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고 산길을 걷다가....
비에 대해 생각해 보네.
태생부터 제 소리를 지니지 못한
것들은 타인을 만나야만 소리를 낼 수 있지.
함석지붕, 떡갈나무, 칡잎, 베란다 난간대, 양동이
땅에 눕혀진 자장면집 간판, 찢어진 우산, 백일홍 꽃이파리...
다다당, 후두두, 톡톡, 툭툭, 당당당, 주르륵, 줄줄, 추르륵, 사브작 사브작...
이쯤에서 자꾸 궁금해지네
‘너’라는 사람을 만난
‘나’라는 비는 무슨 소리가 날까?
오월 감자밭에 속삭이는 봄비 소리이거나
도랑가 물피의 구부린 등에 쏟아지는 여름비 소리이거나
사과 뺨 위에 떨어지는 발그스럼한 가을비이거나
잎 떨군 나무가지 위에 호젓이 울어대는 겨울비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