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어려운 학문이다.
국어로도 어려웠지만 갓 어학 시험을 통과한 실력으로 이탈리아에수업을 듣기란 참으로 고단한 일이었다.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셨다는 사실과, 이 계시의 신비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인격적 관계가 성립한다는 강의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쉽지 않았다. 
- P84

공 수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한국에선 아이들이 학교에 책가방을 메고 가지만, 수단에선 넓적한 돌을 들고 가요. 그리고 흙바닥이 교실인 야외 학교에서 돌을의자로 사용하지요. 그 야외 학교도 비가 쏟아지는 5월부터 11월까지 우기에는 수업을 할 수 없어요…………."

- P88

제2의 성소! 이 용어는 두 번째the second 성소가 아니라 ‘또 다른 성소‘라는 의미이다. 살레시오회 수도자들은 "선교는 또 다른 성소이다", "선교는 제2의 성소이다"라며 선교 성소를 강조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니 이태석 수사가 ‘제2의 성소‘가 실현될 수 있기를 꾸준히 기도한다고 쓴 것은, 이번에 아프리카에서 혹은 이미 이탈리아에서 ‘선교사 성소‘라는 ‘또 다른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는 뜻이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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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태석 신부 생전에 설립한 (사)수단어린이장학회와함께 준비한 ‘이태석 신부의 공식 전기다.
- P7

당시 천주교 주택에 사는50호 가구는 모두 송도성당을 다니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 결과 26호집의 둘째 아들 이태영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사제, 셋째 아들 이태석은 살레시오회 선교 사제가 되었다. 35호집에서는 오창일 오창열 형제가 부산교구 신부가 되었고, 50호집의김해결은 평신도로서 30년간 교회와 부산의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한 공로로 ‘교황 십자훈장‘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의 성금으로 지은 천주교 주택단지가 신앙의 못자리가 된 것이다.
- P23

"태석아, 나는 와 내랑 같이 가노? 내가 불쌍해 보이나? 와 내랑같이 가는데?"
"아니다. 영수야, 나는 그런 생각 하지 않는다."
"다른 애들은 다 나를 피하는데 나는 와 내랑 같이 가는데?"
"우리 집이 소년의 집 가는 중간에 있다."
- P28

태석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신부가 되지 않으면 무엇이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인가? 태석은 깊은 고민 끝에 의사가 되어 그들에게 의술을 베푸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만 해도 국가 의료보험이 없을 때라 병원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몸이 아파도 치료받는 일이 요원하기만 했다. 그는 대학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동네에 개인 병원을 차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미래의자신을 그려보았다.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곧 나에게 해준 것과 같다." 바로 의사가 되는 것이 성경 구절을 실천하는 방법이자, 신부가 아니어도 가난한 이웃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P37

무고한 광주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총칼에 어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제들의 증언은 인간의 존엄과 정의를 지키려는 일종의 봉화였다. 성당은 봉화대가, 신부들은 봉수군이 된 것이다.
- P38

십자가 앞에 꿇어 주께 물었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이들
총부리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들을 왜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하셨지
사랑,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
- P40

이태석에게는 의사가되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였다. 그래서 전방에 근무할 때도 동네를 다니며 아픈 이들을 치료했다. 가끔 틈을 내서 송도성당에 가면 중·고등부 후배들에게 "순간순간의 자기 십자가를 잘 지고 가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하루하루의 삶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봉헌하는 신앙인다운 마음가짐을 강조한 것이다. 
- P44

불우하고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한 수업은 돈보스코가 수도회를 창설할 당시부터 이어온 ‘예방교육법‘의 하나였다. 예방교육은 청소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질과 역량을 모든 차원에서 일깨워 온전하게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이끄는 교육법으로, 전 세계 살레시오 공동체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훗날 이태석이 톤즈의 돈 보스코 학교에서수학과 영어를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학생들과 음악을 통해 소통한 것은 수도회 초기 양성 기간 동안 공부한 예방교육의 실천이었다.
- P63

그리고 자기 전에 하루를 돌이켜보면서 성경이나 십계명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는지 생각하는 ‘양심 성찰‘을 했다. 가톨릭에서 ‘양심‘은 사제가 끝까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사제 지원자는 매일 저녁 양심 성찰을 통해 양심을 지키는 훈련을 했다. 
- P64

