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와인을 읽다, 보다, 걷다 - QR 영상으로 떠나는 포도밭 여행
이종영 외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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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주말 휴일에 와인 한잔 하면서 와인 영화의 걸작인 사이드웨이를 다시보았다. 좋아하는 와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다시한번 가장 좋아하는 대화를 들어보았다.

마일즈 : 피노누아는 재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만 잘 자라죠. 인내심 없는 재배가 불가능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져요.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죠. 또 다른 품종과는 다르게 소박함도 느껴지고... 당신은요? 왜 와인을 좋아해요?

마야 : 전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 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사한 햇살...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 동안 죽어간 사람들... 또 와인은 변화무쌍하죠.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생명력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죠. 제 맛을 함껏 뽐내곤 삶을 마감하죠.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에!

영화 사이드웨이

나는 피노누아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와인을 안지가 경력이 얼마되지않아 카쇼를 제일 좋아한다. 피노누아는 아직 내가 초보자이기에 그 풍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와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언제 만들어진 빈티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빈티지보다는 떼루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도밭의 위치, 경사도, 밭의 물의 양, 햇빛 그리고 모든 바람의 영향 등 모두를 종합해서 떼루아라 한다. 인간이 인간성을 만들어가는데 주변환경 영향과 같은 모양새다. 우리의 삶은 포도주와 같다고 한다. 문뜩 그동안 공부했던 와인관련 다양한 정보를 정리해 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ㅎㅎ 와인에서 시와 낭만 그리고 인생을 발견한 <부르고뉴 와인을 읽다, 보다, 걷다>을 읽었다. 순수 자연 발효 알콜을 섭취한 휴일 오후에....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밀한 합의가 있다. 초보자는 칠레나 호주의 과일 향 가득한 와인으로 시작하고, 조금 익숙해지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프랑스 보르도의 웅장함에 감탄하다가, 결국엔 부르고뉴라는 미로 앞에 서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미로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책은 바로 그 미로 앞에 선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하지만 여느 가이드북처럼 친절하게 손을 잡아끌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직접 걸어보라고, 스스로 보고 느껴보라고 권한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읽다, 보다, 걷다.' 수동적 학습이 아니라 능동적 체험을 요구하는 동사들의 나열. 이 세 개의 동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책이 취하는 독특한 접근법의 본질을 드러낸다. 부르고뉴는 와인 세계의 에베레스트라 불린다. 복잡한 끌리마 체계, 미세한 떼루아의 차이, 얽히고설킨 소유권 구조, 그리고 수백 개에 달하는 마을 이름들. 일반적인 와인 입문서들이 부르고뉴를 다루면서도 유명한 몇몇 그랑 크뤼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샤블리부터 마꼬네까지, 유명한 본과 뫼르소는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꼬뜨 샬로네즈의 작은 마을들까지 빠짐없이 다룬다.


책의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와인 전문가가 아니다. 그들의 본업은 다른 곳에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토록 방대한 작업을 해낸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애정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 지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전문가의 글은 때로 지나치게 기술적이거나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오류에 빠진다. 업계 내부자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초심자가 느끼는 막연함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반면 깊이 공부한 애호가의 시선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온 혼란의 여정을 기억하고, 어떤 설명이 도움이 되고 어떤 정보가 불필요한지 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저자들의 고백은 겸손처럼 들리지만, 실은 이 책의 강점을 정확히 짚어낸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학습자였던 시절의 기억이 묻어나는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복잡한 AOC 체계를 설명할 때의 차근차근한 접근, 떼루아와 끌리마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사례로 풀어내는 방식, 그리고 각 장 사이에 배치된 '미니토픽'들. 포도 줄기를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가닉과 비오디나믹의 차이, 부르고뉴 상속법이 와인 산업에 미치는 영향 같은 주제들은 교과서적 지식을 넘어선, 현장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이다.


