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 - 아들러 심리학의 행복 에너지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현정 옮김 / 스타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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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부모 병수발 3년만에 무너진 가정 , 이것은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고령화사회에 들어가면서 치매환자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전국의 65세 이상 최경도~경도 치매환자는 전체 환자의 58.8%다. 그러나 일부 가족들이 부모 혹은 형제가 치매에 걸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를 주변에 알리는 걸 꺼려하고 있다. 특히 치매부모를 간호하면서 위의 기사 제목처럼 가족들마저 서로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상처받을 용기>로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진 일본의 아들러 심리학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치매아버지를 간호하면서 쓴 <아버지를 위한 상처받을 용기>는 치매환자를 돌보는 일의 어려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를 이야기하며 치매환자를 간호해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치매는 아니지만 나이 든 부모님의 아이같은 말과 행동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서 왜 그러실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행동때문에 오히려 부모님에 대한 애정이 사라짐을 당연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오히려 그렇게 말씀하시고 행동하니 내가 부모님께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삼았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이런 말과 행동에는 관심을 끈다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시미 이치로는 '지금부터는 그렇게 관심받을 필요가 없음을 부모가 생각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생산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며 살아왔다. 직선적인 삶이 올바르고 당연한 삶처럼 생각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은 직선의 움직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위대한 철학자는 "또 다른 움직임'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춤'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미완성으로 끝난다해도 그때그때 즐길 수 있으면 된다. 사실 우리의 인생은 어짜피 미완성이지 않은가.

과거를 잊어버린 부모는 오히려 민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산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가치관에서 나왔다. 생산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지 않도록, 사람은 사람으로써 존재한다는 사실을 병이 들었든지, 뇌사 상태에 빠져 있든지, 그리고 죽었든지 간에 동일해야 한다.

생산성에 집착하는 가치관이 치매의 심리적 배경이다. 늙음이나 병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 간호인은 부모의 행위보다 존재 그 자체의 차원에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항상 의식해야 한다. 특히 간호인은 자기 자신을 존재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존경한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딱히 대단한 부모도 아니고 오히려 인간적인 단점이 자식의 눈에는 더 많이 드러난다. 하지만 존경한다는 말(respect)에는 '보다,'돌아보다'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한다. 어떤 가치나 이상을 품은 단어가 아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에서 존경이란 당신의 모습 그대로를 보고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과거를 잊어버리고 치매환작가 되어버린 부모와의 관계맺기의 첫번째 출발은 '은혜갚지 않기'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지금부터' 부모와 좋은 관계를 쌓아야 한다. 더구나 지금 내가 부모를 제대로 간호할 수 없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저 자식으로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치매환자인 부모를 보면서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출구는 부모의 죽음이다. 문제는 출구를 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기시미 이치로는 그의 다른 책에서처럼 '다르게 해석하기'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해결점이라는 것을 말한다. 몇시간 동안 카레를 만든 저자에게 아버지가 '다시는 말들지 마라'라고 했다. 저자는 '맛 없으니까 만들지마라'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너는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한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요리는 다시는 하지마라'라는 말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렇게 해석했더라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좋았을 것이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특히 치매환자인 부모를 간호하는, 혹은 간호해야 할 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있었다. 지나가 버린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지금 만나는 '이 사람- 치매에 걸린 부모'에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출발하는데서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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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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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콜린 매컬로 지음 | 강선재|신봉아|이은주|홍정인 옮김
교유서가 2015.07.20.
펑점

