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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4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가 그랬다고 믿는 것이다.
여기 이런 이야기가 있다. 굶주인 뱀이 새끼 새에게 다가가는데, 새끼 새는 도망가지 않고 다가오는 뱀을 지켜보고 있다. 얘, 새끼 새야. 왜 달아나지 않는 거니?
왜냐고? 새끼 새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콩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콩고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내가 쓴 원고가 남의 이야기든 말든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마리 앙투와네트의 등껍데기가 자연물이 아니라 인공적인 물건이면 어떻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남의 이야기를 썼다고 해서 내가 하찮은 글쟁이가 아닌 것처럼, 나무 껍데기를 썼다고 해서 하찮은 거북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콩고. 그 거대한 푸른 숲의 바다. 그러나 그 나무들 밑에는 아무것도 없다.
-책 속에서-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이라는 작가는 이제 다음 책이 나오면 그 이름만으로 그 책을 사게 될 것이다. <차가운 피부>에 이어 <콩고의 판도라> 역시 흡입력이 짱짱하다.
나, 대필작가인 나는 대필소설 <콩고의 판도라>로 인해 변호사 노튼을 만난다. 노튼은 두 명의 영국인 귀족 형제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마커스 가비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고, 그것이 그의 변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부탁을 해온다. 이제 나는 마커스 가비의 콩고에서의 이야기를 듣는다.
콩고에서 두 형제의 만행, 흑인 노예들의 비참함, 인종차별과 식민지화 되어가는 땅의 이야기를 볼 때만 해도,
그래서 <차가운 피부>에 나오는 그 바다괴물의 지하 버전인 키가 2미터는 되고 백인 보다 더 하얀 지하 세계의 이상한 종족, 텍톤족의 암감이 나오면서는
음...이번에도 식민지와 문화적 상대주의를 다룬 뭐 그런 건가...
했는데, 그래서 이번엔 어떤 반전이 있을까 생각도 했는데
역시 반전이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 못할 반전도 아닌데, <유주얼 서스펙트>의 케빈 스페이시의 걸음걸이처럼 한동안 멍했다. 도대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종차별과 식민지를 축으로 한 인류학적 관점으로 암감과 마커스를 쫓아가던 나는 다시 메타소설로 돌아서서는 등껍질 없는 거북이, 마리 앙투와네뜨와 누군가가 자신에게 진실의 암호 '콩고, 콩고, 콩고, 콩고"를 말할 때까지 "암호? Mot de passe?"를 외치고 다닌 모드파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나무들 밑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대한 숲의 바다, 콩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