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 - 비트코인을 뛰어넘는 새로운 화폐 혁명의 시작
이지민.이은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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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종이와 잉크, 혹은 은행 서버의 데이터일까? 아니다. 돈의 본질은 '신뢰'다. 우리는 은행 통장에 찍힌 숫자를 믿고, 정부가 발행한 지폐를 믿으며, 그 믿음 위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이 신뢰는 반복적으로 무너져 왔다.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경제를 패닉에 빠뜨린 리먼브라더스 사태, 그리고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의 뱅크런까지. 이 모든 사건의 핵심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다. 현대 금융은 빚으로 돈을 창조하는 시스템이다. 은행은 실제 보유한 예금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대출로 풀어내고, 우리는 그 시스템을 믿기에 통장의 숫자를 현금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 신뢰가 한순간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예금을 인출하려 하고, 은행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며, 시스템 전체가 마비된다. 이것이 우리가 목격해 온 금융 위기의 본질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했다. 중앙화된 기관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가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디지털 화폐.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 지닌 혁명적 의미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라는 철학을 제시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철학을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한 형태로 구현해낸 것이다. 이번에 <스테이블코인 부의 대이동>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대표되는 초기 암호화폐 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에 시달렸다. 하루 만에 수십 퍼센트씩 가격이 요동치는 환경에서 일반인이 일상적인 거래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사용하기란 불가능했다. 오늘 한 잔에 0.001 비트코인이던 커피가 내일은 0.0015 비트코인이 될 수도, 0.0007 비트코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업 운영의 불안정성이었다. 2017년 ICO 붐 당시, 수백만 달러를 모금한 프로젝트들이 불과 몇 주 만에 이더리움 가격 폭락으로 운영 자금이 바닥나는 사태가 속출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은 '안정적인 가치저장 수단'을 갈망했다. 암호화폐의 혁신적 특성인 빠른 전송 속도, 국경 없는 거래, 투명한 기록은 유지하되, 가격 변동성만 제거한 디지털 자산.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 탄생의 직접적 배경이다. 2014년 댄 라리머가 BitUSD를 선보이며 시작된 스테이블코인 실험은 초기에는 시스템의 복잡성으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 등장한 테더(Tether)는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 테더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개념을 제시했다. 1달러를 예치하면 1 USDT를 발행한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코드에 실제 법정화폐라는 담보를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암호화폐를 '믿을 수 있는 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재 테더의 시가총액은 1,630억 달러를 넘어섰고, 전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테더는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한 경제 주체로 성장했다. 민간 기업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가 국가의 외환보유고를 넘어선 것이다.


전통 금융에서 돈은 잠들어 있다. 은행에 예금하면 연 이자를 받지만, 그마저도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감소한다. 은행은 우리의 예금으로 대출 이자를 벌지만, 그 수익의 대부분은 금융기관의 몫이다. 예금자는 단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보상만 받을 뿐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이자 창출형 스테이블코인, 즉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은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연 5~15%의 수익을 창출한다. 에테나의 USDe, 스크롤의 USX, 아반트의 avUSDX와 같은 프로젝트들은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 유동성 공급 보상, 담보 자산 운용 수익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분배한다. 여기서 핵심은 '프로그래머블(programmable)'하다는 특성이다. 전통 금융에서는 은행이라는 중개자가 누가 얼마의 이자를 받을지 결정하고, 그 과정은 불투명하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 컨트랙트라는 자동화된 코드로 모든 것이 실행된다. 수익이 어디서 발생했는지, 어떻게 분배되는지, 내 지분이 정확히 얼마인지 모두 블록체인 위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투명성과 접근성, 이 두 가지가 수익형 스테이블코인이 제공하는 가장 혁신적인 가치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시스템이 24시간 365일 작동한다는 것이다. 주말도, 공휴일도, 은행 영업시간도 상관없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지구 반대편 어디서든, 국적이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금융 포용성의 관점에서 이는 혁명적 변화다. 전통적으로 금융 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 선진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유리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은 이 장벽을 무너뜨린다.