책의 가장 혁신적인 시도는 QR코드를 통한 영상 제공이다. 국내 와인 전문서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단순한 '최초'라는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와인은 결국 땅의 산물이다. 특히 부르고뉴처럼 떼루아를 강조하는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정교한 언어로 토양의 성질을 설명하고, 언덕의 경사를 묘사해도, 실제로 그 풍경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저자들이 직접 촬영한 포도밭의 영상은 책의 내용을 단순히 보조하는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를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통로다. 끌로 드 부조의 돌담을 보고, 샹볼 뮈지니의 완만한 경사를 확인하고, 샤블리의 석회암 토양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이것은 학습이 아니라 여행이다. 물리적으로 부르고뉴에 가지 않아도, 책을 읽으며 그곳을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 제목의 세 동사 중 '보다'와 '걷다'를 실현시키는 장치다. QR코드라는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적 경험, 즉 땅을 밟고 바람을 느끼는 감각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더 근원적인 체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책의 구성을 보면 일종의 동심원 구조를 띤다. 가장 바깥에는 부르고뉴 와인의 역사와 개요가 있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떼루아와 끌리마라는 철학적 토대가 자리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AOC라는 법적·제도적 틀이 나타나고, 마침내 중심에는 개별 마을들과 그들의 와인이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면서 실용적인 정보들 - 시음법, 보관법, 페어링 - 이 배치된다. 이런 구조는 독자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하나는 지도다. 부르고뉴라는 광대한 지역의 전체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꼬뜨 드 뉘와 꼬뜨 드 본의 차이, 샤블리가 왜 따로 떨어져 있는지, 마꼬네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 개별 나무들만 보다가 숲을 발견하는 순간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다른 하나는 나침반이다. 막막함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원칙들. 떼루아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AOC 등급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런 근본적 이해가 있을 때, 수백 개의 와인 이름들이 무작위 나열이 아니라 의미 있는 체계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훌륭한 점은, 모든 것을 다 채워 넣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여백이 있다. 독자가 스스로 채워 나가야 할 공간들. 예컨대 한식과 부르고뉴 와인의 페어링을 다룬 부분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가능성을 열어둔다. 각자의 경험으로 확장하고, 자신만의 조합을 발견하라고 초대한다. 완결된 백과사전이 아니라, 여정을 시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와인 여정의 종착역은 부르고뉴"라는 말이 있다. 이 책도 그 표현을 인용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말이 역설을 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부르고뉴는 종착역인 동시에 출발선이다.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은 와인에 대한 일정 수준의 이해와 경험을 갖췄다는 의미다. 더 이상 단순한 과일 향이나 떫은맛에만 주목하지 않고, 산도와 미네랄, 구조와 여운,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단계. 그러나 동시에 부르고뉴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마을 안에서도 밭에 따라, 생산자에 따라, 빈티지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들. 평생을 바쳐도 다 알 수 없는 깊이다. 책은 그 무한한 깊이 앞에서 겸손해지면서도, 동시에 탐험에 대한 열망을 품게 만든다. 모든 마을을 다 가볼 수는 없겠지만, 한 병의 와인을 마실 때 그 뒤에 있는 땅과 사람, 역사와 기후를 생각하게 된다. 글라스 안의 액체가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어떤 장소와 시간의 압축된 기록처럼 느껴진다.


'부르고뉴 와인을 읽다, 보다, 걷다'는 교본이 아니라 동반자에 가깝다.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이해를 추구한다. 저자들이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자산이다. 그들은 독자와 같은 위치에서 출발해, 조금 먼저 길을 걸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권위적이지 않고, 과시적이지 않다. 한국어로 된 와인 책들 중에 부르고뉴만을 이토록 깊이 있게 다룬 사례가 드문 이유는 명확하다. 너무 복잡하고, 너무 방대하며,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것도 QR코드라는 새로운 시도까지 더해서.

와인의 일생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와인은 생명체거든요. 와인이 계속 변화한다는 게 정말 좋아요. 오늘 열어서 마신 와인을 만일 다른 날에 따서 마셨더라면 맛이 다를 거잖아요. 그건 와인이 살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진화하고 다양한 모습을 더해 가다가, 당신의 1961년 산 슈발 블랑처럼 정점에 이르게 돼요. 그 후로는 피할 수 없는 내리막 길을 따라 서서히 시들어가죠

