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흡입력있는 로맨스 소설을 만났다. 제목은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이다. 이 책이 출간 되기 전에 쌤앤파커스에서 표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는데 내가 그 중에 좋은 의견으로 선정되어 선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최종 결정된 표지를 보니 어디를 응시하는 듯한 한 소녀가 있고, 미얀마식 전통 의상을 입은 듯 해보이며 그 주변에는 꽃잎들이 예쁘게 흩날리고 있다. 아, 예쁘다. 이 소설은 2002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서점 주인과 독자들의 입소문 만으로 화제가 된 책이다. (사실, 입소문만으로 화제가 되기는 힘든 출판 시장이다) 그리하여 현재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얀 필립 젠드커로 특파원 시절 방문했던 미얀마인들을 떠올리며 소설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 속의 배경은 미얀마인 것이다. 아빠의 심장 소리 듣기를 좋아하는 두 살 배기 아들의 경험에서 탄생했다는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은 잔잔한 사랑이야기이다.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은 앞이 보이지 않는 틴윈과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 미밍이다. 즉, 맹인 남자와 걷지 못하는 여자와의 사랑이야기. 책장을 넘기는 내내 머릿속에는 그들의 사랑을 상상해보았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으로 말하는 것임을 그들은 증명해보이고 있다.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의 이야기 시작은 틴윈의 딸인 줄리아가 아버지의 유품 중 미밍에게 쓴 편지를 보게 되고, 아버지를 찾으러 (그리고 사랑했던 미밍을 찾으러) 뉴욕에서 미얀마로 떠난다. 사실 줄리아는 틴윈의 딸이긴 하지만 틴윈의 진짜 아내는 틴윈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태어난 줄리아는 아버지의 진짜 사랑했던 여자를 찾으러 간다. 그 와중에 우 바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아버지 틴윈과 그 때 만난 사랑하는 여인 미밍의 이야기를 듣게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틴윈은 11월 토요일에 태어났다. 미얀마에서 토요일에 태어난 아이는 재수없는 아이로 낙인찍혀있다. 틴윈은 그렇게 재수없다는 낙인을 받고 태어난다. 틴윈을 낳은 엄마는 수치스러움으로 틴윈을 바라보고,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틴윈을 버린다. 버림받는 틴윈은 이웃집 수치라는 여인에게 가게 된다. 수치라는 여인 또한 유일한 자식이 태어나자 마자 죽었고, 남편도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난 비극의 인물이다. 그러한 슬픔을 가득 지닌 수치가 틴윈을 자식처럼 보살피는 모습이 얼마나 애잔한지 모른다. 미신과 전설 따위는 믿지 않는 수치는 재수없는 아이로 눈이 멀어버린 틴윈을 만나면서 그의 적극적인 편이 되어준다. 틴윈은 그 순간 수치의 사랑이 받으며 세상을 발견해나간다.

 

수치는 틴윈을 수도원으로 이끌며 우 메이라는 수도승을 만나게 해준다.

 "사물의 참된 본질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법이란다."라고 틴윈에게 위로 아닌 진리를 이야기해준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라는 어린왕자의 대사가 생각나게한다.

"우리는 오히려 감각기관 때문에 길을 잃지. 그 중에서도 특히 눈은 우리를 잘 속인다

우리는 지나치게 눈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거든.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믿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껍데기일 뿐이란다.

사물의 참된 성질, 사물의 본질을 볼 줄 알아야해."라고 말해주는 우 메이로 인해 틴윈은 '인내심'을 기르기 위한 노력을 한다.


