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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샛노란 그래서 발랄하고 톡톡 튀는 이야기가 가득할 것만 같은 책은 서서히 그 빛이 엷어져 가면서 그 노란 빛은 내 가슴에 스며들어 같은 소리를 내는 같은 빛깔을 품은 라디오가 되었다.
작가는 시작은 창대하나 그 끝은 미약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크지 않은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그리고 깊이 퍼져나간 듯하다. 그녀가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그런 이야기들이다. 사랑하는 부인과 배를 타고 고기를 낚는 어부의 이야기, 원폭 피해자의 후손 이야기, 여행길에서 만난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 가지지 않을 이야기를 호기심과 사랑의 눈빛으로 들어주는 작가가 있기에 이렇게 마술 같은 이야기가 되어 우리 곁에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영리하지 않은 사람들이 세상을 세상답게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세상을 마술적으로 바꿔놓는다는 것을 믿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떠난다. 그렇게 세상에서 만난, 그렇지만 방송에서 다 하지 못한, 혀끝에 남아도는 차고 넘치는 이야기들이 바로 <마술 라디오>다.
자폐 1급과 2급의 아이들을 가진 빠삐용의 아버지는 혼자 가서 1등 하는 것보다 다 같이 가서 함께 할 방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높이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다른 이를 짓밟고 올라서는 데 골몰할 때 이렇게 함께 사는 것, 그것은 수준을 낮추는 것이라는 삶의 진리는 조용히 내 마음을 파고든다.
인생에 언젠가는 꼭 수준을 낮춰야 하는 순간이 와요. 그때 잘 낮추어야 해요.
작가의 말처럼 생활수준이라는 것도 사실 외부에서 말하는 기준이 내면화된 것이다. 그러니 수준을 잘 낮춘다는 것은 기준을 바꾼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결국은 기준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고. 아마 낮춘다면 그건 생활수준이 아니라 행복에 대한 기대치 아닐까.
이렇게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해 보이는 작가지만 강단 있는 단단한 심지가 엿보인다.
"과거를 대하는 두 갈래 길이 있다고 해. 하나는 과거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강화시키는 길, 또 하나는 과거를 해석하는 길. 전자에선 순응이 나오고 후자에선 자유가 나온다고 하지."
그래서 그녀는 과거를 쉽게 용서하지 않으며 그 잘못으로 인해 아픈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하고 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들려주는 작가는 우리 모두 마지막 잎새를 그리는 베어맨 노인이 되어보자고 부추긴다. 그동안 작가는 자신을 아픈 존시로 생각해 왔다고 한다.
'나한테도 마지막 잎새 같은 게 있을까?''누가 마지막 잎새를 그려줄까?' 궁금해했다. 하지만 자신이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는 베어맨 노인일 수 있는 가능성은 생각해보지 못 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지막 잎새일 수 있는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서 뭔가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몽상가적일까 묻는 작가는 결국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구원하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마지막 잎새'는 선한 본성에서 나온 타인에 대한 상상력임을 믿는다.
세상에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없다고 믿는, 타인을 향한 호기심과 따뜻한 마음이 가득한 작가의 작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 하지만 큰 울림이 되어 가슴 가득 진동을 남기는 이야기를 오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