영화 사이드웨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사이드웨이즈(sideways)> 중에서 여주인공 마야의 대사이다. ’슈발 블랑(Cheval Blanc)’이라...보르도의 지롱드강 우안에 있어 1855년의 ‘그랑 크뤼 클라세’에서 1등급 와인에 들지는 못했지만 당당히 그들 1등급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혹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와인이다. 실제로 현대 보르도를 대표하는 와인들을 꼽으라면 1등급 와인 5개에다가 4개를 덧붙여 모두 9개를 꼽는데 ‘슈발 블랑’ 역시 그중 하나다. 슈발 블랑....‘하얀 말’이라는 뜻인데...거의 레드 와인만 생산하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생테밀리옹의 샤또에서 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화이트 와인 느낌이 나는 레드 와인이라고 한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에 가까운 와인이다. 강건하고 파워풀하고, 시간을 견디는 보르도 와인이면서 동시에 부르고뉴 피노누아의 서정적인 우아함도 지닌 게 슈발 블랑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은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 와인이 우리 삶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며, 식사에 맛을 더하고, 대화를 원활하게 하며, 인생의 작은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 해 주는 와인의 종류와 와인에 담긴 역사와 의미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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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해도 늦지 않은 주식 공부
곽유정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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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켰다. 습관처럼. 어제 장이 좋지 않았다는 건 알았지만, 오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 계좌는 온통 파란색이었다. 마이너스 8%, 마이너스 12%, 심지어 마이너스 15%까지. 손가락이 떨렸다. '다 팔아버릴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주식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반년. 처음엔 신났다. 월급의 일부를 넣어서 조금씩 수익이 나기 시작했을 때는 '나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유튜브에서 본 종목, 커뮤니티에서 추천받은 테마주, 지인이 좋다던 기업. 그렇게 하나둘 모은 내 포트폴리오는 어느새 열 개가 넘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시장이 무너지니까, 나는 내가 산 종목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 회사가 뭐 하는 곳이지?' '왜 샀더라?' '지금 팔아야 하나, 버텨야 하나?'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더 두려워한다. 나는 그 순간을 통해서야 알았다. 내게 필요한 건 '대박 종목 추천'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부'였다는 것을 말이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HTS'라는 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책장에 꽂아두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오늘 시작해도 늦지 않은 주식 공부>. 사놓고 제대로 읽지 않았던 책이었다. 시작할 때는 귀찮았다. 그냥 누가 좋다는 종목만 따라 사면 되지, 굳이 이런 걸 읽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꺼내 들고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놀랐다. 이 책은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으며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라는 식으로 건너뛰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기본적인 것부터, 가령 '주식이란 무엇인가'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마치 주식 좀 하는 동네 선배가 옆에 앉아서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 "야, 너 HTS 켜는 거 알아? 거기 보면 이런 화면 뜨잖아. 여기 이게 호가창이라는 건데..." 이런 식으로. 부끄러워서 남한테 차마 못 물어보는 것들, 다들 아는 것 같아서 혼자만 모르는 것 같아 주눅 들게 만드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거였어. 내가 놓치고 있던 게 바로 이런 거였어.

주식 뉴스를 보면 항상 답답했다. 아나운서가 뭐라고 말하는지 단어는 들리는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는 거다. "이 종목은 PER이 낮고 PBR도 매력적입니다", "ROE가 개선되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는 모르는 그 느낌. 마치 외국어 단어를 대충 알아듣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그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PER은 주가수익비율이라는데, 쉽게 말하면 지금 이 주식이 비싼지 싼지를 가늠하는 척도란다. 낮으면 저평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높으면 시장이 이 회사의 미래를 좋게 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 물론 무조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의 기준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PBR은 또 다르다. 회사의 자산가치 대비 주가를 나타내는 지표인데, 만약 PBR이 1보다 낮다면 회사를 청산했을 때 남는 돈보다 주가가 낮다는 의미란다. 그러니까 '장부상으로는 이 정도 가치인데, 시장에서는 더 싸게 팔리고 있네?' 하는 상황인 거다. ROE는 자기자본이익률. 회사가 내 돈(자본)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높을수록 효율적이고, 장사를 잘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알아가니까 뉴스가 다르게 들렸다. 예전엔 그냥 스쳐 지나가던 단어들이 이제는 뭔가 의미를 갖고 다가왔다. '아, 이 종목은 저평가되어 있구나', '이 회사는 수익성이 좋네' 같은 판단을 내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솔직히 재무제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숫자가 빼곡한 표를 보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자산총계, 부채비율... 대체 이걸 왜 봐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봐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하지만 책에서는 말한다. 재무제표는 회사의 성적표라고. 우리가 학창시절에 성적표를 받아보면 '아, 내가 이 과목은 잘하고 저 과목은 못하는구나'를 알 수 있듯이, 재무제표를 보면 이 회사가 돈을 잘 벌고 있는지, 빚은 없는지, 앞으로도 성장할 여력이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재무제표를 보는 다섯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매출과 영업이익의 추세'를 보라는 것이었다.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고, 영업이익도 함께 증가한다면 이 회사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다. 반대로 매출은 늘어나는데 이익은 줄어든다면, 뭔가 비용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 부채비율도 중요하다고 했다. 회사가 빌린 돈이 너무 많으면, 이자 부담 때문에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더 그렇다. 그래서 부채비율이 낮고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종목들의 재무제표를 하나하나 찾아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어떤 종목은 매출은 늘고 있는데 이익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또 어떤 종목은 부채비율이 200%가 넘었다. '이걸 왜 샀지?'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동시에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눈 감고 투자하고 있었구나.

