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즈니스 트렌드 2026 - 미리 보는 AI 트렌드 리포트
이소영.이예림.업폴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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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공지능은 이제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 어떻게 조합하고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6년을 향한 비즈니스 환경은 이러한 활용 역량의 차이가 곧 경쟁력의 격차로 나타나는 시기다. 기술을 보유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업무 흐름과 조직 구조 속에 녹여내는 능력이 승패를 가른다. 최근 발표된 전망에 따르면, AI가 향후 5년간 글로벌 경제에 추가할 가치는 15조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하는 방식과 가치를 창출하는 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편됨을 의미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AI 도구 지도'를 그리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그 도구들을 어떻게 엮어내고 운용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이번에 이소영, 이예림 공저의 <AI 비즈니스 트렌드 2026>을 읽고 미래를 예측해 본다.


과거의 자동화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반복 작업을 처리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 등장한 지능형 에이전트는 상황을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한다. 사용자가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에이전트는 주어진 목표를 이해하고 필요한 절차를 수행한다. 이는 단순히 효율성의 증가를 넘어, 업무 설계 자체를 재구성하는 변화를 가져온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여러 에이전트가 협업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에이전트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면, 다른 에이전트가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또 다른 에이전트가 이를 시각화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간의 역할은 미시적 명령에서 거시적 조율로 이동한다. 즉, '프롬프트를 잘 쓰는 능력'보다 '에이전트들을 조율하는 감각'이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기업들은 향후 1년에서 1년 반 사이에 자사의 AI 전략 안에 에이전트 시스템을 상당 수준 통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 리더들은 2025년을 '에이전트가 실제 인지적 업무를 시작한 해'로 규정하며, 이를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팀이나 조직의 힘을 빌려야만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한 사람의 손으로 완성된다. 이른바 '1인 유니콘' 시대의 도래다. 전 세계에서 이미 300건 이상의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그 핵심에는 저렴하거나 무료로 제공되는 강력한 AI 도구들이 있다. 주요 AI 플랫폼들은 월 2만 원 정도의 구독료만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며, 일부는 학생과 연구자에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이는 진입장벽이 획기적으로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제 개인은 마케팅 전문가, 디자이너, 데이터 분석가 등 필요한 만큼의 전문성을 AI를 통해 '복제'할 수 있다. 노동력이 서비스화되는 시대,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가장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부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양날의 검이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빠르게 뒤처진다. 경제적 계층의 분화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성공한 AI 활용자들의 공통점은 완벽한 계획보다 빠른 실행을 택했다는 점이다.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반복하며 개선하는 방식이 거창한 준비보다 효과적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AI 산업의 경쟁 구도는 단순 채용 경쟁을 넘어 '최상위 스타 인재'를 확보하는 싸움으로 번졌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AI 전문가들은 15년 전만 해도 1,0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비인기 전공이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가치가 천억 원대 연봉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일반 개발자나 엔지니어 채용은 AI 코딩 도구의 확산으로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최상위 AI 연구자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다. 실리콘밸리는 천문학적 연봉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중국은 특허 출원과 연구 투자로 맞서고 있다. 2022년 기준 중국의 AI 특허 출원 수는 미국의 약 4배에 달하며, 이는 양적 성장과 질적 도약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돈만으로 인재를 붙잡아둘 수는 없다. 장기적 리텐션 전략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조직 문화, 연구 자율성, 사회적 임팩트 같은 비금전적 요소들이 최상위 인재들의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인재를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경쟁력이다.

거대한 서버에 의존하던 AI가 이제 개인의 기기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 연결 없이도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직접 작동하는 인공지능이다. 이는 프라이버시와 통제권의 회복을 의미한다. 삼성,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이 영역은 데이터 유출 우려를 해소하고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통제권을 부여한다. 더 이상 민감한 정보를 외부 서버로 보낼 필요가 없다. 모든 처리가 기기 내부에서 완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PC가 개인 컴퓨팅의 보급을 가져왔듯이, AI 보급의 시대를 열어가는 핵심 전환점이다. 또한 온디바이스 AI는 워크플로 자체를 바꾼다. 과거에는 특정 앱을 실행하고 기능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AI가 중심이 되어 필요한 작업을 자동으로 연결한다. 앱 중심에서 AI 중심 업무 흐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개인이 기술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AI를 조직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아마존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조차 과감한 피벗을 선언했다. 전통적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AI 중심 조직으로 대전환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각 부서는 워크숍과 실험 프로젝트를 통해 AI 역량을 구축하고, 실제 업무에 적용하며 검증한다. 물류에서는 AI 기반 재고 배치와 수요 예측이, 고객 서비스에서는 지능형 챗봇이, 경영 전반에서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핵심이 된다. 서비스 비용은 낮아지고 배송 속도는 빨라지는 등 가시적 성과가 나타난다. 성공적인 피벗의 핵심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전사적 도입보다는 특정 부서에서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성과를 검증한 후 확대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한 기업의 사례에 따르면, 회의록 정리와 이미지 분석에만 AI를 활용했는데 3개월 만에 업무 효율이 40% 향상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른 팀들도 도입을 요청했다고 한다. 다만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 문화다.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직원이 오히려 동료들로부터 부정적 시선을 받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내부 가이드라인 수립, 직원 교육,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미지나 음성 같은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멀티모달 AI의 경우,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가 더욱 중요해진다.