<로마의 일인자>​는 작가의 이야기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70년대 유명했던 <가시나무새>를 쓴 저자인 콜린 매컬로가 바로 <로마의 일인자>의 작가다.(<가시나무새>를 읽어보았지만 작가의 이름은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가시나무새>와 <로마의 일인자>는 언뜻 보기에 연관성이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콜린 매컬로는 <가시나무새>의 성공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외딴 섬에 정착해 오로지 연구하고 글만 썼다고 한다. 1990년대부터 2007년까지 근 20년을 연구와 조사에 공을 들여 쓴 죽음을 앞에 둔 역작이 바로 <로마의 일인자> 7부작이라고 한다. 연구와 자료조사를 하느라 시력을 잃을 지경이었다고 하니 그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거대한 로마사 중에서 기원전 110~27년의 약 80년간을 다룬다고 한다. 이 시기는 이른바 '체제 변혁기'다. (공화정체제였던) 왕이 없는 나라였던 로마가 일인자(황제)의 통치를 받아들이게 된 엄청난 변혁기에 정치가들, 그들의 가문,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사실 로마사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제는 로마사를 이야기할 때 또 한 권의 '소설'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독자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을 그대로 따라가고 만다. 로마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2000년도 훨씬 전의 로마보다 못한 곳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는 로마의 그 시대, 그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그 속에서 로마의 문화, 정치제도, 관습 등을 눈으로 보고 냄새로 맡는 것처럼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가르치려 들거나 설명하려 들지 않는 역사교육의 장이 된다. 그리고 독자는 이곳도(로마) 우리가 사는 곳과 같구나, 신분과 재산의 제한 속에서도 인간의 욕망은 싹을 트고 서로의 욕망이 부딪치기도 하고 타협을 통해 살아남기도 했음을 알게 된다. 역사라는 딱딱하고 무거운 주제가 한 축으로 또 사랑과 탈선과 욕망이 한 축으로 서로 어울리며 활기 있게 펼쳐진다. 특히 마리우스와 율리아의 사랑과 술라와 메트로비오스의 사랑(동성애)는 독자에게 사랑 이야기로 읽어도 좋다는 허용의 눈짓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분과 재력과 능력이 모두 겸비되어야만 지도층이 될 수 있던 로마에서 군 통솔력도 있고, 정치적 식견도 풍부하고 게다가 재력까지 있지만 다소 부족한 신분에 발목 잡힌 마리우스와 유서 깊은 가문의 자손이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카이사르가 결혼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게다가 파트라키지만 빈민가 수부라에서 자란 술라가 펠릭스, 즉 행운아라고 불리게 되는데, 겉에서 보기에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술라 주변의 인물들이 차례로 죽어가며  남겨 준 엄청난 유산을 술라가 상속받는 행운이 함께 했지만, 실은 그 행운은 독살과 음모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술라의 노력 덕분이라는 어두운 이야기에 독자는 사로잡히고 만다.

<로마의 일인자>는 역사 책을 읽기가 버겁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도 아주 재미있게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이 로마사를 훑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절대 가볍거나 간략하게 역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작가의 글은 자칫 어려울 수 있는 용어조차도 문장 안에 녹여내어 굳이 각주로 설명해놓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어렵고 복잡한 정치상황도 신문기사처럼 취급하지 않고 편지글로 풀어놓음으로써 한층 가깝게 서술해놓았다. 아직 1권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1권보다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라 기대가 크다.

책 속 밑줄 긋기​

p.61 돈,돈,돈 하지만 권력 역시 중요했다. 권력을 무시하거나 잊어서는 안된다. 어느 쪽이 먼저인가? 어느 쪽이 수단이고 어느 쪽이 목적인가? 아마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쇠망해가는 로마를 다시 성하게 할 자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p.64 하지만 정직이 미덕인 시대와 장소는 따로 있는 법, 유구르타가 거래를 맺는 지금의 로마는 그런 시대와 장소가 아니었다.

p.104 가이우스 율리우스, 로마에 어쩌다 좋은 인물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잘려나가고 맙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그가 가족, 파벌, 재산보다 로마를 더 아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마리우스와 카이사르의 대화​

p.160 단지 이 혼인을 통해 내가 마침내 집정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오.

p.279 군대라는 것은 그 잠재력이 아무리 대단할지라도 결코 그들을 이끄는 사령관이 지닌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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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실천하는 인문학 - 꽉 막힌 세상, 문사철에서 길을 찾다
최효찬 지음 / 와이즈베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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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실천하는 인문학
작가
최효찬
출판
와이즈베리
발매
2015.06.05

