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내버렸다. 흔들리는 것들은 아름답다.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던 것들은 이제 더이상 이름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흔들리는 것들이 다시 흔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그녀는 그것들의 이름을 철저히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이제 계절이라든지 시간이라는 것은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현실은 그녀에게 사치의 징조였으며 그렇게 그녀는 차갑게 식어가는 거울방에 홀로 앉아 뜨겁게 흐르던 과거의 모습들을 되새김질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희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서서히 흘러가기를 서서히 흐르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그녀의 차갑게 흐르던 혈액은 이제 더이상 더워지지 않는다. 방바닥은 덥지도 차갑지도 않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거울이 사방을 감싸고 있어서 방바닥이 싸늘한 겨울방처럼 느껴질 텐데도 어찌된 일인지 방바닥은 적당한 온기로 감싸여 있었다. 여자는 구둘장에 누워있는 것처럼 방바닥에 누워 방바닥에 등을 지지고 있었다. 아무런 것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누워있는 모습은 숲속의 공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더욱 더 또렷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더 현실이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그녀는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감에 차서 이름을 잃어버린 모든것들을 사랑하려고 애썼다. 이름은 언제나 다시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하루는 그렇게 또 가고 있었다. 그녀의 시간들은 그렇게 흔들리듯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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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더이상 이상한 상상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생각은 쉽게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허탈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거울을 두리번거리며 쳐다보았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거울의 어떤 모습속에서 어떤 해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그렇게 거울을 쳐다보고 거울 표면에 손가락을 대어 쓰다듬어 보곤 했다. 이상하게 그의 손은 뜨거웠다. 그는 언제나 그 뜨거운 손으로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여자친구의 손을 포근하게 감싸주곤 했다. 여자친구는 언제나 냉기 가득한 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항상 여자친구의 그 싸늘한 손을 꼭 쥐고 그의 뜨거운 손으로 녹여 주었다. 여자친구는 그럴 때마다 그가 한없이 따뜻한 심장을 가진 남자구나 라고 깊히 느끼곤 했다. 그의 손은 그만큼 특별하게 취급 받았다. 어디에서건 그의 손을 잡고 악수를 한 사람들은 그를 쉽게 잊지 못하고 깊게 그의 손을 기억했다. 그것은 그의 사회 생활을 남들 보다는 더 쉽게 할 수 있는 노하우 중에 하나였다. 그는 그런 뜨겁고 거부할 수 없는 손을 거울에 대보면서 무언가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을 찾아 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영원히 이곳에 살아야 한다면 하루 빨리 이 거울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어차피 여기에 갇혀 살아야 한다면 그 거울의 실체라도 밝히고 싶다는 생각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지된 시간은 여전히 그래도 가고 있었고 아무리 늙지않는 불로초를 먹은 사람이 되다고 해도 그는 이곳을 나가 자유의 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 점점 더 이상하게 좁아 들어가는 거울방의 실체를 파악하려고 혈안이 되어가는 자신을 더 깊게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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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서서히 정지된 시간을 감미로운 음악에 젖어버린 것처럼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고 즐기고 있었다. 여자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가늘게 감은 눈은 무언가를 모두 놓아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그녀의 모든 소요물들은 이제 없다. 그가 얼굴에 바르던 화장품들과 화장대 혹은 컴터와 매일 다니던 회사와 도시의 시끌벅적한 거리와 뒷골목과 아늑하게 푹신한 창가에 위치한 앉으면 푹하고 들어가는 소파형 의자와 더없이 신선한 마트에 가지런히 진열된 열대과일과 갓잡은 돼지 뒷다리 살과 삼계탕에 적합한 크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껍질을 벗겨낸 깨끗하게 손질된 토종닭과 한달에 한번쯤 남자친구와 갔던 적당히 값이 비싼 이테리 레스토랑의 그 알 수 없는 메뮤판에 쓰여진 음식이름들과 고급 적포주와 그리고 백화점의 화려한 명품의류와 명품빽들이 진열된 상가들이 나열되어 있는 그곳은 어쩌면 그녀의 기억 너머로 모두 사라져 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듯이 남아있는 그런 모습으로 그녀는 그 모든것들을 일시에 놓아 버리고 싶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은 욕심을 키우고 욕심은 또다른 욕망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녀는 더이상 어떤 이미지에 대한 것에도 방해받기가 싫다는 듯이 눈을 번쩍떴다. 그녀의 뇌리속에서 뒤엉켜있던 것들은 그 순간 사라지고 없다. 한 순간이라도 그녀는 모든 것에서 잊혀지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어둠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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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간절히 일상을 원했지만 그것은 다시 되돌아 갈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더이상 그는 반복되는 일상으로의 귀환을 꿈꿀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는 그래도 혹시나 하고 거울방의 틈새를 찾으려고 천천히 일어나 거울에 손바닥을 대고 미세하게 촘촘히 거울을 만져보기 시작했다. 거울은 여러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거울은 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네개의 거울로 말끔히 세워져 이음새가 정교할 만큼 깨끗했다. 조금의 틈새도 없었다. 거울을 깨부술 어떤 물건도 거울방 안에는 없었다. 양변기조차 너무나 단단하게 만들어 놓아서 어느 하나 떼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텅 비어있는 거울방이 점점 더 자신의 몸 가까이로 좁혀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거울을 더듬던 손을 거두었다. 더이상 이곳을 나가야 한다는 희망 같은 것도 잊어버려야 한다. 깨끗이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방바닥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무엇들이 그의 뇌속에서 부글부글 끊어 넘치는 것 같았다. 그는 자꾸만 흘러 넘치는 잡념들을 없애버리려고 더욱 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이제 그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깨끗이 포기하는 것 외에 그느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던 거울들이 이제 정지된 듯 보인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스스로의 안전망을 만들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저 그의 마음속에서만 반복적으로 외쳐대고 있을 뿐 더이상 그는 어떤 반항도 필요치 않음을 느꼈다. 그는 더이상 그의 뇌가 앞으로 나가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것이 그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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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정지된 시간의 수혜자였다. 그랬다. 그녀의 신체 리듬은 그렇게 팽팽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는 현실을 잊어버린 이곳이 좋았다. 과거의 나쁜 기억은 모조리 잊는 것이다. 이곳은 정지된 과거를 가지고 있으므로 나쁜 기억 쯤은 얼마든지 좋은 기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의 기억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더욱 더 안좋았던 그 많은 기억들을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세상속에서 널브러지고 흐물거리는 기억의 파편들을 이제는 더이상 끌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그런 이곳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기억은 상실되고 더이상 기억의 어둠속에서 방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이곳의 그 알 수없는 차분함이 좋았다. 그녀는 끝없이 자신의 의미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정지된 시간 너머로 다가오는 어떤 일들도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과거는 이미 사라지고 없고 앞으로 기억될 미래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들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마구 떨려왔다. 그녀는 흩어지는 과거의 파편들을 더이상 돌아보지 않도 된다는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다. 기억은 더이상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더 당당하게 내일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녀는 이제 그녀의 과거를 갖지 않아도 된다. 그저 미래의 그녀의 삶만이 펼쳐지는 것이리라. 그녀는 편안함으로 가득 찬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묵은 감정들도 사라지고 없었고 그녀는 천천히 이 평온한 시간속에서 현실을 기억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조용한 숨소리만이 그녀의 몸속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상태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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