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와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유희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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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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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기다리며 한 글자씩 그리움으로 채우는 기다림의 순간들

시인의 마음을 받아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필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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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와>의 도입부 작가의 말 '천천히 와, 우리의 이야기로'에서 감동은 시작되었다. 책의 편집자인 소연 선배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5분이 남은 시간 동안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카메라를 두어 사진을 찍는 유희경 시인. 그때의 사진-이미지와 텍스트-이야기를 남겨 두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계가 카메라에 찍혀 잠시 머무르게 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텍스트는 사진과는 달리 '순간을 영원의 방향으로 이끈다'고 표현한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순간을 영원의 방향으로 이끈다니. 이야기만이 텍스트는 흐름 속에서 편입된다는 것이라고.


<천천히 와>라는 제목도 나는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필사를 하기로 펜을 들고 있는 당신을 천천히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책 속에 담겨 있는 유희경 시인의 어머니 손글씨이다. 글씨 사진을 보내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성경 필사 노트의 일부를 보내오셨다고. 유희경 시인 어머니의 흔적들이 손글씨로 남아 책 곳곳에 남아 있다. 시인 유희경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온전히 나의 것을 독자들에게 공개하기로 한다.



나는 기다린다.

약속이 되어 있다는 듯.

그런 기분이 들면 꼼짝할 수 없다.

시계탑 아래서 초조한 사람처럼.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는 어긋나버릴까 걱정하며

옴짝달싹 못 하는 사람처럼

마음의 각도가 아슬해지고 애틋해지면,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가보는 것이 상책이다.

-<천천히 와> 32쪽, 유희경 -



유희경 시인은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시집만이 꽂혀 있는 시집 서점. 누군가 찾아와서 시집을 구매하는 걸 기다린다. 고요함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 때의 단상들이 '한밤 정류장의 의자처럼 기다림에서 놓여나 쉬고 싶은 것'으로 여겨진다. 서점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을 꼭꼭 눌러 독자들을 기다린다. 하루 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서점은 휴식의 공간이 된다. 시는 빼곡한 활자들 틈에서 여기 잠깐 쉬었다 가라고 손짓하는 텍스트처럼 보인다. 그것은 아름답고 또 가치있는 일이다.


'잠든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보는 엄마처럼 불안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에 멈춰선다. 혹시나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닌지 잠든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본다. 이내 엄마의 손가락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거구나. 아기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엄마를 안도시킨다. 사랑한다는 말을 모양새로 표현하면 '잠든 아이의 코 아래 손가락을 대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기는 엄마의 온 우주가 된다. 아기 코 아래 엄마의 손가락은 사랑이다.


'이제는 일요일의 저녁. 오후 5시 30분. 나는 기다립니다' 속에는 일요일에 대한 기분 좋은 단상들이 느껴진다. 일요일의 서점에서 구매한 일요일의 시집. 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오후 6시가 되면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유희경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월요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일요일만 생각하는 하루를. 포장해온 햄버거를 먹고, 여지 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피클 한 조각이지만 여기저기 행복함이 묻어져 나온다. 일요일이라는 그 자체가 주는 행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오은 시인의 필사 에세이 <밤에는 착해지는 사람들>이 늦은 밤 필사를 권한다면, 유희경 시인의 필사 에세이 <천천히 와>는 매일 오후 5시 30분에 필사를 권한다. 그 날이 일요일 오후 5시 30분이면 더더욱 좋고. 느릿느릿 필사를 하다보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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