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 - 오래된 연인.부부를 위한 사랑의 심리 보고서
율리아 온켄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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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데렐라는 왕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끝->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이야기들의 뒤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상최대의 목표, 결혼까지 모든 역경을 이겨낸 이 주인공 선남선녀들의 결혼 생활은 그냥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로 뭉뚱그려져 마무리된다. 과연 그들은 행복했을까. 그 <둘>이 정말 끝까지 처음의 그 둘이었을까. 혹시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와 놀아나지는 않았을까. 신데렐라는 시아버지 왕에게 집안이 형편없다고 무시당하지는 않았을까.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결혼만 하면 모든 것이 완결되어 해피엔딩의 행복한 미소 속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줄 알았다. 모든 동화들이 그랬고, 모든 드라마들이 그렇게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은 이제 다 안다. 지금부터 부딪히는 문제들이 점차 얼마나 불어나게 되고, 결혼은 지지고 볶는 현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급기야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감싸안을 줄 알았던 환상은 깨지고, 치약 끝부분부터 짜서 쓰지 않고 꼭 중간 부분을 꾸욱 눌러놓는 남편,  컵은 여기저기에 서 너 개씩 바닥이 말라붙은 채 내버려 두는 <그 인간>에게 염증이 나기 시작하고 사소한 일로 싸우다 ‘이럴 바에야 이혼해!’라는 말이 튀어 나오고 만다. 처음엔 ‘설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냥 ‘밥 먹어’같은 일상적인 문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번번이 마음 속에서 꿈틀꿈틀 기어나오는 문장,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라는 책을 집어드는 데는 몇 초면 충분했다. 제목이 친구가 되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 그래도 헤어질 순 없잖아.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한 적은 없고, 아마 앞으로도 이혼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가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든지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처럼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식의 상념에 빠질 때가 있다. 남편이 아닌 다른 외간남자가 있어서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고 술 마시고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는 상상도 가끔 하고 만다. 몇 번의 헤어진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어서 애틋하고 아련하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하고 그리워할 수 있지만, 정작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은 어느 결엔가 <그 인간>이 되어 지긋지긋한 현실처럼 달라붙어 있지 않은가.


책을 읽는다. 안다, ‘다들 나 같구나. 그럴 테지. 결혼이 뭐 별거더냐.’ 그러면서도 한편 위안을 받는다. ‘그래,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 각 장마다 붙은 소제목들이 다 내가 무심결에 뱉어내는 말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책을 읽어내려 가자니 먼저 결혼한 선배 언니와 함께 있는 기분이다. ‘어머어머, 정말이니?’라고 내 얘기 다 들어준 다음 ‘그런데 말이지...’하고 자기 경험과 조언을 들려주는 선배.


이 선배가 나에게 말한다. ‘내가 이런이런 조언은 해 줄 수 있어. 하지만 말이지, 결국은 다 네 몫이야. 네 안에 답이 있어.’


신데렐라는 결혼 후 다시 재투성이 처녀시절처럼 돌아가 부엌데기 아줌마가 되어 왕자였던남편의 쩨쩨하고 소심하고 작태를 보며 한숨 푹푹 쉬며 살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한숨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신데렐라도 알게 될 것이다. 그 현실의 한숨에는 어딘가 모를 안도감도 숨어 있지 않을까. 그래도 헤어질 순 없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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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은12살 2004-08-3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땡깁니다... 멋진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