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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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안녕이라는 말을 대신한다. 2023년 4월, 작가 폴 오스터는 사망했다. 그렇게 영원히 안녕. 소설이라는 장르 속으로 푹 빠지게 해 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달의 궁전』은 청소년이었던 나에게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뭐지? 이렇게 글을 잘 쓴다고! 게다가 소설가의 외모 중에는 탑클래스였기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기에는 충분했다.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한 폴 오스터는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를 남기고 떠났다.



2025년 4월 즈음 열린책들에서는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장편소설 『바움가트너』를 출간한다. 2025년 4월 30일에 초판 1쇄 발행된 이후, 내가 마주한 책은 2026년 1월 25일 개정판 1쇄이다. 원래 표지(바움가트너 일러스트 커버)도 몽환적이지만, 더욱더 새로운 표지 디자인(애나 일러스트 리커버)으로 개정되어 출간되었다. 아울러, 소설가 김연수의 <굿바이, 폴>이라는 폴 오스터를 향한 팬레터(!)가 수록되어 있는 버전이다. 작가들의 스타였던 폴 오스터의 마지막 글이 귀하고 또 귀하다. 읽으며 책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이유도 귀한 글을 아껴 읽느라 그랬으리라.


『바움가트너』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은퇴를 앞둔 교수 바움가트너가 아내 애나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난 후 그녀를 애도하며 또 다른 이들을 만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간단한 서사를 지녔지만 쉽지는 않다. 바움가트너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와 애나의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어 나가며 서사의 줄기를 확장한다. 한 번만 더 헤엄을 치겠다고 했던 애나를 말렸어야 했을까. 그 책임은 바움가트너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폴 오스터의 소설 『바움가트너』를 키워드로 표현하면 상실, 애도, 환지통, 기억, 시간, 삶, 정체성, 우연, 기회, 걱정, 삶의 본질, 수수께끼, 운전, 죽음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터라 바움가트너가 느끼는 “환지통”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환지통은 신체의 일부를 잃은 사람이 이미 없는 팔이나 다리에서 통증이나 감각을 느끼는 현상이다. 애나를 잃었지만 바움가트너는 그을린 냄비를 보며, 그녀 옷들을 개며, 모래가 많은 땅에서 담요를 펼치고 애나의 빛나는 얼굴을 떠올린다.


함께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시인이자 작가인 애나가 (생전 책을 출판하지 않고) 남기고 간 글들을 볼 때마다, 환지통은 슬픔의 지속성, 기억이 만들어 낸 가짜 현재, 상실감으로 남아 현재를 간섭하는 목소리로 바움가트너를 살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애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주디스를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꽃다발을 준비해 청혼을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주디스가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바움가트너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로, 운전대를 잡으면 어디로 가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신호가 움직이는대로 가게 되는 걸까. 운전만큼 예측 불허의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다.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도로에 갑자기 고라니가 뛰어 들기도 하고. 바움가트너도 운전에 있어서 엄청난 ‘걱정 인형’이라는 점이 엿보인다.

자동차(automobile)는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 움직이는 생물이기도 하다. 사람으로서의 차, 차로서의 사람. 바움가트너는 자동차에서 은유적 엔진을 발견하며 두 가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생각들을 가져와 하나의 억지스럽고 우스꽝스러운 관념으로 뭉뚱그린다. 바움가트너 속 4부로 나누어지는 <운전대의 신비>에 대한 글쓰기 작업에 등장하는 은유가 흥미롭다. <오토 정비 입문>, <모터 시티에서의 고장>, <파괴 경주>, <자율 주행차라는 신화>의 제목 속에는 허구, 진짜 사건, 우화, 비유, 철학적 수수께끼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하나씩 은유를 풀어 해치는 과정들 속에서 바움가트너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바움가트너』의 끝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 된다. 일흔 둘의 바움가트너는 애나의 작품을 연구하는 젊은 여성 연구자 비어트릭스 코언을 기다린다. 엄청난 시간을 운전해서 온다는 그녀를 기다리다 못해 신경이 곤두서있는 채로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사슴을 피하기 위해 나무 한 그루와 부딪히며 이야기가 끝났지만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일흔 둘의 노교수 바움가트너는 비어트릭스 코언이라는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될까, 아니면 애나를 따라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일까, 훗날 애나의 글은 젊은 여성 연구자 비어트릭스 코언에 의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까?


바움가트너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태운 냄비를 냅다 들어 올리다 손을 데는 바움가트너, 계단을 헛딛여 균형을 잃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찧는 그의 비명 소리가 ‘축축한 바닥에서 뒤틀린다’. 환지통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물리적 충격들을 초반에 연달아 보여주며 그의 운명이 어떻게 향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일지도 모른다. 이에 대비되는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자율 주행차의 운전대를 생각할 때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어디로 갈 것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굿바이, 폴- 그렇게 바움가트너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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