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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평점 :
동네에 단골 술집이 생긴다는 건
일상생활에는 재앙일지 몰라도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다.
동네에 단골술집이 생겼다는 건
기억에 대해서는 한없는 축복이지만
청춘에 대해서는 만종과 같다.
2008년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작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술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실연을 한 사람과 위로해주는 사람을 축으로 각각의 사랑과 청춘의 사연들이 있다.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소리치고, 누군가는 달래고, 누군가는 아픈 사람의 기억에 자신의 기억을 얹는다.
술집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들의 기억을 꼬투리처럼 물고 늘어져 울궈먹기를 반복한다.
<사랑을 믿다>는 작은 술집, 소주와 안주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하는 사랑 이야기다. 술집이라는 공간은 다양한 시간들이 얽혀져 있는 장소 아니더냐. 과거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말하면서 현재는 술에 취해 들어가는 장소. 그 풍경이 하도 낯익어서 그만 재미있게 읽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 작품집에 실린 다른 작품 중 제일 낫다는 얘기다.
하성란의 < 그 여름의 수사>에서는 10자로 모든 내용을 압축하던 전보 이야기만 기억에 남고,
김종광 <서열정하기 국민투표-율려, 낙서공화국1>은 문학계 제반현상에 대한 한풀이 같아 좀 그렇고,
윤성희 <어쩌면>은 죠스바를 먹다가 죽어서 보랏빛 혀를 가진 아이들이 주인공인데 울학교 아이들에게 읽혀도 괜찮을 듯 싶어서 생각 중이고,
천운영 <내가 데려다줄게>는 너무 깊이 폼 잡았다는 생각만 들고,
박형서 <정류장>은 버스정류장을 닦는 아버지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뭔가 좀 아쉽고,
박민규 <낮잠>은 내가 읽은 박민규 중 처음으로 노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약간 낯설었지만, 청춘의 재기 대신에 노년에 대한 한숨이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뭐 그런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