AI는 이제 업무 도구를 넘어 일상의 동반자가 되고 있다. 사용자 경험(UX)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능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면, 이제는 감성과 정서적 연결이 중심이 된다. 예를 들어 전기차 충전소는 단순히 전기를 공급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머물고 싶어하는 경험의 장소로 진화한다. 브라우저는 웹 검색 도구에서 업무를 함께 수행하는 동료로 변모한다. 이동수단은 단순 모빌리티가 아니라 개인화된 경험의 공간이 된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기억하는 AI'다. 사용자의 선호와 습관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기술이 인간과 AI 사이의 연결을 만든다. 인터페이스는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상호작용은 더욱 직관적이 된다. 기술이 인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학생과 직장인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도구가 되었다. SNS에서 유행하는 밈부터 학습 자료 제작, 업무 보고서 작성까지, AI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이러한 대중화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다. 프롬프트 엔지니어처럼 AI와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이 등장했고, 기존 직무들도 AI 활용 능력을 필수 역량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새로운 격차를 만든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의 디지털 격차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저작권 문제도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 없어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와 기술적 접근성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AI 서비스를 직접 경험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찾는 일이다. 그리고 선택한 AI를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맞게 훈련시키고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 이것이 실질적인 AI 활용의 핵심이다.

혁신은 종종 서로 다른 것들의 조합에서 나온다. AI 시대의 혁신도 마찬가지다. 두 개 이상의 AI 도구를 결합하거나, 기술과 산업을 융합하면 예상치 못한 가치가 창출된다. 케이팝 산업에서는 가상과 현실을 믹스한 전략으로 팬 경험을 확장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 바이닐 레코드가 부활한 것은 감성적 소비와 디지털 편의성의 역설적 공존을 보여준다. 교통과 복권을 결합한 공공 시스템은 수익 혁신의 사례가 된다. 개인 차원에서도 AI 믹스는 중요하다. 여러 AI 도구를 자신의 필요에 맞게 조합하면 최적의 생산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 가지 도구에 의존하기보다, 각각의 강점을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합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인간은 보고, 듣고, 느끼며 세상을 이해한다. 멀티모달 AI는 이러한 인간의 감각을 모방한다. 텍스트만 처리하던 AI가 이제 이미지, 음성, 영상, 심지어 3D 데이터까지 통합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AI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 변화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는 X-레이 이미지와 환자 기록, 음성 진단을 통합 분석해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팬 데이터와 영상 콘텐츠를 연결해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로봇 산업에서는 센서 데이터와 제어 시스템을 융합해 더 정교한 작업을 수행한다. 멀티모달 AI는 업무 자동화를 넘어 창의적 판단과 전략 수립까지 지원한다. 복합적인 데이터를 통합 해석하기 때문에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패턴과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민감한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가 더욱 중요해진다.


성장하는 기업들은 산업 경계를 넘나든다. AI 서비스 기업이 하드웨어로 확장하고, 하드웨어 기업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한다. 기술 중심 기업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진화하고, 단일 제품 기업이 생태계 중심의 초연결 기업으로 탈바꿈한다. 오픈AI는 AI 서비스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산업으로 진출하고 있고, 엔비디아는 칩 제조사에서 AI 인프라의 아이콘으로 변신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적인 조직 구조가 아니라 유기적이고 민첩한 태스크포스 중심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무경계 전략은 조직의 DNA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 부서 간 벽을 허물고, 산업 간 경계를 넘나들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하는 풀스택 전략이 필요하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피벗할 수 있는 조직 문화, 그것이 바로 무경계 혁신 기업의 핵심이다.

