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한 개 보리피리 이야기 1
박선미 글, 조혜란 그림 / 보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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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으로 되돌아간 듯 가슴이 알싸해진다 

달걀이라는 게 지금은 흔하디 흔한 것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참 귀한 것이었지 

어쩌다 아침에 날달걀 한 알 먹으면, 도시락 위에 달걀프라이 하나 올려 갈 수 있으면 

하루 왼종일 기분이 좋았었지.. 점심시간에 달걀 프라이 냅다 먹어버리는 친구들 때문에 

더러는 도시락 제일 아래쪽에 달걀 프라이를 숨겨 가기도 햇었는데.. 

 보온도시락이 없어서 교실 톱밥 난로위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군침을 흘려가며 

수업을 하기도 했었지

옆집 개가 물어죽인, 병아리티가 막 벗어난 우리집 애기닭을 슬퍼하다 삶아먹었던 기억이며 

소풍때 땅콩과 함께 삶아갔던  달걀 한 개, 사이다하고 같이 먹으면 

많이 걸어 아픈 다리도 금방 괜찮아졌었지

누구나 달걀에  이런 기억 한 두개쯤 없는 이 없겠지만 사느라 잊고 있었던 

유년의 추억들..  할머니가  아버지에게 또 내게 양보해주신 찐계란 종지..

내리사랑의 그 부드러움을 달걀 한 알로 느낄 수 있었지

지금은 닌텐도니 뭐니.. 웬만한 고가품이 아니면 아이들이 감동하지 않지만 

작은 물건 하나로도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던 때가 있었지

. 내 아이들은 나중에 자랐을 때 무엇을 기억하고 또 가슴 아련해 할까   

책 속에 낯설지 않은 경상도사투리가  마음을 파고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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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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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서 이 에세이집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었다.  고등학교 때에 '백치애인'으로,  

이십대 초입에는 '물위를 걷는 여자'로 그를 흠모했던 독자로서 그의 신작이 너무 반가웠다. 

 대학교수이고 유명한 시인으로 늘 당당하고 도도해 보였던 그녀의 책 겉표지 사진들 뒤에 

이토록 힘든 날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 절실하게 와닿던 한마디 한마디가  

고통으로 버무렸기 때문에 더 가슴을 흔들었으리라..  

세상에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 어디있으랴만은 그 고통속에 주저앉지 않고 공부를 하고 

시를 쓰고 글을 쓰며 이겨낸 그녀의 지난 시간에 기립박수라도 보내고 싶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의 친정어머니..

부모라는 건 뭘까, 자식이라는 건 뭘까 내가 힘들어 하며 토해 내고 싶었던 말들을 그녀가 

나 대신  책 속 행간 행간에 쏟아낸다. 그녀는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남편을 일으켜 세워 다시 강단에 세우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도와 눈물과 한숨으로 

보내었을까  그것도 모자라 시어머니 오랜 병수발까지. 그 후엔 자신의 유방암 투병까지..

그녀는  그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홀로 남았다. 이제 물처럼 편안하다 했다. 허나 

편안한 가운데 찾아드는 외로움들.. 남편을 향해 수없이 방아쇠를 당겼던 그녀가 

그래도 하나보단 둘이 낫다 했다.  산단는 건 뭔지... 부부라는 건 또 뭔지.. 내 주위를 둘러본다

그녀의 상처를 통해 오늘 내가 위로를 받는다. 그래도 그 때의 그녀보단 내가 덜 힘들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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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뿌뿌 비룡소의 그림동화 36
케빈 헹크스 글 그림,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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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가지 물건에 집착하는 걸 더러 봤다. 어떤 아이들은 자기 배게,  

이불이 없으면 잠자기가 힘들어 시골 할머니댁이나 친척집에 갈 때에도 가지고 다닌다. 

