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여행자의 삶이 즐거운 만큼 괴로움도 많다는 사실을깨달았다. 항상 팽팽히 긴장하고 있어야 했고, 휴식을 좀 취할라 치면새로운 것이 나타나 편안한 휴식에서 흔들어 깨웠다. 새로운 무언가가 주목을 끌었다가, 그 또한 새로운 즐거움들이 나타나면 버림을 받아야 했다.
- P219

오두막집 사람들이 전부 궁핍과 처참한 가난으로 감각이 마비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 사건에 틀림없이 엄청나게 놀랐으리라. 사실 나는누구의 시선도 간섭도 받지 않고 살 수 있었으며, 내가 준 음식과 옷에 대해 변변한 감사의 말도 듣지 못했다. 시련이란 사람들의 조잡하기 짝이 없는 감수성마저 그토록 무디게 만드는 법이다.
- P222

그러나 그녀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사고하고 추론하는 동
‘물이 될 것이 분명한데, 자기가 창조되기 전에 맺어진 약조를 거부할수도 있었다. 서로를 싫어할 수도 있었다. 이미 살아 있는 피조물은일그러진 자기 형상을 증오하는데, 눈앞에 똑같은 형상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더 큰 증오심을 품지 않을까? 그녀 또한 그를 혐오하며 등을 돌려 인간의 우월한 아름다움을 열망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나면 그는 다시 혼자 남을 것이고, 자기와 같은 종족에게도 버림을 받는다면 이 새로운 도발에 분노가 폭발할지 모른다.
- P225

우리 감정이란 얼마나 변덕스러우며, 이 참담한 불행의 극한에서도끝내 놓지 못하는 목숨에 대한 애착이란 얼마나 기이한 것인가! 
- P233

희한한 불운의 연속으로 이토록 참담하게 전락한 분께 낯선 사람의 연민이 큰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건 잘 압니다. 
- P242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역시 핍박과 고뇌에 시달린 저 같은 사람에게 죽음이 뭐가 그리 나쁜 일이겠습니까?
- P243

과거는 끔찍한 악몽으로 여전히 눈앞에 선연했다. 내가 몸을 실은 배가 지긋지긋한 아일랜드의 해안에서 멀어지라고 불어오는바람이 나를 에워싼 바다가 일말의 미망에 빠지지 않도록 나에게 단단히 일러주고 있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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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누군가 격려하는목소리로 제가 옳다고 대답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용기와 결단은 확고하지만, 희망은 기복이 심하고 사기도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이제는 길고 어려운 여행을 떠나야 해요. 이 급박한 여행은 제 안에있는 불굴의 의지를 모두 발휘하도록 요구할 겁니다. 
- P20

안녕히,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사랑하는 우리 마거릿 누님. 하늘이누님의 머리 위에 소나기처럼 흠뻑 축복을 내리시길, 그리고 저를 보우해주시길. 
- P21

그러나 어린 시절의 그림을 하나씩 그려나가면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 한 발 한 발 훗날의 불행으로 나를 이끈 사건들을 절대 생략해서는 안 된다. 훗날 내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그 걱정의 탄생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다 보면, 그것이 마치 산을 따라 흐르는 냇물처럼 미미하고 거의 잊힌 원천에서 솟아나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그냇물은 흘러가면서 점점 불어 격류가 되었고, 결국 내 모든 희망과 기쁨을 휩쓸어 가버리고 말았다.
- P46

기분 좋게 체념하고 죽음을 맞으려 애써야 하니까. 그리고 너희들을 다른 세상에서 만나게 될 거라는 소망을품어야겠구나.
- P53

이렇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끝났다. 그 하루는 미래의 내 운명을결정지었다.
- P60

이야기를 끝까지 주의 깊게 듣고 나면, 내가 그 주제에 대해 말을 아끼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당시의 나처럼 몸도 사리지 않고열의에 들뜬 그대를 파멸과 명약관화한 불행으로 이끌 수는 없으니.
나로부터 배우도록 하라. 가르침을 듣지 않겠다면 적어도 내 사례를보아 깨닫도록 하라. 지식의 획득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성이 허락하는 한계 너머로 위대해지고자 야심을 품는 이보다 고향을 온 세상으로 알고 사는 이가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
- P65

