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괜찮은 손글씨 쓰는 법을 하나씩 하나씩 알기 쉽게 - 악필 교정에서 캘리그라피까지, 30일 완성 손글씨 연습장!
이용선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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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글씨를 쓰게 되는(내 의지가 아니고) 일이 얼마나 될까?

얼마 전 설 명절 때도 나는 고객들에게 컴퓨터로 이미지 작업을 한 뒤 손글씨 느낌이 나는 폰트로 글을 써서 JPEG로 만들어 카톡으로 인사를 했다. 예전에 정성스럽게 고르던 카드나 엽서는 이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이미지로 대체되었고, 손에 힘을 주어 쓰던 글씨는 보기 쉽고 이쁜 글씨체는 여기저기 널려 있어 잘 고르기만 하면 된다. 점점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적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이어리와 책을 읽으면서 쓰는 노트다.

다이어리에는 약속부터 읽은 책, 읽고 싶은 책, 해야 할 일 등을 적어둔다. 책의 내용을 적는 것은 주로 마구 휘갈겨 쓰는 편인데, 그것이 문제다. 나중에 독서모임에 가서 내가 쓴 글이 뭔지 읽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다이어리도 이쁘게 꾸미는 것이 유행이고 보니, 내 글씨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가 봐도 괜찮은 손글씨 쓰는 법을 하나씩 하나씩 알기 쉽게> 가르쳐주는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연습에 앞서 '아무래도 손글씨가 예쁘지 않다고요?를 보았다.

1. 글자 하나하나가 떨어져 있나요?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한 마디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2. 글자 크기가 너무 작거나 크지는 않나요? 작을 때도 클 때도 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글씨다. 꼭 내 맘처럼.

3. 문장의 글자 크기가 고른가요? 그렇지 않다.

4. 자간과 행간은 너무 좁거나 넓지 않나요? 이런 걸 생각하며 글씨를 써본 적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이랬다저랬다 한다.

5. 문장이 뒤로 갈수록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는 않나요? 문장은 뒤로 가면서 올라가는 편이고 맨 앞 문장은 자꾸만 더 들여써져서 밑으로 갈수록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6. 글씨가 너무 옅지는 않나요? 이거 하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잘 안되는 부분만 살짝 교정한다면 개성이 넘치면서도 읽기에 좋은 글씨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글씨 연습을 할 때는 '천천히, 크게, 정자체'를 유지하면 된다. 마치 처음 글씨를 배우는 아이 때처럼. 평소에 쓰는 글씨체의 두 배 정도의 크기로, 펜 촉이 조금 두꺼운 펜을 골라 정자체로 써야 한다. 글씨는 습관이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서 연습해야 한다.

이 책은 글씨를 반듯하게 보기 좋게 쓰는 작은 팁들이 많다.

모음 앞에 오는 자음(ㄱ, ㄴ, ㄷ, ㅋ, ㅌ)은 모서리를 날렵하게 그리고 세로획을 조금 길게 써준다. 모음이 아래에 있을 때는 가로와 세로의 비율을 거의 같은 정도로 쓴다. 받침으로 쓸 때는 가로획을 조금 더 길게 써서 받쳐주면 안정감이 든다.

ㄹ은 가로획 사이의 공간을 같게, ㅁ은 내부 공간을 넉넉하게 쓴다. ㅇ은 완전한 원이거나 타원형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당한 크기다. ㅇ은 생각보다 조금 작게 쓰는 것이 편안하다. ㅅ, ㅈ, ㅊ은 대각선의 획이 대칭이 되도록 쓴다. 서로 만나는 대각선은 3분의 1지점에 쓰는 것이 보기 좋다.

전체적인 글씨의 크기는 어떨까?

받침이 없는 글씨는 정사각형의 틀에, 받침이 있는 글씨는 직사각형의 틀에 들어가도록 쓰면 보기에 좋다. 띄어쓰기는 글자의 절반의 크기로 띈다. 줄이 있는 노트에 쓸 때 줄은 울타리로 보면 된다. 그 중앙에 쓰는 것이 보기에 좋다.

