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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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랜만에 흡입력있는 로맨스 소설을 만났다. 제목은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이다. 이 책이 출간 되기 전에 쌤앤파커스에서 표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는데 내가 그 중에 좋은 의견으로 선정되어 선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최종 결정된 표지를 보니 어디를 응시하는 듯한 한 소녀가 있고, 미얀마식 전통 의상을 입은 듯 해보이며 그 주변에는 꽃잎들이 예쁘게 흩날리고 있다. 아, 예쁘다. 이 소설은 2002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서점 주인과 독자들의 입소문 만으로 화제가 된 책이다. (사실, 입소문만으로 화제가 되기는 힘든 출판 시장이다) 그리하여 현재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얀 필립 젠드커로 특파원 시절 방문했던 미얀마인들을 떠올리며 소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 속의 배경은 미얀마인 것이다. 아빠의 심장 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두 살 배기 아들의 경험에서 탄생했다는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잔잔한 사랑이야기이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앞이 보이지 않는 틴윈과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미밍이다. 즉, 맹인 남자와 걷지 못하는 여자와의 사랑이야기. 책장을 넘기는 내내 머릿속에는 그들의 사랑을 상상해보았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말하는 것임을 그들은 증명해보이고 있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의 이야기 시작은 틴윈의 딸인 줄리아가 아버지의 유품 중 미밍에게 쓴 편지를 보게 되고, 아버지를 찾으러 (그리고 사랑했던 미밍을 찾으러) 뉴욕에서 미얀마로 떠난다. 사실 줄리아는 틴윈의 딸이긴 하지만 틴윈의 진짜 아내는 틴윈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태어난 줄리아는 아버지의 진짜 사랑했던 여자를 찾으러 간다. 그 와중에 우 바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아버지 틴윈과 그 때 만난 사랑하는 여인 미밍의 이야기를 듣게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틴윈은 11월 토요일에 태어났다. 미얀마에서 토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재수없는 아이로 낙인찍혀있다. 틴윈은 그렇게 재수없다는 낙인을 받고 태어난다. 틴윈을 낳은 엄마는 수치스러움으로 틴윈을 바라보고,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틴윈을 버린다. 버림받는 틴윈은 이웃집 수치라는 여인에게 가게 된다. 수치라는 여인 또한 유일한 자식이 태어나자 마자 죽었고, 남편도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난 비극의 인물이다. 그러한 슬픔을 가득 지닌 수치가 틴윈을 자식처럼 보살피는 모습이 얼마나 애잔한지 모른다. 미신과 전설 따위는 믿지 않는 수치는 재수없는 아이로 눈이 멀어버린 틴윈을 만나면서 그의 적극적인 편이 되어준다. 틴윈은 그 순간 수치의 사랑이 받으며 세상을 발견해나간다.

 

수치는 틴윈을 수도원으로 이끌며 우 메이라는 수도승을 만나게 해준다.

 "사물의 참된 본질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라고 틴윈에게 위로 아닌 진리를 이야기해준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어린왕자의 대사가 생각나게한다.

"우리는 오히려 감각기관 때문에 길을 잃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은 우리를 잘 속인다

우리는 지나치게 눈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거든.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믿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껍데기일 뿐이란다.

사물의 참된 성질, 사물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해."라고 말해주는 우 메이로 인해 틴윈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한다.


틴윈은 자연의 일부를 듣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바로 옆에서 나는 숨소리를 듣게 되고,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 부드러운 노크 소리 등을 듣는다. 그러다 노크 소리 처럼 들리는 '쿵쿵'소리를 듣게 되는게 그게 바로 미밍이라는 걷지 못하는 소녀의 심장소리였던 것이다. 운명처럼 만난 그 두사람의 이야기는 서로가 알기 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는 듯한 친밀감을 갖게 한다. 맹인 틴윈과 걷지 못하는 미밍이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속도는 시속 200km 정도 되는 듯하다.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틴윈은 미밍의 발이 되어주고, 미밍은 틴윈의 눈이 되어주는 절묘한 조화. 그 두 사람은 어떠한 조건도 없다. 그저 마음으로 진득하게 사랑을 알아간다. 그 과정을 묘사해내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은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너 없이는 한시도 견딜 수가 없어"

"떨어져 있으면 난 슬퍼져, 네가 없으면 어디를 가도 그래. 네가 나를 등에 업지 않고 걸을 때도. 우리가 서로 팔베개를 하지 않고 잠드는 매일 밤, 그리고 우리가 나란히 누워서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매일 아침마다"

 