지식의 추구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지금 매진하고 있는 공부가 사랑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어떤 연금술로도 합성할 수 없는 소박한 즐거움을아끼는 취향을 망가뜨리려 한다면, 그 공부는 분명 불법적이며 인간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법칙이 항상 준수되었다면, 그리하여 어느 한 사람도 가족의 애정이 주는 평온을 깨뜨리는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는 노예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이사르는 나라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갖지 않았을 것이요, 아메리카는좀 더 서서히 발견되어 멕시코와 페루 제국은 파멸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 P69

클레르발은 처음에는내가 자기를 만나 기뻐서 이토록 유별나게 기운이 뻗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나를 살펴보고는 이해할 수 없는 광기가내 눈빛에 서려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시끄럽고 무절제하고냉혹한 내 너털웃음에 두려움을 느끼고 경악했다.
- P77

앙리는 쾌활한 내 모습에 기뻐했고 진지하게 공감해주었다. 자기영혼을 채우는 감각들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날 즐겁게 해주려고 애썼다. 이럴 때 드러나는 그의 정신적 자산은 참으로 놀라웠다.
- P90

어서 와라, 빅토르, 암살자에 대한 깊은 복수심이 아니라 평화와관용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오너라. 우리 마음의 상처가 곪지 않고치유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비탄의 상가에 들어오너라. 하지만 원수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널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애정만 품고 와야 한다.
통한에 잠긴 사랑하는 아버지가
- P94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 애를 불쌍하게 여겨서는 안 돼 살아남은 사람들이가장 괴로운 법이야. 시간밖에는 아무 위로가 없으니까. 죽음은 악이아니라든가, 인간의 마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영원한 부재 앞에서도절망을 극복한다는 식의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지. 카토(로마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마저도 동생의 시신 앞에서는 흐느꼈으니까.
- P95

그 시간 동안 모든 게 얼마나 변했을까? 확실한 건 급작스럽고 황막한 변화 한 가지가 일어났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수천 가지 작은 상황들이 서서히 또 다른 변화들을 일으켰으리라. 훨씬 조용히 진행된 변화들이겠지만 결정적 의미가 덜한 건 아니었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었다. 뭐라 형용할 수도 없는 수천 가지 이름 없는 죄악 때문에온몸이 떨렸다.
- P96

괴물이 처음 생명을 얻었던 날로부터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이것이 과연 첫번째 범죄일까? 이럴 수가 살육과 고통에서 쾌감을 찾는 저주받은 괴물을 내가 이 세상에 풀어놓았구나. 그놈이 벌써 내 동생을 살해하지 않았던가?
- P99

괴물은 바로 나 자신의 흡혈귀, 무덤에서 풀려나 내게 소중한 것들을 모두 파멸로 몰아넣을 나 자신의 생령이었다.
- P100

"빅토르, 아비도 괴롭다는 생각을 넌 하지 않느냐? 누구도 내가네 동생을 사랑한 만큼 자식을 사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이 말을 하는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슬픔을 과하게 드러낸다면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큰 불행을 느낄 터인데 그걸 막는 것도 우리의의무가 아니겠느냐? 또한 너 자신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지나친슬픔은 발전도 즐거움도 가로막고 심지어 일상생활까지 방해해서,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만들어버린단 말이다."
- P120

 아! 어째서 인간은 짐승보다 훨씬 우월한 감수성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일까? 그로 인해 훨씬 더 유약하고 의존적인 존재가 될 뿐인데, 우리의 욕망이 굶주림, 갈증, 그리고 성욕에 국한되었다면, 거의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바람 한줄기, 우연한 한 마디. 아니면 그 말로 전달되는 풍경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가.
- P129

사람들은 모두 끔한 흉물을 저주하지. 그러니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물보다 비참한 나를 얼마나 증오하겠는가! 
- P131

