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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 - 허수경 자전 에세이
허수경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몇해 전 영국문화원이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 102개, 4만여명에게 영어단어 중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고르라는 조사를 한 적이 있다. 1위는 단연 mother(어머니) 였다.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 지고 의지가 되며 가끔은 눈물을 동반하게 되는 단어 어머니, 생각해 보면 나 자신의 존재감이 인정되는 순간 어머니가 있었다.
아무리 요즘 현대여성들은 남들이 다 하는 것이 결혼이고 결혼을 했다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이 아이라는 유교적사상에서 벗어나 활발히 사회생활을 하며 남자들과 동등한 모습으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하여도 한 켠에 저려오는 내 아이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결혼은 안해도 남편은 없어도 아이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골드미스 (알파걸)들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사회의 규범과 잣대가 무섭고 타인의 입방아가 끔찍하게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남편없이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욱 두 번의 자궁외 임신으로 나팔관 두개를 모두 수술해서 자연임신이 불가능한 역경을 딛고 인공수정을 통해 싱글맘으로 엄마라는 기적을 이루어낸 방송인 허수경의 당당한 고백은 편견 가득한 우리사회에서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일이었다.
기억이 난다. 2007년 SBS TV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하는 모습을 보았다. 혼자 아이를 갖게된 사연을 털어놓는 그녀를 보며 사회적인 성공이 곧 여자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집을 나가면서 까지 감행했던 첫사랑과의 결혼, 그리고 이혼 또 다시 찾아온 사랑이 두번째 이혼이라는 상처가 되며 그녀에게 남은 것은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남자에 대한 공포였다.가끔 티비에서 보여지는 커리어우먼적인 모습 뒤로 너무나도 가정적이고 여성적인 허수경이란 여자가 담담하게 자신의 치부라 할 수 있는 면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보니 굴곡많은 그녀의 삶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녀의 자전 에세이 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 은 이런 그녀의 지난 삶을 담고 있다. 딸 별이에게 주는 편지 형식을 빌어 아이에게 엄마로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 엄마의 바램,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를 엄마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별이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게 될 많은 일들에 대한 걱정이 책 안 가득이 스며들어 있다. 한자한자 깨질듯 소중한 보배를 다루듯 별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보이고 힘든 시간을 지내서 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내 주변의 사람들과 생활들이 다르게 보일만큼 공감이 된다. 가족 이야기도 있다. 엄마와 딸은 그렇다. 맘에는 없지만 입을 통해서 나가는 말들은 가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다. 엄마가 정성으로 보낸 갈치를 토막내고 소금치며 힘겹게 손질하는 동안 한껏 일어난 짜증이 그대로 전해지고 또 후회하고. 엄마니까 이해하고 엄마니까 용서하고. 그녀와 그녀의 딸도 똑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
그녀는 비혼모라는 타이틀을 잘 견뎌낼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남들보다 조금 힘이 들었을 뿐이다. 아직 쓰러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엄마란 죽음을 불사를 만큼 강인한 존재이고 자식에게 있어 든든한 울타리이다. 자신의 이기적일 지도 모르는 선택으로 별이가 힘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그 마저도 인정하고 더 많은 사랑으로 별이를 감싸 안아 주고자 하는 용기있는 행동이 엄마로서의 삶만큼 여자로서의 자신의 인생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주변사람 모두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나누어 준다는 그녀의 천성과 착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그녀를 별이가 잘 닮으며 자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