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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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이나 영화가 불편한 순간도 있지만, 이따금 편안하게 읽히는 서사로 나아가다 훅- 내 생각을 탕- 때릴 때가 있다. 《유랑의 달》도 그랬다. 단신 한 줄 기사로 소설 속 이야기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당사자가 전하는 진실을 사실이라 믿을 수 있었을까. 자극적인 소재에 가볍게 쉽게 말을 내뱉고, 사라사와 후미가 받은 오해와 편견을 나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내가 판단하는 것을 사실이라 확고하게 믿었을 것이다.



"애초부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올바르고 착한 사람입니다."



이 말이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계에서 진실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사라사와 후미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궤도에 올라선 것일까. 오랜만에 느낀 인생의 안온함은 너무 짧았고, 불편하고 불행한 시간은 몹시 길었다. 후미를 잃은 사라사의 시간은 공허했고, 사라사와 시간을 범죄로 낙인찍힌 후미의 시간은 포기의 연속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정의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이해보다 오해가 쉬웠다. 이해를 구할 틈 없이 소아성애자와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낙인부터 감당해야 했다. 그 맥락을 읽어도 쉽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내어주기도 쉽지 않았다.




세상에 이와 같은 사랑도 있음을 말하기 위한, 소아성애를 미화하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자극적인 소재로 이를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의 이해도, 누구의 인정도 받을 수 없지만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충만한 관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 내가 느끼는 사랑이 보편적이라면 설명도 설득도 인정도 필요치 않으나, 특별함에 속할 때 내 마음을 설명하기도, 설득하기도, 인정을 구하기도 쉽지 않음을 말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애정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세상에 '진짜 사랑' 따위 얼마나 있을까?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것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진자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알면서도 다들 내버리진 않는다. 진짜는 세상에 그리 자주 굴러다니지 않는다. 그러니까 자기가 손에 든 것을 사랑이라고 정의 내리고, 거기에 순응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런 것이 결혼인지도 모른다. _ 163-164쪽

마음이란, 감정이란 내보일 수 없다. 그렇다고 언어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세상이 인정하는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편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평범하게 남들 하듯이 그렇게 사는 삶이 누군가에겐 닿을 수 없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대신 자신이 편안할 수 있는 말로 규정할 수 없는 느낌을 느끼는 인생의 순간을 만났고, 더는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치 않음을 받아들였고 그 밖에서 그 마음을 설득하지 못한 두 사람의 마지막 선택이 나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는 말로 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만, 무엇으로도 우리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저 따로따로 혼자 지내며, 그러나 그것이 서로를 무척 가깝게 느끼게 한다.

나는 이것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모르겠다. _ 283쪽





오해로 얼룩진 삶에 이해는 두 사람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 이해가 온전하게 두 사람의 마음을 포개어 합친 듯한 모습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감과 서로의 자유로운 마음을 존중하는 모습이라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세상의 이해를 포기하고 존재를 숨기며 도망가는 선택을 할 때 심정은 무엇일지 알 듯싶다. 그리고 "어디로 흘러가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라는 말을 사라사가 하며 결말에 이를 수 있어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후미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꽤 좋은 잘 읽히는 일본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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