틴윈은 자연의 일부를 듣는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바로 옆에서 나는 숨소리를 듣게 되고,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 부드러운 노크 소리 등을 듣는다. 그러다 노크 소리 처럼 들리는 '쿵쿵'소리를 듣게 되는게 그게 바로 미밍이라는 걷지 못하는 소녀의 심장소리였던 것이다. 운명처럼 만난 그 두사람의 이야기는 서로가 알기 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는 듯한 친밀감을 갖게 한다. 맹인 틴윈과 걷지 못하는 미밍이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속도는 시속 200km 정도 되는 듯하다.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틴윈은 미밍의 발이 되어주고, 미밍은 틴윈의 눈이 되어주는 절묘한 조화. 그 두 사람은 어떠한 조건도 없다. 그저 마음으로 진득하게 사랑을 알아간다. 그 과정을 묘사해내는 작가의 탁월한 능력은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너 없이는 한시도 견딜 수가 없어"

"떨어져 있으면 난 슬퍼져, 네가 없으면 어디를 가도 그래. 네가 나를 등에 업지 않고 걸을 때도. 우리가 서로 팔베개를 하지 않고 잠드는 매일 밤, 그리고 우리가 나란히 누워서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매일 아침마다"

 

틴윈과 미밍의 사랑 속에 시련도 찾아오고, 어려움도 찾아온다. 하지만 미밍을 향한, 틴윈을 향한 서로의 사랑은 변함없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덕분에 더위도 잊고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릴 수 있었다. 요즘 사랑은 조건이 너무 많아서 탈인, 진짜 심장박동이 뛰뜻 '두근두근'한 사랑이 아닌, 그런 연애홍수시대 속에서 "사랑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소설을 만났다. 실제 이 소설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떨까? 충분히 제작 될 수 있는 시나리오임에 틀림없다. 올 여름 달콤할 정도로 비극적인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을 만나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첫눈, 고백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기 드 모파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함

기 드 모파상은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자연주의 작가이자 단편소설의 거장이다. 작가 생활 10년 동안 300편이 넘는 단편을 남겼다.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절벽 마을. 모파상은 노르망디 해안 절벽 마을에서 여름을 보내며 자랐고, 노르망디 마을을 자신의 이야기 속에 기록했다고 언급했다. 스물 일곱부터 신경 질환을 앓았고 1893년 7월 6일, 파리에서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욕망, 연민, 모성, 환상, 상처, 집착 등 14편의 작품을 엮은 책이 바로 『첫눈, 고백』 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본연의 날 것이 드러나는 일이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 모파상에게 사랑은 인간 내면의 수치심, 멸시, 광기, 약함, 고독, 집착, 환상, 환멸의 다양한 형태로 옷을 갈아 입는다. 단편소설의 매력은 빠른 스토리 전개와 극적 반전이다. 모파상의 단편은 문장이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맴도는 순간들이 많다. 통쾌한 결말 덕분에 지극히 평범하게 전반부를 끌어온 진부한 감정들은 싹 날아간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은 듯한 시원한 느낌도 든다. 진정으로 단편 소설에서 천재성을 발휘한 거장이 아닌가 싶다.

14편의 단편 소설의 작품 제목은 다음과 같다. 보석, 목걸이, 첫눈, 봄에, 달빛, 소풍, 고백, 텔리에의 집, 미친 여자,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시몽의 아빠, 쥘 삼촌, 들에서, 오를라. 각각 제목이 함축적이기에 첫 도입 장면부터 몰입할 수 밖에 없다. 모파상의 문장이 이토록 아름다웠나. 고전은 역시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의 대향연이다.

개인적인 마음을 가득 담아 기 드 모파상의 14편의 작품들 중, 베스트 1, 2, 3위를 선정해보았다. 베스트 3위는 <목걸이>, 2위는 <보석>, 1위는 <봄에>로 정했다. 모파상을 대중에게 알린 <목걸이>는 파티에 사용하기 위해 친구에게 빌린 목걸이를 파티에서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허영과 욕망의 상징이 바로 목걸이다. 잃어버린 목걸이를 사려고 그녀는 뼈를 갈아 힘든 노동을 하게 되고 결국 목걸이를 구입해 친구에게 돌려준다. 그러다 몇 십 년 후에 다시 만난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때 파티에 빌렸줬던 그 목걸이 가짜였다고. 값비싼 목걸이를 위해 남몰래 내다받친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반전이다. 그냥 그 목걸이 파티에서 잃어버렸다고 사실대로 말할 걸 그랬어.





