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림픽이라니, 도대체가 관심도 없는 분야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2008년 8월 8일 여하튼 8이 난무하는 그날 개최된다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출간된 것임이 분명한 '시드니 올림픽 관전기'라니. 오로지 이 에세이가 하루키니까 샀을 뿐이다.

다 읽고 나니 아, 갑자기 올림픽이 좋아졌어, 할 성질의 것은 물론 아니다. 그냥 올림픽도 올림픽대로의 정체성이 있다는 거고(심지어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간에), 아마 언젠가는 요즘 유행하는 광고처럼 광선검 펜싱이나 다이너마이트 계주 같은 종목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그때도 아마 나는 역시 올림픽에는 별 관심이 없을 거라는, 하지만 누가 경비 다 대주고 올림픽 관전하고 오라고 하면 가지 않을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회식 같은 거 보고 싶지 않다는, 하루키야 마라톤 팬이지만 전할 승전보도 없는데 왜 굳이 42.195킬로미터를 뛰어 인간 한계에 도전해야 하는지 도전의식이나 모험심, 패기, 야망 같은 종목에 제로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내가 제일 많이 뛴 것은 체력장 종목인 오래달리기 800미터가 전부라는.


그러나,

캐시 프리먼의 이야기에서는 아, 응축된 사연이 한 장면에서 폭주하고 그 현장에 같이 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인생을 살면서 42.195킬로미터 쯤 어디 한 번, 하고 뛰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물론 나는 뛰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결국 나는 또 적당히 살아야 한다는, 나는 안하거나 못해도 남들이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은 간혹 숭고해보이기도 한다는.


<책 중에서>

"오리너구리는 부끄럼을 타는 동물이어서 대체로 물속에 숨어산다고. 수컷은 뒷발의 발톱에서 독을 뿜을 수 있다고 한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지만 '젠장, 어쩔 수 없군'하는 식으로 사용하는 듯."

 

젠장, 어쩔 수 없군 하고 독을 쓰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꼬리 잘린 도마뱀 이야기가 생각났다.

...꼬리를 잃은 도마뱀은 동료들 사이에서 꽤 학대를 받는 모양이다. 꼬리가 없는 도마뱀은 꼬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바보 취급을 당하며 자기 영역도 반 정도는 빼앗기고, 숫놈에게도 천대를 받는 등,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제 모습대로 자랄 때까지 암울한 생활을 하게 된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1권 <도마뱀 이야기>중에서-

 

 

...그런데 변기 바로 앞에 자판기가 있는 이유는 뭘까? 호주인들은 소변을 보면서 콘돔을 사는 걸까? 뭐, 그래도 되지만......'다음 맥도널드까지 앞으로 1시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앞으로 1시간? 그렇게 먼 곳에 있는데 벌써 광고하는 건가? 뭐 그래도 되지만.

 호주라는 나라에 오니 '뭐, 그래도 되지만'이 입버릇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쁜 의미는 결코 아니다.

 

 

 현장에서 100미터 경주를 보면 빠른 것인지 느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달리기가 끝나버렸다. 물론 인간 능력의 한계에 육박하는 속도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빠른가 하면 그런 느낌은 의외로 없다. 근사한 근육을 지닌 여러 선수들이 어떤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인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끝나고 선수들의 동작이나 표정에서 허탈감이나 환희가 드러날 때, 마침내 그들이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감동이 다가온다. 뭐랄까, 종교적이고 계몽적이다.

 

 

 오늘날의 마라톤 경기는 기록영화에서 보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과는 전혀 다른 스포츠처럼 보인다. 베르린에서는 선수들이 달리기를 멈추고 선 채로 물을 마시고 세면기 앞에 쭈그려 얼굴을 씻었다. 이것은 매우 인간적인 행위였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급속도로 진화해 온 것일까? 예컨대 남자 10,000미터를 보자. 1936년 우승 기록은 30분 15초였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는 27분 18초가 되었다. 만약 양쪽 선수를 같은 트랙에서 달리게 한다면 사람들은 그 차이에 입을 다물 것이다. 집중적인 진화를 가능케 한 것은 우리의 '투쟁심' 때문일까? 이 '대리 전쟁' 덕분에 우리는 베를린 올림픽 이래 64년 동안 세계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 그럴 리가. '평화의 제전' 따위의 간판은 얼마나 한심한가.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올림픽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기 와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모른다. 모르니까 일단은 마라톤 경기를 계속 본다.