2026년은 AI 활용 능력의 격차가 비즈니스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시기다. 단순히 어떤 기술을 보유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합하고 조율하느냐가 핵심이다. 에이전트 협업, 1인 유니콘, 온디바이스 AI, 조직 피벗, AI 공존, 대중화, 믹스 전략, 멀티모달, 무경계 DNA까지, 이 열 가지 트렌드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하고, 함께 작동하며 시너지를 만든다. 지금은 완벽한 계획을 세울 때가 아니라 빠르게 실행할 때다. 작은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반복하며 개선하는 것, 그것이 성공한 AI 독립러들의 공통된 전략이다. 기술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그림자가 있지만, 동시에 누구나 유니콘급 성과를 낼 수 있는 전례 없는 기회도 열려 있다. 기업은 파일럿 프로젝트로 시작해 성과를 검증하고,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하며,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개인은 다양한 AI 도구를 경험하고,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 꾸준히 훈련시켜야 한다. 이 골든타임에 준비하는 기업과 개인만이 살아남는다. 역사적 전환점 앞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실험 정신이며, 완벽함이 아니라 민첩함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많은 기술을 보유한 자가 아니라, 가장 지혜롭게 활용하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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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 비트코인을 뛰어넘는 새로운 화폐 혁명의 시작
이지민.이은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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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종이와 잉크, 혹은 은행 서버의 데이터일까? 아니다. 돈의 본질은 '신뢰'다. 우리는 은행 통장에 찍힌 숫자를 믿고, 정부가 발행한 지폐를 믿으며, 그 믿음 위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이 신뢰는 반복적으로 무너져 왔다.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경제를 패닉에 빠뜨린 리먼브라더스 사태, 그리고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의 뱅크런까지. 이 모든 사건의 핵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현대 금융은 빚으로 돈을 창조하는 시스템이다. 은행은 실제 보유한 예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대출로 풀어내고, 우리는 그 시스템을 믿기에 통장의 숫자를 현금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 신뢰가 한순간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려 하고, 은행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며, 시스템 전체가 마비된다. 이것이 우리가 목격해 온 금융 위기의 본질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했다. 중앙화된 기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가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 지닌 혁명적 의미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라는 철학을 제시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철학을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형태로 구현해낸 것이다. 이번에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초기 암호화폐 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에 시달렸다. 하루 만에 수십 퍼센트씩 가격이 요동치는 환경에서 일반인이 일상적인 거래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사용하기란 불가능했다. 오늘 한 잔에 0.001 비트코인이던 커피가 내일은 0.0015 비트코인이 될 수도, 0.0007 비트코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업 운영의 불안정성이었다. 2017년 ICO 붐 당시, 수백만 달러를 모금한 프로젝트들이 불과 몇 주 만에 이더리움 가격 폭락으로 운영 자금이 바닥나는 사태가 속출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은 '안정적인 가치저장 수단'을 갈망했다. 암호화폐의 혁신적 특성인 빠른 전송 속도, 국경 없는 거래, 투명한 기록은 유지하되, 가격 변동성만 제거한 디지털 자산.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 탄생의 직접적 배경이다. 2014년 댄 라리머가 BitUSD를 선보이며 시작된 스테이블코인 실험은 초기에는 시스템의 복잡성으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 등장한 테더(Tether)는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테더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개념을 제시했다. 1달러를 예치하면 1 USDT를 발행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코드에 실제 법정화폐라는 담보를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암호화폐를 '믿을 수 있는 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테더의 시가총액은 1,63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테더는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한 경제 주체로 성장했다. 민간 기업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가 국가의 외환보유고를 넘어선 것이다.


전통 금융에서 돈은 잠들어 있다. 은행에 예금하면 연 이자를 받지만, 그마저도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감소한다. 은행은 우리의 예금으로 대출 이자를 벌지만, 그 수익의 대부분은 금융기관의 몫이다. 예금자는 단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보상만 받을 뿐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이자 창출형 스테이블코인, 즉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은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연 5~15%의 수익을 창출한다. 에테나의 USDe, 스크롤의 USX, 아반트의 avUSDX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 유동성 공급 보상, 담보 자산 운용 수익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분배한다. 여기서 핵심은 '프로그래머블(programmable)'하다는 특성이다. 전통 금융에서는 은행이라는 중개자가 누가 얼마의 이자를 받을지 결정하고, 그 과정은 불투명하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자동화된 코드로 모든 것이 실행된다. 수익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어떻게 분배되는지, 내 지분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두 블록체인 위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투명성과 접근성, 이 두 가지가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이 제공하는 가장 혁신적인 가치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시스템이 24시간 365일 작동한다는 것이다. 주말도, 공휴일도, 은행 영업시간도 상관없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지구 반대편 어디서든, 국적이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금융 포용성의 관점에서 이는 혁명적 변화다. 전통적으로 금융 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 선진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이 장벽을 무너뜨린다.