이렇게 매일 연습을 하다가 어느 정도 단정한 글씨체가 완성되면 이제 멋을 좀 부려보아도 좋겠다. 크기를 다르게 해서 리듬감을 준다거나 글씨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납작펜을 사용해서 글씨를 써 볼 수도 있다.

이 책의 뒷부분은 이렇게 조금은 변화가 있는 글씨체를 연습하는 데 할애한다. 플러스펜, 납작펜으로 써보는 글씨체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만의 글씨로 꾸며보는 카드와 종이가방 꾸미기 그리고 텀블러 꾸미기 등이 들어있다. 거기까지 가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좋은 습관을 다시 들인다면 가능한 일이다.

내가 욕심이 많았는지, 얼른 멋진 캘리그래피를 만들고 싶어서였는지, 이 책은 그런 면에서는 다소 아쉬웠다. 정말 손글씨의 기초에 해당되는 내용이 많다. 또박또박 손글씨를 잘 쓰고 싶은 분들에게는 좋은 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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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백종옥 지음 / 반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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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이란 부제가 붙은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을 읽은 뒤, 서울, 아니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기념조형물을 떠올려보았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아니 금상이 먼저 떠올랐다. 요즘 광화문 광장을 리모델링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지 간에 우리의 기념조형물과 광장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를 모아서 결정했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조형물은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새롭게 우리를 돌아보는 시각을 갖게 했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후반부터 공공 기념물의 개념들은 다양하게 확장되고 발전해왔다고 한다. 그에 따라 기념 조형물의 형식과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념조형물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것은 이른바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로서 기념조형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장소의 맥락과 의미에 적합하게 설치된 기념조형물의 좋은 사례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저자는 베를린 기념조형물의 공통된 특성에 주목한다.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기억을 품은 장소에 밀착된 느낌을 준다. 그것들은 광장의 지하에, 광고판에, 버스정류장에, 기차 승강장에, 보도블록에 있다. 그래서 도시의 일상 속에 발길 속에 있다. 또 공원처럼 조성되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체험하고 머무를 수도 있다. 일상적인 풍경과 단절되지 않도록 제작되고, 설치된 방식이어서 저자는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고 정의했다.

이 책에 나와있는 기념조형물 10가지 중에서 나는 특히 몇 가지에 주목했다. 독일인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특히 기억하기 싫어하는 부분까지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사라진 책들을 기억하는, 텅 빈 도서관

1933년 5월 10일 밤 11시, 한 명 한 명 저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책들이 불속에 던져졌다. 베벨 광장에서 불탄 2만 권이 넘는 책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는 '낡은 것이 불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우리 각자의 심장의 불꽃에서 다시 날아오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들의 화형식.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하인리히 하이네, 막심 고리키 등 유대인 작가들과 학자들 그리고 나치를 비판한 비유대인 저자들의 책까지 불태웠다고 한다. 바로 그 광장의 지하에 설치된 경고의 공간, 가로 세로 120센티미터의 정사각형 투명 유리창, 그 밑 지하에는 텅 빈 직방체 공간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예술가 미하 울만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이다. 책들이 소실되고 저자들이 추방된 곳에서 침묵과 정적만이 남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없음으로 해서 우리가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모여주는 역설. 꼭 한 번 가서 직접 보고 싶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된다'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시내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유대인 공동묘지의 석관 모양 시멘트 기둥 2711개를 세운 지상의 기념물이 있다. 이곳을 관광하는 많은 관람객이 있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곳이다. 이곳은 관람객의 불편함을 요구하는 독특한 설계 방식으로 관람객이 차가운 콘크리트 블록들 사이 비좁은 길을 지나 겨우 혼자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하늘을 보며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장소이다. 뉴욕 출신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한 작품이다. 특히 이 추모비가 기억에 남는 것은 나치의 주요 관청이 자리했던 중심부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인간 화물 열차의 출발지, 그루네발트역의 17번 선로

1942년 6월 13일/ 유대인 746명/ 베를린-알려지지 않은 곳

1942년 6월 16일 / 유대인 50명/ 베를린-테레지엔슈타트

베를린 그루네발트역.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이 역은 베를린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동유럽의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일을 도맡아 했던 역이다.

