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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난 이 연애를 할거야."
"이혼을 원하는 거네."
"아니, 난 모든 게 그대로이길 원해. 속이지 않고."
"이해 안 돼."
"아니, 이해할 거야. 당신이 언젠가 말했잖아. 오래 함께지낸 부부는 남매 같은 사이를 염원할
거라고. 우린 이룬 거야, 피오나. 난 당신 오빠가 된 거야. 포근하고 다정하잖아. 난 당신을 사랑해,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
만약 이렇게 말하는 배우자를 두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혹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이언 매큐언의 신작 <칠드런 액트>는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인 피오나 앞에 남편이 이런 폭탄 같은 발언을 떨구어 놓으면서 시작한다.
독자는 오랜 결혼생활 끝에 친구처럼 형제처럼 아니 '가족처럼(우리가 흔히 가족끼리는 키스 같은 거 안 하는 거야 하는 농담을 던지듯)' 되어버린
부부 사이에 벌어진 중년의 감정의 고리를 한 쪽에서 붙잡고 이 책을 읽어나가야 한다. 과연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는 가사부의
판사인 피오나는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이 소설의 한 축이다.
그리고 또 다른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는 이야기가 또 다른 축으로 전개된다. 종교적 신념에 의해 수혈을
거부하는 18세 생일을 3개월 앞둔 소년의 사건이 피오나 앞에 던져진 것이다. 병원 측은 3일 안에 수혈을 받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며 수혈을
거부하는 소년의 부모를 고발한 것이다. 영국에는 1989년에 제정된 아동법, 즉 The Children Act가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법정이
미성년자와 관련된 판결을 할 때 최우선적으로 아동의 복지를 고려해야 한다. 지금 피오나가 맡은 사건의 당사자는 3개월이 지나면 스스로의 결정으로
수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 소년은 아직 3개월이 남았고, 더군다나 3일 안에 수혈을 받지 못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판사인
피오나는 이 기간 안에 최선의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한쪽에서는 종교와 법이 충돌하고 또 한쪽에서는 또 다른 법(관습)인 결혼생활과 열정이라는 가치가
충돌한다. 결혼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법이라는 테두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것과 양립하기 힘든 종교적인
가치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미성년이 갖게 된 종교적인 신념이라는 가치는 그 소년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어려서부터 그런 환경에
놓이다 보니 갖게 된 비판해보지 못한 가치일 수 있다. 우리가 바위처럼 굳고 굳어서 절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신념이나 법 그리고
사랑은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무너져버릴 수 있다. 아담이라는 소년과 피오나는 병원에서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이 시간이 소년과 판사의 가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소년이 나중에 피오나에게 쓴 편지에는
'판사님이 저를 무너가 다른 것에, 정말 아름답고 깊은 어떤 것에 다가가게 해주셨다고 느끼는데, 그게 뭔지 정말이지 잘 모르겠어요. 판사님
종교가 뭔지는 말씀 안 해주셔서 모르지만 그때 제게 와서 옆에 앉아 계셨을 때, 그리고 <버드나무 정원>을 연주했을 때 정말
좋았어요..... '젊고 어리석은' 지금이 정말 좋아요. '라고 쓰여있었다. 그렇게 피오나와 소년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새로운 계절이
돌아오면, 추위가 물러가면 봄이 오고 이끼 낀 강둑에서 우리의 멋진 사랑을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책에 인용된 노래의 가사처럼. 가치는 항상
충돌한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지만, 그때 우리의 선택을 돕는 것은 어쩌면 이런 작은 감성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표지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표지는 다소 생뚱맞아 보였다. 차라리 앵커북스의 표지가 내가 이해한 책의 내용과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표지는
(붉은 핏방울이 떨어지는 ) 너무 직접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