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그냥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 순간 답답하게 느껴왔던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삶이 끝나버린다 해도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절하게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현실의 상상 너머로 그의 기억들을 던져버리고 다시 현실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어떤 형식으로도 지금의 갇혀있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냥 숨쉬고 있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숨소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느리게 천천히 흘러오는 그의 숨소리는 이제 정상괘도에 올라있었다. 그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고승처럼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냥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는 다시 짙고 깊은 바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연 아래로 내려가 산호초 옆으로 헤엄치는 산갈치의 크고 긴 몸통이 모래바닥을 훑고 지나가고 말미잘의 촉수가 벌려졌다 접혀졌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산갈치의 꼬리에 가까이 다가선 식인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을, 그러나 산갈치는 유유히 바다의 심연 바닥의 모래를 한번 그 커다란 몸으로 휘젖더니 곧장 부드럽게 유영하여 물위로 올라가 버렸다. 식인상어는 산갈치를 공격하지 않았다. 바다의 밑바닥은 차분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생물들의 치열한 생사를 보여주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바다를 생각했다. 그의 눈주위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오랫동안 푸른 청록빛의 바다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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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이제 외롭지 않았다. 이상하게 거울방은 그녀를 감싸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끝없이 이어지는 그 어떤 것들이 그녀의 모든것을 삼켜버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마저도 좋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그녀는 이곳에서 쉴 수 있었다. 회사에도 나가지 않고 오로지 일에 매몰되어 살지 않아도 되는 이 생활이 무척 신기하면서도 편안해서 우선 그녀의 몸이 축 늘어진 문어다리처럼 그렇게 펑퍼짐 해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육체는 점점 아줌마의 형체처럼 변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조금 더 엉덩이 살이 펑퍼짐하면 어떤가. 그것은 그녀가 간절히 원하던 어떤 휴식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이 자체가 한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하루가 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하루가 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현실은 이제 없었다. 그녀의 현실은 그저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양변기에 걸터앉아 볼일을 보고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자유롭게 잠을 자거나 상상을 하고 그렇게 24시간을 보내는 일 외에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 더이상의 행복은 떠오르지 않았다. 더이상의 부끄러움도 찾아 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딱 여기까지민 생각하기로 했다. 더 먼 과거도 더 먼 미래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녀에게 과거는 이제 없다. 미래 또한 없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녀는 단순한 하루를 보내길 원했다. 조용히, 아무 욕심없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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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낀다. 감기 몸살에 걸린 사람처럼 그의 증세는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떨리는 몸을 어쩔 수 없어 했다. 그렇다고 그를 병원으로 이송해 줄 구급차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기에 갇혀있고 그가 아무리 하소연을 늘어 놓아도 아무도 그를 구해주러 이곳에 오지 않을 것임을 그는 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서글퍼졌다. 거울방에는 비상구가 없었다. 문도 없었고 오로지 방이라는 공간만 존재한다. 구석 자리에 양변기 하나만 놓여져 있는 공간으로 아무도 없는 것이다. 가구도 없고 그를 이 상황에서 구해 줄 어떤 존재도 없는 거울방이 징그럽게 생각되었다.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그 절박함 차라리 탁 트인 공간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노동을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 때문에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그는 더이상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점점 더 그의 몸은 경직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그는 온 몸이 펄펄 끊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오장육부와 근육과 혈관과 폐와 심장까지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이 막혀왔다. 폐로 들어간 공기가 쉽게 이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이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짧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죽을 수도 없음을 안다. 거울방에 갇혀있는 동안 그는 몇번의 호흡곤란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어디선지 모르는 곳에서 신선한 산소가 거울방으로 공급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다시 산소 호흡기의 마스크를 입과 코에 끼우듯 새로운 산소가 제공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죽지 못한다. 죽음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그를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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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의 생활은 여자의 일상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사실이 흔들리는 시간속으로 들어간다. 여자는 바쁘고 정신 없었던 거울 밖의 세계를 떠올려 보았다. 그곳은 너무 꽉 짜여진 스케쥴로 눈코 뜰 새 없이 하루가 지나가곤 했다. 그녀는 하루를 48시간으로 늘여 살아가야 했다. 어디에서도 정신적인 여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친 하루들이 이어졌다. 그녀는 많은 시간들을 일을 하며 보내야 했고 그 일들은 너무 사무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 들이 겹치고 쌓여가고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일의 끝점을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일중독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도 쉬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했다. 그녀에게 휴식이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음식을 만들 때 뿐이었다. 심지어 티비를 틀어 놓고도 컴터를 켠 채 회사에서 못다한 일을 해야 했다. 그런 그녀의 일상은 로봇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점점 더 일만하는 로봇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일은 이런 반복되는 작업이 아니었다. 그녀는 좀 더 여유롭고 창조적이며 조금씩이라도 시간적인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그런 일을 원했다. 그러나 사회는 그런 그녀의 일거리를 생산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평균적인 일정한 일거리만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일상을 지배하고 그녀는 그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살고 있을 뿐 어떤 것으로도 사회의 일원으로써 그녀의 위치를 만들어 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사회가 그녀를 얽어매어 버렸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사회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녀의 시간들은 반복되어 갔고 그녀는 이런 경직된 삶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기 시작햇다. 그녀는 이제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의 진실임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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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짙은 열패감을 안고서 거울을 쳐다 보았다. 그것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것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생각을 어쩔 수 없어 했다. 천천히 흘러가는 것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러나 거울방에 갇혀있다는 그 생각은 그를 여전히 패배한 인간으로 남아있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서서히 흘러가더라도 그는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그는 당당해지고 싶었다. 현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고 그는 그런 현실의 열패감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거울방 안에서 짙고 엷은 그림들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정지 되어 있었지만 그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런 시간은 그를 초조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여지는 시간의 형상들은 그저 정지된 채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는 여전히 분침을 체크하는 쾌종시계처럼 그렇게 손가락 끝으로 방바닥을 톡톡치며 시간을 세고 있었다. 거울방은 여전히 차갑게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런 차가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외에 어떤 생각도 여유를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유를 원했다. 간절히 갈망했다. 희구했다. 그의 작지만 강하게 생긴 눈동자는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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