틴윈과 미밍의 사랑 속에 시련도 찾아오고, 어려움도 찾아온다. 하지만 미밍을 향한, 틴윈을 향한 서로의 사랑은 변함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덕분에 더위도 잊고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요즘 사랑은 조건이 너무 많아서 탈인, 진짜 심장박동이 뛰뜻 '두근두근'한 사랑이 아닌, 그런 연애홍수시대 속에서 "사랑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소설을 만났다. 실제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떨까? 충분히 제작 될 수 있는 시나리오임에 틀림없다. 올 여름 달콤할 정도로 비극적인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을 만나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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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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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안녕이라는 말을 대신한다. 2023년 4월, 작가 폴 오스터는 사망했다. 그렇게 영원히 안녕. 소설이라는 장르 속으로 푹 빠지게 해 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달의 궁전』은 청소년이었던 나에게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뭐지? 이렇게 글을 잘 쓴다고! 게다가 소설가의 외모 중에는 탑클래스였기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기에는 충분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한 폴 오스터는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를 남기고 떠났다.



2025년 4월 즈음 열린책들에서는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를 출간한다. 2025년 4월 30일에 초판 1쇄 발행된 이후, 내가 마주한 책은 2026년 1월 25일 개정판 1쇄이다. 원래 표지(바움가트너 일러스트 커버)도 몽환적이지만, 더욱더 새로운 표지 디자인(애나 일러스트 리커버)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었다. 아울러, 소설가 김연수의 <굿바이, 폴>이라는 폴 오스터를 향한 팬레터(!)가 수록되어 있는 버전이다. 작가들의 스타였던 폴 오스터의 마지막 글이 귀하고 또 귀하다. 읽으며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이유도 귀한 글을 아껴 읽느라 그랬으리라.


『바움가트너』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은퇴를 앞둔 교수 바움가트너가 아내 애나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난 후 그녀를 애도하며 또 다른 이들을 만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간단한 서사를 지녔지만 쉽지는 않다. 바움가트너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와 애나의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어 나가며 서사의 줄기를 확장한다. 한 번만 더 헤엄을 치겠다고 했던 애나를 말렸어야 했을까. 그 책임은 바움가트너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폴 오스터의 소설 『바움가트너』를 키워드로 표현하면 상실, 애도, 환지통, 기억, 시간, 삶, 정체성, 우연, 기회, 걱정, 삶의 본질, 수수께끼, 운전, 죽음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터라 바움가트너가 느끼는 “환지통”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환지통은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이 이미 없는 팔이나 다리에서 통증이나 감각을 느끼는 현상이다. 애나를 잃었지만 바움가트너는 그을린 냄비를 보며, 그녀 옷들을 개며, 모래가 많은 땅에서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빛나는 얼굴을 떠올린다.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시인이자 작가인 애나가 (생전 책을 출판하지 않고) 남기고 간 글들을 볼 때마다, 환지통은 슬픔의 지속성, 기억이 만들어 낸 가짜 현재, 상실감으로 남아 현재를 간섭하는 목소리로 바움가트너를 살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애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주디스를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꽃다발을 준비해 청혼을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주디스가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바움가트너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운전대를 잡으면 어디로 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신호가 움직이는대로 가게 되는 걸까. 운전만큼 예측 불허의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다.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도로에 갑자기 고라니가 뛰어 들기도 하고. 바움가트너도 운전에 있어서 엄청난 ‘걱정 인형’이라는 점이 엿보인다.

자동차(automobile)는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이기도 하다. 사람으로서의 차, 차로서의 사람. 바움가트너는 자동차에서 은유적 엔진을 발견하며 두 가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생각들을 가져와 하나의 억지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관념으로 뭉뚱그린다. 바움가트너 속 4부로 나누어지는 <운전대의 신비>에 대한 글쓰기 작업에 등장하는 은유가 흥미롭다. <오토 정비 입문>, <모터 시티에서의 고장>, <파괴 경주>, <자율 주행차라는 신화>의 제목 속에는 허구, 진짜 사건, 우화, 비유, 철학적 수수께끼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하나씩 은유를 풀어 해치는 과정들 속에서 바움가트너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바움가트너』의 끝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된다. 일흔 둘의 바움가트너는 애나의 작품을 연구하는 젊은 여성 연구자 비어트릭스 코언을 기다린다. 엄청난 시간을 운전해서 온다는 그녀를 기다리다 못해 신경이 곤두서있는 채로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사슴을 피하기 위해 나무 한 그루와 부딪히며 이야기가 끝났지만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일흔 둘의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비어트릭스 코언이라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될까, 아니면 애나를 따라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일까, 훗날 애나의 글은 젊은 여성 연구자 비어트릭스 코언에 의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바움가트너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태운 냄비를 냅다 들어 올리다 손을 데는 바움가트너, 계단을 헛딛여 균형을 잃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찧는 그의 비명 소리가 ‘축축한 바닥에서 뒤틀린다’. 환지통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물리적 충격들을 초반에 연달아 보여주며 그의 운명이 어떻게 향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비되는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자율 주행차의 운전대를 생각할 때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굿바이, 폴- 그렇게 바움가트너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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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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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함 


오직 그대뿐이다.