사실 내 새끼를 키우기 전에는 '자식 참 유별나게 키운다' 싶었다. 그러나 내 딸이 지금 그렇다 

다섯살 내 딸은 자기가 태어나면서 부터 썼던 배내이불을 아직까지 덮고 잔다. 유치원을 갔다와 

도 제일 먼저 찾아 들고선 냄새부터 맡는다. 이제 닳아서 너덜너덜한 배내이불.. 다른 이불을  

사다줘도 싫단다. 이 책 주인공 오웬처럼  학교까지 들고간다면 어쩌나... 내 자식이라서 그런지 

이불하나 물고빨고 하는게 귀엽기만 하니...인간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

  

 아이들이 한가지 물건에 애착을 갖는 건 엄마로 부터 분리되면서 생긴 불안때문이라고   

어느 심리학 서적에서 읽은 적이 있다. 옛날 등에 아이를 업고 다닐 적에는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크게 불안하지 않았으나 요즘은 어부바이불을 사용하여  엄마에게 

완전 밀착시키는 방법은 촌스럽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엄마들이 많이 기피한다 

서양의 경우 조금만 자라도 독립심 어쩌구 저쩌구 하며 아이들을 따로 재우기도 하는데 

이 때 생긴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고자 아이들이 인형이나 엄마를 대신 할 수 있는 포근한 

물건을 안고 자기도 한다  일시적인 현상일 경우는 괜찮지만 주위에 중학생이 되고서도 

배내이불을 덮고 자는 아이도 봤다. 너덜너덜하다못해 완전 넝마같은 그 이불을  

그 여학생은 세상 어느 것보다 좋다고 해서 의아햇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들이 사교육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아이들의 정서에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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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브라이 뒹굴며 읽는 책 4
마가렛 데이비슨 글, J. 컴페어 그림, 이양숙 옮김 / 다산기획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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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브라이는 세 살 때 아빠의 마구 작업장에서 연장을 가지고 놀다가 눈을 다쳤다

마을 신부님의 도움으로 파리 맹아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그 때까지 쓰이던 맹인들을 위한 

글자에 너무 실망하게 되면서 자신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좌절과 고통스러운 순간이 여러 차례 있었음에 불구하고  

3년여간의 노력으로 오늘날 쓰이는 점자를 완성하게 된다 

 이 점자가 인정받게 될 때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브라이가 만든 점자의 편리함을 

맹인 학생들에게 인정받게 되고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현재 나라마다 쓰이는 점자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원리는 브라이가 만들어 낸 원리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한글 점자는 고종 2년에 태어난 박두성 선생님에 의해 만들어 졌다 

 맹아 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일본어로 된 점자밖에 없는 것에 

안타까워하시며 1920년 부터 비밀리에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 7 여년의 노력 끝에 

한글 점자를 완성하게 된다  이 한글 점자는 맹인들의 훈민정음이란 뜻으로 '훈맹정음' 

이라 불린다 

우리처럼 보통사람들에게는 읽고 쓴다는 것이 하나도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더듬거리듯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맹인들은

오직 점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꿈을 꾸게 된다  점자는 캄캄한 어둠속에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다.

자신도 앞을 볼 수 없는 힘든 처지에도  맹인들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고통을 덜어 주려고 

노력한 그 따뜻한 인간애..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

  사지육신 멀쩡한 나는 내 이웃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사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꿈,열정이라는게 있기나 한지.. 

  참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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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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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남성중심의 유교사회에서 사실 여성의 역할이 평가절하된 부분이 많았었다. 

어쩔 수 없이 그 내용이 빠지면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을 경우에만 사료에 왕비의 역할이 

기록되어졌으리라  남편인 왕을 내조하기 위해 안팎으로 분주했을 그녀들.. 최고의 위치에서  

온갖 부귀를 누리면서도 또한 그 만큼의 인간적 고통을 느껴야만 했을 것이다.  

  내용중에는 우리가 이미 역사책이나 티브이 드라마를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많고 

더러는 처음 접하는 내용도 제법 있었다. 실록에만 근거해서 알고 있던 내용들을 동시대 개인  

문집 등 다른 책들의 내용도 함께 실어 비교를 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던 것 같다. 

같은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역사의 어둡던 한쪽 귀퉁이가 어렴풋이나마 밝아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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