 

 

 일본 선수는 철봉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피곤했는지도 모른다. 본인도 떨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내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사람은 그렇게 악몽에 견디는 법을 배운다. 나도 배웠다. 다만 TV로 중계되지 않았을 뿐이다.

 

 

.....포환을 뒤로 빠뜨리고도 웃으면서 V자를 그려 보인다.....포환던지기 근처에서는 높이뛰기가 진행된다.....당연한 얘기지만 포환던지기 선수와 높이뛰기 선수의 체형은 대조적이다. 높이뛰기 선수는 실패했을 때 V자를 그리지 않는다. 체형 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꽤 다른 듯.

 

 

 캐시 프리먼은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골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소심한 원주민 소녀였습니다.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요. 나는 가족과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트랙 위에 서면 나와 트랙만이 존재합니다. 나의 달리기와 나만 존재하지요. 트랙은 나와 나의 감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장소입니다.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정말 포근해집니다."

 캐시 프리먼이 육상 트랙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깊은 평온을 느끼도록, 그런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코카콜라 역시 라이벌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코카콜라가 경기장의 음료수를 담당한다는 (사실 시드니 전체가 코카콜라로 메워져 있어 펩시를 구경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몰래 펩시를 반입하여 마시자, 코카콜라 측은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하는 직원들에게 위험물 외에 펩시의 반입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쯤되면 거의 코미디이다.

 나는 소지품 검사를 받을 때 "이건 노트북인가요?"라는 질문을 받고 "아뇨, 펩시인데요."라고 대답했다. 총살당하진 않았다. 그저 모두가 크게 웃었을 뿐.

 

 

특집프로: 호주의 역사

 

 "난 호주의 역사 따윈 관심 없다고요. 코알라만 있으면 돼요."

 "흥, 무라카미에게 배우긴 싫은데."

 이런 사람이라면 읽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도 호주처럼 영국을 토대로 성립된 국가이지만, 인간으로 치자면 미국에는 명확한 자아와 목적이 있었다. 이들은 성장과 더불어 고압적이고 지배욕이 강한 아버지의 나라, 영국에 대항했다.

 "당신과 난 삶의 방식이 달라. 쓸데없는 참견 말라고!"

 이들은 크게 한판 싸웠고 미국은 막판에 아버지를 두들겨 팬 다음 집을 나와 자립했다.

 미국이 자립할 즈음 호주라는 거대한 식민지가 출현한 셈인데, 호주에는 미국과 같은 자의식이 없었다. 명확한 목적을 가진 긍정적인 사람들이 모인 나라가 아니라, '가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온' 사람들 뿐이었다.....

 

......영국은 자기 일이 너무 바빠 얌전한 차남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호주는 아버지의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자아와 목적의식이 없는 체질로 성장했다. 하지만 탈선하고 반항아가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형인 미국과 달리 성실한 태도로 아버지의 애정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아버지의 나라 영국이 예전만큼 강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아졌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도 둔해지고 치매에 걸렸다. 호주는 고민한다.

 '이제까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이게 뭐야. 나만 바보가 된 거잖아.'......

 

......하지만 영국은 자기 생각만 할 뿐 호주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미안하지만 넌 이제 다 컸으니 네가 알아서 하렴."

 이런 분위기였달까.

 '이건 아니잖아!'

 호주는 탄식했다. 호주는 이제 정신을 차린다. 막연하게 여겼던 의문이 안개가 걷히듯 명확해졌다.

