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에 아이는, 여관방 창 너머로 아스라이 사위는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싶어진다. 흙펄을 핥는 파도의 거품이 흰빛인지 황금빛인지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 P43
세상은 차츰 어두워질 것 같지만, 그렇게 어두워지고 말 것 같지만, 해가 사라지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는 깜짝 놀랄 만큼 환해진다. 마치 꿈속같이, 그 순간만큼 세상이 아름다운 때는 없다. - P49
아이가 눈을 꿈벅꿈벅하는 동안 엄마는 아이의 가슴에 서늘한 금이 그어지도록, 그래서 그만 눈물이 날 만큼 매몰차게 아이의 어깨를 떠밀고는 돌아앉아버렸다. - P83
다음날 아이가 잠에서 깨었을 때 엄마는 없었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고, 그렇다고 아주 떠난 게 아니라 곧 돌아올 것이라고도 희망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 P91
어린애처럼 들먹이는 아빠의 어깨를 올려다보면서 괜찮아요, 라고 말해주고 싶던, 그 찢어지는 것 같던 마음이었을까하고 생각한다. 이 마음을 계속해서 갖고 있는 것이 괴로와서 엄마는 이 마음을 버렸을까, 그래서 우리 둘을 떠나버린 것일까 하고 생각한다. - P98
해질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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