'이 세상에는 오직 한 권의 책만이 존재한다. 나머지는 그 책의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보르헤스의 말과 '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말속에서 <지금 실천하는 인문학>의 저자 최효찬은 지금 인문학 책을 쓰는 이유를 찾는다. 보르헤스는 각 시대는 그 시대에 맞게 새롭게 그 한 권의 책을 다시 써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쓰기는 고전의 동시대적 이해를 뜻하며 요즘 열풍이 불고 있는 인문학은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의기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지금 실천하는 인문학>이 되었다.

저자는 인문학을 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그의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직장생활, 가정생활의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저자는 인문학 공부의 목적을 능력의 극대화에 두고 있었다. 바꾸고 싶어도 바뀌지 않는 인생의 기다림의 순간, 인문서를 읽어라, 그러면 자신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메모, 다른 말로 초서 작업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초서는 책을 읽고 자신의 주견에 맞게 문장을 베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초서하며 매일 세 시간 이상 10년 정도 인문학을 공부한다면 인문학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10년 법칙,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다.

​작가는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한 뒤, 인문학에서 길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자녀경영연구소'를 설립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낸 많은 책들이 있었다. <5백 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현대 명문가의 자녀교육>, <마흔, 인문학을 만나라>, <한국의 메모 달인들>, <서울대 권장도서로 인문고전 100선 읽기> 등 우리가 흔히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책들이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책일 수도 있고, 인문학을 이용한 자기 계발서 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책에 대한 책, 즉 메타 북으로 읽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낄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보통은 철학적 깊이가 담긴, 혹은 일정한 사유의 흐름 속에서 잘 정제된 서평이 담기는 게 되지만, 이 책은 일정한 맥락이 없는 감상의 나열로 보이며, 하나의 주제를 향해서 다양한 책들이 모여들어 통일감을 주지도 못한다. 특히 3장 관계를 배우다에서 21. 관계 지향적 사고가 모든 것을 포용한다의 내용은 모성형 리더십에 대한 찬사인 반면, 4장 공부법을 정리하다의 38 아버지를 배우다에서는 조직이 점점 여성화되어가고 남성들의 목적 지향성은 거친 리더십으로 폄훼되고 여성들의 관계 지향성이 각광받는 데에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남성의 '야성인'의 존재가 부각되는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9 부모의 재산은 자식에게 독이 된다는 주제하에 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돈의 도구성을 경계시키는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발자크가 10년 동안 독서와 습작을 통해 소설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경영의 고수, 프로페셔널의 조건으로 '10년 법칙'의 실천을 강조한다.  <지금 실천하는 인문학>을 통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는 가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다 보니 곁가지가 너무 많이 뻗친 모양이 없는 이상한 나무를 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자기 계발서에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 책 장사를 하는 이들을 경계하는 독자라면 읽기에 힘들 수 있다. 인문학은 자신을, 사회를, 그리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읽고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라면 실천하는 인문학이 어디에 위치해야 할지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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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책고집
최준영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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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책고집
작가
최준영
출판
발매
2015.06.30

​인문학 광풍이 분다. 미친 바람처럼 앞도 뒤도, 밑도 끝도 없이 불기에 광풍이라는 말이 붙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인문학 열풍을 타고 책 좀 읽었다는 분들이 너도 나도 서평집을 내고,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자기 계발서를 묶어낸다. 책의 제목에 혹해서 책을 구매했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후회하며 책에 대한 책을 읽다 보니 책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겼나 보다. 얼마 전 읽은 인문학에 관한 책은 짜증이 나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서 한숨도 내지르며 책을 읽었다. 하지만 <최준영의 책고집>을 읽으며 그 복잡하고 힘들었던 마음이 치유되었다. 우선 이 책은 지루하지 않았다. 사유의 흐름이 어색하지 않았다. 턱턱 걸리는 문장이 없었다. 그의 말처럼 좋은 문장을 많이 읽어서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었나 보다. 아니 그것보다도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다독을 경계하고 사색을 늘려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사색이 뒷받침되지 않고 여기저기서 좋은 문장을 끌어다 쓴 책은 턱턱 걸리며 읽기 힘들기만 하다.