 '아버지는 애당초 날 사랑하지 않았어. 적당히 둘러대며 날 이용했던 거야. 아버진 예전부터 형을 사랑했지. 오래전에 싸우고 헤어졌으면서 아직 미국을 더 사랑하다니. 난 한 번도 친자식 대접을 받지 못했어.'

 

그래서 호주는 어떻게 했을까? 아버지를 뒤로 하고 형인 미국에게로 갔다.

'흥! 형이 아버지보다 훨씬 강하잖아.'

복잡한 얘기다. 마치 <에덴의 동쪽> 같아. 유아기에 부모의 애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한 가지에 열중하면 끝없이 빠지는 경향이 있는 법.

 

......'우리가 이렇게까지 미국을 추종해야 하나?'

드디어 일반 국민들이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아무리 가족이지만 결국 자기들만 생각하잖아? 차라리 이웃 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훨씬 낫겠군.'

 호주는 비로서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자립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호주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한다. 바로 원주민 문제다......몇 가지 화해 정책이 실행되고 어느 정도 토지도 반환되었지만 양쪽의 심리적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바로 이때 등장한 것이 캐시 프리먼이라는 선수다.(금메달도 딴 적 없는 원주민 여자가 성화 최종 주자가 된 것이 대해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이런 그녀가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여 호주와 원주민 깃발을 들고 트랙을 돌고 시상대에서 호주 국가를 부르며 울먹일 때 사람들이 '화해'의 징표를 발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논리가 아닌 '공감할 수 있는 상태'를 캐시는 혼자 힘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나는 정치적으로 안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순간의 경험은 나의 가슴을 크게 두드렸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장소에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게 말하면 호주라는 국가는 이때 비로소 '타인의 아픔을 자기것으로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성숙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라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올림픽은 어때? 지루한가?"

예스! 올림픽은 지루합니다......그곳에 있는 건 매우 수준 높은 지루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수준이 높아도 지루하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모험과 영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동료들에게서 모험을 빼앗을 순 있겠지만 노력과 기력을 빼앗는 것은 무리다. 모험을 하려는 의지는 현실적이며 진실한 것이다. 다시 말해 모험이란 물질계의 탈구이자 비현실인 셈이다. 모험에의 의지, 노력, 기력에서 드러나는 이 두 가지의 신기한 본성은 정반대의 세계에 속해 있다. 의지는 현실에 속하지만 요구되는 대상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오르테가의 독창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올림픽이라는 모험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물질계의 탈구'이다. 선수들은 초현실적인 노력으로,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체적 달성에 도전한다. 하지만 요구되고 달성된 것이란 무엇인가? 그저 '물질계의 탈구'일 뿐이다. 사람들은 비현실성에 대해 현실의 깃발을 흔든다. 사람들(대중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되지만)이 추구하는 것은 위대한 탈구성이다. 초현실적인 의지나 노력 따윈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런 것은 각주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달성된 것이 얼마나 크게 현실로부터 탈구되었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은 존 레논이 죽었구나......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코를 한번 훌쩍 들이켰다.

1980년 12월 9일을 나는 아마도 잊지 못하리라.

<이매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영어 가사는 고등학생 때 외웠다.

                        하지만 뭔가 같잖은 짓인 것 같아 중간에 관뒀다.

 

 

난 오쿠다 히데오 팬이 아닌데 어떻게 된 게 자꾸만 히데오를 읽고 있다.

이거이거, 알고 보면 팬이라거나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건가.

 

<스무 살, 도쿄>는1959년생 다무라 히사오의 청춘 연대기이다.

스무 살 무렵을, 이십 대 무렵을 개인에게 다가오는 역사적인 사건들 속에서

그 시절의 하루와 함께 그려 낸 청춘 연작.

 

 

레몬_1979년 6월 2일

1979년 재수 후 입학한 대학 연극부에서 일어난 하루 동안의 해프닝,  

청춘의 풋사랑.

