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경에 비치는 잠옷 차림에서 가슴께에 눈길이 꽂혔다. 젖꼭지 실루엣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브래지어에서 풀려나던 순간의 기쁨을 되살려놓았다.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가 칸 영화제에서 오른쪽 어깨의 옷끈이 흘러내리던 장면이 스쳐갔다. 브래지어가 가슴의 혈류를 억누르는 것이 유방암을 유혹하는 결과로 이어지는지 장시간 브래지어 착용 여성은 유방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의료계의 연구를 알려준 뉴스가 소나기처럼 귓가에 되살아났다.
_소나기처럼 귓가에. 신선해요. 작가님 글에서 갖고와볼게요.
-어떻게 알아?
-네 거니까 알지.
네.거.니.까.알.지 그가 방금 했던 말이 소나기처럼 귓가에 남았다.
16세기 조선시대 유방암 진행 기록 이야기를 딸에게 읽혀준 생각도 났다.
퇴계 이황(1501~1570)이 손자 몽재 이안도(1541~1584)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황의 아들 준의 아내이자 이안도의 어머니인 봉화 금(琴)씨의 유방암 진행을 기록해놓았다. 금씨 관련 부분을 발췌했다.
* 1541년 6월 4일 3남2녀의 장남(이안도) 출산.(당시 이안도의 아버지 이준(1523년 10월생) 만 17세. 금씨도 비슷한 나이로 스물에 시집을 가는 풍습을 생각하면 1521년생 정도로 봄.)
* 1559년 9월 11일 3남2녀의 막내(이영도) 출산.(당시 이안도의 아버지 이준(1523년 10월생) 만 35세. 금씨 만 38세 정도로 봄. 장남 이안도 만 18세.)
(<안도에게 보낸다: 퇴계가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정석태 옮김, 도서출판 들녘 2005년 발행), 부록 연표 및 p. 16 해설 참고.)
1559년 9월 14일자 이황의 편지(이하 '이황의 편지' 생략):
네 어머니는 출산 후에 대체로 평안하지만, 어제부터 때때로 복통이 조금씩 있어서 다소 걱정이다.
1562년 12월 17일자:
네 어머니는 어린 네 동생들을 데리고 오천에서 잘 지내고 있다.
1564년 8월 1~5일자:
약수탕[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오전약수탕. 종기와 피부병 치료에 특효.]에 갔던 네 어머니 일행은 무사히 돌아왔고
1569년 7월 30일자:
네 어머니의 유종은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으니 먼저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1570년 3월 4일자:
네 어머니의 병은 차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심해진 것도 아니어서 늘 병이 아니려니 하고 지내고 있다.
1570년 7월 17일자:
네 어머니의 병이 차도가 없어서 걱정이다. 약수탕에 한 차례 다녀오지 않을 수 없겠다. 네 어머니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수탕에 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1570년 9월 29일자:
이 달 27일에 부친 편지를 받아보고 네 어머니의 병이 차도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침으로 종기를 터뜨려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했다니 몹시 걱정이 된다.
1570년 10월 10일자:
네 어머니의 병은 지금 좀 어떠냐? 아무쪼록 속히 의원에게 보이고 침을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1570년 10월 13일자:
네 어머니는 아직 유종이 곪지 않아서 침을 놓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니 너무 걱정된다.
1570년 10월 19일자:
네 어머니의 유종은 아직 곪지 않아서 속히 침을 놓을 수 없는데다가, 종기로 인해 이곳저곳 통증이 있다니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1570년 10월 23일자:
어제 부친 편지에서 네 어머니가 팔에 침을 맞은 뒤로는 좀 덜해졌다고 하니 기쁘다. 두 번째 침을 맞고 나서는 어떠냐? 원래의 종기는 약을 써도 오래도록 곪지 않으니, 안에 종기의 뿌리가 없어서 고름이 나오지 않는 그런 증세는 아니냐?
1570년 10월 25일자:
어제 부친 편지를 받아보고 네 어머니가 침을 맞은 곳의 통증이 조금 덜하여졌음을 알게 되었다. 기쁜 일이다. 유종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는 언제 침을 놓을 수 있느냐? 이곳저곳에 생긴 통증은 또 좀 어떠냐?
1570년 10월 29일자:
네 어머니는 요 며칠 사이에 좀 어떠냐? 아직도 침을 놓지 못하느냐?
추신
네 어머니의 병은 차도가 있다니 기쁘다. 다만 네 어머니는 다른 증세가 아직 낫지 않아서 걱정이다.
1570년 11월 1일자:
네 어머니는 침을 맞은 뒤로 통증이 더하여 병이 더 심해진 듯하다고 하니 몹시 걱정이 된다. 어제 침을 맞은 뒤로는 증세가 좀 어떠냐? 침을 맞은 뒤에는 독기가 빠져나오는 것이 보통이다만, 지금은 이와 상반되니 무엇 때문에 그런지 걱정이 되어 더욱 속이 탄다. 유종이 있는 바로 그 자리는 아직도 곪지 않아 오래도록 침을 놓지 못하고 있으니, 병이 오래 끄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니겠느냐? 어찌해야 하느냐?
1570년 11월 3일자:
순도가 와서 하는 말이, 네 어머니의 증세가 더욱 중해졌다고 해서 너무 걱정되었다. 그러나 지금 네 편지를 받아보고 그제 침을 맞은 뒤로 다시 통증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시적으로 통증이 덜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침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몹시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제 침을 맞은 뒤로는 또 좀 어떠냐? 의원의 말이 이치에 맞는 듯하니, 종기가 곪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이 좋은 방책은 아닌 것 같다.
1570년 11월 7일자:
네 어머니의 병이 덜하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유종이 있는 그 자리에 침을 맞은 뒤로는 좀 어떠냐? 지금 걱정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상 편지의 내용은 <안도에게 보낸다: 퇴계가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정석태 옮김, 2005년 도서출판 들녘 발행)에서 인용한 것이다.)
* 1570년 11월 17일자:
퇴계 이 황(1501~1570)이 고봉 기대승(1527~1572)에게 보낸 편지.
"[전략] 아들 준의 아내가 몇 해 동안 유핵을 앓아 왔는데, 올 가을부터 그 증세가 종기로 발전하여 아프다가, 요 며칠 사이에는 매우 위독하여 끝내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너무 급박하여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후략]"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김영두 옮김, 2003년 소나무 발행), p.346에서.)
* 1571년 2월 23일 봉화 금씨 별세.(1521년 생 정도로 볼 때 만 48세쯤 됨.)
(<안도에게 보낸다: 퇴계가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정석태 옮김, 도서출판 들녘 2005년 발행), p. 281 해설 참고.)
참고로 무지개 님의 댓글을 달아놓았다.
무지개
그런 역사 기록이 있었군요. 몇 해 동안 유핵을 앓았다는 내용이 간단한 종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요. 1564년, 약수탕에 가셨을 때 이미 유방암이 있지 않았었나 하는 의심도 갑니다만 정확히 알 수는 없고요. 적어도 몇 해를 거쳐 암이 전이가 되어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돌아가실 때 나이가 48세 정도로 생각이 됩니다. 젊은 사람에게 걸리는 암이 대체적으로 더 악성이지요... 그 후 자손들에게는 (특히 딸들에게) 유방암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를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