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직은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순간은 블루가 방을 나서기 전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다. 한순간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것이. 블루가 의자에서 일어나 모자를 쓰고 방 밖으로 걸어 나와야 이야기도 끝날 것이다. - P299
삶은 우리가 손쓸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삶은 우리가 죽으면 같이 죽고, 죽음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런 일이다. - P303
그의 삶은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간 순간에 멈춰 있었고 이제 그는 내쪽에서 본다면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속해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내가 마음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유령, 선사 시대의 단편, 더 이상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인 셈이었다. - P305
팬쇼를 생각할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는 말은 그녀가 자기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다음에 그녀는 계속해서 그것은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팬쇼가 미웠다는, 설령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가 자기를 버린 것에 화가 났다는 뜻이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내게는 그 말이 너무도 솔직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나는 자기의 감정을 그처럼 숨김없이, 통상적인 예의를 싹 무시해 버리고 말하는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 P309
그는 아주 일찍부터 자아를 형성했고, 우리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이미 명확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형체도 갖추지 못한 채 한순간 한순간 무턱대고 허둥대며 끊임없는 소란에 휩쓸렸던 반면, 팬쇼는 분명히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말은 그가 빨리 성장했다는뜻이 아니라 그는 결코 자기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 적이 없었다-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 P328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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