'독일제국철도의 열차들을 통해 죽음의 수용소로 추방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역은 존재한다. 이곳에는 선로를 따라 186개의 주물 강철판이 이 있는데 특별열차에 대한 기록을 하나하나 소상히 밝혀 적고 있다. 이 자세한 기록은 이 장소에서 벌어진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추상적인 공감이나 관념적인 이해 그리고 형식적인 애도를 거부한다. 나는 이런 방식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염두에 두며 우리의 기념조형물을 제작했으면 좋겠다.

작은 역사들을 위한 길바닥 추모석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길바닥에서 만나는 작은 동판이 있다고 한다. 간혹 이 작은 동판 옆에 꽃이 놓여있기도 하다는데 이것이 일종의 추모석이다. 작가 군터 뎀니히의 작품으로 나치가 추방하거나 살해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추모석 제작은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걸림돌, 장애물, 난관이라는 의미를 지님)라고 불리며 지금도 계속해오고 있다. 이 길바닥 추모석이 나치에 희생된 이들이 망각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걸림돌이나 장애물로서 의미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로 세로 10센티미터의 황금판에 '지크프리트 베르너 하우스도르프가/ 이곳에 살았음/1905년생/ 1943년 3월 1일 추방됨/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함'이라는 형식으로 적혀있다고 한다. 이 추모석들은 희생자들의 마지막 거주지 앞 보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조금 전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이 살았으며,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내 삶 속에서 알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익명의 희생자가 아닌 특정한 인물이 살았던 집 앞에 정확히 설치되어 역사를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기억하려는 의도는 정말 멋졌다. 추모석은 작가의 수작업으로, 그 과정은 모두의 기부금으로, 추모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발굴하는 작업은 각 지역의 청년 학생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도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버스 정류장에 새겨진 악의 평범성

베를린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실슈트라세 정류장을 지난다. 이곳은 경고하는 장소라는 의미의 '만 오르트'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쓰여있다. 안경 쓴 대머리의 중년 남자가 보이는데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유대인 강제 이송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공무원으로 2차 대전 후 잠적했다가 십수 년 후에 붙잡혀 이스라엘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가 일했던 제국보안본부 건물이 있었던 곳 정류장에 설치했다. 아렌트는 특별히 잔혹하거나 변태적이지 않고 그저 정상적인 사람인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독가스로 죽이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더라도 나는 그 명령을 수행했을 것이다'라고 진술한 것을 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근면하게 일했던 한 인간을 보았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했다. 우리는 이 버스 정류장에 광고판에 등장하는 아이히만의 얼굴을 보면서 평범한 인간이 '나 자신' 또한 아이히만과 다를 바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고 있는.

구원의 비밀은 기억 속에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혹은 감추고 싶은 역사를 얼마나 기억하고 보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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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마카롱을 먹기로 했다 - love is life
다이애나 리카사리 지음, 딘다 퍼스피타사리 그림, 카일리 박 옮김 / FIKA(피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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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이쁘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노랑, 연한 보라, 연한 녹색, 그리고 연한 분홍빛의 마카롱이 흔들흔들 탑을 쌓고 있는 일러스트가 분홍 바탕 위에 올려진 책은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누구에게?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알록달록 마카롱과 함께.

사실 이 책은 운동을 하고 있는 조카에게 주고 싶다. 경쟁 속에 사는 이 아이는 아직은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뒤섞여 끙끙거리며 견뎌내고 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려서부터 운동만 하고 커 온 그 아이에게 이 지독한 세계는 무척 힘들 것이다. 그 아이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책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글들은 짧고 강렬하다.

얼마 전 블로그 통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한 방문객이 평균 블로그에 머무는 시간이 2분 정도인 걸 알게 되었다.

길게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만 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요즘은 SNS를 많이 한다. 그 속에서 긴 글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오늘, 마카롱을 먹기로 했다>의 글은 다이애나 리카사리라는 인도네시아의 패션,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인데 SNS 등 온라인을 통해 활동을 했다고 한다. 딱 그 스타일의 문장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쁜 일러스트 배경은 딘다 퍼스피타사리라고 하는 물방울무늬와 예쁜 옷을 입은 소녀를 주고 그리는 일러스트가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이 전체적으로 '소녀소녀'하다.