안녕

<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


공기, 물, 불, 흙이 모이면?

캡틴 플래닛이 아니고 <나는 그대의 책이다>가 완성된다. 특별한 책의 저자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베르베르. 열린책들 출판사 서평에는 <우주를 탐험하며 새롭게 발견하는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이라고 적혀 있다. 책의 원제는 '여행의 책'이다. 더욱이 지난 프랑스 여행 중 지하철 광고판에서 마주한 베르나르베르베르의 책 광고는 더없이 반가웠다. 마치 옛날부터 아는 사이였던 것처럼 소설 <개미>를 시작으로 <타나토노트>, <문명>, <뇌>, <잠> <기억> 등 한국인들에게 친근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소설일까, 에세이일까. 공기, 물, 불, 흙이 모여 어떤 에너지를 창조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여행의 책』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분명히 현실 속에 있지만,

그대의 정신은

책 속에 투영된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덧붙인다.

깨어 있으면서 동시에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것,

인류는 어쩌면 그런 쪽으로

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대의 책이다>, 176쪽, 베르나르베르베르


"우리 여행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겪은 일은 생각하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듯하다. 물속이 편안하고 아늑해 보인다. 그 물에서 미역을 감고 싶은 욕구가 인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다."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이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몸과 마음은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 쉴 수 없는 상태이다. 갑옷과 투구를 벗고, 방패를 내려놓고 칼을 허공에 던지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씩 짊어지고 있는 거추장스러움을 벗어던지라고 권한다.


독자여,

그대는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대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그대의 책이다>, 57쪽, 베르나르베르베르


베르나르베르베르의 <나는 그대의 책이다>에 담긴 메시지는 난해하다. 4원소설은 고대 그리스 엠페도클레스가 만물을 흙, 불, 물,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 원소이론이다.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공기, 흙, 불, 물로 구성된 세계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나씩 알아보자.


공기의 세계에 들리는 배경음악은 바흐의 교향곡이다. 이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친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바로 그대 자신이다.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 뿐이라고 말한다.

흙의 세계에서는 G코드 혹은 아프리카 타악기 연주가 배경음악이다. 갈색 면지가 너른 대지 혹은 단단한 토지를 상징한다. 흙은 진정한 <자기 집>으로 이끈다. 이는 일이 잘 안 될 때면 언제라도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집이다. 대기권이라는 단어가 있듯이 관념들의 구름을 정신권이라고 한다. 정신권의 특징은 자주성을 지닌다. 흙의 세계는 주체적이다.

불의 세계에서는 투쟁, 전쟁을 다룬다. 빨간 면지에 타자기 폰트를 마주한다. 누구와 싸우는가? 개인적인 적과 싸운다. 체제나 조직에 맞서 싸운다. 매달 따박따박 날아오는 온갖 고지서, 종잇장 속에서 속박,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불의 세계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탐구하라, 발명하라, 창안하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물의 세계는 ‘그대가 왜 존재하는지’, ‘그대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어머니의 양수에서 자라고 태어난 것을 알고 있지만 진정 철학적 사유는 하지 않는다. 태어났으니까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저 간단하게 말해버리고 만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는 네 가지 색으로 분할된 책 표지부터 면지까지 '여행하는 책'이다. 마치 네 가지 각양각색의 아이스크림을 맛보듯 색다른 묘미를 전해준다. 특히, 빨간 면지를 읽다가 파란 면지로 넘어가는 순간, 눈에서 글씨가 보이지 않는 반응이 일어나기도 한다. 가끔 바닷가에서 독서를 할 때 느끼는 감각이기도 하다. 햇빛에 눈이 부셔서 책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낀다. 독자가 책을 읽는 것인지 책이 독자를 읽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강렬한 색감에 눈이 글씨를 멀리할 때는 잠시 초록색 먼 산을 바라보는 걸 추천한다. "불의 세계에서 그대는 많은 고통을 겪고 많은 것을 배웠다."라는 책 속 글귀처럼 실제로 빨강이라는 색감 속에서 글자를 찾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임을 체험한다.


