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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
존 도커 지음, 신예경 옮김 / 알마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며칠동안의 긴 독서가 오늘 드디어 끝났다. <고전으로 읽는 폭력의 기원>을 읽어보겠다고 용감하게 덤벼보았다. 신문에서 만나게 되는 9.11사태나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침공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등에 대해서 나름 한목소리를 내면서 부당함과 문제점을 이야기하곤 했고 그 역사적인 원인까지 짚어보려했었기에 쉽게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읽어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읽다가 지쳐 던져두다가 또 달라들어 읽기를 며칠.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것,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바로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알아가며 읽기 시작하다보니 중간부터는 속도도 붙고 재미도 있었다.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많은 고전 뿐만 아니라 많은 참고자료를 언급한다. 그 자료들 어느 하나도 쉬운 게 없다. 심지어 이름조차 생소한 것들이 많았고, 고전이라고 하는 것들은 내가 공부하고 읽어야 할 것들이 아니라 고매하신 학자들이나 읽고 연구하고 우리는 그저 제목만 알고 있어도 꽤 유식하다는 평을 들을만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보면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추축국의 유럽 점령지 통치> 라파엘 렘킨으로 시작하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키케로의 <국가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타키투스의 <아그리콜라 전기>와 <게르마니아>, 구약성서, 제인구달의 <곰베의 침팬지>,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까지 방대한 양의 저서를 넘나들고 있어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저자가 언급한 책을 한권도 읽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었다.
저자는 늘 관심을 가져온 문제 즉, 식민지화,정복,제국,제노사이드 같은 집단 폭력현상을 규명하고자 가능한 멀리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기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영장류동물학,진화론,세계 역사를 두루 살펴본다. 그러다 보니 문학,문화 그리고 역사를 다룬다. 이 책의 목표는 신체적 폭력을 비롯하여 언어와 문화,생각,관념,개념,서사, 이미지 등에 내재한 폭력을 포함한 집단간의 폭력을 환기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제노사이드(가장 중요한 개념이므로 설명을 해둔다.-이 말은 genos(부족,인종,)+cide(죽임,살해)의 조합으로 한 집단의 생명을 지탱하는 필수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치밀한 계획아래 자행되는 여러가지 행동을 말한다. 대량살인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국가권력이 주도한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체신학,피해자학,선민,약속의 땅,문화전달자,명예로운 식민지화의 개념을 설명한다. p.26참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저술에서 수많은 식민지화의 사례를 알 수 있고 전쟁과 제국의 건설로 인한 집단 간의 폭력과 제노사이드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비롯해, 폭력이란 마땅히 취해야 할 행동이 아니라는 관점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대의 왕은 공정한 사람이 아니다. 만일 공정한 사람이었다면 남의 땅을 탐내지도 않았을테고,아무 죄없는 민족을 노예로 삼지도 않았을 것이다" 헤로도토스 <역사>
이러한 것들은 다신교,유대교,기독교의 일신교에도 이어진다. 제노사이드와 피해자학, 정복과 식민지 건설 등에서 신의 허락을 받았다는 관념은 대체신학의 담론과 더불어 일신교와 다신교의 구분없이 받아들여졌다.특히 선민이나 약속받은 백성이 탐내는 땅에 이미 정착한 사람들과 토착부족들은 파괴적인 결과를 맞았다. 고통을 견뎌야 하는 민족에서 낯선 곳을 떠돌며 고행하다 승리자이자 정복자로 변모하면서 다른 민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끔직한 폭력! 시온주의와 이스라엘이 세운 현대 민족국가 역시 이런 역사의 일환인 셈이다.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근대국가를 건립하고 전 세계유대인 조직과 사회의 생각을 지배해온 시온주의자들은 홀로코스트를 겪었으면서도 여러 민족들이 우호적으로 살면서 정치적 조직을 공유하고 서로의 좋은 점을 배우며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시각을 지녀야겠다는 단 하나의 역사적 교훈조차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국제법의 관례에 따라 원주민은 평화로운 이방인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게 허락해야 한다. 정박한 이방인이 교역을 원하는 경우라면 원주민은 결코 이런 교역을 금지해서는 안된다. 물론 식민지개척자가 원주민의 땅을 거래할 권리를 막아서도 안된다. 원주민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판단된 땅이라면 정착자가 임의대로 차지할 수 있는 것도 국제법의 일부였다.
이 저자가 일제침략의 역사를 알았더라면 이 책에 우리의 역사가 예로서 들어있을 만하다.우리나라 역시 제국주의의 먹이가 되었고 제노사이드를 당한 나라였으니.
더이상 홀로코스트가 특이하고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며 폭력으로 이어지는 이 사슬을 끊어버려야 한다. 이 책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면 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나하는 물음을 던진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든 뭐든 대안적인 전통을 찾고 계속 생각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