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 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
백종옥 지음 / 반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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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조형물이란 부제가 붙은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을 읽은 뒤, 서울, 아니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기념조형물을 떠올려보았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아니 금상이 먼저 떠올랐다. 요즘 광화문 광장을 리모델링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지 간에 우리의 기념조형물과 광장문화를 돌아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를 모아서 결정했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조형물은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나에게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은 새롭게 우리를 돌아보는 시각을 갖게 했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후반부터 공공 기념물의 개념들은 다양하게 확장되고 발전해왔다고 한다. 그에 따라 기념 조형물의 형식과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념조형물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 설치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었을 때 훨씬 설득력이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것은 이른바 '장소 특정적 미술(sitespecific art)로서 기념조형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장소의 맥락과 의미에 적합하게 설치된 기념조형물의 좋은 사례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베를린이다.

저자는 베를린 기념조형물의 공통된 특성에 주목한다.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기억을 품은 장소에 밀착된 느낌을 준다. 그것들은 광장의 지하에, 광고판에, 버스정류장에, 기차 승강장에, 보도블록에 있다. 그래서 도시의 일상 속에 발길 속에 있다. 또 공원처럼 조성되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고 체험하고 머무를 수도 있다. 일상적인 풍경과 단절되지 않도록 제작되고, 설치된 방식이어서 저자는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고 정의했다.

이 책에 나와있는 기념조형물 10가지 중에서 나는 특히 몇 가지에 주목했다. 독일인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특히 기억하기 싫어하는 부분까지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사라진 책들을 기억하는, 텅 빈 도서관

1933년 5월 10일 밤 11시, 한 명 한 명 저자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책들이 불속에 던져졌다. 베벨 광장에서 불탄 2만 권이 넘는 책들.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는 '낡은 것이 불타고 있다. 새로운 것은 우리 각자의 심장의 불꽃에서 다시 날아오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책들의 화형식. 카를 마르크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하인리히 하이네, 막심 고리키 등 유대인 작가들과 학자들 그리고 나치를 비판한 비유대인 저자들의 책까지 불태웠다고 한다. 바로 그 광장의 지하에 설치된 경고의 공간, 가로 세로 120센티미터의 정사각형 투명 유리창, 그 밑 지하에는 텅 빈 직방체 공간이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예술가 미하 울만의 '도서관'이라는 작품이다. 책들이 소실되고 저자들이 추방된 곳에서 침묵과 정적만이 남았음을 표현하고 있다. 없음으로 해서 우리가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모여주는 역설. 꼭 한 번 가서 직접 보고 싶다.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게 된다'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시내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유대인 공동묘지의 석관 모양 시멘트 기둥 2711개를 세운 지상의 기념물이 있다. 이곳을 관광하는 많은 관람객이 있다.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왔던 곳이다. 이곳은 관람객의 불편함을 요구하는 독특한 설계 방식으로 관람객이 차가운 콘크리트 블록들 사이 비좁은 길을 지나 겨우 혼자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조각난 하늘을 보며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장소이다. 뉴욕 출신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한 작품이다. 특히 이 추모비가 기억에 남는 것은 나치의 주요 관청이 자리했던 중심부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인간 화물 열차의 출발지, 그루네발트역의 17번 선로

1942년 6월 13일/ 유대인 746명/ 베를린-알려지지 않은 곳

1942년 6월 16일 / 유대인 50명/ 베를린-테레지엔슈타트

베를린 그루네발트역.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이 역은 베를린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동유럽의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일을 도맡아 했던 역이다.

'독일제국철도의 열차들을 통해 죽음의 수용소로 추방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 역은 존재한다. 이곳에는 선로를 따라 186개의 주물 강철판이 이 있는데 특별열차에 대한 기록을 하나하나 소상히 밝혀 적고 있다. 이 자세한 기록은 이 장소에서 벌어진 역사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게 한다. 실제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추상적인 공감이나 관념적인 이해 그리고 형식적인 애도를 거부한다. 나는 이런 방식이 너무 좋았다. 우리가 염두에 두며 우리의 기념조형물을 제작했으면 좋겠다.

작은 역사들을 위한 길바닥 추모석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길바닥에서 만나는 작은 동판이 있다고 한다. 간혹 이 작은 동판 옆에 꽃이 놓여있기도 하다는데 이것이 일종의 추모석이다. 작가 군터 뎀니히의 작품으로 나치가 추방하거나 살해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추모석 제작은 '슈톨퍼슈타이네 프로젝트'(걸림돌, 장애물, 난관이라는 의미를 지님)라고 불리며 지금도 계속해오고 있다. 이 길바닥 추모석이 나치에 희생된 이들이 망각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걸림돌이나 장애물로서 의미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로 세로 10센티미터의 황금판에 '지크프리트 베르너 하우스도르프가/ 이곳에 살았음/1905년생/ 1943년 3월 1일 추방됨/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함'이라는 형식으로 적혀있다고 한다. 이 추모석들은 희생자들의 마지막 거주지 앞 보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 조금 전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이 살았으며,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내 삶 속에서 알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익명의 희생자가 아닌 특정한 인물이 살았던 집 앞에 정확히 설치되어 역사를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기억하려는 의도는 정말 멋졌다. 추모석은 작가의 수작업으로, 그 과정은 모두의 기부금으로, 추모의 대상이 되는 인물들을 발굴하는 작업은 각 지역의 청년 학생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방식 또한 우리가 받아들여도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버스 정류장에 새겨진 악의 평범성

베를린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실슈트라세 정류장을 지난다. 이곳은 경고하는 장소라는 의미의 '만 오르트'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쓰여있다. 안경 쓴 대머리의 중년 남자가 보이는데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유대인 강제 이송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던 공무원으로 2차 대전 후 잠적했다가 십수 년 후에 붙잡혀 이스라엘에서 사형을 당했다. 그가 일했던 제국보안본부 건물이 있었던 곳 정류장에 설치했다. 아렌트는 특별히 잔혹하거나 변태적이지 않고 그저 정상적인 사람인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독가스로 죽이고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더라도 나는 그 명령을 수행했을 것이다'라고 진술한 것을 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근면하게 일했던 한 인간을 보았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했다. 우리는 이 버스 정류장에 광고판에 등장하는 아이히만의 얼굴을 보면서 평범한 인간이 '나 자신' 또한 아이히만과 다를 바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눈 감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고 있는.

구원의 비밀은 기억 속에 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혹은 감추고 싶은 역사를 얼마나 기억하고 보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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