당신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요.

이렇게 한 페이지에 한 문장이 있기도 하고,

"너한테 이건 좀 어려울 거야."

"넌 못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번 해볼게요." "도전할래요."라고 말해주세요.

"해 봐, 그리고 너의 한계를 느껴봐."라고 그들이 말할 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걸요!"라고 말해 주세요.

라는 구어체의 쉬운 문장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책은 내 손을 거쳐 조카에게 가겠지만, 나에게도 가슴이 와닿는 곳들이 많았다. 실은 나도 한 권 가지고 있으면서 위로를 얻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슴으로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거든요.

듣는다는 것의 의미는 소리의 울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해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함하니까요.

정말 좋은 친구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예요.

내 문제가 아닌 친구의 문제를 먼저 듣고 있으니까요.

연말연시를 지내며 몇몇 모임을 가졌다.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허전할 때가 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나? 혹은 왜 그는 자기의 이야기만 하는 걸까? 그러면서 듣는다는 것이 뭘까? 왜 듣는다는 게 힘들까?

이 문장을 보면서 귀로만 들었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마음으로 가슴으로 들어야 하고, 이해하고 문제를 공감해야 한다는 걸.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친절하기를 기대할 수 없어요.

나 또한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설픈 기대와

왜 나를 기분 나쁘게 대하는지 의문을 품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나는 타인에게 친절했는지.

가장 많은 반성을 했던 문장이다.

이 말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보았던 말과 같았다. 잊고 있었지만.

"낯선 이들에게 친절해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 수 있다." -Be not be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 일러스트에도 한동안 눈길을 주게 된다. 일러스트에 쓰인 글이 한글과 같은 문장일 때도 있지만, 조금 혹은 많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론 어색하기도 하고, 때론 뭐 그래도 괜찮네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오늘, 마카롱을 먹기로 했다>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면지에 '항상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에게 이 책을 드립니다.'라고 친절하게 적혀있다.

그 밑줄에 쓰고 싶은 누군가가 나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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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 - 빈센트의 영혼의 초상화
랄프 스키 지음, 이예원 옮김 / EJONG(이종문화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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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음악가, 화가...... 그 모든 예술가들이 불우하게 살았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게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이 글처럼 정신병(조울증이라고 여겨지는)으로 고통받고 짧은 생을 자살(여기에는 여러 이견이 있다고 하지만)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는 10년 동안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 짧은 생에 비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자화상을 많이 남겨 놓아 빈센트 반 고흐가 너무 친숙하게 다가온다. (피카소, 모네, 마네 등 이 화가들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는 초상화 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화를 그렸다. <반 고흐가 그린 사람들>의 저자 랄프 스키는 이 점에 착안해 고흐의 편지글을 인용해 초상화 그리기가 왜 중요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네덜란드에서부터 파리, 아를, 생 레미 드 프로방스, 그리고 오베르 쉬를 우아즈까지 고흐가 걸었던 발자취를 따라 그가 그린 작품과 글을 펼쳐놓았다.

1장 네덜란드 편에서는 밀레의 작품을 모사하면서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고흐의 글처럼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트로니 스타일의 초상화를 소개한다.

(트로니는 원래 '얼굴'이라는 뜻이었다가 후에 '얼굴의 뚜렷한 특징과 감정을 드러내면서 색다른 의상을 입은 인물의 상반신 그림'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프란스 할스의 작품이 있다.)

                                                                                                                                                   
                                                                         

고흐는 '나는 풍경화가는 아니다. 내가 풍경을 그릴 때도 그 속에는 늘 사람의 흔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라는 말을 듣고 그의 작품을 다시 보면, 아니 그 말을 듣지 않았어도 그의 작품을 만나면 그 고뇌가 느껴진다.

고흐는 '인간'에게 관심이 많았다. 인간만이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감동시킨다고 말한다. 그에게 인간을 그리는 일은 발자크나 졸라가 작품 속에서 지금까지 무시해오던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실감 나게 써내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2장 파리에서는 고흐가 점묘법 등의 그 당시 유행하던 표현기법으로 달라진 자화상을 소개한다. 고흐는 파리에서 39점의 자화상 중 26점을 그린다.