스테이블코인의 진정한 잠재력은 단순히 디지털 달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하는 토큰화(Tokenization) 혁명의 시작이다. 부동산, 주식, 채권, 예술품, 심지어 저작권이나 탄소배출권까지,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이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으로 표현될 수 있다. 2020년 이후 RWA(Real World Asset, 실물자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그 중심에 있으며, 2025년 기준 전체 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뉴욕의 부동산 지분을 소유하거나, 유명 미술품의 일부를 구매하거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자산은 거액의 자본을 가진 소수만 접근 가능했다. 부동산에 투자하려면 수억 원이 필요하고, 명화를 소유하려면 수십억 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토큰화는 이 자산들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소액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1억 원짜리 부동산을 100만 개의 토큰으로 나누면, 한 토큰당 100원에 투자할 수 있다. 유동성이 낮아 쉽게 사고팔 수 없던 자산도 디지털 토큰이 되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부자만을 위한 금융'에서 '모두를 위한 금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생태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 토큰화된 자산을 사고팔 때,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를 할 때, 즉시 정산이 필요할 때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된다.


스테이블코인의 부상은 국가의 화폐 주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화폐 발행권은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민간 기업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가 국가의 법정화폐와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대응하여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개발하고 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화폐로, 국가의 신용이 담보하며, 법적으로 모든 거래에서 수용되어야 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며, 법정화폐나 자산을 담보로 가치를 유지한다. CBDC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형 구조를 지닌다. 이 두 진영은 충돌하면서도 공존한다. 정부는 화폐 주권을 지키기 위해 CBDC를 추진하지만, 동시에 민간의 혁신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스테이블코인은 속도와 유연성, 글로벌 접근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결국 미래의 디지털 금융 생태계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며 공존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애플, 구글, 페이팔, 그리고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토스, 삼성전자까지 앞다퉈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기존의 결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자사의 생태계에 통합한다면, 디지털 화폐의 대중화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2025년 한국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정부는 디지털 허브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 아래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사업을 허용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금융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그동안 한국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부족했다. 테라-루나 사태와 FTX 파산 같은 대형 사건의 여파로 '크립토 윈터'를 겪으며 시장은 위축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트렌드는 이미 방향을 정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니어스법에 서명하며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육성하고 있고, 유럽, 일본, 중국 등도 각자의 전략을 추진 중이다. 만약 한국이 이 흐름에서 뒤처진다면 어떻게 될까? 금융 혁신의 주도권을 잃고, 디지털 경제 시대에 변방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시장을 육성한다면, 아시아의 디지털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높은 IT 인프라, 빠른 인터넷 속도, 암호화폐에 친숙한 젊은 세대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지는 정책적 결단에 달려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화폐의 형태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조개껍데기에서 금속 주화로, 금화에서 지폐로, 지폐에서 신용카드로, 그리고 이제 디지털 화폐로. 매 전환기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돈을 불신했다. 종이 쪼가리가 어떻게 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통장 잔고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새로운 화폐 형태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받아들여졌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초기의 회의론과 규제의 불확실성을 지나, 이제는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 기반, 실시간 결제와 투명성이라는 실용적 장점, 그리고 금융 포용성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결합하여 스테이블코인은 유행을 넘어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세계는 움직이고 있고, 물결은 거세다. 5년 후 우리의 지갑에는 어떤 돈이 들어 있을까? 가치를 잃어가는 낡은 화폐일까, 아니면 전 세계와 연결된 스테이블코인일까? 그 답은 지금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흐름을 읽는 자가 기회를 잡는다. 스테이블코인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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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없는 건축 - 한국의 레거시 플레이스
황두진 지음 / 시티폴리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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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보면 문득 사라진 건물의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제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던 낡은 상가가, 오래된 주택가가, 익숙한 골목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허공으로 증발한다. 그 자리에는 곧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고, 이전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광경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건축도 사람처럼 생애주기를 갖는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건축물들은 자연스러운 노화를 거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조기에 은퇴한다. 아니, 은퇴라는 표현조차 사치스럽다. 그들은 은퇴할 기회도 없이 해체되고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멸실신고서라는 차가운 서류 한 장이 그들의 생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킨다. 