<보석>은 부부의 사랑과 신뢰가 어떤 식으로 처참히 무너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내에게 남편이 이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취미가 있다. 모조품 보석을 수집하는 것과 연극을 보는 일이다. 작품 <목걸이>에 사용되었던 가짜, 진짜라는 개념이 다시 등장하며 극적 반전에 제대로 사용한다. 아내가 죽은 뒤 남편은 가난과 궁핍에 휩싸인다.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모조품 보석을 판매하게 되는데, 보석들이 진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뭐지? 모조품이라며. 왜 다 진짜인건데. 알고보니 아내가 지녔던 보석들은 다른 남성에게 받은 선물들이었고 행실이 옳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간 아내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무너져내리며 남편은 진짜 보석들을 큰 돈으로 바꿔 재빨리 재혼을 한다. 연극도 본다. 다른 여자랑 그는 진정으로 행복했을까?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은 그토록 짧았다. 도대체 사랑이란 뭔가. 사랑은 이기적이고 욕망은 솔직하다.


“프랑스 국민 여러분,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랑을 조심하십시오.” <봄에> 소설 속 대화들이 너무나도 통통 튄다. 봄을 조심하십시오.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소설을 읽다보니 프랑스에서 바토무슈 유람선을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낭만 그 자체의 행위, 게다가 계절이 봄이라면 사랑에 빠지는 건 시간 문제다. <봄에> 소설 속 유람선을 탄 남자가 사랑에 빠지기 직전에 놓여 있다. 그의 눈에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고백할까 말까. 또 다른 남자가 다가와 그에게 말한다. “조심하십시오.” 그에게 사랑을 조심하라고 외치며 간만에 만든 낭만적인 분위기를 모두 망쳐 놓는다. 너 뭐 돼? 이렇게 현실에 있음직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모파상 소설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파상 단편소설 1위는 당연히 <봄에>가 되겠다. 소설의 분량은 짧으나 서사는 강력하며 읽기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모파상의 글쓰기는 플로베르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글쓰기의 천재성은 단편소설을 뚫고 나온다. 문장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뒷 이야기가 한없이 궁금해진다. 모파상처럼 유쾌하고 깔끔한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는다.