베르나르베르베르가 말하는 공기, 물, 불, 흙 4원소에 담겨 있는 메타포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터인데 짧은 식견으로 메타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있는 그대로 텍스트를 흡수해 버리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천재 작가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공기, 물, 불, 흙에서 시작한 상상력은 책의 세계를 뻗어나가 독자들에게 닿았다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간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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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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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함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닉네임이나 짧은 문구를 볼 때마다 에쿠니 가오리를 떠올린다. 25년 전, 출간된 책 <반짝반짝 빛나는>은 에쿠니 가오리를 대표하는 하나의 기념비적 책이다. 소담출판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출간 25주년을 맞이해 리커버를 했다. 게다가 에쿠니 가오리 작가 친필 코멘트까지! (글씨도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요) 스물다섯 해 동안 사랑을 보내 준 한국인 독자들을 위한 감사가 가득 담겨 있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쇼코에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결혼생활을 원한다. 남편은 유능한 내과의사 무츠키. 결혼을 한 신혼부부. 아기를 가져야 할까? 아니면 부부만 행복해야 살아야 할까? 를 고민해야 하는 신혼부부에게 남들에게 밝히기 힘든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무츠키에게는 곤이라는 이름의 남자 애인이 있고 쇼코는 그것을 알고 결혼했다는 것. 다만, 쇼코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던 상황. 무츠키가 마련해 준 깔끔하고 정갈한 집에서, 곤이 선물한 나무를 보며 쇼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녀석과 결혼을 하다니,

물을 안는 것과 진배 없지 않느냐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가오리, 20페이지

출처 입력

무츠키와 결혼을 했다는 것은 물을 안는 것과 진배 없지 않느냐, 무츠키의 아버지가 쇼코에게 한 말이다.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쇼코에게 물을 안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쇼코의 조울증은 정상 범위안에 있다는 진단서와는 달리 오직 남편 무츠키만이 감당할 수 있다. 화가 나면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하고, 끄억끄억 울어버리는 쇼코. 오롯이 무츠키만에 쇼코의 울증을 받아낸다.


물을 안는 기분이란 (...)

그것을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라

여기고 신경을 쓰는 답답함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가오리, 216페이지

출처 입력

200페이지가 넘어서야 ‘물을 안는 기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등장한다. 서로에 대한 콤플렉스를 여기고 신경을 쓰는 답답함이라고. 무츠키는 남자 곤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내과의사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 앞에 무츠키의 콤플렉스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쇼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치 그들은 초원의 은사자와도 같았다. 은사자는 무리에 섞이지 못해 따돌림을 당해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할한다. 육식인 사자와는 달리 초식성이기에 금방 죽어 버린다고. 쇼코는 무츠키, 곤이 마치 은사자들 같다고 내뱉는다. 하지만, 쇼코 또한 은사자 주위를 벗어날 수 없는 은사자 무리였다.


의사라면 안심할 수 있잖니.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가오리, 16페이지

출처 입력

25년 전에 <반짝반짝 빛나는>을 처음 읽었을 때, 파격적인 서사에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25년 후 다시 쇼코와 무츠키, 곤의 서사를 따라가다보니 지금은 한국 사회에서도 드라마나 영화, 현실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당시 일본의 자유분방한(?) 결혼생활을 보며 소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세 사람의 사랑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밤 하늘의 별과도 같이 그들을 지켜보는 수많은 독자들은 어둠 속에서 별처럼 반짝반짝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리운 우리 아파트를 생각했다.

하얀 난간이 있는 베란다와 보라 아저씨,

곤의 나무.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가오리, 140페이지

출처 입력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다. 쇼코와 무츠키, 곤이 바랐던 것은 아무것도 아닌,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사랑했으면 했는데, 우리는 이미 보편적 잣대를 가지고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 내리고 있었다. 쇼코, 무츠키, 곤은 서로를 궁지에 몰아 넣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도록 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늘 서로를

궁지에 몰아 넣는 것일까.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가오리, 139페이지

출처 입력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까요? 쓰는 말은 달라도,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한국독자를 위한 출간 25주년 리커버 작가 친필 코멘트는 더없이 반갑다. 맞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동료이자 친구라는 점을 잊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우는 어른>, <울지 않는 아이> 등 에쿠니 가오리의 다양한 작품을 읽으며 25년을 보냈다. 작가 또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활동을 격하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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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불행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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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일본의 30년 전 모습이 지금 한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한 웃음만 지었다. 이제는 웃음은 뒤로하고 ’각자도생’을 외치는 시대에 긴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1990년 최고의 호황을 맞았던 일본, 20년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일본은 최대 행복 사회에서 ’최소 불행 사회‘로 추락했다. ’국가가 행복을 약속할 수 없으니 최악의 불행이라도 막자‘는 의미로 최소 불행 사회를 2010년 국가 목표로 내세운다. 더이상 국가 시스템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은 세계 최고령 국가, 인구 감소, 빈부 격차, 지방 도시 소멸, 연금 문제, 성장 동력 사실로 인해 이제 개인이 짊어져야 할 일들만 남게 되었다.