 나는 네 피조물이고, 우리는 둘 중 하나가 죽음을 맞지 않는한 끊을 수 없는 유대로 얽혀 있다. 당신은 나를 죽이려 하겠지. 감히당신이 이렇게 생명을 갖고 놀았단 말인가? 나에 대한 당신의 의무를다하라. 그러면 나도 당신과 나머지 인간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겠다.
내 조건에 동의한다면 나도 인간들과 당신을 평화롭게 내버려두겠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살아남은 당신 친구들의 피로 배부를 때까지 죽음의 밥통을 채울 것이다.
- P132

진정해! 저주받은 내 머리에 증오를 쏟아붓기 전에 내 말을 한 번만들어다오. 당신이 굳이 더 불행하게 만들려 하지 않아도 나도 이만하면 충분히 괴로움을 겪지 않았는가? 삶이 고뇌의 연속에 불과하더라도, 내게는 소중한 것이니 지킬 생각이다.  - P132

나야말로 당신의 정의, 심지어 당신의 관용과 사랑을 누구보다받아 마땅한 존재니까. 기억하라. 내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타락한 천사가 되어, 잘못도 없이 기쁨을 박탈당하고 당신에게서 쫓겨났다. 어디에서나 축복을볼 수 있건만, 오로지 나만 돌이킬 수 없이 소외되었다. 나는 자고 선했다.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다시 미덕을 지닌 존재가 될 테니.
- P133

어떻게 해야 당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아무리 애원해도 자기가 만든 피조물에 호의를 보일 수 없단 말인가? 이렇게 당신의 선의와 연민을 갈구하는데도? 내 말을 믿어라,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사막 같은 산맥과 음침한 빙하들이내 안식처다. 수많은 날들을 여기서 방황했다. 얼음 동굴도 나는 두렵지 않다. 그러니 여기가 인간들이 불평하지 않는 내 유일한 거주지다.
이 황량한 하늘을 나는 반가이 맞는다. 저 하늘은 당신의 동포들보다내게 훨씬 더 친절했다. 무수한 인류가 내 존재를 안다면, 당신처럼무장을 하고 나를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그러니 나를 혐오하는 그들을 어찌 내가 증오하지 않겠는가?

- P133

동정심을 갖고 날 경멸하지 말라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저버리는 불쌍하게여기든 하라 그때는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 그러나 내 말을들어라 죄지은 자라 해도, 아무리 잔인한 죄인이라 해도, 인간의 법은 선고를 내리기 전 변론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가. 내 말을 들어라,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내게 살인죄를 씌우고, 양심에 거리낌도 없이 피조물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 오, 인간의 영원한 정의를 찬양할지어다! 하지만 살려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 말을 들어달라. 그다음에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의지가 있다면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작품을 파괴하도록 하라
- P134

내가 인간 세계를 영원히 떠나무해한 삶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인간들을 응징하고 당신을 순식간에파멸시킬 악마가 될 것인지는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다.
- P135

그렇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불행하다면, 나처럼 불완전하고 고독한 존재가 비참하다는 게 조금은 덜 이상했다. 
- P147

 하지만 내가 정말로 끔찍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나자, 쓰라리게 아픈 좌절과울분의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 이 참혹한 기형이 어떤 치명적인결과를 낳을지 그때는 온전히 알지 못했다.
- P151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인간은 어떤 때는 온갖 사악한 원칙들을 이어받은 후계자에 불과해 보이다가, 또 어떤 때는 고귀하고 신성한 특질을 한 몸에 체현한 듯했다. 
- P159

우울한 생각을 쫓아버리려 애썼지만, 앎과 함께 슬픔은 커져만갔다. 오. 차라리 내가 태어난 숲에 영원히 머물렀다면 굶주림과 같증과 열기 외에는 아무 감각도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 P160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내 개인적 감정과 처지를 훨씬 더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읽고 대화를 경청하는 책 속의 인물들과나 자신이 비슷하면서도 한편으로 이상하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공감하고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내 마음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았고 누구와도 유대가없었다. ‘내 떠나는 길은 자유로우니 내 죽음을 슬퍼할 사람 하나없었다. 육신은 흉측했고 덩치는 거인과 같았다. 이건 무슨 뜻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어디서 왔을까? 내 목적지는 어디일까? 이런 질문들이 끝없이 떠올랐지만 해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 P172

