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뉴 와인을 읽다, 보다, 걷다 - QR 영상으로 떠나는 포도밭 여행
이종영 외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주말 휴일에 와인 한잔 하면서 와인 영화의 걸작인 사이드웨이를 다시보았다. 좋아하는 와인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다시한번 가장 좋아하는 대화를 들어보았다.

마일즈 : 피노누아는 재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줘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만 잘 자라죠. 인내심 없는 재배가 불가능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져요.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고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죠. 또 다른 품종과는 다르게 소박함도 느껴지고... 당신은요? 왜 와인을 좋아해요?

마야 : 전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 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사한 햇살...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 동안 죽어간 사람들... 또 와인은 변화무쌍하죠.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생명력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죠. 제 맛을 함껏 뽐내곤 삶을 마감하죠.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에!

영화 사이드웨이

나는 피노누아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와인을 안지가 경력이 얼마되지않아 카쇼를 제일 좋아한다. 피노누아는 아직 내가 초보자이기에 그 풍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와인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언제 만들어진 빈티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빈티지보다는 떼루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포도밭의 위치, 경사도, 밭의 물의 양, 햇빛 그리고 모든 바람의 영향 등 모두를 종합해서 떼루아라 한다. 인간이 인간성을 만들어가는데 주변환경 영향과 같은 모양새다. 우리의 삶은 포도주와 같다고 한다. 문뜩 그동안 공부했던 와인관련 다양한 정보를 정리해 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ㅎㅎ 와인에서 시와 낭만 그리고 인생을 발견한 <부르고뉴 와인을 읽다, 보다, 걷다>을 읽었다. 순수 자연 발효 알콜을 섭취한 휴일 오후에....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은밀한 합의가 있다. 초보자는 칠레나 호주의 과일 향 가득한 와인으로 시작하고, 조금 익숙해지면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프랑스 보르도의 웅장함에 감탄하다가, 결국엔 부르고뉴라는 미로 앞에 서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미로는 쉽게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책은 바로 그 미로 앞에 선 이들을 위한 안내서다. 하지만 여느 가이드북처럼 친절하게 손을 잡아끌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직접 걸어보라고, 스스로 보고 느껴보라고 권한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읽다, 보다, 걷다.' 수동적 학습이 아니라 능동적 체험을 요구하는 동사들의 나열. 이 세 개의 동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이 책이 취하는 독특한 접근법의 본질을 드러낸다. 부르고뉴는 와인 세계의 에베레스트라 불린다. 복잡한 끌리마 체계, 미세한 떼루아의 차이, 얽히고설킨 소유권 구조, 그리고 수백 개에 달하는 마을 이름들. 일반적인 와인 입문서들이 부르고뉴를 다루면서도 유명한 몇몇 그랑 크뤼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샤블리부터 마꼬네까지, 유명한 본과 뫼르소는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꼬뜨 샬로네즈의 작은 마을들까지 빠짐없이 다룬다.


책의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와인 전문가가 아니다. 그들의 본업은 다른 곳에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토록 방대한 작업을 해낸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애정에서 비롯된 결과다. 이 지점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전문가의 글은 때로 지나치게 기술적이거나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오류에 빠진다. 업계 내부자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초심자가 느끼는 막연함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반면 깊이 공부한 애호가의 시선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온 혼란의 여정을 기억하고, 어떤 설명이 도움이 되고 어떤 정보가 불필요한지 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저자들의 고백은 겸손처럼 들리지만, 실은 이 책의 강점을 정확히 짚어낸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학습자였던 시절의 기억이 묻어나는 문장들을 발견하게 된다. 복잡한 AOC 체계를 설명할 때의 차근차근한 접근, 떼루아와 끌리마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사례로 풀어내는 방식, 그리고 각 장 사이에 배치된 '미니토픽'들. 포도 줄기를 포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오가닉과 비오디나믹의 차이, 부르고뉴 상속법이 와인 산업에 미치는 영향 같은 주제들은 교과서적 지식을 넘어선, 현장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이다.