왜 우리의 건축물들은 이토록 짧은 생을 살아야 하는가. 경제 논리가 가장 큰 이유다. 땅값이 오르면 그 위에 있던 건물은 재산가치보다 장애물로 인식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오래된 건물은 비효율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개발과 재건축의 논리 앞에서 시간이 축적한 가치는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씩 다른 시선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을 단순히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시간의 결이 쌓인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거시 플레이스'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레거시(legacy)라는 단어는 흥미로운 이중성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유산'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다른 한편으로는 '구식'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동시에 품고 있다. 바로 이 긴장감이 현대 건축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쓸모 사이에서, 보존의 가치와 개발의 논리 사이에서 건축은 끊임없이 줄타기를 한다. 레거시 플레이스가 되기 위한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충분한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둘째,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원형이 대체로 보존되어야 한다. 넷째, 일정한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이 네 가지 기준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한국의 급속한 도시 개발 역사를 고려하면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건물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 남대문로의 한국전력공사 사옥은 일제강점기 경성전기 사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금융가 한복판에 위치한 이 건물은 여러 차례 재개발 압력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련된 테라코타 장식과 견고한 구조는 근대 건축의 품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오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여전히 전기회사 사옥이라는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며 도심의 일상 속에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충동의 태극당은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준다. 1946년에 문을 연 이 베이커리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왔다. 낡았지만 단단한 건물, 세련되지 않았지만 정직한 공간.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빵은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시간의 맛을 담은 기억의 조각이다. 화려한 근대 건축이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아니어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일상에 스며든 공간들이야말로 진정한 레거시일 수 있다. 한강에 놓인 다리들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한남대교, 성수대교, 올림픽대교 등 한강의 수많은 교량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요구에 따라 건설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도시의 성장과 변화를 증언하는 역사적 구조물이다. 특히 5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현역 교량으로 기능하며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한국 도시의 독특한 유산 중 하나가 상가아파트다. 1960-7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주거와 상업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당시의 경제적 필요와 도시 계획의 산물이었다. 대부분 낡고 비좁고 불편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고 장사를 하며 일상을 영위한다. 상가아파트는 레거시 플레이스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충분히 오래되었고,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고 있고, 공공성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문화재로 지정받기는커녕 재개발 대상 1순위로 취급받는다. 미학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부동산 가치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며, 현대적 생활 편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가아파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증거물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서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좁은 땅에서 어떻게 생활과 생업을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우일맨션 같은 건물은 1960년대 한국의 주상복합 개념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건축의 은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며 오래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원래의 기능이 필요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때 건물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철거되거나, 방치되거나, 새로운 용도로 전환되거나 한다. 춘천 어린이회관에서 KT&G 상상마당으로, 서울역에서 문화역서울284로의 변신은 성공적인 용도 전환의 사례다. 건물의 구조와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 것이다. 특히 서울역의 경우, 역사로서의 기능은 멈췄지만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린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용도 전환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과도한 개조로 원형이 훼손되기도 하고, 새로운 용도가 건물의 특성과 맞지 않아 어색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재활용은 건물이 가진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건물도 저마다 성격이 있고, 그 성격에 맞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때 제2의 삶이 시작될 수 있다.

빠르게 짓고 빠르게 부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새것이 곧 좋은 것이고, 오래된 것은 낙후된 것이라는 등식이 당연시되던 시절.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태도가 남긴 공허함을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 맥락이 지워진 도시, 기억이 단절된 공간, 획일화된 풍경. 이 모든 것이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다. 레거시 건축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겪어왔는지를 기억하고 확인하려는 노력이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토대다. 오래된 건물이 도시에 남아있을 때, 우리는 시간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고, 변화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건물을 짓는 데는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가 투입된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환경적 측면에서도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래된 건물을 잘 고치고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 행위일 수 있다.


