다.

"딸.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 엄마는 엄마의 일이 있어.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해. 힘들겠지만 너는 잘 해낼 거야. 봄바람에 처음 딴 미역도 여러 번 치대고 빨아야 부드러워진단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키우다 보면 나름의 요령이 생기는 법이야. 너는 이제 엄마가 된 거야. 마음 단단히 먹고 강해져야 한다. 사랑한다, 딸. 애기야." _ 82쪽

내가 결혼을 했다면, 내가 한 아이의 엄마였다면. 이 책은 더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은 엄마를 생각하면 여전히 투정 부리고 싶고 안기고 싶고 그러다가도 관심이 간섭으로 다가와 짜증을 부리기도 하는 언제쯤 철들지 모르는 딸이기에. 책에 담긴 애틋함을 모두 이해하기에 내 인생 경험이 너무 얕은 딸이기에. 내가 이 책의 짠맛을 짭조름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이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소설이나 영화가 불편한 순간도 있지만, 이따금 편안하게 읽히는 서사로 나아가다 훅- 내 생각을 탕- 때릴 때가 있다. 《유랑의 달》도 그랬다. 단신 한 줄 기사로 소설 속 이야기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당사자가 전하는 진실을 사실이라 믿을 수 있었을까. 자극적인 소재에 가볍게 쉽게 말을 내뱉고, 사라사와 후미가 받은 오해와 편견을 나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내가 판단하는 것을 사실이라 확고하게 믿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올바르고 착한 사람입니다."



이 말이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에서 진실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사라사와 후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궤도에 올라선 것일까. 오랜만에 느낀 인생의 안온함은 너무 짧았고, 불편하고 불행한 시간은 몹시 길었다. 후미를 잃은 사라사의 시간은 공허했고, 사라사와 시간을 범죄로 낙인찍힌 후미의 시간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정의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이해보다 오해가 쉬웠다. 이해를 구할 틈 없이 소아성애자와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낙인부터 감당해야 했다. 그 맥락을 읽어도 쉽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내어주기도 쉽지 않았다.




세상에 이와 같은 사랑도 있음을 말하기 위한, 소아성애를 미화하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자극적인 소재로 이를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의 이해도, 누구의 인정도 받을 수 없지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충만한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 내가 느끼는 사랑이 보편적이라면 설명도 설득도 인정도 필요치 않으나, 특별함에 속할 때 내 마음을 설명하기도, 설득하기도, 인정을 구하기도 쉽지 않음을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애정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세상에 '진짜 사랑' 따위 얼마나 있을까?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것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진자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다들 내버리진 않는다. 진짜는 세상에 그리 자주 굴러다니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가 손에 든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 내리고, 거기에 순응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런 것이 결혼인지도 모른다. _ 163-164쪽

마음이란, 감정이란 내보일 수 없다. 그렇다고 언어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세상이 인정하는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평범하게 남들 하듯이 그렇게 사는 삶이 누군가에겐 닿을 수 없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대신 자신이 편안할 수 있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느낌을 느끼는 인생의 순간을 만났고, 더는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치 않음을 받아들였고 그 밖에서 그 마음을 설득하지 못한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나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는 말로 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만, 무엇으로도 우리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저 따로따로 혼자 지내며, 그러나 그것이 서로를 무척 가깝게 느끼게 한다.

나는 이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_ 283쪽





오해로 얼룩진 삶에 이해는 두 사람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 이해가 온전하게 두 사람의 마음을 포개어 합친 듯한 모습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감과 서로의 자유로운 마음을 존중하는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세상의 이해를 포기하고 존재를 숨기며 도망가는 선택을 할 때 심정은 무엇일지 알 듯싶다.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라는 말을 사라사가 하며 결말에 이를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후미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꽤 좋은 잘 읽히는 일본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랜더스의 개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리커버북 시리즈 13
위더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플랜더스의 개》를 처음 읽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내가 그동안 읽어온 동화와 다른 충격적인 결말에 놀랐다. 다시 읽으니 넬로는 할아버지와 함께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손자였고, 가여운 파트라슈를 정성껏 돌보는 친구였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자 마음을 쏟는 소년이었고, 자기 그림에 값어치가 비단 돈으로만 환산되지 않는다는 걸 아는 화가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각각의 면모마다 마냥 밝지 않고 때론 속상해하고 슬퍼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른 동화에 등장하는 고난과 역경에도 지지 않는 비범한 주인공과 달리 자신의 결핍에 속상해하는 넬로는 어렸을 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만나야 할 인물이었다. 힘들어질 때 지칠 때, 마음을 의탁할 곳이 파트라슈 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난 내 경험을 바탕으로만 이야기를 이해하는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어렸던 나에게 착하고 재능있는 넬로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얄궂은 운명은 시련을 사람을 골라가며 주지 않고 때론 잔혹하게 줄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넬로의 죽음은 속상하다. 다만 어렸을 때는 하느님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넬로 곁에 왜 다정한 어른 딱 한 사람이 없었을까 싶은 속상함이 앞선다.