 

봄은 무르익고-1978년 4월 4일

재수를 결심하고 도쿄로 상경, 자취방을 구하고는 나고야 냄새가 안 나게 도쿄 사람인 것처럼

돌아다니다가 또다른 자취 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안

고라쿠엔 구장에서 열린 3인조 여가수 그룹 캔디스의 해산 콘서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춘.

 

그날 들은 노래_1980년 12월 9일

대학 중퇴, 어쩌다보니 신광사라는 사원 5명인 곳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게 된 히사오.

그날따라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데 존 레논의 노래가 유난히 많이 들린다.

존 레논이 죽었다. 바쁘다.

하루를 마감하고 돌아가는 길,

 

문득 생각이 났다. 오늘은 존 레논이 죽었구나......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코를 한번 훌쩍 들이켰다.

1980년 12월 9일을 나는 아마도 잊지 못하리라.

<이매진>을 소리 내어 불렀다.

영어 가사는 고등학생 때 외웠다.

하지만 뭔가 같잖은 짓인 것 같아 중간에 관뒀다.

 

나고야 올림픽_1981년 9월 30일

7년 후 올림픽 개최지는 서울이 되었다.

히사오는 신광사에서 제법 인정 받는 사람이지만.

 

그녀의 하이힐_1985년 1월 15일

스물 다섯 살의 히사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굽 높은 하이힐을, 마음에 들면 로퍼를 신는

나고야가 고향인 여자와 엄마들의 계략에 의해 선을 본다. <고스트 버스터>는 대단한 인기였다.

 

 

베첼러 파티-1989년 11월 10일

이제 히사오는 서른을 앞두고 있다. 청춘, 대단원의 막.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일본은 거품 경제 직전이었다.

 

"청춘은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 라는 건가."

 

  

읽다 보니, 종로를 지나가는 버스에 앉아 라디오에서 나오던 비틀즈의 노래에 뜬금없이 울었던 어느 하루, 버스가 연대 앞을 지날 때 라디오 뉴스로 들은 퀸의 프레디 머큐리 사망 소식, 또 버스 라디오가 먼저 들려준 4월 1일 장국영의 사망 소식 등이 떠오른다.

 

내 청춘은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버스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채 

라디오가 전하는 소식 따라 흘러 갔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운명에 온화해지는 거예요, 어른이 된다는 건."

 

존은 다오 씨의 말을 떠올렸다.

 "아 그래, 난 운명에 온화해지는 법을 알게 된 거요."

 


뭐야, 설마 존 레논이야, 했는데 설마 존 레논이었다.

 
저 표지를 보면 누군들 모르겠냐마는 B4 백색 모조지에 곱게 싸서 방치해두다가 막 1/3 쯤 읽었을 때 참치의 뜻하지 않은 어업제안으로 본의아니게 잠시 어업에 종사하느라 도저히 진도를 못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존 레논이 변비에 걸렸는데 더이상 나는 진도를 못 나가고 있어,

 
라고 공공연히 2번 말하고 다녔다.

 
변비에 걸렸을 때부터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당연히 변비의 해결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팝스타 존의 수상한 변비> 풀 스토리.

 

그러니까 이 소설은 요코와 결혼하고 션을 낳은 이후의 존 레논의 일본 가루이자와에서의 알려지지 않은 생활에 대한 상상의 결과물이다. 

 
(존 레논의 일대기 중 잘 알려지지 않은 1976년부터 79년까지의 이야기에 대해, 그의 마지막 앨범이 온화해진 그 공백 기간에 그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사건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작가의 흥미에서 시작되었다는데...) 

 
일본의 오봉 기간 동안 존 레논은 그의 트라우마가 된 과거 행적들 속 인물들(영혼이 된)과 차례로 만나 화해를 하게 되고 그 모든 삶과의 화해의 기간이 끝나자 변비도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뭐 소설 속 아네모네 병원에 나오는 의사와 간호사는 훗날의 이라부와 그 간호사의 정상적인 버전이었을 것 같고.