모든 시대는 다음 시대에 무언가를 물려준다. 우리가 석굴암과 불국사, 경복궁과 창덕궁을 물려받았듯이, 우리 역시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남길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20-21세기 한국의 유산은 무엇이 될 것인가. 63빌딩의 수직적 야망, 올림픽대교의 역동적 곡선, 명동성당의 고딕 첨탑, 남산타워의 상징적 실루엣.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태극당의 소박한 빵집, 빈해원의 정겨운 중화요리집, 탑골공원의 오래된 나무들. 이런 것들도 충분히 가치 있는 유산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준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내줄 것인가. 이 선택에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경제적 효율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결국 남는 것은 땅값뿐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의미, 역사적 가치, 정서적 유대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진정으로 훌륭한 은퇴는 은퇴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다. 자신의 쓸모를 확인하며 오래도록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다. 한양도성이 600년이 넘도록 서울을 둘러싸고 있고, 종묘가 여전히 제례 공간으로 기능하며, 살곶이다리가 현역 교량으로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은퇴 없는 건축의 이상적 모습이다. 물론 모든 건물이 영원할 수는 없다. 때로는 보내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단지 새것에 대한 맹목적 선호나 단기적 경제 논리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충분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말로 그 건물의 시간이 다했을 때만 우리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


레거시 플레이스에 대한 논의는 결국 '왜 짓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왜 건물을 짓는가. 단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인가. 대부분의 건축은 당장의 필요에 의해 지어지지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건축은 시간을 견디며 다음 세대에게 말을 건다. 도시와 건축은 현재를 위한 것이지만, 현재는 항상 과거 위에 서 있다. 과거가 어떤 얼굴로 남아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현재도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미래 세대가 마주할 도시의 모습도 결정될 것이다. 은퇴 없는 건축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런 시간의 연속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건물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꿈과 좌절, 기술적 성취와 한계,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런 건물들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때, 도시는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건물이 아니라 오래된 건물을 새롭게 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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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 이펙트
최강석 외 지음 / 와일드북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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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조언을 듣는다. 부모님은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친구들은 "내 생각엔 이게 맞는 것 같아"라며 의견을 건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많은 조언들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왜 그럴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이 내 안에서 나온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칭 이펙트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 나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답을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다. 단순한 방법론의 차이만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깊이 연결된 원리다. 우리는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스스로 선택한 일에 더 큰 책임감과 열정을 느낀다. 남이 준 지도보다 내가 그린 지도를 더 신뢰한다. 이번에 <코칭 이펙트>를 읽으며 코칭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전통적인 관계 구조는 명확하다. 부모는 가르치는 사람, 아이는 배우는 사람. 선생님은 알려주는 사람, 학생은 듣는 사람. 상사는 지시하는 사람, 부하는 따르는 사람. 이런 수직적 구조에서는 한쪽의 지혜와 경험이 다른 쪽으로 일방향으로 흐른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코칭 이펙트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는다. 코칭 대화에서는 질문하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 선다. 오히려 질문하는 사람이 더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나는 당신의 답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라는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권력의 재배치가 일어난다. 질문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과 공간을 얻는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는다. 실질적인 자율성과 주체성의 회복이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더 이상 수동적인 훈육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 주체가 된다. 부모는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지원하는 동반자가 된다. 이것이 바로 "서로가 코치가 되어주는 관계"의 의미다.

코칭 이펙트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이론이나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책에서 강조하듯, 핵심은 작은 말 습관의 변화다. 하지만 이 '작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먼저 "잘 다녀와",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같은 표현을 생각해보자. 너무 평범해서 무시하기 쉽지만, 이 말들은 관계의 기본 토양을 만든다. 식물이 자라려면 비옥한 땅이 필요하듯, 깊은 대화가 오가려면 안전하고 따뜻한 정서적 환경이 필요하다. 이런 일상적 표현들이 바로 그 토양을 만든다. 특히 부모가 먼저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의 힘은 크다. 많은 부모들은 권위를 잃을까 봐 사과를 망설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수를 인정하는 부모의 모습은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를 쌓는다. 아이는 "어른도 틀릴 수 있고, 그것을 인정할 수 있구나"를 배운다. 이것은 완벽함을 강요받는 대신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을 배우는 것이다.

I 메시지의 활용은 더욱 직접적인 코칭 이펙트를 만든다. "왜 그게 안 돼?"라는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니다. 비난을 질문의 형태로 포장한 것이다. 반면 "나는 네가 그렇게 할 때 걱정이 돼"라는 표현은 완전히 다른 대화의 문을 연다. 상대방은 방어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신 "아, 부모님이 그런 감정을 느끼셨구나"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I 메시지가 상대방의 기분만을 덜 상하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화자 자신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내 감정을 I 메시지로 표현하려면, 먼저 내가 정확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나는 불안하다", "나는 서운하다" - 이런 구체적인 감정 인식은 자기 이해의 출발점이다. 타인을 코칭하기 전에 자신을 코칭하는 셈이다.