살레시오회 사제가 되는 과정
살레시오회에서는 사제가 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처음에 입회하겠다고지원하면 지원자이다. 이들 중에는 평수사 지원자도 있고 사제 지원자도 있다.
지원기를 보낸 후 본격적으로 수도회의 영성과 정신을 배우기 위한 수련기를준비하는 단계인 예비 수련기 이후 수도 생활의 꽃이라 불리는 1년의 수련기가 있다. 수련기를 마치고 첫 서원을 하면 정식으로 ‘수사‘가 된다. 그 후 신학대학 과정을 끝내고 실습기를 거쳐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데, "가난하고 불우한청소년을 위해 현대의 돈 보스코가 되어 일생을 다 바치는 삶을 살겠다"는 마지막 청원으로 종신서원을 하면 초기 양성기가 끝난다. 이후 사제 지망생들은사제가 되기 전 단계인 부제품을 받고, 1년 후에 사제품을 받는다.
이태석은 1991년 입회해서 1994년 1월에 수사가 되었고, 2001년 6월에 사제품을 받아 내전 중인 수단의 톤즈 살레시오 공동체로 떠났다. 10년 동안 살레시오회 사제로 양성을 받은 후 아프리카 선교 사제가 된 것이다.
- P65

형, 제가 그때 젊은이성찬제에 청년 봉사자로 참여했거든요.
‘증오와 폭력만으로는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에 깊은감명을 받았어요.
  - P68

살레시오회 창설자 돈 보스코는 오라토리오를 기도와 교육의 장소인 동시에 청소년 악대가 음악을 연주하는 놀이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친구이자 아버지로서청소년이 정직한 시민과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래서살레시오회에서 오라토리오는 단순히 공간적 의미를 넘어 돈 보스코의 교육 정신과 방식을 종합적으로 일컫는 말로도 사용한다. 훗날 이태석 신부가 톤즈의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내전으로 폐허가 된 학교를 재건하고 악단을 만든 이유도 오라토리오를 통해 톤즈의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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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처럼 시간을 거슬러올라가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오늘 당신의 뇌는 다르게 예측할 것이고 다르게 행동할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세상을 다르게 경험할 것이다.
- P118

오늘 배우는 모든 것은 내일을 다르게 예측하도록 뇌에 씨를 뿌려줄 것이다.
- P118

만약 당신이 뭔가 달라지기를 원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도전해보기를 제안한다. 논쟁거리가 되는 정치적이슈 중 당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하나 택하라. 미국에서라면낙태, 총기, 종교, 경찰, 기후변화, 노예제 배상, 또는 당신에게 중요한 지역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매일 5분 동안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보라. 당신의 머릿속에서 그들과 논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만큼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해서 당신과 정반대 신념을 가질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다.
- P120

당신이 만약
"그들에게 전혀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믿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면, 덜 양극화된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나아간 것이다. 
- P120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신발끈을 묶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오늘 충분히 연습해서 익한 행동을 내일 자동으로 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 행동이 자동화된 것은 당신의 뇌가 갖가지 행동을 개시하는 각기 다른예측을 하도록 스스로 세무조정하고 가지치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 주변의 세상을 다르게 경험하게 된다. 
- P121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사랑하고 있는 것이 낫다" 신경과학 용어로 말하자면, 이별을 하면 당신은 괴로워서 죽을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외로움은 당신의 죽음을 실제로 앞당길 수 있다. 
- P130

뇌가 예측하기 어려운 일을 처리하려면 신진대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사람들이 자기의 기존 믿음을강화해주는 뉴스나 견해로 이루어진 이른바 반향실echochamber 에 안주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따르는 불편함과 신진대사 비용이 줄어든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울 확률 역시 떨어뜨린다.
- P131

신경계는 단지 거리뿐만 아니라 수세기 전에 일어난 사건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성경이나 쿠란 같은 고대 문헌에서 위로받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에게서 신체예산을 지원받은 것이다. 
- P132

그러나 회복할 기회 없이 반복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효과는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스트레스의 바다에서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면서 신체예산이 심각한적자를 쌓아나가는 것을 만성 스트레스라고 한다. 이는 그 순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만성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이 경과하면서 뇌를 조금씩 갉아먹어 몸에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 P135

신경계에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다. 신경계에 가장나쁜 것도 다른 사람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를 인간 조건의근본적인 딜레마로 인도한다. 우리 뇌가 생명과 건강한 몸을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동시에 많은 문화권에서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매우 중시한다.
- P137

따라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은 아주 실질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뇌의 배선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기들(3강)과 우리 자신을(4강)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생각하는 (또는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타인들에게도책임을 다해야 한다. 좋든 싫든 우리는 자신의 행동과 말을가지고 주변 사람들의 뇌와 몸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들도 우리에게 뭔가를 돌려주고 있다.
- P143

우리는 또한 마음과 몸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고, 몸과 마음 사이의 경계에는 구멍이 많아 서로 투과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당신의 뇌에서 일어나는 예측은 당신의 몸이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그런 뒤 감각하고 경험하도록 돕는다.
- P149

다양성은 종이 생존하는 데 필수이기에 인간으로서는 여러 종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 P150