차트를 볼 때 나는 늘 촛대만 봤다. 빨간 봉, 파란 봉. 오르면 좋고, 내리면 나쁘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책은 말한다. 봉차트의 모양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바로 거래량이라고. 거래량은 에너지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사고팔 때 거래량이 터진다. 만약 주가가 오르는데 거래량도 함께 증가한다면, 이건 진짜 상승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이 주식 좋다'고 생각하며 사들이고 있다는 뜻이니까. 반대로 주가는 오르는데 거래량이 시들하다면? 이건 위험 신호다. 힘없는 상승이라는 거다. 곧 힘이 빠져서 다시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하락할 때도 마찬가지다. 거래량이 터지면서 급락한다면 공포 매물이 쏟아지는 것이고, 거래량 없이 조용히 내려간다면 관심이 식어가는 중이라는 신호다. 이런 걸 알고 나니까, 차트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그냥 빨간색, 파란색 막대기로만 보였는데, 이제는 '아, 여기서 사람들이 몰렸구나', '여기서 다들 포기하고 팔았구나' 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았다.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문장이 있다. "초보자일수록 고수익을 쫓기보다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정말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 벌까?'만 생각했지, '얼마 잃을 수 있나?'는 생각 안 했다. 누군가 "이 종목 대박 난다"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따라 샀다. 왜 오를지, 이 회사가 뭘 하는지, 재무상태가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남들이 번다는데 나도 벌고 싶다'는 조급함뿐이었다. 책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투자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내가 왜 이 주식을 사는지, 어느 가격에서 사고 어느 가격에서 팔 것인지, 손실은 어디까지 감수할 것인지. 이런 기준이 없으면 감정에 휘둘리게 되고, 결국 잃는다고. 그래서 나는 노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적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종목들을 하나씩 점검하며, 각 종목에 대한 투자 이유를 정리했다. '왜 샀나?', '어떤 가치가 있나?', '얼마까지 오를 것 같나?', '손절 기준은?' 적다 보니 놀라웠다. 절반 정도는 제대로 된 이유가 없었다. 그냥 분위기에 떠밀려 샀거나, 누군가의 말만 믿고 샀거나. 이런 종목들은 과감히 정리하기로 했다. 대신 제대로 공부하고, 확신이 생기는 종목만 남기기로 했다.