코칭 이펙트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는 역시 질문이다. 하지만 모든 질문이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왜 그렇게 했어?"는 질문이지만 추궁에 가깝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는 질문이지만 때로는 무책임한 회피처럼 들릴 수 있다. 진정한 코칭 질문은 상대방의 내면을 향한다.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뭐야?", "지금 가능한 선택지는 뭐가 있을까?", "그렇게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아?" - 이런 질문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욕구, 자원, 그리고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돕는다. 부모들이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첫째, 아이가 잘못된 답을 내놓을까 봐 두렵다. 둘째, 질문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더 빠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둘 다 착각이다. 먼저, 아이가 내놓는 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을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해서 낸 답이 실패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값진 경험이 된다. 반면 부모가 준 정답으로 실패하면, 아이는 "부모님 말을 들었는데도 안 됐다"는 무력감을 배운다. 직접 해결책을 주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더 빠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매번 부모가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질문을 통해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면, 점점 더 독립적이고 유능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처음 몇 번은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투자한 시간의 몇 배를 돌려받게 된다.

코칭 이펙트는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변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으며, 스스로 답을 찾을 능력이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가지고 질문하고 기다려줄 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부모-자녀 관계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파동처럼 퍼져나간다. 가족 전체가 달라지고, 그 가족의 구성원들이 세상에 나가서 만나는 다른 관계들도 영향을 받는다. 한 사람이 코칭 대화를 경험하면,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코칭 이펙트의 진정한 힘이다. 개인을 바꾸고, 관계를 바꾸며,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특히 저자들이 제안해 주는 코칭 질문과 실행팁은 많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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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의 전설 - 실전투자대회 수상자 9인을 만나다
키움증권 채널K 지음 / 넥스트씨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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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커피를 내리고, 해외 선물 지수를 확인한다. 어제의 손실을 복기하고, 오늘의 전략을 세운다. 9시 정각, 장이 열리면 호가창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십만 원이 1초 만에 증발하고, 때로는 수백만 원이 순식간에 쌓인다. 이것이 트레이더의 하루다.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이 있다. <트레이딩의 전설>은 이 싸움에서 이긴 사람들의 기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긴'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은 한국 실전투자대회에서 검증받은 9명의 트레이더를 소개하며, 그들의 매매 기법보다 더 깊은 곳을 파고든다. 어떻게 무너지지 않았는가. 어떻게 계좌를 지켰는가. 어떻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들의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그 원칙을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큰 손실을 입었을 때가 아니다. 원칙이 흔들릴 때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생각으로 손절 기준을 어기는 순간,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며 과도한 레버리지를 쓰는 순간, 트레이더는 도박꾼이 된다. 책 속 9인의 트레이더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매매했지만, 단 하나, 원칙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불개미는 "깨끗한 자리에서만 매수한다"는 철칙을 세웠다. 차트가 복잡하고, 방향성이 불분명하면 절대 진입하지 않았다. 4주 만에 816%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지만, 그가 강조한 것은 수익률이 아니었다. 손절을 '행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손실을 회피의 대상이 아닌, 더 큰 리스크를 막아준 방어막으로 여긴 것이다. 이 태도의 전환이야말로 그를 살아남게 한 핵심이었다. 신정재는 장 마감 30분을 '골든타임'으로 정의했다. 하루의 변동성이 수렴되고, 기관과 외국인의 의도가 드러나는 시간. 그는 이 시간에 집중하며 종가매매의 달인이 되었다. "하루의 끝을 통제하는 자가 시장의 방향을 잡는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기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시간을 선택하고, 에너지를 집중하며,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는 전략적 사고방식이었다. 청사진은 루틴의 힘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매일 아침 뉴스를 읽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테마와 흐름을 매칭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수익의 절반은 반드시 출금했다. 이 습관은 단순해 보이지만, 감정의 폭주를 막는 강력한 장치였다. "습관은 해자다"라는 그의 표현처럼, 일상의 반복이 계좌를 지키는 방어벽이 되었다. 트레이딩은 단 한 번의 판단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결국 생존 여부를 가른다.