스테이블코인의 진정한 잠재력은 단순히 디지털 달러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모든 실물 자산을 디지털화하는 토큰화(Tokenization) 혁명의 시작이다. 부동산, 주식, 채권, 예술품, 심지어 저작권이나 탄소배출권까지,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이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으로 표현될 수 있다. 2020년 이후 RWA(Real World Asset, 실물자산)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그 중심에 있으며, 2025년 기준 전체 시장 규모는 2,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뉴욕의 부동산 지분을 소유하거나, 유명 미술품의 일부를 구매하거나,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자산은 거액의 자본을 가진 소수만 접근 가능했다. 부동산에 투자하려면 수억 원이 필요하고, 명화를 소유하려면 수십억 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토큰화는 이 자산들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소액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1억 원짜리 부동산을 100만 개의 토큰으로 나누면, 한 토큰당 100원에 투자할 수 있다. 유동성이 낮아 쉽게 사고팔 수 없던 자산도 디지털 토큰이 되면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부자만을 위한 금융'에서 '모두를 위한 금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생태계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한다. 토큰화된 자산을 사고팔 때,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를 할 때, 즉시 정산이 필요할 때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된다.


스테이블코인의 부상은 국가의 화폐 주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화폐 발행권은 국가의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민간 기업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가 국가의 법정화폐와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대응하여 각국 정부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개발하고 있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겉보기에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화폐로, 국가의 신용이 담보하며, 법적으로 모든 거래에서 수용되어야 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민간 기업이 발행하며, 법정화폐나 자산을 담보로 가치를 유지한다. CBDC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으로 운영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형 구조를 지닌다. 이 두 진영은 충돌하면서도 공존한다. 정부는 화폐 주권을 지키기 위해 CBDC를 추진하지만, 동시에 민간의 혁신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스테이블코인은 속도와 유연성, 글로벌 접근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결국 미래의 디지털 금융 생태계는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며 공존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움직임이다. 애플, 구글, 페이팔, 그리고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 토스, 삼성전자까지 앞다퉈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기존의 결제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들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자사의 생태계에 통합한다면, 디지털 화폐의 대중화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2025년 한국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이재명 정부는 디지털 허브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비전 아래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기업의 사업을 허용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디지털 금융 주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그동안 한국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은 부족했다. 테라-루나 사태와 FTX 파산 같은 대형 사건의 여파로 '크립토 윈터'를 겪으며 시장은 위축되었다. 그러나 글로벌 트렌드는 이미 방향을 정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지니어스법에 서명하며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육성하고 있고, 유럽, 일본, 중국 등도 각자의 전략을 추진 중이다. 만약 한국이 이 흐름에서 뒤처진다면 어떻게 될까? 금융 혁신의 주도권을 잃고, 디지털 경제 시대에 변방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반대로 적극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시장을 육성한다면, 아시아의 디지털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높은 IT 인프라, 빠른 인터넷 속도, 암호화폐에 친숙한 젊은 세대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지는 정책적 결단에 달려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화폐의 형태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조개껍데기에서 금속 주화로, 금화에서 지폐로, 지폐에서 신용카드로, 그리고 이제 디지털 화폐로. 매 전환기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형태의 돈을 불신했다. 종이 쪼가리가 어떻게 금만큼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통장 잔고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새로운 화폐 형태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받아들여졌다. 스테이블코인 역시 같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초기의 회의론과 규제의 불확실성을 지나, 이제는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적 기반, 실시간 결제와 투명성이라는 실용적 장점, 그리고 금융 포용성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결합하여 스테이블코인은 유행을 넘어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변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세계는 움직이고 있고, 물결은 거세다. 5년 후 우리의 지갑에는 어떤 돈이 들어 있을까? 가치를 잃어가는 낡은 화폐일까, 아니면 전 세계와 연결된 스테이블코인일까? 그 답은 지금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흐름을 읽는 자가 기회를 잡는다. 스테이블코인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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