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없는 건축 - 한국의 레거시 플레이스
황두진 지음 / 시티폴리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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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시를 걷다 보면 문득 사라진 건물의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제까지 그 자리에 서 있던 낡은 상가가, 오래된 주택가가, 익숙한 골목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허공으로 증발한다. 그 자리에는 곧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고, 이전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광경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건축도 사람처럼 생애주기를 갖는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하고, 결국 사라진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건축물들은 자연스러운 노화를 거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조기에 은퇴한다. 아니, 은퇴라는 표현조차 사치스럽다. 그들은 은퇴할 기회도 없이 해체되고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멸실신고서라는 차가운 서류 한 장이 그들의 생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킨다. 왜 우리의 건축물들은 이토록 짧은 생을 살아야 하는가. 경제 논리가 가장 큰 이유다. 땅값이 오르면 그 위에 있던 건물은 재산가치보다 장애물로 인식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오래된 건물은 비효율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개발과 재건축의 논리 앞에서 시간이 축적한 가치는 무기력하게 무너진다.

그런데 최근 들어 조금씩 다른 시선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래된 건축물을 단순히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시간의 결이 쌓인 문화적 자산으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레거시 플레이스'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레거시(legacy)라는 단어는 흥미로운 이중성을 갖는다. 한편으로는 '유산'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다른 한편으로는 '구식'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동시에 품고 있다. 바로 이 긴장감이 현대 건축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쓸모 사이에서, 보존의 가치와 개발의 논리 사이에서 건축은 끊임없이 줄타기를 한다. 레거시 플레이스가 되기 위한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충분한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둘째,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원형이 대체로 보존되어야 한다. 넷째, 일정한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 이 네 가지 기준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한국의 급속한 도시 개발 역사를 고려하면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건물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 남대문로의 한국전력공사 사옥은 일제강점기 경성전기 사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금융가 한복판에 위치한 이 건물은 여러 차례 재개발 압력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련된 테라코타 장식과 견고한 구조는 근대 건축의 품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이 특별한 이유는 오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여전히 전기회사 사옥이라는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며 도심의 일상 속에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충동의 태극당은 또 다른 종류의 감동을 준다. 1946년에 문을 연 이 베이커리는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왔다. 낡았지만 단단한 건물, 세련되지 않았지만 정직한 공간.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빵은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시간의 맛을 담은 기억의 조각이다. 화려한 근대 건축이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아니어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일상에 스며든 공간들이야말로 진정한 레거시일 수 있다. 한강에 놓인 다리들 역시 흥미로운 사례다. 한남대교, 성수대교, 올림픽대교 등 한강의 수많은 교량들은 각기 다른 시대의 요구에 따라 건설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도시의 성장과 변화를 증언하는 역사적 구조물이다. 특히 5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현역 교량으로 기능하며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

한국 도시의 독특한 유산 중 하나가 상가아파트다. 1960-70년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진 이 건물들은 주거와 상업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당시의 경제적 필요와 도시 계획의 산물이었다. 대부분 낡고 비좁고 불편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살고 장사를 하며 일상을 영위한다. 상가아파트는 레거시 플레이스의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충분히 오래되었고,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고 있고, 공공성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문화재로 지정받기는커녕 재개발 대상 1순위로 취급받는다. 미학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부동산 가치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며, 현대적 생활 편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가아파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증거물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서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좁은 땅에서 어떻게 생활과 생업을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우일맨션 같은 건물은 1960년대 한국의 주상복합 개념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건축의 은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본래의 용도를 유지하며 오래 사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원래의 기능이 필요 없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때 건물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철거되거나, 방치되거나, 새로운 용도로 전환되거나 한다. 춘천 어린이회관에서 KT&G 상상마당으로, 서울역에서 문화역서울284로의 변신은 성공적인 용도 전환의 사례다. 건물의 구조와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쓰임을 찾아낸 것이다. 특히 서울역의 경우, 역사로서의 기능은 멈췄지만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린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용도 전환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과도한 개조로 원형이 훼손되기도 하고, 새로운 용도가 건물의 특성과 맞지 않아 어색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재활용은 건물이 가진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건물도 저마다 성격이 있고, 그 성격에 맞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때 제2의 삶이 시작될 수 있다.

빠르게 짓고 빠르게 부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새것이 곧 좋은 것이고, 오래된 것은 낙후된 것이라는 등식이 당연시되던 시절.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런 태도가 남긴 공허함을 마주하고 있다. 역사적 맥락이 지워진 도시, 기억이 단절된 공간, 획일화된 풍경. 이 모든 것이 무분별한 개발의 결과다. 레거시 건축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복고 취향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겪어왔는지를 기억하고 확인하려는 노력이다.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토대다. 오래된 건물이 도시에 남아있을 때, 우리는 시간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고, 변화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건물을 짓는 데는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가 투입된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환경적 측면에서도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다. 오래된 건물을 잘 고치고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 행위일 수 있다.


모든 시대는 다음 시대에 무언가를 물려준다. 우리가 석굴암과 불국사, 경복궁과 창덕궁을 물려받았듯이, 우리 역시 다음 세대에게 무언가를 남길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20-21세기 한국의 유산은 무엇이 될 것인가. 63빌딩의 수직적 야망, 올림픽대교의 역동적 곡선, 명동성당의 고딕 첨탑, 남산타워의 상징적 실루엣.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태극당의 소박한 빵집, 빈해원의 정겨운 중화요리집, 탑골공원의 오래된 나무들. 이런 것들도 충분히 가치 있는 유산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준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내줄 것인가. 이 선택에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반영된다. 경제적 효율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결국 남는 것은 땅값뿐일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의미, 역사적 가치, 정서적 유대까지 고려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진정으로 훌륭한 은퇴는 은퇴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고 건축도 그렇다. 자신의 쓸모를 확인하며 오래도록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다. 한양도성이 600년이 넘도록 서울을 둘러싸고 있고, 종묘가 여전히 제례 공간으로 기능하며, 살곶이다리가 현역 교량으로 사람들을 건네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은퇴 없는 건축의 이상적 모습이다. 물론 모든 건물이 영원할 수는 없다. 때로는 보내줘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단지 새것에 대한 맹목적 선호나 단기적 경제 논리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충분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말로 그 건물의 시간이 다했을 때만 우리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


레거시 플레이스에 대한 논의는 결국 '왜 짓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왜 건물을 짓는가. 단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인가. 대부분의 건축은 당장의 필요에 의해 지어지지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건축은 시간을 견디며 다음 세대에게 말을 건다. 도시와 건축은 현재를 위한 것이지만, 현재는 항상 과거 위에 서 있다. 과거가 어떤 얼굴로 남아있는가에 따라 우리의 현재도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미래 세대가 마주할 도시의 모습도 결정될 것이다. 은퇴 없는 건축에 대한 관심은 바로 이런 시간의 연속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건물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꿈과 좌절, 기술적 성취와 한계,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이런 건물들이 계속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때, 도시는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건물이 아니라 오래된 건물을 새롭게 보는 시선,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려는 의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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