트레이딩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기술이 아니다. 감정이다. 손실을 보면 당장 만회하고 싶은 충동이 일고, 수익이 나면 더 많이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 감정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냉정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진짜 실력이다. 방배동선수는 눌림목 매수 전략을 고수했다. 급등한 종목을 쫓아가지 않고, 조정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조급함을 참아내는 이 '기다림'이 그의 무기였다. 시장은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지만, 모든 기회를 잡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잘 아는, 확률이 높은 자리에서만 싸우는 것. 그것이 스윙 트레이더로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만쥬는 초단타의 세계에서 속도가 아닌 '냉정의 근육'을 단련했다. 매수 후 1분 안에 흐름이 나오지 않으면 망설임 없이 손절했다. 이 원칙은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엄청난 심리적 훈련을 요구한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이라는 생각이 계좌를 녹이는 가장 흔한 패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유혹을 단호히 끊어냈고, 그 결과 초단타 시장에서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바른다른은 "아무 데서나 매수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실천했다. 그는 기다림을 전략으로 승화시켰다. 차트가 명확한 신호를 보낼 때까지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이 인내심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을 존중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확률적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문가적 태도다.

감정을 통제하는 또 다른 방법은 시스템화다. 캐리와 월억언제해보나는 이 접근법의 대표적 사례다. 캐리는 호가창만으로 시장을 읽는 천재였다. 체결 속도, 잔량 변화, 호가 두께를 순간적으로 판단하며 매매했다. 이 스타일은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그가 진짜 강조한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감정 삭제'였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만큼, 감정적 흔들림은 치명적이다. 그는 자신의 매매를 철저히 기계화했고, 그 결과 수천 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월억언제해보나는 HTS를 완벽히 자동화한 시스템 트레이더다. 원클릭 매매 환경을 구축하고, 모든 설정을 최적화했다. 그의 매매는 마치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정교했다. 이 시스템화는 단순히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매 순간 감정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복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는 이를 완벽히 구현했다. 뭐라도되겠지는 상한가 매매라는 고위험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살아남았다. 그 비결은 단 하나, "손절 원칙만 지키면 상따도 최고의 매매법"이라는 믿음이었다. 상한가 직전 진입은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지만, 한 번의 실수로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그는 이 리스크를 철저한 손절 원칙으로 관리했다. 공격적인 매매와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고수익 전략도 지속 가능해진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트레이딩의 본질은 기법이 아니라 자기 관리다. 차트를 읽는 능력, 호가를 해석하는 기술, 타이밍을 잡는 감각, 이 모든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다. 시장은 매일 당신의 약점을 시험한다. 탐욕스러운가? 두려운가? 조급한가? 오만한가? 이 질문들 앞에서 얼마나 솔직하고, 얼마나 단단한가에 따라 생존 여부가 결정된다. 9명의 트레이더들은 모두 이 진실을 체득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장을 이기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먼저 이겼다. 책은 실전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루틴도 제시한다. 첫째, 관찰 루틴. 매일 10분, 뉴스와 테마, 호가를 비교하며 시장 감각을 유지한다. 둘째, 복기 루틴. 특히 손실일수록 반드시 기록하고 분석한다. 셋째, 출금 루틴. 수익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인출하여 심리적 안정을 확보한다. 넷째, 정서 루틴. 감정이 흔들리면 즉시 매매를 멈추고 거리를 둔다. 이 루틴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바로 이 '지속'이 평범한 투자자와 살아남는 트레이더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트레이딩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한 번의 큰 수익보다, 꾸준히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책이 전하는 가장 깊은 통찰은 이것이다. 시장은 거울이다. 당신의 욕심, 두려움, 인내심, 오만함이 모두 계좌 잔고로 나타난다. 차트는 거짓말하지 않고, 손익 곡선은 당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반영한다. 트레이딩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돈 버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는가. 어떤 유혹에 약한가. 어떤 실수를 반복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고, 개선하고, 또 시험받는 과정. 그것이 트레이딩이다. 책 속 9인의 트레이더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과정을 통과했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았고, 지금도 실수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원칙을 지켰으며, 스스로를 개선해왔다. 그 결과 계좌뿐 아니라 삶 전체가 단단해졌다.


직장과 가정, 투자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평범한 투자자에게 이 책은 현실적인 지침서다.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실전에서 검증된 살아있는 지혜를 전한다. 매매 스타일은 달라도 좋다. 단타든 스윙이든, 기술적 분석이든 테마 분석이든, 중요한 것은 '내 원칙'을 세우고 지켜내는 것이다. 시장은 오늘도 묻는다. 당신은 준비되었는가? 돈을 원하는가, 아니면 성장을 원하는가? 『트레이딩의 전설』은 후자를 택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어떤 트레이더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바꿀 것인가. 답은 언제나 자신의 안에 있다. 시장은 그저 그것을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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