1940년 10월 9일 리버풀에서 태어난 존 레논,
1980년 12월 8일 마크 채프먼의 총격으로 사망.

 
뭐 소설 자체는 그냥 그렇지만 존 레논은 역시나 힘이 세단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가로서 묻는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소설이 조금 많은 비중을 차지하긴 했지만

재미있는 생각들이 담긴 단편이라, 어쩌면 비슷한

나이대가 겪는 비슷한 경험들이어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재미있었고 몇 편은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 실린 단편은 모두 8편이다.

 

1.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

 : 그러니까 소설의 탄생이다. 최면술까지 동원한.

 

2.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 흙

 : 읽고 나니 흙을 한 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3. 원주통신

 : 캥거루 통신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뭐였지?

  

4. 당신이 잠든 밤에

 : 시봉과 진만은 어쩌면 씨봉과 존만이가 아닐까 싶은데

   나쁜 짓을 하고 싶어도 되는 거 없는 가련한 청춘들, 쪽파 때문에

  날아오는 우유를 맞아야 했던 오 헨리식 주인공의 코믹 버전.

  내가 잠든 밤에 일어나고 있을, 오갈 데 없이 비리비리한 사람들이

 겪고 있을 비릿한 이야기들.

 

5. 국기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밤에 2

 : 자, 이제 새벽 3시에 국기게양대 위를 올려다 보자.

  거기에 세 명의 남자가 마치 엄마 등에 업힌 듯 매달려 있을 게다.

  거기에서 참으로 진지하게 인생을 논하고 있을 게다.

  아, 띠발. 되는 거 없는 인생 나도 국기게양대에나 올라가자, 하고

  올라가서는 곤란하다. 우선 국기게양대를 사랑해야 한다.

 

6. 수인

 : 소설과 소설가에 대한 메타 소설.

   '소설이 여기 존재하는 것은, 이 세계가 소설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그것을 위해,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  교보문고나 한 번 가볼까.

 

7.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 전 좀 걱정이 되어요.

 

8.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 이제는 '쇼' 초기 광고 때문에 유명해진 버나드 쇼의 비문에서

   따온 제목이자 '나'가 겪은 '우연을 대하는 각자의 자세', 그리하

  여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

  약간의 초기 성석제스러운 느낌의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동네에 단골술집이 생겼다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2008년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작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술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실연을 한 사람과 위로해주는 사람을 축으로 각각의 사랑과 청춘의 사연들이 있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소리치고, 누군가는 달래고, 누군가는 아픈 사람의 기억에 자신의 기억을 얹는다.

 

술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들의 기억을 꼬투리처럼 물고 늘어져 울궈먹기를 반복한다.

 

<사랑을 믿다>는 작은 술집, 소주와 안주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하는 사랑 이야기다. 술집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시간들이 얽혀져 있는 장소 아니더냐. 과거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말하면서 현재는 술에 취해 들어가는 장소. 그 풍경이 하도 낯익어서 그만 재미있게 읽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집에 실린 다른 작품 중 제일 낫다는 얘기다.

 

하성란의 < 그 여름의 수사>에서는 10자로 모든 내용을 압축하던 전보 이야기만 기억에 남고,

 

김종광 <서열정하기 국민투표-율려, 낙서공화국1>은 문학계 제반현상에 대한 한풀이 같아 좀 그렇고,

 

윤성희 <어쩌면>은 죠스바를 먹다가 죽어서 보랏빛 혀를 가진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울학교 아이들에게 읽혀도 괜찮을 듯 싶어서 생각 중이고,

 

천운영 <내가 데려다줄게>는  너무 깊이 폼 잡았다는 생각만 들고,

 

박형서 <정류장>은 버스정류장을 닦는 아버지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뭔가 좀 아쉽고, 

 

박민규 <낮잠>은 내가 읽은 박민규 중 처음으로 노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약간 낯설었지만, 청춘의 재기 대신에 노년에 대한 한숨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뭐 그런 정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