시장이 무너질 때,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공포에 질려 도망치거나, 아니면 이 기회에 제대로 배우거나다. 나는 후자를 택했다. 오늘 같은 날, 창을 끄고 책을 펼친 건 어쩌면 올해 내가 한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폭락장에서 패닉셀을 하는 대신, 침착하게 내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공부했다. 책의 저자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속으로 1위를 했다고 한다. 대단한 실력자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화려한 수익률 자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했다. "기본기를 지키라", "원칙을 세워라", "공부하라". 당연해 보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시장은 늘 오르락내리락한다. 역사를 보면 결국은 우상향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떠났다. 왜일까? 버티지 못해서다. 왜 버티지 못했을까? 확신이 없어서다. 왜 확신이 없었을까?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이었다. 하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침에 느꼈던 그 공포와 조급함이 사라졌다. 나는 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남의 말만 믿고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공부하고 판단해서. 재무제표를 보고, 차트를 분석하고, 뉴스를 해석하면서. 물론 여전히 어렵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고수가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적어도 방향은 잡았다. 내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주식 투자는 마라톤이라고 한다. 단거리 달리기처럼 빨리 결과를 내려고 하면 지친다. 천천히, 꾸준히, 원칙을 지키며 나아가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 오늘 저녁, 나는 HTS를 켰다. 여전히 파란색 숫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하나하나 종목을 점검했다. 이 회사의 재무제표는 어떤지, 업종 전망은 어떤지, 지금 가격은 적정한지. 그리고 깨달았다. 시장이 무너질 때 진짜 투자자와 투기꾼이 구분된다는 것을. 투기꾼은 도망치지만, 투자자는 기회를 찾는다. 나는 투자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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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의 시대 - 진단은 어떻게 우리를 병들게 하는가
수잰 오설리번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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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의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다. 백신은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퇴치했고, 항생제는 한때 치명적이었던 감염을 일상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첨단 영상 기술과 유전자 검사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정밀하게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나 30년 경력의 신경과 전문의 수잔 오설리번(Suzanne O'Sullivan)은 그녀의 신작 <진단의 시대(The Age of Diagnosis)>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혹시 너무 많이 진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학적 라벨을 붙이는 것이 항상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자폐증, ADHD, 암, 라임병, 롱코비드 등 다양한 질환의 진단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 앞에서, 오설리번은 우리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비관론과 의학이 더욱 정교해졌다는 낙관론 사이에서 제3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는 더 아픈 것이 아니라,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질병으로 귀속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설리번은 현대 의학의 문제를 "과잉의 삼위일체"로 개념화한다. 첫째, 과잉진단(overdiagnosis)은 치료가 꼭 필요하지 않은 의학적 문제를 치료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일부 암 조기 검진 프로그램은 실제로 암으로 진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이상 징후를 발견하여, 환자에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게 만드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70세 이상 여성의 유방암 과잉진단율이 30%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는 불필요한 유방절제술, 방사선 치료, 화학요법을 의미한다. 둘째, 과잉의료화(overmedicalisation)는 비의학적 행동이나 특성을 의사의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정상적인 개인차, 일상적인 슬픔과 불안, 삶의 불완전함이 점점 더 의학적 장애로 규정되고 있다. 오설리번은 자신의 진료실을 찾는 20~30대 젊은이들이 이미 수많은 진단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투렛증후군, 난독증, 자폐증, ADHD, 우울증, 불안장애 등이 한 사람에게 동시에 진단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셋째, 이 두 현상의 근저에는 과잉탐지(overdetection)가 자리한다. 우리는 질병의 신호를 점점 더 잘 식별해내고 있지만, 때로는 필요 이상으로 조기에, 그리고 그 지표들이 실제 질병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시점에 발견한다. 선별검사 프로그램, 영상 스캔, 유전자 검사 등 기술의 발전은 문제로 진행되지 않을 이상 징후들까지 탐지해낸다.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잠재적 문제를 발견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에 매혹되어, 탐지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함정에 빠진다.


오설리번이 주목하는 가장 극적인 사례는 행동 장애의 진단 증가다. ADHD는 1968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 처음 등장했을 때, 어린 아이들의 산만함과 안절부절못함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DSM 개정을 거치면서, ADHD는 이제 모든 연령대에 적용될 수 있고, 광범위한 증상과 심각도를 포괄하는 진단명이 되었다. 2018년 기준 미국 아동의 거의 10%가 ADHD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20년 전 6% 미만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자폐증의 경우는 더욱 인상적이다. 2022년 미국 아동 31명 중 1명이 자폐 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2000년 150명 중 1명에서 급증한 것이다. 이러한 증가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자폐증의 실제 범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자폐증을 확진할 수 있는 혈액 검사나 스캔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설리번이 지적하듯, "진단은 전적으로 정상적인 행동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달려 있다." 오설리번은 "진단 확대(diagnosis creep)"라는 개념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한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선이 천천히 이동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때 건강하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질병 집단으로 편입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오설리번이 ADHD와 자폐증이 실제 질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문제 삼는 것은 과잉진단의 가능성이다.

오설리번은 가명 포피(Poppy)라는 자폐 청소년의 사례를 통해 진단이 가진 복잡한 의미를 보여준다. 포피는 자신이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폐인"이라고 명확히 말한다. 자폐증은 그녀가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녀 존재 방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진단은 포피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과거라면 포피는 반에서 "좀 이상한" 아이였을 것이고, 그 특이함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이제 라벨은 그녀가 비전형적인 존재임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중등도 또는 경증 자폐 진단을 받은 아동의 경우, 진단이 유익할 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당한 해를 끼친다는 새로운 증거도 나타나고 있다. 자존감 저하, 자폐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일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도를 꺼리게 되는 현상 등이다. 성인의 경우, 진단 자체로 인한 이득이나 해에 대한 증거는 희박하다. 이는 진단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진단은 동시에 해방적이면서도 제한적일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이해와 사회적 인정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낙인과 자기 제한적 신념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오설리번이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연민과 배려, 그리고 품위로 가득 차 있다. 이는 나쁜 과학을 반박하는 글들이 종종 빠지는 함정을 피하는 중요한 접근법이다.