                                                                                                                                                   
                                                                         

3장 아를에서는 모델의 범위가 더욱 확장되어 정원사, 우편배달부, 의사, 모자, 아기,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군인까지 포함된다. 물론 그 초상화에는 모델의 생각과 그 정신이 깃들어야 했음은 당연하다.

                                                                                                                                                   
                                                                         

아카데미의 인물화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더 이상 고칠 곳도 없고, 실수 하나 없이 매끄럽게 그려졌지. 그러니 '그 이상 더 잘 할 수 없다'라는 점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 그러면 인물이 더 이상 피상적이지 않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그건 땅을 파는 사람이 땅을 파고, 농부가 농부답고, 시골 아낙이 시골 아낙다울 때다. '농부가 농부다워야 하고, 밭을 가는 사람은 밭을 가는 사람다워야 한다. 그럴 때 그 그림은 진정으로 현대적인 성격을 띤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 예담

나는 아를에서의 작품 중에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그린 두 점의 자화상이 놀랍다.

자화상, 요즘에는 너도 나도 찍어서 SNS에 올리는 셀카와 같은 것일진대, 이렇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자고 일어난 부스스한 모습조차 우리는 셀카를 찍지 못하는데, 지금 우리의 셀카는 잘 꾸며진 모습으로 남에게 보이고 싶은 부분만 강조해서 보여주는 용도인데.

우리는 고흐가 경멸하던 아카데미의 초상화 방식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고칠 곳이 없게 매끄럽게, 그리고 자신의 진솔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는.

4장에서 고흐는 거의 자발적으로 생레미 드 프로방스의 정신병원으로 들어간다. 이때 그린 초상화는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어떤 이는 이곳에서 고흐가 그린 그림의 돈의 가치를 말하며(그 가치가 얼마나 될까?) 기꺼이 그렇게 들어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을 한다.

                                                                                                                                                   
                                                                         

고흐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좋은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다.'라고 여동생 윌에게 쓴 편지에서 말한다. 그는 이곳에서 정말로 좋은 초상화를 그렸다.

5장에서는 그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작품과 그의 글이 소개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있었던 47일 동안 회화 80, 드로잉 64점을 그렸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구원과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여동생 윌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결국 구원을 얻지 못했을까? 이곳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작년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네덜란드에서부터 파리, 아를, 생레미 드 프로방스 그리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여행했다. 고흐의 작품을 직접 보고 그가 단지 고뇌에 찬 우울한 화가는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흐 뮤지엄에서 만난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은 다른 어떤 화가 그림의 색보다 밝고 생동감이 있었다. 그림으로 인해 불행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고흐는 어떤 영혼의 소유자였을까?

내가 여전히 고흐의 그림과 고흐에 대한 책을 구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초상화에 대한 부분만을 따로 덜어내서 분석해 더욱 흥미로웠다. 단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17일 동안(오베르에 있던 시간은? 5월 21일 ~ 7월 29일)이라고 한 부분과 그가 6월 27일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 점(그는 7월 27일 권총 자살을 시도했고 7월 29일 죽었다)은 의아하다. 오타인지, 작가의 착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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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도시 이야기 - 포르투, 파리, 피렌체에 스미다
신지혜.윤성은.천수림 지음 / 하나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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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영화를 보다가 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벌써 2년 하고도 반년 전에 독서모임을 하던 중년의 4명의 여인들이 <서양미술사>을 함께 읽다가 여행을 가기 위해 매달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년을 꼬박 모아 우리는 고흐의 그림과 고희의 편지글이 담긴 책을 나침반 삼아 여행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오테를로, 벨기에를 거쳐 아를, 파리 그리고 고흐의 마지막 거주지였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얼마 전 청소년인 조카가 '왜 거기를 가요? 그곳이 왜 좋아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그 하얀 배경에 파란 지붕 사진이 너를 그곳에 데려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책 한 권이 그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단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때문에 포르투갈 여행을 가려고 한단다.'라고 답을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하기 위해 그런 핑계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지겹기만 한 일상, 그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곳이 아닌 그곳에 데려가고 싶어져서 우리는 한 편의 영화에 그리고 한 권의 책에 기댄다. 책으로의 여행, 영화로의 여행. 그러다 어떤 한 가지에 강하게 끌려 긴 시간의 비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르투 왜 거기였을까?',  '파리 왜 거기였을까?' 그리고 '피렌체 왜 거기였을까?'