 저주받은 창조자! 어째서 자기마저 역겨워 등을돌릴 흉악한 괴물을 빚어냈단 말인가? 신은 연민을 갖고 자신을 본떠인간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내 모습은 당신의 더러운 투영이고, 닮았기 때문에 더욱 끔찍스럽다. 사탄에게는 그를 숭배하고 격려해줄 동료 악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미움을 받는다.
- P174

그들이 경멸과 공포로 내게 등을 돌릴 거라는생각은 감히 떠올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이 그 집 문관을찾아왔다가 쫓겨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내가 바라는 건 약간의양식이나 휴식보다 훨씬 소중한 보들이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은 천절과 연민이니까.
- P176

저는 불행하고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이 세상에 친척도 친구도 하나 없습니다. 제가 찾아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은 저를 본 적도 없고 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합니다. 저는 두려운마음만 가득할 뿐이지요. 실패하면 영원히 이 세계의 추방자가 될 테니까요.
- P179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인간들 가운데 나를 불쌍히 여기거나 도와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원수들에게 친절한 온정을 느껴야 마땅할까? 그렇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인류라는 종족과 영원한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그 누구보다나를 빚어내고 이 견딜 수 없는 불행 속으로 밀어낸 그자와의 전쟁을.
- P183

물론 당신에게는 증오뿐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감정도 없고 심장도 없는 조들! 내게 지각과 정념을 주고, 인류의 경악과 경멸을 한 몸에 받도록 나를 내쳐버리다니 그러나 동경심과 보상을 요구할 사람도 당신뿐이었기에인간의 탈을 쓴 다른 존재로부터 받고자 애썼던 그러나 끝낸 받지 못한 정의를 당신에게서 얻어내기로 결심했다.

- P187

박수를 치며 나는 외쳤다.‘나 역시 절망을 창출할 수 있다. 내 숙적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아니야. 이 죽음이 그에게 절망을 가져다줄 테고 천여 개의 다른 불행들이 그를 괴롭히고 파멸시킬 것이다.
- P191

 나는 외롭고 불행하다. 사람들은 나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기형이고 추악한 존재라면 날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내 반려자는 나와 똑같은 종족이고 같은 결함을 가져야만 한다. 당신은 바로 이런 존재를 창조해내야 한다.
- P192

내가 받은 상처를 복수로 돌려줄 테다. 사랑을불러일으킬 수 없다면 공포의 근원이 될 테다. 누구보다 나의 창조주인 그렇기에 내 숙적인 당신에게 영영 꺼지지 않는 증오를 다짐하겠다. 
- P194

 그 어떤 존재든 내게 선의와 호의를 베풀어준다면 백배 천배로 갚아줄 것이다. 바로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전 인류와 화해를 맺겠다! 그렇지만 이는 실현 불가능한 꿈에 빠진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 P195

내 부탁은 합리적이고 결코 지나치지 않다. 나처럼 추악한 모습을 한이성(性) 피조물을 요구하겠다. 만족감은 적겠지만 그 이상은 절대얻을 수 없다면 만족하겠다. 물론 우리는 세상과 단절된 괴물들로서살아가리라.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아끼고 사랑하리라.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남을 해치지도 않을 테고 지금 내가 느끼는 이런 불행도 알지 못할 것이다. 오!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다오! 딱 한 가지 은혜를 베풀어 당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다오! 나도 내가 다른 존재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을 보고 싶다! 내 청을 거절하지 말아다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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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청했습니까, 창조주여, 흙으로 나를 인간으로 빚어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끌어올려달라고?
-「실낙원」
- P5

그리하여 나는 인간 본성의 기초 원칙들이 지니는 진실은 훼손하지않으려 애쓰되, 그 원칙들을 조합하는 데는 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서문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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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현재에는 당신이 열두살이던 시절의 세계에는 없던 것들이 아주 많고, 그것들은 대부분 당신이 그때 알던 것들보다 중요하다. 당신은 자신이 그 사실을 이해하는 엄마라는 점을 뿌듯하게 여기고 있다.
- P200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 공부를 못해서도, 운동을 못해서도 아니고 게임을 못해서 사람을 따돌린다는 점이다.
- P202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가끔 당신 아이가 되고 싶다.
- P205