라임병과 롱코비드, 이 두 질환은 악명 높을 정도로 광범위한 증상을 가지고 있으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라임병의 원인은 잘 알려져 있다. 사슴 진드기가 전파하는 세균 감염이다. 그러나 환자들은 불신부터 제한적인 생물학적 증거에 기반한 거대한 과잉진단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부적절한 처우를 경험한다. 오진율은 무려 85%로 추정되는데, 이는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의사들과, 환자들의 모호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절박함을 이용하는 극소수 회사들 때문이다. 롱코비드 역시 어떤 하나의 장기나 해부학적 시스템에 국한되지 않는 효과를 가진다. 오설리번이 지적하듯, 롱코비드는 독특하게도 대중이 주도한 진단이며, 종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과학적 정의와 체계적 연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롱코비드 환자로서 그녀는 그것이 매우 실재한다는 것을 증언하지만, 동시에 대중 주도 진단이 가져온 방법론적 문제들을 지적한다. 이러한 질환들이 탐구하기 극도로 어려운 영역인 이유는 명확하다. 증상은 실재하고 환자들의 고통은 진짜이지만, 진단의 경계는 모호하고, 생물학적 표지자는 불확실하며, 문화적·사회적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오설리번의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더 아픈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질병으로 귀속시키고 있다." 진단은 도구이며,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사용되어야 한다. 차이에 대한 관용과 불완전함에 대한 수용이 우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과잉진단의 가장 큰 지표는 질병 탐지율은 훨씬 높아졌지만 장기적인 건강에는 실질적인 개선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의사들과 과학자들의 책임을 인정하지만, 삶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진단을 요구하는 환자들과 환자의 부모들의 역할도 강조한다. "끊임없는 건강, 성공, 순탄한 삶을 향한 전환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실망으로 이어진다. 의학적 설명은 우리가 그 실망을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반창고가 되었다." 현대 사회의 깊은 문화적 변화를 반영한다. 우리는 점점 더 완벽함을 기대하고, 불편함을 견디는 능력은 줄어들었으며, 모든 어려움에 대한 의학적 해결책을 찾는다. 정상적인 경험, 불완전함, 슬픔, 불안이 점점 더 의학적 장애의 인가를 받고 있다.


<진단의 시대>는 현대 의학이 직면한 가장 어려운 딜레마 중 하나를 이야기 한다. 의학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질병을 식별하고 치료하며, 사람들이 애초에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겉보기에 단순한 목표들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극도로 복잡하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학적 증거 기반, 계속 변화하는 진단 기준, 그리고 정상과 병리를 나누는 자의적인 선들. 저자는 과잉진단의 문제만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도 환자들의 경험을 무효화하지 않고, 의학적 진보를 부정하지 않으며, 보수적 담론에 포섭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쉽지 않은 일이며, 그녀의 성공은 그녀의 임상 경험, 과학적 엄밀함, 그리고 깊은 인간애에서 비롯된다할 것이다. 오설리번은 의학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이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사용되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녀의 메시지는 진단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단을 더 신중하고 사려 깊게 사용하자는 것이다. 책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을 견디는 능력, 모든 차이를 병리로 전환하지 않는 지혜, 그리고 의학적 라벨 없이도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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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챈스(Change Chance) - 변화가 기회를 만든다
서이타 지음 / 성안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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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변화의 순간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게으름이나 보수성의 문제가 아니다. 뇌과학적으로 인간의 뇌는 익숙한 패턴을 선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반복된 경험은 시냅스를 강화하고, 강화된 신경회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변화의 물결을 경험하게 된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 조직 개편, 업무 프로세스 변경 등 크고 작은 변화들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그때마다 우리는 "왜 잘 되고 있는데 굳이 바꾸려고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현재 상태에 적응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을 생각하면, 다시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 서이타 작가가 제시하는 통찰은 명확하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기업 내부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한다.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있다. 변화관리란 변화에 적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기업이 원하는 미래의 상태로 이끌어가는 능동적 과정이다.


성공적인 변화는 세 가지 요소의 유기적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리더, 직원, 그리고 기업문화가 그것이다. 이 세 요소는 각각 독립적이 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리더는 변화의 시작점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 변화가 조직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며,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과거의 리더십이 명령과 통제에 기반했다면, 현대의 리더십은 설득과 동기 부여에 기반한다. “리더는 단순히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직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 변화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넘어, 변화가 가져올 비전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그들이 그 비전의 일부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직원은 변화의 실행자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전략이 있어도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직원들이 변화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와 성장에 그 변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작은 것이라도 변화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가질 때, 직원들은 변화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기업문화는 변화를 유지하는 토양이다. 리더가 씨앗을 뿌리고 직원들이 싹을 틀어도,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은 문화의 몫이다. 기업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직의 역사 속에 녹아있고, 직원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형성된 것이다.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구조화되고 내재화된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지만,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리 잡으면 강력한 추진력이 된다.


