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햇볕이 여인의 굽으로 올라간 스타킹 종아리를 라르고(largo)로 덥히고 찬바람은 차도에서 차 뒤를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며 인도를 곁눈질하였다. 수은주가 오늘은 온도계의 등골을 타고 올라가 섭씨 10도와 화씨 50도를 나란히 가리켰다. 숙인 고개 너머로 눈이 더 밝은 딸이 숫자를 읽어냈다.  
 

_섭씨 20도는 화씨 68도이고요.
_섭씨 10도 오르내리는 사이에 화씨는 18도를 움직여.
_섭씨 0도가 화씨 32도라는 걸 기억해요.
_온도계의 등골을 보고 공부를 하고 있네.
_등골 하시니 작가님의 글이 생각나네요.  

 

  강인하고 아름다운 등뼈의 선은 골짜기를 연상시켰다.

_등뼈의 선이 어떻게 드러났어?
_그가 내민 등 쪽으로 찢어진 셔츠의 사이가 벌어졌다. 그의 단단한 등뼈의 형태가 선명히 드러났다. 바로 앞의 두 문장이에요.
_박경리 작가는 대하소설 '토지'에서 이렇게 썼어.

 

  땀에 젖은 삼베 적삼이 달라붙어 등골이 드러나고 연신 땀방울이 얼굴에 흘러내리고 있다.

_옷 사이가 벌어져 드러나고 옷이 달라붙어 드러나고 그러네요.
_고수 작가들의 대조적인 눈길이 재밌지. 에밀리 브론테 시에서 실제의 골짜기를 이야기해보자. 

 

  신뢰와 실망(3연)

그렇지만 이 고요마저도

쓰라리고 불안한 생각을 자아낸다. 

벽난로 안에서 발갛게 핀 불의 아늑한 불빛에

깊은 골짜기가 눈에 갇힐 때가 생각난다.

붉은 히스가 덮인 황야랑 안개 덮인 언덕이 상상 속으로 들어온다.

그 곳은 저녁 어스름이 어둡고 쌀쌀하게 깔린다.

추운 산 속에 쓸쓸히도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누워 있으니.

내 가슴은 아프다, 말 없는 아픔으로.

부질없는 한숨을 거듭하다가 힘이 다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그들을 볼 길이 없다.

 

_독자가 에밀리 브론테 시의 진미를 알기 어렵네요. 이미지의 대조를 챙기고 살펴보면 작품의 묘미가 나겠어요. 시의 원문에서 드러나지 않은 표현은 괄호 안에 넣었어요.

 

(벽난로 속의) 발갛게 핀 불 v 깊은 골짜기의 쌓인 눈. 적(赤) v 백(白).
(붉은 히스가 덮인) 황야 v 안개 덮인 언덕. 적(赤) v 백(白).

 

(벽난로) v 황야. 닫힌 공간 v 열린 공간.
깊은 골짜기 v 언덕. 닫힌 공간 v 열린 공간.

 

(벽난로 속에서) 피는 불 v 깊은 골짜기를 가둔 눈. 수동 v 능동.
황야(에서 피는 히스) v 언덕을 덮는 안개. 수동 v 능동.

 

_번역 대본은 Penguin Classics의 '에밀리 브론테 시 전집'(Janet Gezari 교수 편, 1992)이고 나가오카 히로시 교수 번역 '에밀리 브론테 全 시집'(1991) 을 참고했어. 에밀리 브론테(1818~1848), 언니 샬럿, 동생 앤, 세 자매의 합동시집(1846년)에 실린 시야.

 

원문:    

'But, yet, even this tranquillity

Brings bitter, restless thoughts to me;

And, in the red fire's cheerful glow,

I think of deep glens, blocked with snow;

I dream of moor, and misty hill,

Where evening closes dark and chill;

For, lone, among the mountains cold,

Lie those that I have loved of old.

And my heart aches, in hopeless pain

Exhausted with repinings vain,

That I shall greet them ne'er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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