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이라 믿었다. 믿음에 이성은 필요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단숨에 무너졌다.
- P39

원도의 머릿속에는 버튼 하나로 원도를 박살내버릴 시소가 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과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이 같은 무게로 시소의 양 끝에 앉아 있고,
원도는 어느 쪽으로 몸을 기울일지 선택하지 못한 채 그 중간에 위태롭게 서 있다. 
- P42

산 아버지는 절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원도는 한 번도 산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으며, 산 아버지의 말처럼 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원도에게는 산 아버지의 모든 말이 틀린말이거나 혹은 그 말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이 바로 틀린 존재였다. 
- P56

네 엄마가 가르쳐줬어.
장민석의 말이다.
상대를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나면 바로 그 앞에서 웃으라고 했어. 웃어야 한다고 했어.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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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주인이 작은 창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원도를 부른다.
여기서 이상한 짓 하면 안 돼. 장사하는 데야, 여기.
- P13

공기를 훔치듯 조심스럽게 숨을 쉬며 원도가 묻는다. 사는 동안, 잊을 만하면 튀어나와 원도를 궁지로 몰아넣던 질문. 때론 가소롭고,
때론 무섭고, 때론 고통스럽던 질문. 글자나 소리로 이루어진 대답이 아닌, 원도 자체를 요구하던 그것.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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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잘 자거라. 아침에 깨우러 갈게."
"할아버진 제 자명종 시계잖아요."
소년이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 나이가 자명종 시계가 된단다."
노인이 대답했다.
- P26

바다는 아름답고 다정하기도 하지만 갑자기 돌변하여 잔인해질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저 새들은 작고 구슬픈 소리로 울면서 날다가 거친 파도의 수면에 주둥이를 처박고 먹이를 찾지. 저 새들이 이 험한 바다에서 살기에는 너무 연약하게 만들어진 게 아니냔 말이야.
- P32

노인은 바다를 생각할 때마다 ‘라 마르(la mar)‘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바다를 부를때 쓰는 스페인 말이었다.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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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세계에서는 나의 모든 결핍, 이루지 못한 꿈,부서진 사랑과 상처, 거부와 거절의 경험이 모두 내 자산이다. 
- P178

나폴리에 머무는 동안 인연을 나눈 사람들-표정과 몸짓이 크고 감정 표현이 풍부한 이탈리아인들-이 나에게 베푼 친절한 호의 덕분이다. 그런 감각은 체험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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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써놓은 책을 남에게 해석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남의 세방살이를 하면서 고대광실을소개하는 복덕방 영감 모양으로 스물 다섯에 죽은 키츠의 <엔디미온> 이야기를 하며, 그 키츠의 죽음을 조상하는 셸리의 <아도니스> 같은 시를 강의하며 술을못 마시고 산다.
- P97

저많은 아름다운 노래들은 또한 눈물을 머금고 있지 아니한가.
도시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비가 내린다. 
이 ‘비 내리는 마음‘이 독재자들에게 있었더라면, 수억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P102

언젠가 나 아는분이 어떤 여인보고 "그렇게 싸울 바에야 무엇하러 같이 살아, 헤어지지" 그랬더니 대답이 "살려니까 싸우지요 헤어지려면 왜 싸워요" 하더란다.
- P111

30년 전이 조금 아까 같을 때가 있다. 나의 시선이 일순간에 수천 수만 광년(年)밖에 있는 별에 갈 수 있듯이, 기억은 수십 년 전 한 초점에 도달할 수 있는 까닭이다.
- P127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 P128

하늘에 별을 쳐다볼 때 내세가 있었으면 해보기도한다.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해본다.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 하고 한숨지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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