흥미롭게도 변화를 시도한 기업의 70%가 실패한다는 통계가 있다. 왜 이렇게 많은 변화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걸까? 여러 이유가 있지 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당하는 것'에 저항한다는 점이다. "나 빼고 전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솔직한 마음이다. 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변화의 주체가 나 자신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이는 선택권의 문제와 연결된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변화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강요된 변화는 저항하게 된다. 이유나 맥락을 모른 채 따라가야만 한다고 느낄 때, 변화는 위협으로 다가온다. 또 다른 실패 요인은 변화를 너무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혁신, 대변혁,'패러다임 전환'과 같은 거대한 구호는 오히려 직원들을 위축시킨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원리를 망각하고,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한다. 작은 성공을 축적하면서 동력을 얻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동참시켜야 한다. 변화를 극복하는 열쇠는 강점 기반 접근에 있다. 문제점을 찾아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하고 있는 것을 찾아 확장하는 것이다. 조직이 이미 가지고 있는 강점을 활용하면, 변화는 덜 위협적이고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자발적인 소집단 활동이나 소규모 팀이 공식 조직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단위에서 변화를 실험하고, 성공 사례를 만들고, 그것을 점차 확산시키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변화관리가 경영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독특한 관점이다. 저자는 역사, 철학, 종교에서 변화의 지혜를 찾는다. 이는 변화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이며, 모든 시대, 모든 문화가 변화와 씨름해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역사는 변화의 실험실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메이지 유신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변화에 대한 풍부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순신이 23전 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전술적 우수성 때문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제한된 자원으로 창의 적인 해법을 찾아내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은 변화의 본질을 탐구한다. 니체의 낙타-사자-어린 아이 비유는 변화의 단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짐을 지고 견디는 낙타처럼 버텨야 하고, 그다음에는 사자처럼 기존의 것에 도전해야 하며, 마지막에는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창의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은 변화가 대립을 통해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종교는 변화의 근본적 동력을 제시한다. 거듭남, 깨달음, 돈오점수 같은 개념들은 모두 근본적인 변화를 다룬다. 특히 "사랑 빼고 다 바꾸자"는 명제는 변화의 핵심을 짚는다. 변화에는 불변의 중심이 필요하다. 모든 것 이 변하면 정체성을 잃는다. 변하지 않는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나머지는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문제다. 조직의 변화도 결국 구성원 개개인의 변화가 모여 이루어진다. 저자가 제시하는 개인적 변화의 방법 들은 실천 가능하고 구체적이다. 달리기, 등산, 독서, 골프 같은 활동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한다. 이는 신체 활동이 뇌의 활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등산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듣고, 독서를 통해 고수를 만나고, 골프를 통해 사람을 사귀는 것은 모두 일상의 패턴을 깨고 새로운 관점을 얻는 방법이다. 목적을 아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자신의 목적을 알면 삶은 단순해진다. 목적은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노력과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목적과 비전이 있으면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지, 어떤 변화는 거부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결국 변화는 기회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통해 성장 할 수 있는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리더는 변화를 시작하고, 직원은 변화를 실행하며, 문화는 변화를 유지한다. 이 삼박자가 조화를 이룰 때,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된다. 70%의 실패 확률을 극복하고 30%의 성공 사례가 되는 길은,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고 사람 중심의 접근을 하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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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붕의 글로벌 AI 트렌드 - 지금 모든 자본은 AI를 향하고 있다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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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 시점 가장 핫한 주제인 AI... 이 AI의 글로벌 트렌드를 알아 볼 수 있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30년 전 인터넷 혁명을 복도했던 세대에게 지금의 AI 열풍은 데자뷔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이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면, AI는 권력의 재구조화를 초래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오르고, 젠슨 황과 이재용, 정의선이 한자리에 모이는 8300조 규모의 회동이 이루어지는 현상은 기술 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문명의 지배권을 둘러싼 자본과 권력의 전쟁터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산업혁명은 자본의 집중을 동반했다. 증기기관이 그랬고, 전기가 그랬으며, 인터넷이 그랬다. 그러나 AI 혁명은 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과거의 기술들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확장했다면, AI는 인간의 지적 영역을 대체하거나 증폭시킨다. 생산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 회 구조 전체를 뒤흔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압축 경영'의 현상은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거 10명이 해내던 업무를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한 명의 중견 전문가가 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고용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대량 채용 후 대량 해고라는 빅테크의 무자비한 인력 재편은 AI가 가져온 효율성의 이면이다. 지식노동자라는 안전지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AI 인재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수백억 원이던 계약금이 이제는 조 단위로 치솟고 있다. 이는 AI 핵심 인재가 곧 국 가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반영한다. 젊은 천재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지키며 글로벌 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하는 시대, 여성 엔지니어들이 AI 혁명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는 능력주의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극소수의 슈퍼스타와 대다수의 평범한 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양극화의 서막이기도 하다.


