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그냥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 순간 답답하게 느껴왔던 호흡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삶이 끝나버린다 해도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절하게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냥 현실의 상상 너머로 그의 기억들을 던져버리고 다시 현실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는 어떤 형식으로도 지금의 갇혀있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냥 숨쉬고 있는 이 순간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숨소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느리게 천천히 흘러오는 그의 숨소리는 이제 정상괘도에 올라있었다. 그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는 고승처럼 가부좌를 틀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냥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는 다시 짙고 깊은 바다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심연 아래로 내려가 산호초 옆으로 헤엄치는 산갈치의 크고 긴 몸통이 모래바닥을 훑고 지나가고 말미잘의 촉수가 벌려졌다 접혀졌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그리고 산갈치의 꼬리에 가까이 다가선 식인상어의 날카로운 이빨을, 그러나 산갈치는 유유히 바다의 심연 바닥의 모래를 한번 그 커다란 몸으로 휘젖더니 곧장 부드럽게 유영하여 물위로 올라가 버렸다. 식인상어는 산갈치를 공격하지 않았다. 바다의 밑바닥은 차분히 조용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생물들의 치열한 생사를 보여주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바다를 생각했다. 그의 눈주위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오랫동안 푸른 청록빛의 바다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