​잃어버릴 30년. 한국은 일본이 걸었던 그 길을 정확하게 걷고 있다. 저자 홍선기는 새로운 아이템과 다양한 글감을 찾기 위해 10년간 71차례 일본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홀로 먹고 있는 노인, 집에만 있는 21살 청년 등을 만나며 일본의 수많은 불행의 민낯을 목도한다. 곧 우리에게 찾아오는 건 시간 문제다. 한국은 더 빠르고 집약적으로 일본의 최소 불행 사회를 닮아가고 있다. 빈부 격차, 소비 양극화, 연금 문제, 일자리 부족, 경제 침체, 부동산 폭등, 교권 추락, 묻지마 범죄 등 듣고 싶지 않은 뉴스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코스피 5000 달성. 숫자만 상승하는 기현상은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도 찾아오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에 강한 한국이 보여주는 환호성이었다. 반면에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간부채 비율, 부동산 집값 폭등 등 심각한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 홍선기는 <9가지 금기된 해법>을 제시하고 <11개의 생존 매뉴얼>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물론, 비판적 관점을 소홀히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현실 반영이 안되는 허무맹랑한 해법이라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금기를 깨고 ‘최소불행사회’를 위한 참신한 제안에 박수를 보낸다.

불안의 시대가 모두에게 묻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습니까?”
<최소불행사회>, 267쪽 중에서

금기된 해법 9가지 중에서 유의미한 제안을 꼽아보면 <폐교를 활용한 ‘시니어 대학 타운’ 설립>과 <익명 마약에 중독된 대한민국 : 인터넷 실명제>, <노후 자산가에게 연대 비용 징수 : 고령화 기금 신설>이다. 실제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폐교된 학교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시니어 대학 타운 설립은 긍정적이라 본다. 시니어가 은퇴 후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고 존엄한 학습 공동체, 실버 경제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국가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폐교를 활용한 시니어 대학 타운은 실버 르네상스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닐까 싶다.




<익명 마약에 중독된 대한민국 : 인터넷 실명제>는 익명성이라는 제도 뒤에 숨어서 사람들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악플러들을 떠올리면 쉽다. 악플러로 인해 연예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 충격적인 현실이다. 대형 포털 사이트 기사에 악성 댓글을 작성하지 못하도록 필터링을 하거나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는 것에 부분적으로 찬성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악플 수준은 도를 넘고 있다. 저자 홍선기는 악성 댓글, 사이버 왕따, 자살 등 극단적 피해와 같은 온라인 혐오 비용의 경제적 손실을 근거로 들며 허위 사실 유포, 명예 훼손, 혐오 발언 관련 수사 등으로 인해 공적 자원이 낭비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 홍선기는 <미리보는 2030 생존 매뉴얼 11가지>를 통해 일본의 성공 사례를 들어 인테리어 컨설턴트, 피규어/프라모델 수리 전문가, 렌털 쇼케이스, 정오 영업, 자정 영업, 2인 소규모 결혼식 사업, 1인 전용 바비큐 레스토랑 등을 제안한다. 획기적인 생존 매뉴얼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트 콜라보 카페/ 레스토랑이다. 불황일수록 미술관에 몰리는 사람들의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빈센트 반 고흐전을 보기 위해 줄을 선다. 미술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카페, 레스토랑, 꽃집, 호텔과 콜라보하여 반 고흐 콜라보 부케, 반 고흐 런치, <밤의 카페 테라스> 초콜릿 무스 등을 판매한다. 한국의 미술 시장 규모를 볼 때, 혹은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수를 볼 때 기회는 잡는 자에게 온다. 기존 커피만 판매하는 카페에서 전시 를 연계한 차별화 된 아트 콜라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아무도 말하지 못한 9가지 금기된 해법과 파국을 버텨내는 11가지 생존 매뉴얼 속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최소 불행 사회를 위한 제언이며, 법적 자문이나 투자 권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안된 해법에 대한 구체적 실행은 전문가 자문을 권한다고 저자 홍선기는 말하고 있다. 잃어버릴 30년을 대비하기 위한 대한민국 사회의 하나의 신선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최소불행사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가지고 토론하며 대한민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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