사실 요즘은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정보와 지식은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를 시간을 내지 않아도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작가는 이 책에서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대가 없이 얻은 지식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기 힘들다고 한다. 기나긴 사색의 시간을 통해 얻은 지식이라야 오롯이 자신의 지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또한 책을 읽는 시간은 사색과 상상의 시간이며, 작가의 이 책은 독서안내서나 서평집이 아니라 작가의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밝힌다. 작가는 굴쓰기를 통해서 추억을 소환하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고통을 달래주는 치유의 시간이었음을 말한다.


나를 찾는 책 읽기, 앎을 찾는 책 읽기, 일상의 책 읽기로 나뉜 이 책은 개인적인 고민과 사회적 고민,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단상 속에서 어떤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드러난다. 하나의 주제를 둘러싼 여러 권의 책들이 서로 화음을 맞춘 듯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서로 다른 책 속에서 하나의 주제를 찾아 자신만의 사유로 풀어낸 작가의 글은 좋다. 작가가 강조한 디지털의 역설(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 글쓰기가 중요해지는)이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는 작가의 충고처럼 천천히 읽기 혹은 거듭해서 읽기, 변증법적 읽기(묻고 대화하고 분석하는 독서)로 단단한 독서를 할 필요가 있다. 읽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면 책은 사색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공부하는 50대로 살기로 한 작가처럼 독자는 각기 자신의 나이에 맞는 공부하는 00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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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 산책 -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이야기로 읽는 서양 철학의 역사
제레미 스탠그룸 & 제임스 가비 지음, 이정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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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서 여러 철학서를 뒤적여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철학서는 일단 접근부터가 쉽지 않았다. 첫 문장부터 난해한 철학 용어가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게 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인용한(대부분 원전에서 가져온 것들이지만) 문장들이 서로 얽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본다고 하는 철학사를 읽으면서도 그 책만으로는 한 철학자의 대강의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철학서를 읽을 때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은 논쟁을 이해하는 데에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책장이 아닌 독자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따라가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기 일쑤다. 결국 중간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험만 남기도 만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우리의 경험에 한마디의 충고를 한다. 어떤 주장이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되거나 결론이 믿기지 않는다면,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아마 이 책의 저자들은 독자들의 이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철학을 이야기로 만들어 전달한다. 이 책은 서양 철학의 시작인 약 2500년 전 그리스부터 시작한다. 역시 옛날이야기가 재미있었나 보다. 저자들(이 책은 제레미 스탠그룸과 제임스 가비라는 두 명의 저자의 작품이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이어지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중세의 철학에 책의 절반을 할애한다. 이야기와 명화 그리고 간략한 정리가 곁들여져 철학이 충분히 재미있는, 그리고 우리의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 이전까지 누구도 물었던 적이 없던 질문들을 캐묻기 시작한다. 혼돈스러운 일상의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철학은 의심에서 시작한다. 왜 사물이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알아야만 했다. 이렇게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사물의 모습에서 도덕 그리고 플라톤에 이르러는 현재 서양철학이 제기하는 의제의 핵심적인 모든 것들이다. 고대를 지나 중세에 접어들면 이성은 종교를 위해 사용된다. 이런 중세에 대한 반발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나타나고 철학은 신학에서 떨어져 나온다. 근대를 지배하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지나 관념론의 난해한 고지에 이르러 독자는 칸트와 헤겔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은 20세기의 주요 철학사조인 실존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분석철학을 만날 수 있다. 고대의 철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여행이 될 것이고, 근대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다소 아쉬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는 좋은 철학 입문서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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