책의 가장 혁신적인 시도는 QR코드를 통한 영상 제공이다. 국내 와인 전문서로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단순한 '최초'라는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와인은 결국 땅의 산물이다. 특히 부르고뉴처럼 떼루아를 강조하는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무리 정교한 언어로 토양의 성질을 설명하고, 언덕의 경사를 묘사해도, 실제로 그 풍경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저자들이 직접 촬영한 포도밭의 영상은 책의 내용을 단순히 보조하는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독자를 2차원 평면에서 3차원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통로다. 끌로 드 부조의 돌담을 보고, 샹볼 뮈지니의 완만한 경사를 확인하고, 샤블리의 석회암 토양이 햇빛에 빛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 이것은 학습이 아니라 여행이다. 물리적으로 부르고뉴에 가지 않아도, 책을 읽으며 그곳을 걷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 제목의 세 동사 중 '보다'와 '걷다'를 실현시키는 장치다. QR코드라는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적 경험, 즉 땅을 밟고 바람을 느끼는 감각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더 근원적인 체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책의 구성을 보면 일종의 동심원 구조를 띤다. 가장 바깥에는 부르고뉴 와인의 역사와 개요가 있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떼루아와 끌리마라는 철학적 토대가 자리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AOC라는 법적·제도적 틀이 나타나고, 마침내 중심에는 개별 마을들과 그들의 와인이 펼쳐진다. 그리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면서 실용적인 정보들 - 시음법, 보관법, 페어링 - 이 배치된다. 이런 구조는 독자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하나는 지도다. 부르고뉴라는 광대한 지역의 전체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꼬뜨 드 뉘와 꼬뜨 드 본의 차이, 샤블리가 왜 따로 떨어져 있는지, 마꼬네가 어떤 특성을 갖는지. 개별 나무들만 보다가 숲을 발견하는 순간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다른 하나는 나침반이다. 막막함 속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원칙들. 떼루아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AOC 등급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랑 크뤼와 프르미에 크뤼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이런 근본적 이해가 있을 때, 수백 개의 와인 이름들이 무작위 나열이 아니라 의미 있는 체계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이 정말 훌륭한 점은, 모든 것을 다 채워 넣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여백이 있다. 독자가 스스로 채워 나가야 할 공간들. 예컨대 한식과 부르고뉴 와인의 페어링을 다룬 부분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가능성을 열어둔다. 각자의 경험으로 확장하고, 자신만의 조합을 발견하라고 초대한다. 완결된 백과사전이 아니라, 여정을 시작하게 만드는 책이다.

"와인 여정의 종착역은 부르고뉴"라는 말이 있다. 이 책도 그 표현을 인용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말이 역설을 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부르고뉴는 종착역인 동시에 출발선이다. 그곳에 도착한다는 것은 와인에 대한 일정 수준의 이해와 경험을 갖췄다는 의미다. 더 이상 단순한 과일 향이나 떫은맛에만 주목하지 않고, 산도와 미네랄, 구조와 여운,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단계. 그러나 동시에 부르고뉴에 발을 들이는 순간, 진짜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같은 마을 안에서도 밭에 따라, 생산자에 따라, 빈티지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차이들. 평생을 바쳐도 다 알 수 없는 깊이다. 책은 그 무한한 깊이 앞에서 겸손해지면서도, 동시에 탐험에 대한 열망을 품게 만든다. 모든 마을을 다 가볼 수는 없겠지만, 한 병의 와인을 마실 때 그 뒤에 있는 땅과 사람, 역사와 기후를 생각하게 된다. 글라스 안의 액체가 더 이상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어떤 장소와 시간의 압축된 기록처럼 느껴진다.


'부르고뉴 와인을 읽다, 보다, 걷다'는 교본이 아니라 동반자에 가깝다. 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이해를 추구한다. 저자들이 와인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결핍이 아니라 자산이다. 그들은 독자와 같은 위치에서 출발해, 조금 먼저 길을 걸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권위적이지 않고, 과시적이지 않다. 한국어로 된 와인 책들 중에 부르고뉴만을 이토록 깊이 있게 다룬 사례가 드문 이유는 명확하다. 너무 복잡하고, 너무 방대하며, 쉽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 어려움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그것도 QR코드라는 새로운 시도까지 더해서.

와인의 일생에 대해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 와인은 생명체거든요. 와인이 계속 변화한다는 게 정말 좋아요. 오늘 열어서 마신 와인을 만일 다른 날에 따서 마셨더라면 맛이 다를 거잖아요. 그건 와인이 살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진화하고 다양한 모습을 더해 가다가, 당신의 1961년 산 슈발 블랑처럼 정점에 이르게 돼요. 그 후로는 피할 수 없는 내리막 길을 따라 서서히 시들어가죠

영화 사이드웨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 <사이드웨이즈(sideways)> 중에서 여주인공 마야의 대사이다. ’슈발 블랑(Cheval Blanc)’이라...보르도의 지롱드강 우안에 있어 1855년의 ‘그랑 크뤼 클라세’에서 1등급 와인에 들지는 못했지만 당당히 그들 1등급 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혹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와인이다. 실제로 현대 보르도를 대표하는 와인들을 꼽으라면 1등급 와인 5개에다가 4개를 덧붙여 모두 9개를 꼽는데 ‘슈발 블랑’ 역시 그중 하나다. 슈발 블랑....‘하얀 말’이라는 뜻인데...거의 레드 와인만 생산하는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생테밀리옹의 샤또에서 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화이트 와인 느낌이 나는 레드 와인이라고 한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에 가까운 와인이다. 강건하고 파워풀하고, 시간을 견디는 보르도 와인이면서 동시에 부르고뉴 피노누아의 서정적인 우아함도 지닌 게 슈발 블랑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은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 와인이 우리 삶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며, 식사에 맛을 더하고, 대화를 원활하게 하며, 인생의 작은 순간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 해 주는 와인의 종류와 와인에 담긴 역사와 의미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