AI 시대의 지정학은 냉전 시대의 핵무기 경쟁과 닮아있다. 미국과 중국은 AI 패권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오픈AI, 구글, 메타로 대표되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는 명확하다. 그러나 하드웨어, 특히 피지컬 Al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은 위협적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가사노동을 학습하는 동안,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제조 현장에서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를 AI와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수만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계획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미국이 제조업을 포기한 사이, 중국은 제조업과 A를 결합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과거 IT 시대에 소프트웨어만 중시하다가 하드웨어 경쟁력을 잃었던 일본과 독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애매하면서도 기회가 있다. AI 기술 수준 세계 6위라는 순위는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상위권 국가들과의 격차는 자본과 인프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2024년까지 한국이 확보한 GPU가 겨우 4천 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자부심과는 달리, AI 연산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6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강점 덕분이다. 첫째, 반도체 제조 능력, TSMC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삼성의 존재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 제조업 인프라, 자동차, 전자, 조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피지컬 AI 시대에 빛을 발할 수 있다. 셋째, 인재 양성 시스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꾸준히 배출되는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다. 하지만 이러 한 강점들이 자동으로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을 선도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챗GPT의 오픈A조차 위기설에 직면한 것처럼, AI 시대의 승자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혁신으로 결정된다. 한국이 3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 기업의 과감한 투자, 연구 인프라의 확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A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산업 경계의 소멸이다. 과거에는 패션, 게임, 교육, 금융, 헬스케어가 각각 분리된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메타 인더스트리의 본질이다. BTS 팬덤이10년 넘게 지속되는 이유는 음악이 좋아서만이 아니다. 팬들은 음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나아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팬덤 경제는 과거 특정 국가나 언어권에 국한되었지만, 지금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진화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이 기획과 연출을, 미국이 자본 을, 일본이 제작을 담당하는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어느 나라 작품'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과연 한국의 작품인가 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틀렸다. 메타 인더스트리 시대에는 국적보다 경험과 관계, 그리고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AI는 이러한 메타 인더스트리를 가속화한다. 과거 10억 원이 들던 창업 비용을 AI를 활용하면 1억 원으로 줄일 수 있다. 복잡한 전문 도구 없이도 누구나 고품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창작의 민주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LMM(대규모 멀티 모달 모델)의 등장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창작과 편집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노 바나나와 같은 사례는 AI가 창작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인비의 문명론은 AI 시대에도 유효하다. 문명은 탄생, 성장, 쇠퇴, 해체의 순환을 거치며, 그 전환점은 외부의 도전에 대한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 과거 디지털 전환에 실패했던 독일과 일본은 AI라는 새로운 도전에도 뒤처지고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혁신과 투자로 응전하며 새로운 문명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 한국의 AI 전략은 기술 개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인재 양성, 조직 구조의 혁신, 정부와 기업의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 AI 주권의 확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AI 주권이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AI 모델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K-컬처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방탄소년단부터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며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이 팬덤 경제를 AI와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팬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AI를 활용해 창작 과정을 혁신하며,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유통한 다면, K-컬처는 문화 상품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빅테크의 독점과 인프라 종속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인프라를 장악하고, 엔비디아가 GPU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선진국 대열에서 영원히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30분, 혹은 1시간씩이라도AI를 공부하는 습관은 개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3년, 5년, 10년 후 우리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 것이다. 실력주의 시대의 도래는 AI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더 이상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Al 를 얼마나 능숙하게 활용하는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는 기회이자 위기다. AI 시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우 리는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될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그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과감한 투자, 유연한 조직 문화, 정책적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끊임없는 학습과 적응이 필요하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며, 그 권력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문명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한국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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