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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보의 사랑 ㅣ 달달북다 12
이미상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넷플릭스 <84제곱센티미터>에는 층간소음으로 괴로워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윗층을 의심하며 아랫층은 다시 윗층을, 윗층은 그 윗층을 의심하며 이웃간의 불신을 담아냈다. 층간소음으로 몇날 몇일 잠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극도의 예민함이 남자를 미치게 만든다. 수면욕은 매슬로우의 욕구 중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이다. 충족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 다음 욕구로 나아갈 수 없다. <잠보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달달북다의 소설을 보고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너무나 기대가 되었다.
HSP(High sensetive person), 매우 예민한 스물 다섯살의 남자가 있다. 사립고 민영 주차장 관리인이었던 아버지의 예민함을 닮아 신경이 늘 곤두서있다. 아버지는 소리, 빛, 냄새, 에너지에 민감했다. 집에서는 꼬마 소등 감시원 활동으로 작은 빛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냉장고 전자 패널의 온도 표시, 전자레인지 시계, 인터넷 공유기 점멸등까지 종이로 붙여 빛이 새어나오지 않게 막았다. 아버지가 죽자 누나들을 비롯한 가족들은 반동하듯 튀어올라 스위치를 강으로 끝까지 돌려버리는 행동을 한다. 아버지처럼 '나'는 예민함이 극대화되고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구옥을 얻어 따로 살게 되며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어한다.
여기까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HSP인 나의 모습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밤에 창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한 암막 커튼이 떠올랐다. 나 또한 잠을 좋아하는 잠보이기에 '나'의 이야기가 어디로 향할지 기대가 되었다. '나'가 구옥을 따로 얻어 산 곳은 아랫층이다. 윗층에는 어떤 누나와 유기 불안을 앓는 개가 살고 있다. 사람이 없으면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개 때문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 윗층 누나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누나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에 윗층집 개를 잠시 돌봐주는데.
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등장할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36쪽부터 누나와 연인이 되고 나서부터, 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누나네 집에 온수물이 나오지 않아 한 욕조에서 목욕도 한다. <잠보의 사랑> 단편 소설의 전개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간다. 스무살 차이가 나는 누나와 잠보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행복 대신 잠, 삶 대신 잠, 죽음 대신 잠. 모든 순간을 회피하며 살던 잠보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한번도 키워본 적 없는 개를 키우며 누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사랑도 잠시, 54쪽에서는 누나와 두 해 사귀고 헤어진다.
누나가 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 만들어 낸 놀라운 관점의 변화가, 시간의 반격을 맞아 본래의 한심한 내 눈으로, 범속한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할 줄 모르는 둔감하고 빤한 눈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나는 잠을 버리고 삶에 뛰어들려 노력했던 일들이 지겹고 귀찮고 번거롭고 짜증나서 다시 잠으로 회피하기 시작했다.
- 잠보의 사랑, 55쪽 중에서 -
누나는 그대로다. 하지만 누나가 마흔 살로 보였다가 서른 살로 보였다가 스물 다섯살로 보였던 것은 사랑의 힘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헤어지고 나니 누나가 아니라 '나이든 여자'가 보였다. 이별에 가까워지면서 실망을 거듭하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고 말았다. '나'는 누나가 지겨워졌고 누나는 와이프가 아니라 '장모뻘'이라며 이야기 했던 기억들이 상처가 되어 떠오른다. 마지막에 나오는 최근 근황은 행복으로 마무리 된다. 누구도 돌보지 않으려했던 잠보의 사랑은 어리숙한 남성이 지혜로운 연상 연인의 힘으로 회복하고 성장하는 통과의례 서사의 함의 그 뿐이었다고 전한다. 손바닥만한 60쪽 분량의 짧은 소설이지만 강력하다. 잠을 소재로 해서 사랑 이야기로 엮어내는 서사의 힘이 좋다. 달달북다 시리즈를 격하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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