동화가 아이를 위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작가가 이 이야기를 아이를 위해서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아이에게 전해지는 동안 그 전달자는 늘 아이의 부모이거나 어른이었을 것이다. 내가 부모님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읽다가 나를 돌아보았을 것만 같다. 나의 무신경함에 소중한 한 생명이 오래 사는 것보다 죽음을 자비롭게 생각하지는 않는지를.

지금 읽으면 19세기에 나온 이야기라서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이 이야기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전해지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신처럼 다정한 친절을 건넬 어른이 많은 세상을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날씨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후변화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무더위는 심해지고, 심각할 정도로 쏟아지는 비, 잦은 태풍. 지난 계절만 돌아봐도 지금까지 겪어온 계절과 달랐다. 달라진 날씨를 직접 체감하며 기후변화를 부정하지 않지만 막상 실천 앞에서는 망설이는 애매한 사람. 이 책의 타깃은 바로 나였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다른 책과 확실히 다른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가 타깃을 나와 같은 독자로 정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위기이다. 우리가 개인으로 맞는 위기이다. 여태 해 오던 식사를 할 수 없고, 여태 알던 행성에서 살 수도 없다. 식습관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지구를 포기해야 한다. 그만큼 단순하고도 어렵다.

결정을 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책에 타협 불가능한 논리와 수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정확한 수치를 믿을 수 없어서 기후변화 문제에 미온적인 태도의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알지만 믿지 못하고,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분석한다. 빈틈없는 논리가 좀처럼 들어가지 않았던 감정의 영역을 건드리며 공략한다. 소설가의 논픽션, 조너선 사프란 포어란 작가의 논픽션이 가진 매력이 여기에 있다. 그는 기후변화란 "지금으로서는 추상적이고, 다방면에 걸쳐 일어나며, 느리고, 눈에 확 띄는 특징이나 순간들이 부족한 전 지구적 위기"이며, 이 위기를 믿지 못하는 우리에겐 '믿음의 위기'로 재앙이 엄습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걱정이야.

내가 바뀌지 않을까 봐?

그들이 너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까 봐 걱정돼."


왜 믿지 못하는지,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인지. 기후변화 앞에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를 하나하나 밝혀낸다. 적당한 타협 없이 그 모순을 다룬다. 흥미로운 건 그 모순을 타인에게서 찾지 않고 바로 저자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점이다. 완전한 채식을 실천하지 못하는 솔직함, 적극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뛰어들지 못하는 것을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의 고백은 내가 읽어온 기후변화 책과 다른 '인간미'가 있었다. 그 진솔한 글엔 미적거리는 내 마음이 자주 보였고,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도 이제 정말 해야겠구나 싶은 생각을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지구를 파괴할 존재는 우리뿐이다. 지구를 구할 존재도 우리뿐이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이 가장 희망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지만 반대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의 모든 생명을 완전히 쓸어버릴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완전한 파멸이 닥치면 지구상의 생명을 다시 살려낼 방법도 찾은 것이다. 우리가 홍수이고 방주이다."


영화 <어벤져스:엔드게임>과 같은 두 번째 기회는 오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선 순간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저자는 책에서 누차 강조한다. 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부정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왜냐하면 기후변화에서 이 행성을 구할 수 없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삶을 완전히 바꾸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 순간에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 한끼라도 채식을, 한 번이라도 비닐을 덜 쓰며 조금씩 길들이면 된다. 버터와 크림이 잔뜩 들어간 빵을 덜 먹고, 맛있는 고기를 조금씩이라도 참아야겠다. 하루에 한 끼라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오늘은 빵도 고기도 먹지 않았다. 매일은 어려워도 자주 실천해야겠다. 내가 다시 나태해지지 않았으면, 나도 우리도 모두 날씨니까.


※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