뇌는 신체 예산을 관리하기 위해 지속해서 예측을 해내며,
이러한 예측이 현재 당신의 문화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신체예산은 적자를 누적해 병에 걸리기 더 쉬워진다. 
- P160

이러한 신체예산을 과학에서는 알로스타시스라고한다 알로스타시스는 뇌가 진화하는 방식과 작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알로스타시스는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는 예측적 프로세스이며, 신체가 유지하고자 하는 어떤 하나의 안정된 지점을 찾기 위한 프로세스가 아니다. 
- P190

당신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이 주제에 대한 일부 자료는 나의 2018년 TED 강연<당신이 감정에 지배되는 게 아니라 뇌에서 감정을 만드는것이다 You aren‘t at the Mercy of Your Emotions Your Brain Creates Them>에서가져왔다. 아래 웹페이지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7half.info/ted
- P216

"우리가 판타지 세계를 만드는 것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머무르기 위해서다." 관타지 세계에 대한 이 인용문은 작가이자 만화가인 린다 배리의 저서 《그게 뭐냐하면What It is》에서 가져왔다.
7half.info/barry
- P233

1.우리 안에서 마치 감정과 이성이 맞붙어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다양한 정신적 경험을 만들어내는 뇌
2. 너무 복잡해서 비유로 설명하면 그것을 지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뇌
3. 스스로 재배하는 것에 너무나 능숙해서 실제로는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뇌
4. 환각을 매우 잘 일으켜서 우리가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믿게 하고, 우리가 움직임을 반응으로 착각할 정도로 정말 빨리 예측하는 뇌
5. 전혀 눈에 띄지 않게 다른 뇌를 조절하여 우리가 서로별개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뇌
6. 너무 많은 종류의 마음을 만들어내어 그것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인간 본성이 있을 거라고 추정하게 만드는 뇌
7. 사회적 현실을 자연계로 착각할 정도로 자신이 발명해낸 것들을 너무 잘 믿어버리는 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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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JUDGE YOU BY YOUR BOOKSHELF.
- P1

고백할게.
나는 책에 단단히 빠졌어.
남들 앞에서도 책을 읽어.
무슨 물건이든 책갈피로 써.
허구와 현실을 혼동해.
도서관 연체료 미납자로 수배 중이야.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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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우리의 사랑을 어렵게 만든다. 그 수많은 다름을 견주어보는 동시에 그 다름을 감내해내야 한다는 점이 우리의 사랑을 아프게 만든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는 평소 자신에게조차 내색하지 않던 스스로의 속마음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개 오랜 상처나 열등감 같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의사랑을 외롭게 한다.
- P94

사월, 서풍이 들면 매화나무의 흰 꽃들은 얼마쯤 바람을타고 날아가 낯선 이의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런 일은 슬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 P102

사람에게 미움받고.
시간에게 용서받았던.
- P103

오전, 남해의 한 마을에 도착한 나는 바다의 푸른빛과 하늘의 푸른빛을 번갈아가며 눈에 담아두었다. 
- P105

또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것들 가운데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내고 싫어하는 것들로부터 애써 마음을 피해 다니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 P108

일상의 공간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주고 여행의 시간은 그간 우리가 지나온 익숙함들을 가장 눈부신것으로 되돌려놓는다.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 P110

나는 왜 거절도 못하고 이렇게 일을 받아두었을까 고민하다. 그것은 아마 내가 기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니 한없이 우울해졌다. 가난 자체보다가난에서 멀어지려는 욕망이 삶을 언제나 낯설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을까.
- P116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적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여러 사실들을 모아희미하게나마 진실의 외연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몇번이고 몇 번이고 죄송한 마음을 드립니다.
- P144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꼭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상까지는 못되지만 사유하며 살아가고 혁명은 어렵지만 무엇인가를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내가 가닿고 싶어하는 어른됨 또한 그리 비범한 것은아니다.
- P146

나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잘 구분이 되지앓던, 이해는 가지만 딱히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던 말들.

- P148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 P157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했고 간결했지만 점점 억울한 마음이 짙어졌다. 내 삶이 점점 시와 문학에서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 탓이었다. 맹목에 가까울 정도로 썼던 습작시들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지만 이십대 초중반,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애를 쓴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 P177

 다만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쓰이는 일만으로 저마다의 능력과 힘을 가지는 것이라 믿는다. 마치 마음속 소원처럼. 혹은 이를 악물고 하는다짐처럼.
- P180

시를 짓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아마이것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이 세상에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고 이 숱한 사라짐의 기록이 내가 쓰는 작품 속으로 곧잘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 P181

어쩌면 유서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에대한 용서와 화해를 넘어 자신이 스스로의 죽음을 위로하고애도하는 것이므로.
- P183

다시 새해가 온다. 내 안의 무수한 마음들에게도 한 살씩 공평하게 나이를 더해주고 싶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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