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도시 이야기 - 포르투, 파리, 피렌체에 스미다
신지혜.윤성은.천수림 지음 / 하나의책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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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다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영화를 보다가 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된다.

벌써 2년 하고도 반년 전에 독서모임을 하던 중년의 4명의 여인들이 <서양미술사>을 함께 읽다가 여행을 가기 위해 매달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2년을 꼬박 모아 우리는 고흐의 그림과 고희의 편지글이 담긴 책을 나침반 삼아 여행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오테를로, 벨기에를 거쳐 아를, 파리 그리고 고흐의 마지막 거주지였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얼마 전 청소년인 조카가 '왜 거기를 가요? 그곳이 왜 좋아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그 하얀 배경에 파란 지붕 사진이 너를 그곳에 데려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책 한 권이 그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단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한 편의 영화와 한 권의 책 <리스본행 야간열차>때문에 포르투갈 여행을 가려고 한단다.'라고 답을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하기 위해 그런 핑계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지겹기만 한 일상, 그리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곳이 아닌 그곳에 데려가고 싶어져서 우리는 한 편의 영화에 그리고 한 권의 책에 기댄다. 책으로의 여행, 영화로의 여행. 그러다 어떤 한 가지에 강하게 끌려 긴 시간의 비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포르투 왜 거기였을까?',  '파리 왜 거기였을까?' 그리고 '피렌체 왜 거기였을까?'

<세 도시 이야기>는 이런 여행에 대한 에세이다. 이 책의 작가들 - 신지혜, 윤성은, 천수림 -은 영화음악을 진행하는 이거나, 영화 평론가이거나 아트 저널리스트다. 이들은 이렇게 책을 보다가, 영화를 보다가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포르투 왜 거기였을까?

포르투 왜 거기였을까를 쓴 작가는 마음이 휘청거릴 때, 피신할 곳을 찾아  햇빛이 좋은 지중해가 있는 곳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리스본과 또 한 곳 포르투로 갔다. 그곳에는 와이너리가 있고, 루이스 1세 다리(에펠의 제자가 지은), 상 벤투 역의 아줄레주(광택을 낸 돌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말로 주석 유악을 사용해 그린 도자기 타일-12년 동안 2만여 개의 타일에 그려진 그림)와  렐루 서점( 조앤 롤링은 포르투에 있는 카페 마제스틱에서 해리 포터를 집필했다. , 호그와트의 움직이는 계단을 렐루 서점에서 착안했고, 포르투 대학의 망토를 해리 포터에게 입혔다) 그리고 포트와인(백년전쟁이 만든 기막힌 포도주다. 백 년 전쟁은 프랑스 왕위를 둘러싸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우리는  잔 다르크를 기억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의 그토록 좋아하던 프랑스 와인을 마시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와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영국인들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활발히 교역했던 포르투갈 북부의 와인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배에 싣고 영국으로 오는 도중에 변질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은 우연-브랜디가 남아 있는 통에 담겼던 와인이 변질되지 않고 도착한-이 생겼다. 그래서 포르투갈에서 영국에 보내지는 와인에는 브랜디가 배합되기 시작했다)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작가는 그곳에서 몸과 마음을 위로받았을 것이다.
    
파리, 왜 거기였을까?
 
인생에서 가장 지쳐 있던 시기,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몇 개월간의 여행을 계획했던 작가는 파리로 떠났다. 이 작가는 현지인처럼 파리에서 한 달을 살아보기로 한다. 영화 평론가인 그에게 그리고 읽는 독자에게 파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프랑스 음식에 대한 영화 <줄리 앤 줄리아>를 보고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고 퐁네프 다리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것은 어떨지 생각만 해도 저절로 가슴이 뛴다. 파리를 두 번 가보았지만, 영화의 그 기분을 느끼며 걸어본 적이 없었다. 다음에 파리를 가게 되면 <비포 선셋>과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의 그들처럼 거리를 거닐어 보고 싶다. 파리는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도시다. 사람들도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소매치기가 넘쳐나고 데모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고풍스러운 건물과 센강 사이로 어쩐지 좀 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파리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끌리는 도시다. 

피렌체 왜 거기였을까?

꽃의 도시 피렌체를 여행한다는 것을 어떨까?  
스탕달 증후군, 스탕달 신드롬(엄청난 미술품 앞에서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쓰러지는 사건)으로 알려진 스탕달은 1817년 일기에 피렌체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황홀했다. 게다가 조금 전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무덤가에 있지 않았던가! 숭고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그 아름다움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니 손끝으로 만져 보았다. 예술품과 열정적 감정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초자연적 느낌들이 충돌하는 감동의 물결이 나를 휘감았다. (중략) 온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발을 내딛고 있었지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라고 썼다. 우리가 혹 피렌체에서 스탕달 신드롬에 빠져드는 것 아닐까?
    
<냉정과 열정 사이> 방부제 같은 풍경. 14세기에 멈춰져 있는 듯한 피렌체를 작가는 걷는다. 이탈리아의 언어를 완성했다는 단테의 집, 그리고 그 유명한 두오모 성당까지 과거의 유물이 가득한 피렌체도 매력적인 도시다.

현실에서 여행을 떠날 수 없을 때 우리는 책으로, 혹은 영화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책은 우리의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책을 읽다가 비행기 표를 예약하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세 도시 이야기> 이 책에 대한 약간의 아쉬운 점은 사진에 설명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때로 우리는 한 장의 사진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사진에 설명이 달려있더라면 당장 그곳을 가기 위해 표를 끊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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