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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평점 :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위대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러셀은 <서양철학사> <수학의 원리>등 전문적인 책 말고도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게으름에 대한 찬양>, <결혼과 도덕> 등 대중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많이 썼다. 너무 위대한 학자라서 그의 책을 감히 읽어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고서 재미있는 그의 글에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는 나에게 <결혼과 도덕>은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이기에 듣고 싶어졌다.
러셀은 산업혁명이 성 윤리에 영향을 주었고, 중세의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성 윤리는 새로운 요인이 발생했기에 재고해봐야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새로운 요인이 발생하면 과거의 지혜는 현재의 지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둔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러셀은 19장의 본문에서 성의 역사와 사회와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종교적인 문제를 조목 조목 짚어준다. 어머니가 지배적인 관계였던 시대가 부성이라는 전혀 새로운 요인(권력욕과 죽음을 뛰어넘으려는 욕구가 내재된)이 만든 가부장적인 제도의 시대가 되게 된 것, 기독교와 같은 종교에서 시작된 성에 대한 금욕주의는 간음의 죄를 예방하기 위해서였고, 금욕주의는 오히려 성을 추잡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성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두는 것, 성관계를 인류가 타락했기 때문에 받는 벌이라는 인식을 주는 인습적인 태도가 사랑에 대해, 성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게 했다. 러셀은 결혼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경찰관 행세를 해온 데 있다고 말한다. 러셀은 이 책을 쓴 당시에는 파격적일 만한 주장을 한다. 이른바 '우애결혼'- 아이를 낳지 않고 살다가 하는 이혼은 언제든지 합의에 의해 가능해야 한다-이다.
'성적인 면에서 서로 적합한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평생 이어갈 관계를 맺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 새 집을 보여주지도 않고 매매 대금을 완납하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p.149
앞으로 부성이 점차 사라질 것을 예상한 대목은 더욱 재미있다. 자식에 대한 교육이 이미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아버지의 권한과 역할에 국가가 점점 더 많이 개입하고 있으니 부성이 남성들의 삶에서 점차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다. 국가 개입이 갈수록 확대되어 자식을 낳는 것도 국가가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대목에서 이분은 얼마나 시대를 앞서서 생각하고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러셀은 이혼과 결혼한 이들의 또 다른 사랑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아이가 관계되지 않는 이상, 괜찮다는 입장이며 그 정도는 서로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러셀의 삶 그리고 그의 사랑과 결혼이 궁금해졌다. 역시 러셀은 보수적인 귀족사회의 일원이었지만 네 번의 결혼, 그리고 여러 번의 외도를 경험했다. 자신도 결혼한 상태에서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부랴부랴 이혼한 경험도 있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의 외도로 두 명의 아이를 낳은 적도 있었다. 러셀의 마지막 부인의 러셀의 친구 루시 도널리와 동거했던 이디스 핀치였다. 자유로운 사랑과 결혼이 러셀의 삶에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