그런데 게임이라니. 그런 건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해?
아이가 방금 털어놓은 이야기는 당신이 거의 처음 맞닥뜨린당신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숙제 같다. 그러나 당신은 아이가 따돌림을 당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고백했을 때에도 그렇게생각했다. 답이 없다고 느껴지는 일에 도전한 전적이 이미 있다.
- P206

그러니 어떤 면에서 이 소설은 그때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못했던 말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 P232

그런데 아이에게 공부, 음식, 체중, 키, 운동, 교우관계, 취미, 학생회활동 등 다방면의 자기계발을 요구하는 최신 입시제도는 왜 당신의 몫인 걸까. 이뿐만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감정, 인성, 소통과같은 학제 밖의 영역마저 개인의 경쟁력‘으로 간주되고, 이에 대한 책임 역시 여성 보호자인 당신에게 부과된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을 위한 투자 수단으로 바뀌는 과정은, 그것이 이미 젠더적으로 분업된 재생산 노동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러워진다.
- P238

 아, 열받네 진짜. 말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열이 받았다. 말을 하다보면 열이 났고, 열이 나니까 말을 하지말아야 했지만, 아우씨, 열이 났다. 
- P249

프로그래머는 여기에 남아 있는 관객을 위로하고 싶어했고, 나는 프로그래머를 위로하고 싶었다.
- P258

누군가는 ‘자기들끼리 찍고 자기들끼리‘
보고 자기들끼리‘ 해먹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자기들끼리라도 안 보면, 정말로 독립영화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 P263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요약되기를 거부하는 말이었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째서 이야기를 그렇게 써야 하냐고 반문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러나 나는 거부할 수도 반문할 수도 없었다. 
- P267

영화 찍으면서 애들 가르치는 거지. 근데 뭐 안 그런 게 어디 있어. 지혜의말처럼, 정말로 이건 영화만의 일도 아니었다. 대학교에서 예술을 배운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서 일을 했다. 문학을 전공했든, 음악을 전공했든, 무용을 전공했든 미술을 전공했든, 연기를 전공했든 내 동기들도 때에 따라 과외를했고 학원에서 일을 했다. 때에 따라 상업현장에서 일을 하기도했고, 때에 따라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때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이제 세상 모든 예술학교 사범대지. 
- P273

작은 극장과 작은 책방과 작은 공연장과 소극장이 사라지지 않기를, 그곳에서 우리가 조우하는 일이 벌어지기를,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반드시 문화예술체험의 불평등이 해소되어, 그 누구도 빠짐없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 P295

 즉 ‘어디선가 잘 해내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며 영화를 하는 삶이란, ‘어디선가 잘 해내고 있을 자신‘을 발견하려는 다짐이며, 그런 미래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들은 변변찮은 현실을 보고도 "계속 영화를 하게 되" (같은쪽)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 ‘0%를 향하여‘는 무언가가득차 있던 것이 줄어들어 비어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삶의어느 시점에서는 0이 있기만 하다면 언제고 ‘다시 하는‘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 P304

"아이의 이름을 지어줄게. 그리고 기억할게."
그러니까 우리는,
"낙관하자."
- P339

나는 낙관할 것이다. 사랑의 지속을그렇게 우리는 더 많은 사랑과 아름다움을!!!
- P350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말해야 할까.
하나의 세계에 대해 말해야 할까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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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간 잡지, 교과서, 단행본 등 잡다한 분야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끔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일들도 궁금해졌다. 가능하다면 여러 갈래로 난 샛길들을 함부로 걸어보기로마음먹었다. 조금은 엉망인 사람으로 남아, 당신과 함께 그 샛길들을 헤매고 싶다.
- P1

