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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다섯 가지 대답 - 더 나은 삶을 위한
뤽 페리 & 클로드 카플리에 지음, 이세진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 뤽 페리는 프랑스 현대 대표적인 철학자로 프랑스 68혁명 세대라고 하는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등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사람이다. 그는 종교와 분리된 인문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선 이 책의 처음에 철학이 무엇인가 묻고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단어적 뜻이 아니라, 철학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도덕과는 어떻게 다른가? 무엇을 탐구하고 있나? 하는 것들이다. 이런 물음은 철학만이 가지고 있는 색깔을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질문이었고, 철학에 대한 애매모호한 구분을 없애주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점이었다. 철학은 타자를 존중하고 선의와 친절을 베풀고 하는 인간관계를 평화롭게 하는 도덕적 가치가 모두 추구되었다고 가정했을 때에도 여전히 남는 사랑, 죽음, 권태와 같은 문제,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가치들에 대한 탐구다.
인간으로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해 종교는 신에게 기대고 신앙에 기대는 데서 답을 찾는데 철학은 사유의 통찰력과 이성을 근거로 죽음도 폐기하지 못할 가치들을 우리 삶 속에서 답을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이런 질문에 대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철학은 각기 다른 다섯 가지 답을 했다. 그 다섯 가지 답을 따라가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과정이다.
그 첫 번째 대답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답, 즉 우주의 조화에 부합하는 삶이다. 세계는 혼돈, 무질서가 아니라 완벽하게 조화로운 질서라는 생각에서 인간은 우주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 안에 더 잘 '맞물려 들어가고, 제자리를 지키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답한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과오는 히브리스hybris, 즉 무절제, 고삐 풀린 교만이었다.
5세기에 이르러 그리스 철학이 몰락하고 중세 유럽의 시대가 되면서 유대 - 그리스도교의 원리가 그 답이 되었다. 이 윤리는 '개인적인 구원'을 약속하며 이성은 다시 신앙에 종속되고, 좋은 삶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로 넘어갔다. 이 시대는 비판적 성찰의 자유를 옭아매고 본질적으로 신비로울 수밖에 없는 계시를 숭배했다. 이렇게 덜 인간적인 데에 대한 반감으로 인문주의 원리를 답으로 내세우는 시대가 왔다. 르네상스시대에는 삶의 의미를 코스모스나 신성에 두지 않고 인간에게,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두었다. 운명을 스스로 선택하는 인간의 능력, 자유와 이성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대도 곧 종교와 전통적인 형이상학이 내세우는 거창한 이상들이 우상이며 해체해야 할 것들이라는 주장 앞에 힘을 펼 수 없었다. '사실은 없고, 해석만 있는' 시대에 적합한 이 철학은 세상은 합리적이다, 어쨌든 우리 삶에는 의미가 있다는 명제가 허상의 최고봉임을 밝힌다. 인간이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을 사랑하자는 니체와 스피노자 등은 그렇지만 아우슈비츠에 수용되고도 현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주지는 못 했다.
그래서 저자는 이제 마지막 답으로서 인문주의의 새로운 도래라고 할 수 있는 사랑 혁명을 주장한다. 박애와 공감의 새로운 인문주의는 국가, 혁명, 진보를 위한 인간의 희생을 말하지 않고, 생의 내재성과 타인을 생각하는 우리의 감정 자체에서 실증적 유토피아의 원동력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자식 세대에게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가 그 근거로 든 두 가지는 '이혼의 합법화'로 인한 사랑이 가족의 존재 이유가 된 현상과 더욱 돈독해진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다. 이 결론에 이르러 문득 작가가 정치인, 그것도 교육부 장관이었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내세우는 '사랑'이 과연 답이 될 수 있을지, 답의 역할을 할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요즘처럼 불완전한 인간임을,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임을 여실히 실감하는 때에 이 답은 다소 공허해 보이기도 하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특히 그런데 이 마음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기적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식만을 위해 보다 넓고 높은 가치를 내팽개치는 부모들을 볼 때 이상적인 주장이 아닐지, 이 주장이 이상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실천적이 답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