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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사랑 ㅣ 소담 클래식 5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지음, 안영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어린 시절은 그 나름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가 그걸 적절히 표현할 수 있으며 그 뜻을 풀어서 해석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이 고요한 경이의 숲을 지나왔다.
<독일인의 사랑>, 첫 번째 회상, 9쪽 중에서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는 인생의 봄날을 8번 회상 하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에게 인생의 봄날은 마리아 공녀님을 만나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랑이란 우리들의 생명과 같은 것이어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우리 존재의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라고 고백한다. 서고 걷는 것, 읽고 쓰는 것처럼 사랑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도 같아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마리아 공녀님은 몸이 허약해 침대에 누워 있다. 창백한 얼굴이지만 온화하고 아름다웠으며, 눈은 깊고 신비스러웠기에 그가 사랑에 빠질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겉모습으로만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녀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가지고 싶다는 생각, 고통에서 해방되도록 기도해야겠다고 깊은 마음으로 마리아 공녀님을 사랑한다.
소년은 자라 청년이 되어 다시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마리아 공녀님으로 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보고 싶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달뜬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가 마리아 공녀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기쁨 가운데 그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절제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매일 저녁 그녀 곁에 머물며 대화는 깊이를 더해간다. 기독교의 교리, 신앙, 계시에 대한 이야기까지 보통 연인의 대화를 뛰어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가끔 내가 저 창 앞에 있는 백양나무 같다고 느껴요. 그 나무는 저녁 무렵이 되면 움직이지 않고 조용히 서 있지요.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아요.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잔잔한 미풍에도 잎 하나하나가 흔들리거든요. 나무줄기는 여전히 꼼짝도 않는데 말이에요. 가을이 되면 그 잎들을 떨며 땅으로 떨어져 시들지만 그 줄기는 새봄을 끈질기게 기다리는 거예요.
<독일인의 사랑>, 73쪽 중에서, 마리아 공녀님의 말
사랑의 종류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남녀 간의 정열적인 사랑인 에로스, 우정과도 같은 사랑을 필리아, 신과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한다. <독일인의 사랑>에 나오는 사랑은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막스 뮐러는 독일 낭만주의 작가로 <독일인의 사랑>을 통해 개인의 사랑에서 인류애로의 확장을 그려냈다. ‘나’와 마리아 공녀님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신분 차이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독일인의 사랑>을 저술한 막스 뮐러는 동양학과 비교언어학의 권위자로 평생 살았다. 언어의 낭만이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지 <독일인의 사랑>을 통해 궁극의 사랑을 숨겨 놓는다.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직접적인 표현 보다는 은유, 비유, 직유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진짜 말하고 싶은 관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마치 숲 속에 숨겨둔 보물찾기처럼 느껴진다. 하나씩 보물을 찾아 낼 때마다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8번의 회상에 감춰두었다.
현대인들에게 사랑은 속물적인 것으로 변했다. 외모, 직업, 사는 곳, 연봉, 결혼 유무 등이 우선이 되어 진정한 사랑 보다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이유로 둔갑해버린다. 조건을 따지는 사랑이 되어버려 자신이 정한 조건에 맞지 않으면 대화조차 하지 않는 상황들이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사랑은 어디로 갔는가! <독일인의 사랑>처럼 마리아 공녀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랑이 이 시대에 과연 존재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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