이쯤이면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모범적인 삶이나 정형화된 산책길을 권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단 몇 시간의 독서나 여행만으로 어떤 사람 또는 장소의 정수를 발견하는 일은 도저히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정수를 발견한 척하는 일 역시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을 벗어나 낯선 어딘가를 걸어볼것을 권하고 싶다. 낯선 길을 걷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그 길이 전에 겪어본 바 없이 급변할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될 테니까. 그리하여 당신도 어느 곳에선가 새롭고도 생소한 것들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 P7

이런 문제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고민한 결과 캠페인이만들어졌어요. #TAKE3FORTHESEA‘라는 해시태그를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혼자서 이 해변의 쓰레기를 모두 줍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서핑숍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는 서핑을 즐기려는 사람이니온종일 쓰레기만 줍고 있을 수는 없고요. 그러니 서핑을 하고 나서 각자 쓰레기 세 개를 줍자. 그래서 깨끗한 바다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자.
이런 의미예요. 저는 #바다사용료는쓰레기줍기‘라고 쓰고 있어요.
- P44

속초 여기저기에 건축봄이 일고 있어요.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속초가 점점 아름답지 못한 도시가 될 거라는 불안을 갖게 돼요. 그래서 속초 시민들은 난개발방지를 위한 조례 개정안‘을 청구하기 위해 서명운동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 P97

선착장에 묶인 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매듭을푼 그들 부부는 낯선 곳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그들의 어깨 뒤에는 이미낯선 곳으로 항해해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누군가가 겪었던 고난은 이제 고스란히 이 부부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이 부부 이전의 누군가가새로운 항로를 훌륭히 개척해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어떤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리라 믿는다. 이제 그들은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를 써가기 위해 자기 힘으로 배를 밀고나가고 있다. 자기 근원을 찾아 항해하는 현대의 오디세우스가 가맣게 될 육지가 그들의 바람만큼 멋진 곳이길 기대한다.
- P123

서울에서 일하던 일러스트레이터 박한영 씨는 시골의 이듦에 따라 김포로, 고성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그는 시골에서 보낸 몇 해의 시간이 그림같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무엇보다도 도시에 살 때 그곳의 사람들과유지했던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간격이 그리운 눈치였다. 적지 않은 시간을 도시에서 살아온 그에게는 자신의 친구로 정의되는 이나 가족같이 느껴지는 이들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범연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사람 사이의 간격이 훨씬 더 좁혀진다고한다. 그래서 말 못할 알력이 생기기도 하는 듯하다.
- P150

그는 지금도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각각의 공간이 끼치는 인력과 척력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P151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게 힘들진 않냐고요? 괜찮아요. 마음이 풍요로워진 느낌이니까요. 여기에서는 많은 것들을 자급자족해요. 직접 재배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 무척 행복해요.
- P168

고성을 포함한 영동 지방은 고려 시대에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군사적 목적의 행정구역인 동계로 구분되어 다른 지역과 달리 취급되었다.
한쪽은 바다, 다른 쪽은 드센 형세의 산에 둘러싸인 영동 지방의 길 위에서면 이 지역이 왜 특별히 여겨졌는지 느끼는 일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느꼈을 막막한 심정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한 고립감을 숨기지 않은 설화가 고성 화암사에 전해온다.
- P174

고성에서도 더욱 외딴 곳에서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이순임 씨도,
수바위와 같은 화수분은 아니겠지만 부족함 없이 생활을 이어나갈 만한 방법을 찾은 듯하다.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고 낙향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주부로서의 익명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망 속으로완전히 복귀하게 된 이순임 씨는 고성에 정착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치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백발노인이 스님들에게 쌀을 내어준 것처럼, 고성이 그에게 자신의 너른 품을 내어준 덕분이 아닐까.
- P175

목적지인 신선대에 오르면 맞은편 울산바위의 모습에 일단 놀라게 된다. 그러고 나서 하산을 위해길을 찾다가 동해를 마주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저 멀리 바다로 마음속 이것저것을 던져버리자.
- P180

자기 기록을 하는 사람이 자기 삶의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사로 살면서 글쓰기를 중심에 두기로 했어요. 
- P196

자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흔한 교훈은 박성진 씨가 보여주는 삶의 궤적을 통해 그 의미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자신이 정말로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직선이 아닌 발자국을 남기면서 산책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낯설어 보이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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