#첫눈고백 #기드모파상 #머묾출판사
#단편소설집 #모파상 #봄에 #목걸이 #보석
#책 #서평 #머묾 #세계문학 #프랑스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 세계철학전집 7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독자들이 책을 고르는 기준들 중 상위권에 해당하는 기준이 있다. 바로 책 제목이다.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라는 제목은 어떠한가? 책 제목만 읽어도 책 내용이 유추되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표현이다. 모티브에서 출간되는 세계철학전집은 직관적인 책 제목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말하는 20세기 분석철학의 대가 비트겐슈타인 편이 출간되었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오스트리아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활동한 철학자로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라는 책을 통해 언어의 세계와 사고의 관계를 사유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20세기 분석철학자답게 의미가 모호하고 표현 자체가 추상적인 말은 의미가 없다. 구체적이고 정확한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질문을 함에 있어서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구체화된 질문만이 의미 있다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한다. 말 그대로 언어의 모호함이 철학적 혼란의 원인이라 보았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는 말은 <논리철학논고>(1921년)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는 언어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논리, 과학, 일상적인 사실 등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 가능한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선과 악, 삶의 의미, 형이상학적 진리, 궁극적 가치 등이다.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말하려하면 오히려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고 보았다. 이론으로 설명하려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침묵 대신에 행동으로 실천하라고 말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는 “언어와 그것들이 짜여 있는 활동들을 언어게임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하며 철학적 전환이 이루어진다. <철학적 탐구>(1953년)에는 언어게임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언어를 논리적 고정체계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규칙에 따라 사용하는 활동이고 그것을 게임에 비유했다. 그 사례들이 묶이는 방식으로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족들끼리 눈매가 닮았다 등 공통적으로 겹치는 유사성을 찾으면 된다. 철학이란 정확한 정의를 내리려 하지 말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면 충분하다. 즉, 본질을 찾는 대신 언어의 사용을 보면 된다.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의 혼란이 커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언론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낚시성 제목을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을 것이다. 모호한 말로 구차하게 말하려 하지 말고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일이 낫다. <당신의 말이 곧 당신의 수준이다>를 통해 또 하나의 가르침을 배운다. 혹시, 말로 인해 삶이 괴로운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루드비히비트겐슈타인 #세계철학전집시리즈
#당신의말이곧당신의수준이다 #모티브출판사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명언 #책 #철학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과 글의 지성을 깨우는 필사 노트
양원근 지음 / 정민미디어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작심삼일.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새해가 시작되어 작심삼일이 된 상황들을 마주하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따뜻한 차와 함께 하는 필사다. 먼저, 성경 말씀 필사를 하고 이어서 <말과 글의 지성을 깨우는 필사 노트>를 꺼낸다. 부제는 '말하는 대로, 쓰는 대로 성장하는 데일리 루틴'이다. 나에게는 매일 하루를 지내며 다른 이들에게 내뱉는 말이, 문장 속 글이 조금 더 우아해지고 품격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말과 글의 지성을 깨우는 필사 노트>는 말의 품격과 글의 품격,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명품 필사 노트다.


'언어를 새롭게 익힌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새롭게 세우는 일'이라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외국어를 처음 배웠을 때를 떠올린다.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언어의 음가를 익힌다. 소리내서 발음해보고 잘 안 되는 부분들은 계속 반복한다. 노트에 글자를 써 보며 나날이 익히고 또 익힌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점점 규칙이 어려워지는 언어들 속에서 포기할까 말까를 고민한다. 언어를 공부하다 나 자신과 수없이 싸우고 또 싸운다. 언어를 익히며 자신을 새롭게 세우는 일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필사의 과정도 그러하다. 포기할까, 그만둘까. 아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해 본다. 말의 온도와 글의 깊이를 익히는 과정에서 자신을 새롭게 세우는 일이기에 다시 펜을 잡는다.


'글은 마음의 진실을 담는 가장 정직한 거울'임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써 온 글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매일 남겼던 일기, 끄적끄적 포스트잇의 메모들, 그 때의 내가 떠오른다. 힘들었구나. 괴로웠구나. 그 때의 감정이 투명한 거울 속에 비춰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 싶고 과거의 나를 토닥여준다. 그것은 그 때의 글이 진실했기에 가능하다. 글은 정직한 거울이 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영국의 소설가 신시아 오직의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용기의 행위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라는 문장을 필사하며 용기 한 줌을 얻는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필사 노트에 글씨를 놓는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차분해진다. 필사가 주는 힘이 바로 이것이다. <말과 글의 지성을 깨우는 필사노트>의 물리적 특징은 180도 펼쳐지는 사철제본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필사하기에 더 없이 편안하다. 또한, 첫 페이지 필사노트 순서대로 맞춰서 필사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필사하기 전, 자신의 마음을 반영한 문장이 있으면 반복해서 읽어보고 바로 그 페이지를 따라 적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올해는 조금 더 따뜻한 말과 글로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으면 한다. 말과 글에 대한 문장들이 나를 안아주는 아침이다.


#말과글의지성을깨우는필사노트 #정민미디어

#필사 #필사노트 #양원근 #필사의힘 #말과글 #새해루틴 #데일리루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음 사냥꾼
세라핀 므뉘 지음, 마리옹 뒤발 그림, 성미경 옮김 / 분홍고래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겨울이다. 