<세 도시 이야기>는 이런 여행에 대한 에세이다. 이 책의 작가들 - 신지혜, 윤성은, 천수림 -은 영화음악을 진행하는 이거나, 영화 평론가이거나 아트 저널리스트다. 이들은 이렇게 책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포르투 왜 거기였을까?

포르투 왜 거기였을까를 쓴 작가는 마음이 휘청거릴 때, 피신할 곳을 찾아  햇빛이 좋은 지중해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리스본과 또 한 곳 포르투로 갔다. 그곳에는 와이너리가 있고, 루이스 1세 다리(에펠의 제자가 지은), 상 벤투 역의 아줄레주(광택을 낸 돌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말로 주석 유악을 사용해 그린 도자기 타일-12년 동안 2만여 개의 타일에 그려진 그림)와  렐루 서점( 조앤 롤링은 포르투에 있는 카페 마제스틱에서 해리 포터를 집필했다. ,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을 렐루 서점에서 착안했고, 포르투 대학의 망토를 해리 포터에게 입혔다) 그리고 포트와인(백년전쟁이 만든 기막힌 포도주다. 백 년 전쟁은 프랑스 왕위를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우리는  잔 다르크를 기억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의 그토록 좋아하던 프랑스 와인을 마시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와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국인들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활발히 교역했던 포르투갈 북부의 와인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배에 싣고 영국으로 오는 도중에 변질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우연-브랜디가 남아 있는 통에 담겼던 와인이 변질되지 않고 도착한-이 생겼다.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영국에 보내지는 와인에는 브랜디가 배합되기 시작했다)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작가는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파리, 왜 거기였을까?
 
인생에서 가장 지쳐 있던 시기,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몇 개월간의 여행을 계획했던 작가는 파리로 떠났다. 이 작가는 현지인처럼 파리에서 한 달을 살아보기로 한다. 영화 평론가인 그에게 그리고 읽는 독자에게 파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프랑스 음식에 대한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보고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퐁네프 다리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것은 어떨지 생각만 해도 저절로 가슴이 뛴다. 파리를 두 번 가보았지만, 영화의 그 기분을 느끼며 걸어본 적이 없었다. 다음에 파리를 가게 되면 <비포 선셋>과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의 그들처럼 거리를 거닐어 보고 싶다. 파리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도시다. 사람들도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소매치기가 넘쳐나고 데모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고풍스러운 건물과 센강 사이로 어쩐지 좀 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파리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끌리는 도시다. 

피렌체 왜 거기였을까?

꽃의 도시 피렌체를 여행한다는 것을 어떨까?  
스탕달 증후군, 스탕달 신드롬(엄청난 미술품 앞에서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쓰러지는 사건)으로 알려진 스탕달은 1817년 일기에 피렌체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황홀했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무덤가에 있지 않았던가! 숭고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 아름다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니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예술품과 열정적 감정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초자연적 느낌들이 충돌하는 감동의 물결이 나를 휘감았다. (중략) 온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발을 내딛고 있었지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라고 썼다. 우리가 혹 피렌체에서 스탕달 신드롬에 빠져드는 것 아닐까?
    
<냉정과 열정 사이> 방부제 같은 풍경. 14세기에 멈춰져 있는 듯한 피렌체를 작가는 걷는다. 이탈리아의 언어를 완성했다는 단테의 집, 그리고 그 유명한 두오모 성당까지 과거의 유물이 가득한 피렌체도 매력적인 도시다.

현실에서 여행을 떠날 수 없을 때 우리는 책으로, 혹은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은 우리의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을 읽다가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세 도시 이야기> 이 책에 대한 약간의 아쉬운 점은 사진에 설명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때로 우리는 한 장의 사진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사진에 설명이 달려있더라면 당장 그곳을 가기 위해 표를 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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