문득 상상해본다. 시베리아의 추위는 어떨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인 바이칼의 겨울은? 아마도 우리가 강추위라고 느끼는 체감온도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실제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겨울 그림책이 여기에 있다. 그림책 제목은 바로 『얼음사냥꾼 』이다. 표지에는 아빠와 아이가 함께 얼음 사냥을 하고 있다. 


얼음 사냥이라는 단어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2천5백만년이라는 시간을 지내온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는 얼음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있다. 바이칼 호수는 혹독한 겨울이 되면 빙판으로 얼어 붙는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사람들은 마실 물이 필요해진다. 그들은 우리처럼 생수를 마트에서 구입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얼음 사냥꾼'들의 능력은 이 때 발휘된다. 바이칼 호수의 거대한 얼음을 잘라 옮겨 마실 물로 바꿔야 한다. 꽁꽁 언 얼음을 자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얼음 사냥꾼'이다. 물은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 바이칼 호수에서의 사냥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얼음 사냥인 것이다. 




유리가 사는 시베리아는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없어요. 

거기서 태어나 쭉 살거나, 

아니면 떠나가죠. 

- 『얼음사냥꾼 』 중에서 




시베리아에서 살고 있는 유리. 마을의 전경이 그려진다. 너무나도 추워서 새로 이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태어나 쭉 살거나 아니면 떠나가는 사람들이 전부이다. 시베리아의 겨울은 하루가 무척 짧다. "내린 눈은 너무나 새하얘서 눈과 마음을 아프게 하죠." 시베리아에 내린 눈은 너무나 새하얗게 반짝인다. 새하얀 눈은 우리의 눈과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로.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지 않은가.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인간의 신체인 눈을 대비해서 멋지게 대비시켜 놓았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의 눈은 얼마나 새하얄까?




수백 년을 사는 자작나무 

가을에 노랗게 물들었다가

겨울이면 바늘잎을 떨구는 낙엽송

사시사철 가시처럼

뾰족한 잎이 달린 전나무

곰 몇 마리 지나갈 수 있게 

엎드려 자라는 

삼나무 덤불 

- 『얼음사냥꾼 』 중에서 




『얼음사냥꾼 』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이칼 호수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이야기이다. 바이칼 호수에 살고 있는 세계 유일한 담수 물범, 신성한 물고기라 이야기하는 오물,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온 자작나무 숲, 바늘잎을 떨구는 낙엽송, 뾰족한 잎이 달린 전나무, 곰 몇 마리 지나갈 수 있게 엎드려 자라는 삼나무 덤블, 긴 날개를 가진 황제 독수리를 만날 수 있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의 순환을 겪으며 살아 숨쉬는 생명들을 마주한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모습들을 『얼음사냥꾼 』안에 세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빌딩 숲, 동물원, 수족관이 아니라 원시의 모습에 가까운 자연 그 자체를 표현해내고 있다. 



『얼음사냥꾼 』의 배경은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토대로 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그림책 색채는 노랑, 주황빛으로 인해 따뜻함이 느껴진다. 시베리아 바이칼 호수에 살고 있는 유리는 외롭고 고독할 때도 있지만 얼음 사냥꾼인 아버지, 몇 안 되지만 정 깊은 마을 사람들, 그리고 동물과 식물의 자연이 함께 있기에 내일을 향해 희망찬 하루를 살아간다. 마리옹 뒤발의 그림체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한 참을 멍하니 보게 된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그림책이다. 오늘도 유리와 유리 아버지는 얼음 사냥을 떠났을까?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으로 『얼음사냥꾼 』을 추천한다. 





#얼음사냥꾼 #마리옹뒤발그림 #세라핀므늬글 #성미경번역 #분홍고래

#겨울그림책추천 #그림책 #유아그림책 #시베리아 #다큐멘터리그림책 

#초등그림책 #어린이문학 #문학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